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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12월 5일, 그 감동 다시 읽다1896년 "아리랑은 쌀과 같다”, "아리랑은 새로 생긴 사랑의 노래”라고 기록되었다. 1914년 회령의 소학교 한 소년의 가슴에 담았던 아리랑이 1926년 영화 필름에 기록되었다. 1942년 중경 임시정부 광복군이 아리랑을 군가로 하여 "압록강 건너 승전의 태극기를 날리자"고 절규하였다. 1950년 인천상륙작전 승전으로 수도를 탈환한 순간에, 그리고 1953년 판문점 휴전조인 현장에서 아리랑이 울려퍼졌다. 1962년 남북통일학생연석회의에서 "회담을 대신하여 오후6시 하늘을 향해 아리랑을 부르는 것으로 합의"를 대신하였다.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공식 개막식 주제가로 연주되었다. 1989년 남북 체육회담에서 단일팀 단가로 합의하고,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경연대회에서 중국을 물리치고 우승하여 국가(國歌)로 연주되었다. 2012년 한국이, 2014년 북한이 각각 유네스코에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 우리는 국가무형문화재 129호로 지정하였다. 2018년 평창올림픽 경기대회 개막식에서 정선아리랑이 세계를 향해 울려퍼졌다. 그리고, 2022년 12월 5일 강원도 정선군 한강 최상류 아우라지강가에 유네스코 등재 10주년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이제 일년을 맞는 오늘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비 건립 취지’를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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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회 섬진강국제실험예술제 ‘글로컬 아트 웨이브',이혁발/ 예술연구소 '육감도' 곡성의 들판을 살찌우는 실험예술제의 힘 2002년부터 시작된 '한국실험예술제'가 제주도를 거쳐 '섬진강 국제실험예술제'로 펼쳐진 지 3회째가 되었다. '실험예술제'는 세계미술사에 기록될만한 업적을 가진 국제적 명성의 예술제이고 일반적 시각으로 볼 때는 파격적이거나 생경한 부분도 있어 3만 명이 안 되는 작은 군에서 잘 품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 예술제를 품은 혜안의 결과물들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조금씩 여물어져 가는 듯하며, 더 나은 미래의 삶에 대한 긍정적 에너지, 기운의 꿈틀거림이 서서히 파동, 물결을 만들고 있음이 느껴져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얼핏 쓸모없어 보이는 실험예술의 쓸모에 대하여 실험예술, 전위예술은 "모든 제약으로부터의 해방이요, 전적인 자유”이고 "가장 자유로운 상태에 있어서의 창조의 의지”이다. 이때 "전위의 ‘정신’은 순수한 정신상태로 머무르며 ‘창조된 것’”, 완결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창조하는 그 자체에 방점이 찍힌다. 즉 전위는 ‘가능성’, 가능태로서 어떤 결과물로도 나올 수 있는 물렁물렁하고 유동적인 것이다. 창작의 마무리, 완결은 또 하나의 관습, 틀, 전통 등의 제약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실험예술, 전위예술은 언제나 ‘모색 중’, ‘실험 중’인 것이다. 모든 틀을 거부하고 순수한 정신상태로 자유로운 창작을 하는 것이 실험예술이다. 그래서 실험예술제는 무경계, 혼용과 융합성, 즉흥성, 우연성, 일시성, 현장성의 특성을 갖는다. 실험예술제의 실험예술은 첫해, 출발부터 행위미술을 기반으로 하였기에 기존 전통적 미술작품이 아니고 실연 후 사진과 영상만 남는 탈물질의 예술제였다. 물질에서 벗어난 탈물질, 그 무소유의 자유로움은 정신의 고양과 몸의 감각을 더욱 일깨우게 된다. 이로써 행위자나 관람자는 인간 본능이 갈구하는 몸과 마음의 자유, 해방감, 감각의 절정(쾌감)을 맛보게 된다. 또한, 행위미술은 개념미술에 근간을 두고 있는 것이므로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이 예술을 통한 사유는 ‘세상을 보는 눈’을 확장시켜 준다. 예술작품은 우리가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보도록 하는 ‘새로운 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보는 시각’은 다른 말로 ‘철학’이다. 즉 이 실험예술과 함께 하는 것은 철학적 인간의 삶으로 인도하게 한다는 것이다. 행위미술의 실연이나 타 장르의 공연이든 한번 하고 사라지는 이 시간예술의 ‘탈 물질’은 무소유와 무위자연사상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실험예술제가 자연에서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생명 존중, 환경 보존’ 의지가 드러나고 ‘생명’과 ‘평화’를 말하게 된다. 그래서 올해 주제인 ‘물결’은 ‘예술 물결’인 동시에 ‘생명 평화의 물결’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를 담은 예술 물결은 자신의 작은 이익을 위해 자연을 훼손하는 이들을 초라하게 만들어 그들을 변화시키는 자극제가 되는 것이다.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예술은 관습, 규범, 틀을 벗어나는 것이며, 그 벗어남은 항시 ‘새로움’을 낳는다. 그 새로움은 무한한 열림을 의미한다. 실험예술의 운명은 언제나 새로움이다. 새로운 것을 생각하는 창의적인 발상은 좀 더 나은 미래로 나가는 지름길을 연다. 그리하여 그 예술이 우리의 정신과 삶을 대하는 자세에 영향을 미쳐 항시 지금보다는 보다 나은 삶으로의 이행을 북돋는 비료 같은 것이 된다. 이렇듯 실험예술은 우리 미래의 더 풍성한 삶을 위해서는 매우 쓸모있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다.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시인이자 미술평론가인 루이 아라공은 벌써 100년 전에 전위예술(실험예술)의 ‘쓸모’를 강조했다. "실험적인 성격을 보존해야 하며 –중략- 예술은 항상 주어진 것의 청산이다. 그것은 움직임이요, 미래이다. 그리하여 예술은 생활의 변화, 정신과 과학의 발견에 직접 참가하는 것이다.” 넘나들고 스며들며 ‘대동세상’ 꿈꾸는 이타적 예술제 실험예술제는 무경계, 혼용, 융합 예술제이다. 예술 장르 간 경계가 없다. 무용가, 시인, 행위미술가가 하나의 작품을 발표하고, 즉흥 음악이 펼쳐지는 가운데, 무용수가 춤을 추고, 행위미술가가 행위를 한다. 구음과 악기 연주가 만나고, 전통 악기와 전자 악기가 만나고, 동서양의 예술이 한 무대에 있다. 이번 실험예술제에는 헤어아티스트(미용사)의 공연과 행위미술가의 실연이 한 공간에서 이뤄졌다. 코믹한 저글링 공연의 다음 공연은 실험음악가와 보이스 퍼포먼서(소리 행위미술가)가 함께 하는 공연이 이어졌다. 플라멩코 기타와 우리의 민요 소리가 함께하는 무대도 있었다. 장르의 구분, 경계 없는 공연이 이뤄졌다. 각각의 공연 서너 개가 무대와 무대 주변에서 동시에 진행되기도 하였고, 그날그날의 마지막 공연은 참여 예술가들이 대거 자진 참여하여 함께 하는 대동 공연 형식이 되었다. 공연 중간중간에도 리듬이나 흥에 받쳐 공연 무대에 올라 신명 나게 동화되었다. 이렇게 장르 간의 경계가 없이 서로 조화롭게 넘나들었으며 스며들었다.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예술의 조화로운 호흡이었다. 이런 융합, 혼용의 자유로운 형식은 ‘열린 마음’에서 가능한 이 예술제만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늘 그래왔지만, 이번 실험예술제에도 관객석이 고정된 무대보다 마당형, 또는 마당조차 없는 현장 그 자체에서 공연하였다. 서울에서는 도로의 건널목에서부터 락카페, 카페, 극장, 전시장 등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예술을 펼쳤다. 이번에도 백일홍이 심어진 공원(동화정원)에서, 소가 염소가 있는 축사에서, 곡성 기차마을 전통시장에서 공연이 이뤄졌다. ‘폐농기구 조형 작품 만들기’는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서 주민들과 함께 이뤄졌다. 이렇듯 협업 공연이든, 각기 공연이든 서로가 함께 어울려 실험예술제라는 커다란 한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고, 그 예술이 펼쳐지는 것이 주민과 격리된 실내 무대가 아닌 공원, 축사, 시장, 마을 등 주민들 바로 곁에서 그들의 삶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활동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예술제는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하는 홍익인간의 이타적인 가치를 지향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인간 존재의 본성을 회복하고, 만물일체 되어, 차별 없고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모두 어울려 노니는 이상사회, 즉 대동세계를 현실화 시키고자 하는 지향점을 향해 가고자 하고 있다. ‘공공예술’,‘사회예술’로의 모색 "사회예술은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예술이며, 과정의 문제에 있어서도 사회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예술이다. 나아가 사회예술은 사회적 실천과 예술적 실천을 통합의 관점에서 창조적으로 융합하는 예술이다.” 이러한 사회예술의 테두리 안에는 건축물에 설치된 회화 조각의 공공미술, 시장 안에 작가들이 거주하며 작품을 만들고 시장 활성화를 시도하는 프로그램, 예술을 활용한 사회운동, 벽화 사업, 9.11 기념관 같은 추모 설치작품들도 포함된다. 또한, 축제나 예술행사도 넓은 의미의 사회예술이라 할 수 있다. 상품 가치와 사용가치의 경제적 교환만이 숭상받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용가치가 없는 예술작품은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는, 정신과 감성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가치의 교환, 즉 감성의 교환가치를 주기에 의미 있는 것이다. 지역 예술인의 참가, 지역민의 삶의 현장에서 펼치는 프로그램이 들어있는 이번 실험예술제도 지역사회와 연계하고, 함께하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는 점에서 사회예술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폐농기구를 활용한 조형작품 만들기 프로그램에서는 사회예술적 성격이 보다 뚜렷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지역사회에 밀착되며 지역사회의 공공 이익에 더 도움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실험예술이라는 큰 밭에 ‘공공예술’, ‘사회예술’ 성격을 더 강조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개인적으로 사회예술 하면 먼저 ‘소 퍼포먼스’의 사진이 떠오른다. 1998년 정주영이 소 떼 1,001마리를 이끌고 판문점을 넘어 북한을 방북하는 장관은 커다란 사회적 사건임과 동시에 ‘사회적 퍼포먼스’이고 기억할만한 ‘사회예술’이라 할 수 있다. 또 하나, 기록할만한 예술사적 사회예술은 요셉 보이스의 <7천 그루의 참나무>라는 작품(프로젝트)이다. 카셀시에 나무 7천 그루를 심는 사회 운동적 성격의 개념미술이고, 환경예술, 행위미술이며 ‘사회 조각’이라 칭할 수 있다. 첫 나무 외의 나무는 기부한 시민들이 공동참여자로 이식을 진행했다. 이때 나무를 심으면서 나무 옆에 일정 크기의 현무암 바위를 세우도록 했는데, 지금 이 장소들은 관광자원이 되었다. 이 작품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엄청난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예술가와 사회가 더불어 만들어나가는 사회, 개인의 이익을 떠나 공동의 선(이익)을 위해 서로 어깨를 두르며(소통) 아름다운 세상으로 함께 걸어 나가는 모범적인 사례로 보인다. 이런 것이 진정한 ‘공공예술’이고 ‘사회예술’이다. 사회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죽곡면 상한마을에서 실시한 [폐농기구 활용 조형작품 만들기] 워크숍은 참신한 기획이었다. 삽, 괭이, 낫, 호미 등 쓰임을 다한 온갖 농기구들을 이용하여 작가 3인이 주민들과 함께 만들어낸 조각, 설치작품은 미적 요소와 의미요소가 풍성히 담긴 아주 우수한 공공미술, 사회예술작품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었다. 하지만 이 작품들의 보관과 지속성, 관광자원화 등도 고려해보아야 하고, 탈물질과 무소유의 철학을 가진 실험예술제가 이런 물질(설치조각)작품을 어느 만큼 수용하며 나아갈지도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다. 한편, 무소유와 자유로운 해방감, 정신의 고양을 중시하는 실험예술제, 즉 무형의 가치가 더 크고 위대함을 보여주는 이 실험예술제의 가치를 그대로 유지해 가져가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일상에 지쳐있는 지역민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어 삶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이 예술제의 소명을 다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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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한국전쟁과 아리랑(下) <br>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 코리아# "UN참전 군인들은 애환이 담긴 애조의 아리랑을 전쟁 참상의 현장에서 가슴에 담았다. 일부는 아름다운 한국처녀의 아리랑으로, 일부는 처참한 어린 고아의 아리랑으로, 또 어떤 군인은 승전가 아리랑으로 담았다. 이들에게 아리랑은 영원한 한국 참전 인식표(認識票)이다.” # "유엔군은 한국군 전우에게 아리랑을 배웠고, 나라마다 다른 군가 대신 아리랑으로 연대하였다. 아리랑이 행진가와 진혼곡으로도 연주되기도 하여 한국의 국가로 아는 군인들도 많았다.” # "참전 유엔 정보 담당 군인들은 오끼나와 기지에서 기초적인 생활어와 아리랑을 배웠다. 한국전 포로 식별을 위한 정보교육이었다. 포로 중 아리랑을 부르지 못하면 중공군이고, 아리랑을 잘 부르면 북한군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또한 전투 중 고립되었을 때 아리랑을 부르면 한국인들이 공포심이나 거부감을 갖지 않고 보호해 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 "유명한 재즈 뮤지션 오스카 페티포드는 우연히 들은 아리랑에 영감을 받아 귀국하여 째즈 ‘아디동 부르스’을 취입해 인기를 얻었다. 오스카 페티포드는 40년대와 50년대 초 미국 재즈계에서 베이스와 피아노 연주자로 유명하였다. 그는 1953년 초 일본 오끼나와 미군기지에 위문공연을 왔다 한국 위문공연을 하고 있는 미국 뮤직션들과 합류하여 귀국하기 위해 인천의 야전 부대에 머물게 되었다. 이때 야전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 밖에 있던 한국 통역병이 휘파람으로 부는 노래를 듣었다. 일을 본 뒤 통역병에게 휘파람 연주에 대해 물었다. 이 때 ‘아-리-랑’을 ‘A-DEE-DONG’으로 듣게 된 것이다. 그가 취입한 SP음반에는 연습곡(take) 2곡까지 수록하여 처음 들었던 당시의 영감을 표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을 읽을 수 있다.” # "지난 4월 24일 90세로 별세한 룩셈부르크 레미히 성당의 질베르 호펠스(Gilbert Hauffels)씨의 장례식에는 아리랑이 연주되었다. 인구 20만의 나라에서 100명이 파병된 군인 중 19세의 청년으로 1952년 3월 참전하였다. 최후까지 휴전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하여 또한 철원평야를 확보하기 위해 격전을 벌인 ‘철의 삼각지’ 백마고지 전투에서 생존한 이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10일간의 전투에서 고지 주인이 12번이나 바뀐 전투로 포탄 27만발로 ‘395 고지가 무너져 내려 마치 누워 있는 흰말’(白馬高地)로 보일 정도로 되었다는 최고, 최후의 전투였다. 그는 조카에게 남긴 유언장에 ‘아리랑을 들려 달라’는 유언에 따른 것이다. 아리랑은 룩셈부르크 한인회 박미희 회장이 불렀고, 반주는 참전 후 재직한 세관의 관현악단이 맡았다. 이 나라도 독일에 점령되었다가 미국 등의 우방국 참전으로 해방이 된 역사를 갖고 있다. 그의 한국전 참정 일기는 룩셈부르크 전쟁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 "전우들을 위해 아리랑을 부르겠다.- 6·25 당시 미 해병대 병장이던 영국 참전 용사 콜린 새커리(93)옹이 부산에서 열린 ‘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아리랑을 불렀다. 1950년 9월 19세의 청년으로 영국군 제30야전포병대 소속 포병으로 참전했다. 같은 소대 전우 4명을 잃고 327고지 전투에서 생환했다. 4명의 전우가 잠든 부산 UN공원에서의 기념식에 그들을 위해 아리랑을 부르겠다는 의사에 따른 것이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배로 부산에 도착했을 때 뜻은 모르지만 선율이 너무나 애잔하고 아름다워 금방 기억하였다고 한다. 그 오랜 세월 한국전을 생각할 때마다 아리랑을 흥얼거렸다고 한다. 이제 혼자의 흥얼거림이 아닌 세계를 향해 평화를 기원하며, 전우의 죽음을 영예롭게 하기 위해 부른 아리랑이다.” # "70년 전,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정전협정 서명식을 마친 후 유엔군 군악대가 연주한 곡이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한국전쟁의 가장 극적인 순간에 빛을 발하는 노래이다. 지루하고 적군의 전략으로 오르내린 휴전 회담은 유엔군을 지치고 격분시켰다. 가장 길고도 이목을 끈 국제적인 정전 협정 조인식임에도 악수도 없고, 박수도 없고, 웃음기도 없는 조인식이었다. 그리고 동서 문을 통해 갈라졌다. 그런데 문을 나서는 순간 양측의 군악대가 연주한 곡이 아리랑이었던 것이다. 한국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한민족이며, 전쟁의 최후 종결 주도자도 남과 북은 한민족이라는 것을 적과 동지가 공감한 결과이다. 아리랑이 남북간의 만남에서 연주되는 이유이다. 이제 아리랑 연주는 종전의 순간일 것이다. 그때는 악수하고 박수치고 웃으며 맺는 조인식이며 부등켜 함께 합창하는 아리랑일 것이다. 그 아리랑을 염원한다.” 룩셈부르크 아리랑 *유언장에 '아리랑을 불러달라'고 할 정도로 아리랑을 좋아했던 호펠스 씨는 아리랑을 들으며 떠나셨다. 인구 2o만의 룩셈부르크가 6.25 전투에 100명을 파병했다니, 그동안 몰랐는데 놀랍고 감동스럽다. 여러 나라의 넘치는 도움을 받고 선진국으로 우뚝선 대한민국이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데 결코 인색해선 안될 것이다. 호펠스씨의 명복을 기원한다 아리랑의 국제화가 이뤄진 게 6·25 전쟁부터다. 한민족의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미 7사단은 아리랑을 사단 공식 행진곡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1951년 위문공연 차 방한한 유명 재즈 가수 오스카 페티포드는 우연히 아리랑을 듣고 이를 바탕으로 이듬해 앨범을 발매해 인기를 모았다. ‘아디동 블루스’란 이름인데 아리랑을 아디동으로 오인한 것이다. 수많은 용사들이 종전 후에도 아리랑을 잊지 못했다. 지난 4월 24일 별세한 룩셈부르크의 질베르 호펠스씨는 "장례식 때 꼭 아리랑을 불러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6·25 당시 미 해병대 병장이던 이는 지난해 한국 정부로부터 ‘평화의 사도 메달’을 받으며 아리랑을 불렀다. 오늘 부산에서 열리는 ‘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에서 직접 아리랑을 부를 예정이다. 참전 용사 60여명이 참석한다. 70년 후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남한에서 울려퍼질 아리랑을 듣는 노병들의 감회가 남다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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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 '두 얼굴의 평화, DMZ' 특별전 개최경기문화재단 경기도박물관이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두 얼굴의 평화, DMZ' 특별전을 오는 10월15일까지 선보인다. 1953년 7월 27일 경기도 북부의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된 것을 기념하고, 1950년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의 참상과 정전협정, 그리고 정전협정의 결과로 만들어진 비무장지대(DMZ)에 대해 조명해보는 특별기획전이다. 행사는 오는 10월15일까지 진행된다. 전시는 지난 2020~2021년 문화재청·경기도·강원도가 합동으로 진행한 '한반도 비무장지대 실태조사' 성과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비무장지대 내에서 발굴·수습한 영웅들의 유품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제1부 ‘끝나지 않은 전쟁’, 제2부 ‘두 얼굴의 DMZ’, 제3부 ‘내일을 위한 기억’, 제4부 ‘DMZ 실태조사 성과 순회사진전’ 등 네 부분으로 나눠진행된다. 제1부 '끝나지 않은 전쟁'에서는 6·25전쟁과 정전협정을 다룬다. 6·25전쟁에서 사용한 대표적인 무기인 M1 소총과 '따발총'이라고 불리는 소련제 슈파긴 기관 단총, 전쟁 때 뿌려진 삐라, 유엔군이 돌아갈 때 기념으로 가져간 아리랑스카프 등을 전시한다.또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정전협정 본문(복제본)을 볼 수 있다. 정전협정서는 유엔군 대표와 북한군·중공군 대표가 서명, 정전협정서 원본은 미국과 중국 북한에 있다. 제3부 '내일을 위한 기억'에서는 6·25전쟁에 전투부대와 의료지원을 해준 국제연합군의 22개 국가의 희생을 기억하는 국내의 기념비를 소개한다.이와 함께 70년 전 정전협정 지도를 통해 사라진 마을과 문화유산에 대한 정보도 전시한다. 비무장지대가 탄생하면서 사라진 마을은 총 2개 도, 9개 군, 35개 면, 116개 행정리와 401개의 부속마을이다.201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된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기록물, 전쟁·분단·이산의 아픔을 노래한 대중가요, 전쟁을 다룬 영화, 판문점과 비무장지대를 기록한 사진집, 다시 가 보고 싶은 '그리운 금강산' 관련 유물과 자료, 비무장지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실태조사 자료 등도 전시한다. 제4부는 'DMZ 실태조사 성과 순회사진전'이다. DMZ 실태조사 때 촬영한 가장 최근의 사진들을 경기도박물관 갤러리에서 따로 선보인다.2009년 국방부 의뢰로 최초로 휴전 이후 비무장지대 기록 사진을 촬영한 박종우 작가의 다큐멘터리 사진도 전시된다. 이 사진들을 통해 70년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비무장지대 안의 감시초소와 전방을 수색하는 병사 모습, 그 곳에 서식하는 식물과 조류, 포유류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무장지대의 원시적 아름다운 자연 풍경 아래에는 남과 북이 겪은 전쟁 잔해와 아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전시 기간 중에는 정전협정 70주년 학술포럼과 전시연계 전문가 특강 등 다양한 행사도 열린다. 전시연계 프로그램으로는 통일부가 제작한 ‘DMZ 메타버스, 사라진 마을’이 상설돼 있다. 6.25전쟁 이전 DMZ에 있었던 400여 개의 마을 중에서 연천 고랑포리․항동리, 철원 외촌리․유정리, 양구 문등리, 고성 대강리․사비리 등 큰 규모의 마을을 메타버스로 구현한 프로그램이다. 경기도박물관 관계자는 "비무장지대 땅 밑에 지뢰와 폭탄이 숨어있고 전사자의 유해와 유품, 문화유적과 사라진 마을들이 여전히 남아있다"며 "이들을 무심히 덮고 회복해가는 자연생태계의 모습을 통해 DMZ의 내일, 한반도의 평화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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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한국전쟁과 아리랑(上)한국전쟁 3년 1개월 2일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위 38°선 전역, 소련의 지령과 중국의 지원으로 북한군이 전면 남침하였다. 약 5년간의 체제에서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냉전 속의 이 체제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후자는 수립이 되자마자 군사력을 확충하며 소련과는 ‘조소군사비밀협정’을, 중국공산당과는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여 전쟁을 준비했다. 이에 따라 중국 공산군에 있던 조선인 2만5천명이 북한군에 인도됨으로서, 13만명이 전선에 배치되었다. 우월한 전세를 갖춘 북한은 통일을 내세워 선전포고(宣戰布告)도 없이 남침을 했다. 이렇게 전 38선상에 남침함으로서 촉발된 전쟁은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점령하였다. 이에 UN 결의에 따라 국제사회가 개입하게 되었고, 미7사단 주력부대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성공함으로서 서울을 수복하고 이어 9일만에 평양을 점령하여 전세를 역전시켰다. 그러나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는 다시 교착상태에 머물게 되었다. 이 때부터 UN군 등에서 제한전쟁으로 휴전이 제기 되기에 이르렀다. 이 전쟁으로 한민족은 너무나 큰 손실을 보았다. 정신적 피해는 제처 두고라도 인적 물적 손실은 물론, 많은 이산가족 발생 같은 고통은 치유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 때문에 분단은 더욱 고착화되기에 이르렀다. 우선 인적 손실은 어느 전쟁보다 컸는데, 국군은 140여만 명, 북한은 약 329만 명, 유엔군은 약 15만 명의 손실을 보았다. 결국 남북은 무려 520만 명의 희생을 낸 것이다. 전쟁 피해, 희생은 이뿐만이 아니다. UN 참전군들의 희생도 크다. 참전국은 미국 영국 캐나다 터키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에티오피아 벨기에 프랑스 남아공 룩셈부르크 16개국이 유엔군으로서 약 190만 명의 전투병을 파병했으며, 인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가 야전병원, 병원선 등의 의료지원을 통해 참전했다. 이들의 인명 희생도 막중했다. 또한 많은 포로들의 발생도 그 처리로 갈등을 겪었다. 한민족이 남북군과 중공군에 동족임에도 편입되었고, 16개국 UN군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포로 교환 문제는 휴전회담 기간 내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북한군 포로 중에는 강제로 징집되어 많은 투항병이 발생하였고, 한국군 포로가 재 강제 징집 되어 북한군이 된 경우도 있었다. 또한 중공군 포로 중에는 송환을 거부하는 자도 있었다. 이런 상황으로 UN '포로교환문제소위원회'와 '국제적십자조사위원회'는 곤경에 처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세 가지 문제로 급진전하게 되었다. 하나는 북한 지역에 전염병의 발발한 사실이고, 둘은 1952년 12월 유엔총회에서 120일간 설득하여 체코·폴란드·스웨덴·스위스 4개국으로 자유의사에 따라 선택하게 하자는 합의를 하였다. 마지막은 1953년 3월 소련의 스탈린의 사망이었다. 이런 경과로 휴전은 급진하였다. 드디어 1951년 7월 미국의 릿지웨이 유엔군 사령관과 북한 김일성과 평더화이 중공군사령관이 개성에서 회담이 시작되어, 군사분계선 설정, 세부사항 일괄타결, 전쟁포로 문제 합의와 협정 체결이 된 것이다. 2년 만인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협정을 맺어 전쟁은 중지되었다. 북한과 중공군 대(對) UN군 측의 미국이 대표하여 협정에 서명함으로서 휴전이 되었다. 3년 1개월 2일의 전쟁은 휴전 체제로 들어 간 것이다. 이로서 포로교환 등의 여진이 남았지만, UN군은 해체되어 참전 군인들은 각국으로 귀국하였다. 남북한은 전선에서 군인들과 무기를 철수하였다. 그리고 전쟁 복구에 들어갔다. 처참한 동족상잔 한국전쟁은 귀국 참전 군인들에 의해 전 세계에 전파되었다. 그 결과로 ‘한국은 전쟁의 나라’, ‘한국은 고아의 나라’, ‘한국은 아리랑의 나라’ 같은 인상비평적(印象批評的) 표현들이 회자되기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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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예산군, 윤봉길체육관에서 정전 70주년 기념 호국음악회충남 예산군은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위대한 헌신, 영웅의 자부심'을 주제로 15일 오후 5시부터 윤봉길체육관에서 호국음악회를 개최한다고 11일 밝혔다.이번 음악회는 충남서부호훈지청 주관으로 우리 고장의 호국영웅인 정긍모 제독, 김풍익 중령, 이장원 중위를 비롯한 호국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마련됐다.또한 군민에게 보훈 정신을 알리고자 공연, 제복의 영웅들 퍼포먼스, 판문점 입체퍼즐만들기, DMZ 소원종 등의 다채로운 체험이 진행될 예정이다.군 관계자는 "6·25전쟁 정전일인 7월 27일을 앞두고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세대에게 호국보훈의 정신을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군민의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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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참전용사들 정전 70주년 맞아 한국 온다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정전 70주년 계기, 오는 24일(월)부터 29일(토)까지 5박 6일 일정으로 유엔참전용사와 가족 등 200명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재방한 행사를 진행한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재방한 행사는 정전 70주년 계기, 70년 전 대한민국을 지킨 유엔참전용사에게 정부 차원의 예우와 감사를 전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영웅들을 모십니다” 주제로 추진된다. 방한하는 참전용사와 유가족은 덴마크를 제외한 21개 참전국 200명으로 유엔군 참전의날이자 정전협정 70주년인 7월 27일(목)을 앞두고 24일(월)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다. 재방한 참전용사 중 최고령자는 미국의 해럴드 트롬(미국, 95세) 참전용사로, 1950년 미 육군 이병(PFC)으로 참전해 인천상륙작전 및 장진호 전투에 참전하였다. 해롤드 씨와 함께 장진호 전투에 참전한 패트릭 핀 (미국, 92세)씨와 고든 페인 (영국, 92세)씨도 함께 방한한다.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꼽히는 후크고지 전투에 참전한 로널드 워커(89세), 렉스 맥콜(92세), 버나드 휴즈(92세), 마이클 제프리즈(90세, 이상 호주), 빈센트 커트니(캐나다, 89세), 피터 마시(영국, 90세) 참전용사도 방문단으로 내한하며 특히, 빈센트 커트니 씨는 11월 11일 ‘턴 투워드 부산’ 행사를 최초로 제안한 참전용사이다. 또한 4형제가 함께 6·25전쟁에 참전한 아서 로티(캐나다, 91세)씨와 그의 아들도 함께 재방한한다. 아서 로티씨 4형제는 6·25전쟁 정전 후 캐나다로 무사히 돌아갔고 다른 형제 3명은 현재 모두 별세하였다. 방문단에는 전쟁 당시 한국에서 맺은 소중한 인연을 기억하고 아직까지 찾고자 하는 참전용사도 있다.이번 초청을 통해 처음 방한하는 윌리엄 워드(91세, 미국) 참전용사는 전쟁 당시 부산 캠프에서 매일 자신의 빨래를 해주겠다던 12세 소년 창(Chang)을 찾고 있으며 에드워드 버커너(캐나다, 91세) 참전용사 역시 전쟁 당시 초소(Large Squad) 청소를 했던 ‘Cho Chock Song’이란 한국 소년을 만나고 싶어 두 사람 모두, 당시 찍은 사진을 국가보훈부로 보내왔다. 유엔참전용사의 가족 중에서는, 6・25전쟁에 미8군사령관으로 참전해 중공군의 공세를 꺾고 전선을 38도선 북쪽으로 북상시킨 제임스 밴플리트(James Alward Van Fleet) 장군의 외손자인 조셉 맥크리스천 주니어(Joseph Alexander McChristian JR) 씨와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여 인천상륙작전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월튼 워커’ 장군의 손자인 샘 워커 2세(Sam, S. Walker Ⅱ) 씨도 포함되었다. 재방한하는 참전용사와 가족은 지난 6일 보훈부가 인천국제공항공사(사장 이학재)와 체결한 업무협약에 따라 인천공항에 입국하는 순간부터 입국절차 간소화, 전용 출입국통로(패스트트랙) 등 최고의 예우와 공항내 전광판, 가로등 배너 등 감사 환영을 받는다. 방한단은 25일(화) 판문점 방문을 시작으로 26일(수) 유엔참전국 감사 만찬에 참석하고 27일(목) 부산 유엔기념공원 방문, 유엔군 참전의날 및 정전협정 70주년 기념식 참석, 28일(금) 전쟁기념관 방문의 공식 일정 후 29일(토) 출국할 예정이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유엔참전용사분들은 73년 전 발발한 전쟁에서 낯선 땅, 낯선 나라의 국민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젊음과 목숨을 바친 진정한 영웅”이라며"대한민국의 놀라운 70년을 만든 주역인, 이분들이 재방한 기간 어떠한 불편함도 없도록 최고의 예우를 다하고 대한민국과 참전국, 더 나아가 세계의 젊은이들이 유엔참전용사의 숭고한 인류애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국제보훈사업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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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평화아리랑’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이 조인된 날이다. 69년 전 7월 27일 판문점에서 3년간의 전쟁이 국제법적으로 정전을 문서로 합의한 것이다. 당시의 조인식장 건물은 현재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어 북한 측에 편입된 상태인 가건물에서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William K. Harrison Jr.) 중장과 북한군 수석대표 남일 대장이 각각 서명하여 이뤄졌다. 이 날의 조인 장면은 미군이 촬영하여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소장되었다. 이 날 아리랑으로선 뜻깊은 연주가 있었다. 아마도 가장 ‘아리랑’ 다운 연주였을 것이다. 바로 양측이 서명한 조인서를 교환하고 대표단이 동서쪽으로 난 문의로 나서는 순간 양측에서 아리랑이 연주되었다. 미군 측과 북한군 측 소규모 악대가 아리랑을 대표단을 향해 연주한 것이다. 이 아리랑 연주는 양측이 모두 인식한 의도적인 연주였다. 국제적이고 세기적인 전쟁의 휴전 조인식이면서도 악수도, 박수도, 당연히 웃음도 없었지만, 이 전쟁의 해결은 남북의 자주의사에 의해 이뤄질 것이란 암묵적 합의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한민족의 노래 아리랑’이 동시에 연주될 리가 없었던 것이다. 지난 27일 한국전 정전 조인 기념식이 한국과 미국에서 개최되었다. 서울 동대문 프라자와 미국 워싱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 ‘추모의 벽’에서 역시 아리랑이 연주로 장식되었다. 한 신문은 이를 정확하게 기억해 냈다. "기념식은 미7사단 군악대와 우리 국방부 군악대대가 합동으로 아리랑을 연주하며 시작됐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조인하고 귀환하던 대표단을 위해 미군이 연주했던 노래가 아리랑이었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한민족의 노래’다. 남북이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에 등재했다. 남측은 60여종, 북측은 43종의 아리랑을 ‘아리랑’으로 포괄했다. 하나이면서 어럿인 노래이다. 이 각각의 아리랑은 나름의 속성과 기능이 있지만 공통된 문화적 형질은 ‘대동과 상생’이다. 이는 곧 ‘평화정신’인 것이다. 내년은 정전협정 70주년. 부디 전쟁을 평화로 전환시키는 종전 기념식이 있기를 희원한다. 그 기념식에서 세계인이 악수하고 박수치며 함성을 지르는 감동이 넘치게 하자. 그리고 부등켜 눈물콧물 범벅되고 음정 박자 후렴이 뒤엉켜 ‘평화의 아리랑’을 목 놓아 부르자. 대동과 상생으로 끝내 이뤄낸 평화의 아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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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위대한 한국인, 암행어사 박문수’ 출두요!‘가난한 백성들의 영웅’, ‘백성들의 삶을 보살핀 해결사’, ‘청렴한 관료의 상징’, ‘세제개혁 애민 실천의 명판관’, ‘암행어사의 전설’······. 이런 매력적인 표현들은 우리 설화의 주인공 ‘어사 박문수’에 대한 것이다. 영조가 "잠 잘 때 외에는 박문수를 생각한다”라고 한 각별한 군신관계를 알려주는 기록(홍제전서)이나 전국 200여 편의 설화 주인공으로 존재한다는 사실(구비문학대계)에서 역사 콘텐츠의 주인공임을 입증한다. 어사 박문수(1691~1756)가 330년만에 책으로 현현(顯現)하였다. 장승재 암행어사박문수문화관장이 쓴 ‘위대한 한국인, 암행어사 박문수’ 출판기념회을 통해서다. 지난 4월 28일 어사의 출생지인 평택 진위면 암행어사박문수문화관에서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평택 출신 판문점과 관광 전무가인 장승재 관장이다. 장 관장은 고향 평택에서 자라며 어른들로부터 박문수 선생에 대해서 듣고 자라 추앙하는 인물로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정 관장은 책에서 이렇게 밝혔다. "박문수의 위민(爲民)정신과 현장(現將)의 리더십은 우리 시대에도 필요한 정신이며 실천 요강이다.” 박문수는 1691년 9월 8일 경기도 진위현(현 평택시 진위면 봉남3리)에서 태어나 활동한 조선시대 정치가이며 600여명 어사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암행어사이다. 암행어사박문수문화관은 2020년 11월 박문수의 위민정신과 현장(現將) 리더십을 함양하기 위해 선생이 태어난 평택시 진위면에 설립되었다. 그동안 문화관은 위민실천 리더십 아카데미 운영, 선생 탄신 33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개최, 박문수 선생 연계 현장 탐방 프로그램 개발, 2022 암행어사 박문수 선생 학술세미나 개최 등을 통해 홍보와 저변확대에 열중하고 있다. 이 책은 여러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인간 박문수는 누구인가? 암행어사 박문수의 위민정치. 암행어사 박문수의 문화스토리. 암행어사 박문수의 문화 플랫폼. 암행어사 박문수의 이모저모. 암행어사 박문수관련 문화탐방. 암행어사 제도와 역대 암행어사 열전. 암행어사 박문수 관련 단체. 왜, 암행어사 박문수인가? 등으로 구성됐다. 저자는 "박문수 선생이 백성을 사랑한 정신과 리더십을 밑바탕으로 박문수 선생을 새롭게 조명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며 "선생 생가터 표지석 설치. 암행어사 박문수 홍보대사 위촉, 암행어사 박문수선생기념사업회 결성, 암행어사 박문수 대상 시상식 개최, 박문수 선생 학술세미나 등을 중장기 계획을 세워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 11월 개관 이후 ‘박문수 정신’(충성·충정·청렴·위민·실천·소통)을 실천하기 위해 평택 진위를‘암행어사의 메카’로 삼아 현창사업은 물론 지지체 발전을 위한‘암행어사 박문수 위민실천 리더십 아카데미’등을 개최해 왔다. 저자는 기념사를 통해 "암행어사 박문수 관련한 수많은 서적, TV 연속극, TV다큐, 대중가요 등은 있었던 것에 반해 박문수의 정신과 얼을 이어받기 위한 사업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 암행어사 위민사상과 리더십이 재조명되고 ‘암행어사 박문수학’이 탄생되기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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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의 여로 (15)<br>청자상감학무늬편사색에 잠긴 학, 명상에 잠긴 학 이규진(편고재 주인) 송학도(松鶴圖)라는 것이 있다. 소나무에 학이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은 잘못된 만남과 배치라고 할 수 있다. 학은 절대 나무에 앉는 법이 없는 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송학도가 의미가 없느냐 하면 그 것은 아니다. 청정함을 자랑하는 소나무와 고고함의 상징인 학을 함께 배치함으로서 무언가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동양화의 사의(寫意)란 바로 그런 것이기도 하다. 이런 송학도는 아무래도 조선조에 와서 성행한 그림의 한 형식이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도 송학도는 아니어도 학은 많이 볼 수 있다. 특히 고려청자에서 운학문은 국화와 더불어 상감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양이기도 하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둥실 떠 있는 구름과 솟구쳐 비상하고 있는 학의 모습은 영원을 꿈꾸었던 고려인들의 마음의 표상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게는 청자상감학무늬편이 한 점 있다. 언젠가 답십리 고미술상가를 구경하다 구입한 것이다. 지금은 인사동으로 이전한 고미술점이 답십리에 있을 때였는데 들려보니 청자도편 무더기 속에 청자상감학무늬편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눈에 번쩍 뜨여 양도를 원했으나 주인은 일괄 판매를 강조하는 바람에 난감했다. 다른 청자도편들은 관심 밖의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마침 동행했던 수석계의 강사장과 성문출판사 송사장이 옆에서 거들고 지원을 하는 바람에 다행히 원하는 대로 청자상감학무늬편만을 구입할 수가 있었다. 나는 이 도편이 너무 마음에 들어 구입 후 당시 수석받침을 잘 깍는다고 소문이 난 퇴촌의 강씨를 찾아가 괴목으로 좌대를 만들어 감상해 오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나는 왜 그때나 지금이나 이 청자상감학무늬편에 매료가 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이 청자상감학무늬편의 학이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사실 고려청자에 보이는 학은 태반이 비상하는 모습이다. 날개 짓도 선명히 다리를 쭉 뻗고 날아오르는 학의 모습은 나름의 생동감과 멋스러움을 지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청자상감학무늬편의 학은 날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 있는 모습이다. 나는 아직까지 청자에서 이처럼 서서 사색에 잠긴 듯 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학은 본적이 없다. 그 뿐 아니라 학 무늬 자체가 이처럼 큰 것을 만나 본 적도 없다. 강진청자자료박물관에서 2001년에 개최한 청자운학문특별전 도록을 보면 운학문이 들어간 청자 39점에 참고자료 24점 도합 63점의 학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운학문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참고자료를 보아도 모두가 날고 있는 것일 뿐 서 있는 학은 단 한 점도 볼 수가 없다. 이 것만 보아도 청자상감학무늬편이 얼마나 흔치 않은 귀물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청자상감학무늬편의 학은 푸른 청자 빛을 바탕으로 앞을 향해 걸어가려는 듯 몸을 앞으로 약간 내밀고 있는 가운데 다리는 앞뒤로 조금 벌어져 있다. 눈과 부리와 다리는 흑상감이고 몸체는 백상감이다. 머리 위로는 알 수 없는 꽃무늬가 보이기도 한다. 청자상감학무늬편은 중앙으로 배를 약간 불리고 있어 기형은 매병이 아닌가 추측된다. 도편은 적당하게 손상되어 있어 중앙에 자리 잡은 학을 감상을 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좌대는 도편을 감싸고 있는 가운데 밑에 고임을 위한 받침이 튼실하게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도편은 좌대로 인해 자연스럽게 세워져 있어 편하게 서 있는 학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니까 매병 속에서 튀어나온 학이 좌대 속에서 자리를 잡아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학은 우리말로는 두루미다. 한국 중국 일본 등이 원산지인 대형 조류로 몸길이 140Cm에 날개를 펴면 무려 240Cm나 되고 몸무게는 10Kg에 달한다. 몸통은 흰색에 목과 꼬리 일부는 검은색이다. 정수리 부분에 붉은 반점이 있어 단정학(丹頂鶴)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반도에는 10월 하순경 황해도와 개성 판문점 일원에 머물다 점차 남하하며 이동하는 철새다. 해 ,구름, 산, 물, 소나무, 거북, 사슴, 복숭아, 불로초와 함께 십장생 중의 하나로 꼽히거니와 지조있고 품격 있는 선비를 상징 많은 유물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앞서도 이야기 한 바와 같이 학은 청자에서는 비상하는 모습이나 도안화 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청자상감학무늬편의 학은 흔히 볼 수 없는 아주 특이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신선이 타고 다니는 새, 천년을 장수하는 영물로 알려져 우리 생활에 친숙해 그림이나 시의 소재는 물론이거니와 복식이나 여러 공예품 등에 많이 시문되는 학, 그런가 하면 몸을 닦고 마음을 실천하는 선비를 일컫는 학명지사(鶴鳴志士)나 선비가 은거하여 도를 이루지 못함을 탄식한다는 뜻의 학명지탄(鶴鳴之歎)을 상기시키는 학, 그 학을 청자상감학무늬편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 사색에 잠긴 학, 명상에 잠긴 학을 통해 지조 있고 품격 있는 선비의 삶이 오늘에 줄 수 있는 교훈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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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문화공간으로 변모…15일부터 예술 전시회통일부는 남북출입사무소가 올해 'DMZ평화통일 문화공간' 개관 전시를 비대면 중심으로 진행한다고 14일 밝혔다. 전시는 오는 15일부터 11월15일까지 약 2개월 진행된다.전시는 경기 파주 남북출입사무소 내 Uni마루, 도라산역, 파주 철거GP, 강원 고성 제진역, 국립통일교육원 등 5곳에서 열린다. 백남준, 양혜규, 올라퍼엘리야슨 등 작가 32명의 작품 34점이 전시된다.전시작은 'Borderless DMZ, 그 아름다운 평화'를 주제로 판문점 선언 등 남북 합의 이행 노력과 결실, 통일과 평화, 생태와 보존, 연결과 연대, 교류 확장의 의미 등을 담고 있다고 통일부는 전했다.주 전시장인 Uni마루는 과거 개성공단 조성 당시 출입 사무를 수행하던 구 출경동을 예술 공간으로 재구성한 곳이다. 고 백남준 작가의 '코끼리 수레, 호랑이는 살아있다' 등 작품 14점이 전시된다.파주 철거GP는 2018년 남북 합의 후속 조치로 상호검증을 거쳐 불능화한 공간이며, 평화의 소정원을 조성하고 경계를 넘은 남북 간 협력을 상징하는 작품 등이 설치될 예정이다. 남북 분계역이자 대륙횡단열차 출발점인 경의선 도라산역에는 물결 모양 미디어 월 작품이, 고성 제진역에는 네온사인과 실향민 유물을 활용한 작품 등이 전시된다.남북출입사무소는 남북 정상 합의인 비무장지대(DMZ) 국제평화지대화 실천을 위해 올 1월부터 동서 남북출입사무소, 파주 철거 GP 등을 활용해 문화예술공간 조성 사업을 진행해 왔다.이번 전시는 판문점·평양 공동선언 3주년을 계기로 준비됐다고 한다. 다만 고강도 방역 조치 적용 등 상황을 고려해 대면, 방문 행사 대신 비대면 전시 중심으로 진행한다는 설명이다.통일부는 "전시 기간 중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하향될 경우 방역 지침 아래에서 일반 국민들이 소규모로 DMZ 현장을 방문 관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개관 당일인 15일에는 예술감독으로 참여한 정연심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가 임흥순, 최재은 등 참여 작가들과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한다. 이우환 작가도 특별 손님으로 참여한다.아티스트 토크 행사는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된다. 전시 홈페이지는 15일 열리며, 23일부터는 온라인 뷰잉룸 기능을 더해 작품 영상 관람 콘텐츠도 반영될 예정이다.통일부는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DMZ가 많은 국민들과 전 세계인이 평화를 향유하고, 더 나아가 남북이 함께 만들어 가는 평화통일 문화예술 공간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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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 내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유품 보존처리 시작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지병목)는 국방부가 강원도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발굴해 수습한 한국전쟁 전사자의 유품 313건 425점의 보존처리를 시작한다. 국방부는 남북 간 체결된「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2018.9.19)」에 따라 남북공동 유해발굴구역으로 선정된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유해발굴 작업(2019.4.~2020.11.)을 진행해 유해 약 400여 구와 화기, 탄약, 전투장구, 개인유품 등 총 9만 5,000여 점의 유품을 발굴한 바 있다. 그간 국방부는 유해발굴 현장에서 확인된 유품에 대해 자체적으로 보존처리를 해왔으나 발굴지역이 확대되면서 유품 수량이 늘어 보존처리가 지연되자 지난해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를 중심으로 비무장지대 내 유해발굴 유품의 보존처리를 지원하고 있다. * 2020년 문화재청의 유해발굴 유품 보존처리 지원 수량: 69건 545점 올해 문화재청이 보존처리를 하게 된 유품 313건 425점은 개인유품 50건 73점과 기타 화살머리고지에서 출토된 263건 352점이며,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오는 28일 국방부로부터 대상 유품들을 인수하여 연말까지 보존처리를 완료할 예정이다. 또 7월에는 보존처리 유품 중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의 유가족을 초청하여 유품의 보존처리 과정을 공개하는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참고로, 철원 화살머리고지는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 일대에 위치하며 1953년 국군과 유엔군으로 참전한 프랑스군이 중공군과 치열하게 싸운 격전지였다. 이 지역의 유해발굴은 한국전쟁 이후 68년 만에 이뤄진 최초의 비무장지대 유해발굴 사례로 역사적인 의미 역시 크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앞으로도 비무장지대 내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유품 보존처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순국선열에 대한 공동의 국가적 책무를 실천하고 근대 문화유산의 보존방안 수립과 기초자료 확보에도 기여할 계획이다. <보존처리 대상 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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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예술제 20일 개막경기도는 20일부터 한반도 평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비무장지대(DMZ)의 특별한 가치를 공유할 '2021 Let's DMZ 평화예술제'를 연다. 경기도는 오는 5월 20일부터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 시민들과 함께 한반도 평화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비무장지대(DMZ)의 특별한 가치를 공유할 《2021 렛츠디엠지(Let’s DMZ) 평화예술제》를 개최한다. DMZ는 1953년 정전협정 이후 70년간 대치중인 갈등과 긴장의 공간이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생태계가 그대로 보전된 생명의 보고다. 이러한 DMZ가 전쟁을 넘어 평화와 생명의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경기도는 지난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등을 계기로 2019년부터 도민들과 그 가치를 교감하는 Let’s DMZ 행사를 진행해왔다. 올해 3년차를 맞이하는 《2021 Let’s DMZ 평화예술제》의 핵심 메시지는 ‘다시, 평화’다. 경색된 남북 관계를 회복하고, 코로나19로 지친 일상이 다시 평화로워지기를 기원한다는 취지이다. 오는 20일부터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열릴 전시·체험 행사 《DMZ 아트프로젝트》를 시작으로 21~22일 《DMZ 포럼》, 22일 《DMZ 콘서트》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DMZ 아트프로젝트》는 6월 15일까지 약 한 달 간 운영되며, 이어 하반기에는 도내 시·군 곳곳에서 평화와 DMZ를 주제로 펼쳐지는 공연과 토크콘서트 등 《찾아가는 Let’s DMZ》와 걷기, 자전거대회, 마라톤 등 체육행사 《DMZ 런》이 개최된다. 《DMZ 포럼》은 특별/기획/평화운동협력 등 20개 세션으로 구성되며, 다양한 주제를 놓고 한반도와 세계 평화의 실천방안을 논하는 학술행사다. 특히 올해 포럼의 슬로건 ‘새로운 평화의 지평을 열다’에 맞춰 평화 담론이 한반도를 넘어 국제적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세계의 평화운동가들이 참여하는 세션이 확대됐다. 올해 DMZ 포럼은 코로나19 방역지침 준수를 위하여 위해 오는 20일까지 줌(ZOOM)을 통한 비대면 참여 신청을 받고 있다. 참여 신청을 하지 않아도 당일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참관 가능하다. 《DMZ 콘서트》에서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경기필하모닉 단원들로 구성된 ‘DMZ 피스 오케스트라’(지휘: 김광현)를 중심으로, 동·서양 음악의 조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한반도와 세계 음악을 아우르는 공연을 통해 올해 평화예술제의 주제 ‘다시, 평화’를 음악으로 구현할 계획이다. 출연진으로는 피아니스트 이진상을 비롯한 세계적인 클래식 아티스트, 국악 기반의 동양고주파와 잠비나이, 악단광칠, 가객 강권순, 대중가요로 많은 사랑을 받는 비와이(BewhY), 이하이, 라포엠(LA POEM), 엘리스(ELRIS), 엔시티 드림(NCT Dream), YB(윤도현밴드) 등이 무대를 꾸밀 전망이다. 또한, 해외에서 활동 중인 소프라노 조수미와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축하공연과 메시지가 담긴 영상도 함께 한다. DMZ 콘서트는 경기아트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랜선 관객 1,000명을 모집 중이다. 또한 관객 신청을 하지 못하더라도 경기도 유튜브 채널과 경기아트센터 유튜브 채널 ‘꺅! TV’에서 실시간 시청이 가능하다. 5월 29일(토) 저녁 11시 40분에 KBS 1TV 특집방송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DMZ 아트프로젝트》는 파주 평화누리 공원 일대를 입체적 전시․체험 공간으로 기획한 오프라인 야외행사다. 분단과 평화를 주제로 강익중 등 작가 12명의 작품 200여점과 안은미 컴퍼니,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의 퍼포먼스를 통해 DMZ의 생태와 평화, 미래지향적 가치를 표현한다. 전시 프로그램 외에도 평일에는 꿈을 담은 그림으로 임진강을 잇는 ‘꿈의 다리’ 교육체험, 주말에는 낭독·마임․노래 등을 통해 DMZ와 평화 관련 문학작품을 입체적으로 보고 듣고 즐기는 문학공연을 운영한다. 또한 경기도는 더 많은 대중들과 교감하기 위해 홍보대사단과 서포터즈를 운영하고 있다. 《2021 Let’s DMZ 평화예술제》 공식 홍보대사로는 배우 김의성이 지난 4월 위촉되었고, 지난 14일에는 DMZ 및 평화와 관련한 사연을 지닌 경기도민 12인이 ‘도민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이들은 올해 평화예술제 각 행사와 연계된 온·오프라인 홍보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또한 140여명의 경기도 청년봉사단이 공식 서포터즈로서 평화협력 공감대 형성을 위한 온라인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이들의 활약상은 《2021 Let’s DMZ 평화예술제》 공식 SNS(www.instagram.com/letsdmz_dpaf)에서 찾아볼 수 있다. 《2021 Let’s DMZ 평화예술제》의 온·오프라인 참여 방법 등 자세한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www.letsdmz.or.kr)에서 확인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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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기, 현(絃)의 인생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서울 법대 출신의 재인서양의 고전 음악은 세계 각국에서 연주가 거듭될 때마다 놀라운 찬사로 이어진다. 또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품격까지를 격상시켜 주고 신분 상승 효과마저 곁들여 주는데 왜 한국인에게는 우리의 고전, 전통 음악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푸대접까지 받아야 하는가.황병기(黃秉冀ㆍ57, 이대 음대) 교수는 자신이 스스로 찾아낸 ‘학문적 화두’를 부둥켜안고 확신에 찬 해답을 얻어내기 위해 매일매일 골몰하고 있다. 깨어 있을 때마다 가야금의 현으로 퉁겨져 표현될 인간 내면 세계의 악상을 가다듬고 때로는 선정에 든 편안한 마음으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서울 재동국교―경기중―경기고―서울대 법대. 누구 앞에서도 ‘꿀리지 않을’ 한국 사회에서의 학벌이다. ‘서울 법대’를 졸업한 그가 가야금 주자로 ‘천시받는 국악 인생’을 보무도 당당히 걷고 있다. 그래서 황병기 교수의 국악 인생은 우리 국악의 희망과도 통한다."자신이 하는 일을 놓고 사명감 운운하는 사람을 가장 경멸합니다. 본인의 능력껏 분수대로 열심히 사는 것이지요. 어떤 환경에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늘 긍지와 소신을 스스로 찾아감이 윤택하게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황 교수는 가야금을 통해 결혼(부인은 여류작가 한말숙 씨, 한씨도 대학 시절 가야금에 심취돼 국립국악원서 황씨와 만남)을 했고 민간인으로는 최초로 판문점을 통해 평양에 간 음악인이 됐다. 1990년 10월 평양에서 개최된 범민족통일음악회에 작곡가 윤이상 씨의 초청을 받았던 것. 연주 여행을 통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구미 각국을 몇 차례 순방했고 현지 대학 교수로도 한국 음악의 세계화를 위해 쉴새 없이 뛰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 내놓은 ‘황병기 가야금 창작곡집’은 매년 판매율이 20% 증가하는 베스트셀러로 입지가 확보돼 있다.제자들 또한 기라성 같다. 이재숙(李在淑, 서울음대 교수), 김정자(金靜子, 서울음대 교수), 조청자(趙靑子, 이대 강사), 서원숙(徐元淑, 단국대 교수), 이승열(李承烈, 국립국악원장), 양연섭(梁連燮, 한양대 교수), 양승희(梁勝姬, 서울대, 이대 강사), 문재숙(文在淑, 이대 강사), 박현숙(朴賢淑, 이대 강사), 윤소희(尹素姬, 이대 강사), 곽은아(郭銀雅, 이대 강사) 등을 우선 손꼽는다. 앤드루 킬릭(영국인, 미 워싱턴대 박사 과정), 바버라 스미스(미 하와이대 교수), 로버트 가피어스(전 워싱턴대 교수) 등은 그가 아끼는 외국인 제자들이다. 황 교수는 혹시 거명 안 된 수많은 제자들이 섭섭히 생각하면 어쩌느냐며 교단을 통해 사제지연을 맺은 후학들이 수백 명은 될 것이라고 했다.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1의 316번지 그의 자택. 서울 종로구 계동 147의 13번지에서 태어나 처음 ‘문밖’으로 나온 것이 현재의 집이라고 한다. 부친(황태문)의 고향은 전북 옥구로 선대 시묘(侍墓)는 그곳에서 받들고 있다. 부친은 우주 황씨 전국중앙종친회 초대회장을 지냈다.사업가였던 아버지 덕에 풍요로웠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경기중 2년 시절 6ㆍ25로 피란 가면서 ‘소년 황병기’의 운명이 바뀐다. 부산 최초의 국악 연구소인 김동민(金東旻) 씨 사무실에서 김철옥 씨가 뜯어 내는 가야금 소리를 들은 것이다. 황씨는 그 때 "저게 바로 우리 할아버지들이 듣던 소리구나.” 하는 깜짝 놀람과 함께 등 뒤에서 "너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느냐.”는 다급한 외침이 들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그 후로는 만류도 아랑곳없이 가야금에 미쳤다고 한다. 부산 용두산공원으로 피란 내려와 있던 국립국악원에 찾아가 김영윤(金永胤) 씨한테 정악 가야금을 밤낮 가릴 것 없이 열중했다."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공부나 일의 능률은 그 성취 효과가 놀랍습니다. 인생사의 어떤 일이든 억지로는 안 되는 법이지요. 아무튼 그 당시는 잠을 자면서도 가야금 꿈을 꾸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왜 가야금을 보고 그렇게 전율했고 어째서 숙명 같은 것을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그렇다고 황씨가 학교 공부에 소홀한 건 절대 아니었다. 경기고 시절에는 영문 소설을 써 당시 교내 신문이었던 ‘경기 타임스’에 게재했고, 특히 수학에 뛰어나 각고 끝에 찾아낸 방정식의 답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 얼굴’ 같았다고 말한다.황교수의 두 아들도 그를 닮아서인지 장남은 미 하버드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막내 아들은 보스턴대 물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두 딸은 시집보낸 지 오래이고.한국전쟁이 끝나고 국립국악원이 서울에 자리잡으며 황씨의 가야금에 대한 정열은 더욱 농익어 간다. 이즈음 김윤덕(金允德) 선생을 만나 그 유명한 정남희(丁南希)제 산조를 전수받는다. 김씨는 정씨의 수제자로 가야금 산조의 뛰어난 명인. 여기에 활기를 더해 준 것이 심상건(沈相健) 씨의 민속악 가야금 산조. "정남희 선생의 가야금 산조는 별다른 치장이 없어 담백합니다. 일반대중이 이해하기는 좀 힘든 편이나 구성감이 좋고 지적이어서 맛을 알면 그냥 흠뻑 취해 버리고 말아요. 가야금 연주 기법 중 10여개의 유파가 전해 오고 있으나 정남희제 산조는 들을수록 기품이 와 닿죠.”정남희 씨는 월북 국악인으로 한때 그의 음악 세계가 수난을 당한 때도 있다. 1990년 평양 범민족통일음악회에 가 낯익은 연주 가락이 있어 찾아가 만나니 바로 정씨의 제자 김길환 씨(평양 음악무용대 교수)였다고. 이처럼 대가들의 연주 기법은 확연히 구분되는 계통이 확립돼 있다는 황 교수의 말이다.고3 때의 전국음악콩쿠르 1등(덕성여대 주최), 대학 3년 시절 차지한 KBS 주최 전국음악콩쿠르(가야금) 최우수상 수상 경력 등으로 졸업(1959년)과 동시 서울음대 강사로 발탁된다. 1959년 신설된 음대를 현제명 학장이 맡으며 국악 쪽을 떠맡긴 것이다."서울법대를 나와 판ㆍ검사 안하고 가야금이나 메고 다니느냐는 소릴 수없이 들었지요. 그럴 때마다 저는 우리 전통 민속 음악을 제대로 분별해 내는 음악 판ㆍ검사가 되겠노라고 다짐을 거듭했습니다. 국내에서 잘 몰라 그렇지 우리의 전통 음악이 유럽과 미국에서 각광받고 그들의 심성 속에 깊이 파고든 지 오래예요.”62년부터 내딛은 황 교수의 가야금곡 작곡 편력은 ‘한국의 국악 작곡사’ 와도 통한다. 나원화(羅元和) 씨한테 전수받은 정악 가곡과 어우러진 곡풍은 신비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 ‘국화 옆에서’, ‘숲’, ‘전설’, ‘영목’, ‘비단길’, ‘가라도’, ‘침향무’ 등은 국악 입문생도들의 ‘고전 음악’이 되어 버렸다. 황교수의 작품 중 ‘미궁(迷宮)’은 최저현을 활로 때려 진동하는 신비음과 인성이 조화를 이룬 상승악으로 매우 충격적이다. 인간의 ‘원초적 공포’를 도출시켜 현대 문명과의 괴리 현상을 비틀어 낸 이 곡은 한때 ‘금지곡’으로 지목되기도 했다.황 교수는 1974년 이화여대 음대로 자리를 옮기면서 ‘음악가’로서의 인생을 새로 굳혔다고 회고한다. 경기고 4년 선배인 전위 미술가 백남준(白南準) 씨와 서울 법대 1년 선배인 가수 최희준(崔喜準) 씨와도 예술적 교류를 갖고 있다."스승의 학풍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학문 세계는 늘 새롭게 창조해 나가야 합니다. 국악의 학문적 접근이 ‘국악의 세계화’를 앞당기고 균형 감각을 상실 않는 세계 음악으로 깊숙이 뿌리내리게 할 것입니다.”가야금 연주와 그만의 작곡 기법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 명사가 되어 버린 ‘신세대의 재인 황병기 교수’. 오랜 작곡 생활 속에 곡이 많지 않은 이유를 "곡을 쓰는 데는 2주일이 소요되나 구상하는 데만 2년이 걸린다.”고 대답한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초판 1995., 4쇄 2006., 이규원, 정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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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 '이산가족 실태조사'등에 남북협력기금 지원 결정통일부는 올해 이산가족 실태조사에 남북협력기금에서 8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통일부는 14일 제318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열어 이산가족 실태조사 등 7건에 대한 남북협력기금 지원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산가족 실태조사는 2011년과 2016년에 이어 세 번째로,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 국내에 거주하는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 5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다. 통일부는 신청자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교류사업 수요를 파악하는 한편 이산가족 정책에 대한 의견 수렴도 진행할 예정이다. 또 DMZ(비무장지대) 평화통일 문화공간 1단계 조성사업에 필요한 경비 47억 7천600만 원도 지원하기로 했다. 2022년까지 진행되는 DMZ 평화통일 문화공간 조성사업은 남북출입사무소와 도라산역 등을 활용해 남북이 함께하는 문화교류 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올해는 도라산역 미디어월 설치, 조망용 도보 육교 설계 등이 계획됐다. 아울러 2005년부터 추진해오고 있는 겨레말큰사전 남북 공동편찬사업에 33억 4천500만 원을 지원한다. 통일부는 "올해에는 작년에 제작한 사전 가제본을 북측과 최종 합의를 거쳐 종이사전 형태의 '겨레말큰사전' 발간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운영에 84억 600만 원,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운영에 19억 2천746만 원, 한반도통일미래센터 운영에 37억 5천만 원, 남북교류협력지원협회 운영에 41억 2천100만 원을 각각 지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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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br>판문점에 ‘아리랑’을 부여하자금년은 <남북기본합서>가 채택·발효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역사적인 합의이다. 그 동안 5차례의 남북고위급회담과 13차례의 실무대표 접촉을 통해 합의문이 완성되었고, 1991년 12월 13일, 서울에서 개최된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채택·서명되고, 1992년 2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확인·발효된 합의 문서이다. 서문과 남북화해, 남북불가침, 남북교류, 협력, 수정 및 발효 등 4개항 25개 조로 구성되어 있다. 이로부터 역사적인 "남과 북은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를 처음으로 명시하였다. 이는 <전문>에서 더욱 구체적이고 확장적으로 제시되었다. "남과 북은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따라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고,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여 민족적 화해를 이룩하고, 무력에 의한 침략과 충돌을 막고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며, 다각적인 교류. 협력을 실현하여 민족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며, 쌍방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 인정’, 이 선언적인 문구는 바로 이 합의서에서 비롯되었다. 이로서 모든 통일논리의 전제가 되었다. 실제적으로 남북한은 다른 나라로부터 승인을 받고 외교관계를 맺고 있으며 각기 유엔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엄연한 국제법적 행위주체이다. 그럼에도 남북한은 각기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로서 국제법적 적용을 받아 서로를 국가로 인정한 바가 없었다. 당연히 인정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체제 정통성을 부인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통일을 민족적 과제로 달성해야 할 명분과 목표를 모호하게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남북한은 서로의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고 못 박은 것이다. ‘통일을 지향하는 관계’, 이 역사적인 선언이 명문화된 것이 30년 전 합의된 <남북기본합서>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다. 이 역사적인 사실을 생각할 때, 금년은 더 적극적인 통일 방안을 강구, 실천하는 해이어야 한다. 아리랑 문화운동을 하는 필자로서는 이런 인식에서 나름의 통일론으로 판문점의 미래상을 제시하고자 한다. 즉,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역사적 장소로서의 판문점을 생태자원, 문화자원, 관광자원, 경제자원의 융합체로 하여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합의 상징’으로 ‘세계평화 테마 관광지’로 꾸며 가자는 제안이다. 이는 더 적극적인 통일방안을 강구하면서 이는 미래의 후손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앞으로 판문점 내에 건립되는 모든 건축물은 남북한이 공동의 목적으로, 동일한 명칭으로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새 길을 낸다든가, 새 건물을 짓는다든가 또 아니면 새로운 다리를 놓게 되면 남북이 합의하여 용도, 명칭 등을 결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에서 문산까지는 고속화 도로 ‘통일로’가 있다. 그러나 문산에서 판문점까지는 고속화가 되어있지 않다. 마찬가지로 평양에서 개성까지는 고속화 도로가 나 있다. 그러나 개성에서 판문점까지는 고속화가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남북 모두 판문점에 이르는 인접도로의 고속화 도로를 필요로 한다. 그 때 남북의 도로명을 ‘남북 아리랑길’로 명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리랑고개’는 수난과 고난을 극복한 상징적인 도로명이다. 분단 체제를 극복해야 통일을 맞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개는 판문점으로 상정할 수 있다. 길은 바로 아리랑고개에 이르는 필수 과정임으로 ‘아리랑길’은 상징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적정한 명칭인 것이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진입하는 다리는 두 곳이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와 ‘72시간 다리’이다. 전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계인 한반도 군사 분계선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공동경비구역 서쪽에 흐르는 사천강을 건너는 다리이다. 1953년 휴전협정 체결 후 포로교환이 이뤄진 다리로 ‘한 번 건너가면 다시 돌아 올 수 없다’는 뜻에서 ‘널문다리’라는 이름에서 개명된 것이다. 그런데 1976년 8월 미군 도끼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북한 측에서 판문점으로 들어오는 다리로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북측에서 긴급하게 새로운 다리를 건설했는데, 그것이 콘크리트 시공 시간이 사흘정도 걸렸다는 뜻으로 ‘72시간 다리’로 명명하였다. 북측에서 판문점 관할 공동경비구역으로 들어오는 사천강 상의 다리로 통일각 뒤편에 위치해 있다. 지난 2017년 북한 병사가 남측으로 오기 위해 10여초 만에 지프차로 건넌 다리이다. 이상과 같은 사정에서 사천강을 건너는 새로운 다리를 건설 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비운의 역사가 담겨있어 보존의 필요성이 있어 사용할 수 없고, 하나는 급조한 것으로 40여년을 넘기고 있으니 새로운 다리로 건설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필자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그것은 앞에서 제안한 ‘아리랑 길’이 만나는 사천강 상의 적정한 지점에 새로운 다리를 놓자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 이름도 당연히 ‘아리랑교’ 또는 ‘아리랑다리’로 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제안하는 것은 남북통일을 염원하고, 통일 후에는 이를 기념하는 것은 물론, 세계평화의 거점임을 상징하는 특별한 건물을 건립하자는 것이다. 그 건물 이름은 당연히 ‘아리랑의 집(Arirang House)’이다. ‘아리랑길’과 ‘아리랑다리’와 같은 아리랑의 상징성을 부여한다는 뜻에서다. 그런데 사실 새로운 건물의 필요성은 매우 현실적이다. 왜냐하면 2018년 4월 남북정상 회담과 2019년 남북미 정상 회담 과정에서 보았듯이 장소 문제가 논란이 있었다.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회담을 해야 하니 의전과 보안문제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남과 북이 함께 짖고, 함께 관리하고, 함께 사용할 건물을 건립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판문점 내에 세워진 건물 중 동일한 목적으로, 남북이 함께 세운 건물은 하나도 없다. 모두 상호 감시 목적이나 대응 논리로 세워진 것일 뿐이다. 이런 기존의 분단성을 극복할 필요에서도 통일 주체에 의한, 동일 목적의, 민족성을 상징하는 명칭의 건물은 필요한 것이다. 현재 판문점 내의 남북간 주요 건물은 북의 ‘판문각’과 ‘통일각’ 대(對)남의 ‘자유의 집’과 ‘평화의 집’이 있다. 결국 ‘판문’, ‘통일’, ‘자유’, ‘평화’가 이미 사용되었으니 이를 포괄함은 물론 더 큰 상징성을 가진 명칭이어야 한다는 현실성에서도 그렇다. 다만 그 건립 시기와 위치와 형태에 대한 문제인데, 이는 현실성과 국제정세와 국민적 합의를 통해 결정될 문제이다. 그러나 준비 기간은 충분해야함으로 우선 필요성에 대한 담론을 형성, 어느 일각에서라도 시작해야 한다. 이런 당위성에서 <남북기본합서> 채택·발효 30주년인 금년을 논의의 기점으로 해야 한다. 새해 벽두 상상해 보자. ‘아리랑’길을 달려 판문점에 도착하여, 세계적인 인물들이 모여 세계평화를 논의하는 ‘아리랑의 집’에서 이들의 주장을 귀담아 듣고, ‘아리랑다리’를 건너 개성으로가 고려시대의 역사 유적지를 둘러보고 금강산에 올라 인류평화를 기원하는 주체임을 상상 하면 가슴이 뛰지 않는가? 그 가슴 벅찬 날을 준비하자. 그래서 판문점에 아리랑을 부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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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명작다큐] 카레이스키150 3편 “오딧세이-기나긴 여정”KBS 다큐 [KBS Documentary] 명작다큐 카레이스키150 3편 "오딧세이-기나긴 여정”(2014.08.29 방송) 3편 '오딧세이-기나긴 여정'은 러시아공영방송 RTR의 여자 앵커 고려인 5세 마리나 김의 1인칭 시각으로 강제이주 이후 현재까지의 고려인들의 역사를 살펴본다. 러시아 공영방송 RTR의 고려인 앵커우먼 마리나 김 -마리나 김은 고려인 5세다 올해 33세인 그녀는 러시아 공영방송 RTR의 기자이자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 중이다. 취재능력과 빼어난 미모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저널리스트로 성장중이다. -마리나 김은 2차세계대전 참전 베테랑들을 취재하던 중 우연히 1918년생인 고려인 2세 정상진을 만났다. 정상진은 소련 태평양한대 소속 해병대원으로 1945년 8월13일 청진항 상륙전에 선봉대로 참전했다. 그는 한반도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유일한 한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노병이었다. -마리나 김은 정상진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고려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느끼면서 점차 정상진의 일생을 취재하는 과정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임을 깨닫는다. 평양과 서울을 취재하는 마리나 김의 분단조국 체험기 -마리나 김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평양과 서울을 차례로 취재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평양에서는 아리랑공연을 보고 유치원과 지하철 백화점 그리고 판문점을 취재하면서 북한의 속살을 살폈다. 서울을 방문하여 임진각을 찾고 세종시를 취재하고 명동과 강남에서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남북을 오가면서 분단된 할아버지의 나라에 대해 한없는 연민과 아픔을 느낀다. 3천만 한인들 중 가장 풍요로웠던 1930년대 연해주 고려인들 -1930년대 고려인의 숫자는 20만 명에 이르렀다. 소비에트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고려인의 근면성이 어울려 연해주 고려인 사회는 활기가 넘쳐 흘렸다,300개가 넘는 고려인 학교가 생기고 순한글 신문 '선봉'을 비롯하여 각종 잡지와 신문이 발간되고 한인라디오 방송국, 고려극장 등이 생겨 수준 높은 교육과 문화를 향유할 수 있었다. 학살과 강제이주 고려인 사회를 덮치다. -1937년 스탈린은 일본이 만주와 중국을 연달아 침입하자 연해주 고려인들이 일본에 동조할 것이란 판단 하에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학살한다. 지금까지 공식 발표된 학살자는 2,000여명이었으나 고려인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6,500명이 넘는다. -지도자를 처형한 후 소련 당국은 고려인 18만 명을 전원 중앙아시아 오지로 이주시킨다. 18만 고려인의 강제이주는 엄청난 시행착오를 일으키며 숱한 희생자를 낳았지만 고려인들은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다. 고려인 집단농장 폴리타젤, 시온고, 북극성 등의 눈부신 성장 -맨손으로 중앙아시아에 던져진 고려인들은 척박한 땅을 갈무리해 중앙아시아에 벼농사 재배를성공시킨다. 김병화, 황만금,김만삼 등의 헌신적인 지도와 고려인들의 협동심이 어우러져 마침내 소련 영방에서 최고의 생산성을 자랑하는 민족으로 거듭났다. -소련 최고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가 고려인 농장을 방문하고 베트남 호치민 수상이 고려인 농장을 방문하여 모내기를 하고 최초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이 고려인 마을 찾았다. 소련파 고려인- 북한정권을 수립하다. 해방이 되고 북한을 점령한 소련은 북한에 사회주의 정권을 세우기 위해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엘리트 500명을 북한으로 보낸다. 이들 고려인들을 소련파라 부른다. 허가이 박정해 박창옥 남일 등이 대표적인 소련파다. 그러나 이들 소련파들은 1950년 후반 김일성과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 중앙아시아로 쫓겨 난다. 또 다시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다. 질기고 질긴 조국의 뿌리 김치, - 현재 고려인은 50만 명 정도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유라시아 대륙 20여개 국에 살고 있다. 스탈린의 한국어 교육 금지조치로 인해 고려인들은 한국말을 거의 잊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밥상에는 여전히 짐치라고 부르는 김치와 밥이 오른다. 고려인들이 있는 곳 어디나 김치 시장이 활기를 띈다. 고려인 한민족의 북방 진출의 파트너 -지난 8월16일 고려인 자동차 랠리 팀이 모스크바를 거쳐 중앙아시아 연해주 그리고 평양에서 8.15 경축행사를 한 후 개성을 통해 서울로 들어오는 대장정을 성공리에 마쳤다. 고려인들은 한국말을 모르지만 150 전 조국을 떠났던 할아버지의 나라에 대한 뜨거운 애정과 남북분단에 대한 한없는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명작다큐 카레이스키150" 관련 영상 보기 1편 "디아스포라 이산” https://youtu.be/n4iPCVjLR2c 2편 "레지스탕스 항전”https://youtu.be/d8Yy9iSer5w 3편 "오딧세이-기나긴 여정”https://youtu.be/WNCzzVizAMc#카레이스키#고려인#독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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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편리한 절차로 판문점 견학 재개정부는 11월 4일부터 새로운 체계로 판문점 견학을 재개합니다. 남북 및 3자 정상회담 개최와 판문점 비무장화로 평화의 공간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한 판문점을 보다 편리하게 방문하실 수 있도록 절차를 대폭 개선하였습니다. 통일부에 판문점 견학지원센터를 설치하여 그동안 여러 기관에 분산되어 있던 판문점 견학 창구를 일원화하였다. 이제부터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누리집(www.panmuntour.go.kr)을 통해 견학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 또는 가족 단위로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견학 신청 기간도 최소 60일 전에서 2주 전으로 대폭 줄이고, 견학 신청 연령도 만 10세 이상에서 만 8세 이상으로 낮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견학이 가능해진다. 판문점 견학은 11. 4.(수) 시범견학 이후 11. 6.(금)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며 국민들은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누리집을 통하여 10. 20.(화) 오전 10시부터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 견학 재개 초기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코로나19 방역 상황을 고려하여 안전한 견학이 될 수 있도록 소규모로 시작하게 됩니다. 앞으로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견학 횟수와 규모를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다. 파주 지역은 올해 6월 이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동안 소독 장비, 멧돼지 차단 울타리, 발판소독조 등을 설치하였고, 방역당국과 합동점검도 완료했습니다. 앞으로 견학 동선 별로 점검하며 빈틈없이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서 체온계, 손소독제 등을 비치했으며 시설․차량 정기 소독을 실시하고 있다. 견학과정에서 발열 점검,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등 지침도 철저히 준수할 것이라고 한다. 새로운 체계의 판문점 견학은 2018년 판문점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에서 합의한 대로 판문점의 비무장화와 자유왕래를 실현하는 데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정부는 판문점을 시작으로 ‘DMZ 평화의길’ 개방 확대 등 비무장지대(DMZ)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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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편리한 절차로 판문점 견학 재개정부는 11월 4일부터 새로운 체계로 판문점 견학을 재개합니다. 남북 및 3자 정상회담 개최와 판문점 비무장화로 평화의 공간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한 판문점을 보다 편리하게 방문하실 수 있도록 절차를 대폭 개선하였다. 통일부에 판문점 견학지원센터를 설치하여 그동안 여러 기관에 분산되어 있던 판문점 견학 창구를 일원화하다. 이제부터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누리집(www.panmuntour.go.kr)을 통해 견학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 또는 가족 단위로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견학 신청 기간도 최소 60일 전에서 2주 전으로 대폭 줄이고, 견학 신청 연령도 만 10세 이상에서 만 8세 이상으로 낮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견학이 가능해진다. 판문점 견학은 11. 4.(수) 시범견학 이후 11. 6.(금)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며 국민들은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누리집을 통하여 10. 20.(화) 오전 10시부터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다.견학 재개 초기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코로나19 방역 상황을 고려하여 안전한 견학이 될 수 있도록 소규모로 시작하게 됩니다. 앞으로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견학 횟수와 규모를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파주 지역은 올해 6월 이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소독 장비, 멧돼지 차단 울타리, 발판소독조 등을 설치하였고, 방역당국과 합동점검도 완료했습니다. 앞으로 견학 동선 별로 점검하며 빈틈없이 관리해 나갈 것이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서 체온계, 손소독제 등을 비치했으며 시설․차량 정기 소독을 실시하고 있다. 견학과정에서 발열 점검,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등 지침도 철저히 준수할 것이다.새로운 체계의 판문점 견학은 2018년 판문점선언과 군사분야 합의서에서 합의한 대로 판문점의 비무장화와 자유왕래를 실현하는 데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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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6.25전쟁 참전 70주년 기념행사 개최‘70년 전 부산항에 도착한 필리핀 참전용사를 기억하며’ - 필리핀 6·25전쟁 참전 70주년 기념행사 - ‣ 박삼득 보훈처장은 주한필리핀 대리대사 등과 함께 6·25전쟁 당시 필리핀군 부산항 입항일에 맞춰 18일(금) 오전 10시, 필리핀군 참전기념비에서 ‘필리핀 6·25전쟁 참전 70주년 기념행사’ 진행 ‣ 필리핀은 미국·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지상군을 파병한 국가로, 7,420명이 참전하여 율동 전투 등에 112명이 전사하는 등 많은 희생으로 공적을 세웠으며, 앞으로도 참전으로 맺은 혈맹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예정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 이하 보훈처)는 6·25전쟁 당시 필리핀군 부산항 입항일(1950. 9. 19)에 맞춰 18일(금) 오전 10시, 필리핀군 참전기념비(경기도 고양시)에서 ‘필리핀 6·25전쟁 참전 70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상황을 고려하여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해 크리스티안 헤수스(Christian L. De Jesus) 주한필리핀 대리대사, 스튜어트 캠벨 메이어(Stuart Campbell Mayer) 유엔군 부사령관, 이재준 고양시장, 장광선 육군 제1군단 부군단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참배로 경건히 진행된다. 6·25전쟁 당시 필리핀은 미국․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지상군이 참전한 국가로, 부산 입항일인 1950년 9월 19일부터 1953년 5월 13일까지 연인원 7,420명이 참전했다. 필리핀군은 1950년 10월 1일 미 제25사단에 배속되어 활동을 시작한 이후 연천 율동 전투(1951. 4월) 등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112명이 전사하고 299명이 부상, 16명이 실종되고 41명이 포로가 되는 등 많은 희생이 있었다. 또한, 정전 이후에도 한국의 재건을 위해 많은 지원을 했을 뿐 아니라 주력 철수 이후에도 유엔군사령부에 소수병력을 주둔시켜 정전협정이 준수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한편, 보훈처는 올해 6·25전쟁 7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를 맞아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필리핀 참전용사 등 유엔참전국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6·25전쟁 70주년 기념식’과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등을 통해 멀리서나마 유엔참전용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으며, 특히 지난 5월 필리핀 참전용사에게 방역 마스크 5만장을 지원하기도 했다. 오는 11월에도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11월 11일)을 맞아 기념식, 추모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필리핀 참전용사와 유가족들은 주필리핀대사관과 필리핀 주재 한국문화원을 통해 가진 최근 인터뷰에서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한국을 기억하고 특별한 애정을 표현했다.필리핀 한국전 참전협회장인 막시모 푸리시마 영(Maximo Purisima Young)전쟁 당시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는데, 다시 방문한 한국의 모습은 크게 달라져 있어 놀랐다고 언급하면서 근면 성실한 한국인들에게 감동을 받았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또한, 한국정부에서 참전용사들을 예우할 뿐만 아니라 후손들을 위한 교육 지원을 하는데, 이것이 참전용사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그의 아들인 워터 영(Water Young)은 참전용사 아들로서 아버지께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셨다는 것을 항상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하면서, 전쟁 당시 필리핀군이 추운 날씨 속에서 한국인들을 위해 싸운 것은 우호국에 대한 희생정신을 보여준 역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상황에서 한국정부에서 유엔참전용사를 위해 마스크를 전달한 것은, 전쟁 당시 참전용사가 한국인들에게 보여줬던 사랑을 한국 정부에서 필리핀과 참전국에게 다시 돌려준 것으로, 아주 놀랍고 정말 존경스러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6·25전쟁영웅 얍 대위의 딸인 이사벨리타 얍 아가논(Isabelita Yap-Aganon)아가논은 1993년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는데, 판문점에 가는 길에 어머니께서 감정에 북받치셨는지 눈물을 보이셨다고 과거를 회상했다.또한, 그로부터 몇 년 후에도 다시 한국에 가게 되어 전쟁기념관을 방문했는데 그때 감정에 복받쳐 눈물이 났었다고 전하면서,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버지의 영혼이 한국에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작년은 한-필리핀 수교 70주년이었던 해로, 앞으로도 양국 국민들 간 교류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콘라도 얍(Conrado D. Yap) 대위는 1950년 9월 19일 필리핀 육군 제10대대전투단 전차 중대장으로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1951년 4월 23일 율동전투에서 방어진지를 사수하고 전사했으며, 지난 ‘19년 4월 국가보훈처 선정 ’이달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되었다. 보훈처는 "앞으로도 필리핀 참전국을 포함해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헌신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국제보훈사업을 추진하고, ‘참전으로 맺은 혈맹의 인연’을 이어나가기 위해 참전용사 후손을 비롯한 미래 세대와 함께 6·25전쟁의 역사를 되새기는 사업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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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 부산항에 도착한 필리핀 참전용사를 기억하며’ 필리핀 6·25전쟁 참전 70주년 기념행사국가보훈처(처장 박삼득, 이하 보훈처)는 6·25전쟁 당시 필리핀군 부산항 입항일(1950. 9. 19)에 맞춰 18일(금) 오전 10시, 필리핀군 참전기념비(경기도 고양시)에서 ‘필리핀 6·25전쟁 참전 70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상황을 고려하여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해 크리스티안 헤수스(Christian L. De Jesus) 주한필리핀 대리대사, 스튜어트 캠벨 메이어(Stuart Campbell Mayer) 유엔군 부사령관, 이재준 고양시장, 장광선 육군 제1군단 부군단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참배로 경건히 진행된다. 6·25전쟁 당시 필리핀은 미국․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지상군이 참전한 국가로, 부산 입항일인 1950년 9월 19일부터 1953년 5월 13일까지 연인원 7,420명이 참전했다. 필리핀군은 1950년 10월 1일 미 제25사단에 배속되어 활동을 시작한 이후 연천 율동 전투(1951. 4월) 등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112명이 전사하고 299명이 부상, 16명이 실종되고 41명이 포로가 되는 등 많은 희생이 있었다. 또한, 정전 이후에도 한국의 재건을 위해 많은 지원을 했을 뿐 아니라 주력 철수 이후에도 유엔군사령부에 소수병력을 주둔시켜 정전협정이 준수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한편, 보훈처는 올해 6·25전쟁 7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를 맞아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헌신한 필리핀 참전용사 등 유엔참전국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6·25전쟁 70주년 기념식’과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식’ 등을 통해 멀리서나마 유엔참전용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으며, 특히 지난 5월 필리핀 참전용사에게 방역 마스크 5만장을 지원하기도 했다. 오는 11월에도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의 날’(11월 11일)을 맞아 기념식, 추모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필리핀 참전용사와 유가족들은 주필리핀대사관과 필리핀 주재 한국문화원을 통해 가진 최근 인터뷰에서도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한국을 기억하고 특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필리핀 한국전 참전협회장인 막시모 푸리시마 영(Maximo Purisima Young)은 전쟁 당시 모든 건물이 파괴되었는데, 다시 방문한 한국의 모습은 크게 달라져 있어 놀랐다고 언급하면서 근면 성실한 한국인들에게 감동을 받았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또한, 한국정부에서 참전용사들을 예우할 뿐만 아니라 후손들을 위한 교육 지원을 하는데, 이것이 참전용사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했다.그의 아들인 워터 영(Water Young)은 참전용사 아들로서 아버지께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셨다는 것을 항상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하면서, 전쟁 당시 필리핀군이 추운 날씨 속에서 한국인들을 위해 싸운 것은 우호국에 대한 희생정신을 보여준 역사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최근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상황에서 한국정부에서 유엔참전용사를 위해 마스크를 전달한 것은, 전쟁 당시 참전용사가 한국인들에게 보여줬던 사랑을 한국 정부에서 필리핀과 참전국에게 다시 돌려준 것으로, 아주 놀랍고 정말 존경스러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6·25전쟁영웅 얍 대위의 딸인 이사벨리타 얍 아가논(Isabelita Yap-Aganon)은 1993년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는데, 판문점에 가는 길에 어머니께서 감정에 북받치셨는지 눈물을 보이셨다고 과거를 회상했다.또한, 그로부터 몇 년 후에도 다시 한국에 가게 되어 전쟁기념관을 방문했는데 그때 감정에 복받쳐 눈물이 났었다고 전하면서, 왜 그랬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버지의 영혼이 한국에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작년은 한-필리핀 수교 70주년이었던 해로, 앞으로도 양국 국민들 간 교류가 활발해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콘라도 얍(Conrado D. Yap) 대위는 1950년 9월 19일 필리핀 육군 제10대대전투단 전차 중대장으로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1951년 4월 23일 율동전투에서 방어진지를 사수하고 전사했으며, 지난 ‘19년 4월 국가보훈처 선정 ’이달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되었다. 보훈처는 "앞으로도 필리핀 참전국을 포함해 유엔참전국과 참전용사의 헌신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국제보훈사업을 추진하고, ‘참전으로 맺은 혈맹의 인연’을 이어나가기 위해 참전용사 후손을 비롯한 미래 세대와 함께 6·25전쟁의 역사를 되새기는 사업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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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의원 123명, ‘北 개별관광 허용’ 촉구 결의안 발의광복절 75주년을 앞두고 여야 국회의원 123명이 ‘북한 개별관광 허용’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13일 발의했다. 국회에 따르면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한 개별관광 허용 촉구 결의안’을 대표발의했다. 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 등 범여(汎與) 정당과 무소속 의원 123명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했다. 결의안은 "우리 국민들의 북한 개별관광 허용은 긴장이 높아진 한반도 정세를 획기적으로 전환하고, 남북이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긍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제안 이유를 밝혔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 국회는 한반도 평화의 온전한 정착을 위해 북한과의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이 필수적이며, 국회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주도적으로 나서는 동시에 교류 협력을 위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 "대한민국 국회는 남북 당국이 북한 개별관광 허용을 위해 조속한 시일 내에 관련 협의를 거칠 것을 촉구한다”며 "북한 당국이 지난 남북 정상의 공동선언 등을 통해 약속한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의 정신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북한 개별관광 허용에 적극적 자세로 임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북한 개별관광 방식으로는 비영리 단체 또는 제3국 여행사 등을 통해 북한 당국의 개별적 방북 허가를 받아 진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북한 방문 시 지불하는 비용은 숙박·식사 등에 꼭 필요한 실비 지급의 성격으로, 유엔 제재 등에 해당하지 않고 정부가 대북제재 하에서도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의원은 "미국 대선, 북측의 대남군사작전 보류 등을 대화 모멘텀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며 "해당 결의안은 이후 유엔과 미국 국무부에도 전달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게 하겠다. 북측의 적극적 화답을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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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대한민국농악연합회 임웅수 이사장 신년사금년은 농악인 모두가 어느 해 보다 분주했고 바쁘게 보낸 한 해였습니다. 남과 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서로서로 손을 맞잡고 한반도의 평화를 다짐하며 전쟁과 분단의 가슴 아픈 역사를 청산하고 공동번영의 새날을 열어 나갈 4.27 공동선언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민족의 경사에 전국의 농악인들은 6월13일 광화문 광장에서 [평화가 옵니다, 희망이 옵니다, 정의가 옵니다]라는 깃발을 앞세우고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 앞까지 농악으로 신명을 불러내어 하늘과 땅에 우리민족의 소원을 비는 길놀이를 하였고 구름떼같이 몰려든 세계 만방의 시민들과 어우러져 흥에 겨운 뒤풀이를 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내는 대동의 한마당을 이루었습니다. 10월14일에는 전국의 농악인 2,000여명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매년 11월 27일을 농악의 날로 선포하고, 질경이같은 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농악이 민족의 전통문화 유산의 상속자로 당당하게 자리 매김하는 기념일을 갖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전국의 국악인 여러분 !!!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국적 불명의 문화의 홍수 속에서 올곧은 전통문화의 뿌리를 틀어쥐고 고군분투하시는 여러분은 전통문화의 도도한 역사를 미래의 세대들에게 이어주는 문화유산의 상속자이며, 전령사입니다. 국악인 여러분의 작은 몸짓 하나 하나가 모여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을 엮어내는 정신문화의 주체이고 주인입니다. 황금 돼지의 해 기해년에는 국악인 여러분의 소망을 이루시고 장독과 곳간에도 차고 넘치는 축복의 한해가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대한민국농악연합회 이사장 임웅수 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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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병원 5월의 뉴힐콘서트 ‘강은일 명인의 해금 공연’5월 28일, 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 합주의 남측 대표 연주자 국보급 인간문화재와 의료·예술 힐링센터와의 만남 남북정상회담 환영 만찬의 문을 연 남북 합주의 남측 대표 ‘해금’의 연주자 강은일 명인이 뉴힐하우스 콘서트 시즌1 일곱 번째 연주를 책임진다. 명지병원(병원장 김형수)은 오는 28일 오후 7시30분 뉴호라이즌힐링센터에서 한국 음악계에서 가장 개성적인 연주가로 꼽히는 해금 연주자 강은일 명인을 초청, 뉴힐하우스콘서트 일곱 번째 공연을 개최한다. 뉴힐하우스콘서트는 국보급 인간문화재와 최고급 의료·예술융합 힐링센터인 뉴호라이즌 힐링센터의 만남으로, 명지병원은 지난해부터 ‘전통의 원형을 찾아서 - 명창명인열전’ 시즌 1을 이어오고 있는데, 그동안 안숙선 명창(판소리), 고 황병기 명인(가야금), 이생강 명인(대금)을 비롯, 이 시대를 대표하는 ‘명창명인’의 공연을 펼쳐왔다. 뉴힐하우스콘서트 일곱 번째 주인공인 강은일 명인은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목하며 새로운 소통을 시도하는 해금연주가이다. NHK오케스트라, KBS국악관현악단 등과 협연을 했으며, 일본에서 개최되는 세계찰현악기페스티벌의 한국대표로 활동했다. 또한 루치아노 파바로티, 유키 구라모토 등의 뮤지션과 작업하며 해금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KBS ‘국악대상’, 대한민국국회 ‘대중문화 & 미디어’ 대상,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을 수상한 강은일을, 작곡가 이건용은 “신과 힘과 끼와 아름다움을 가진 연주가”라고 평했으며, 음악평론가 이소영 교수는 “해금은 사람 울음소리와 비슷하게도 들리는데, 이 울음을 가장 극대화시키는 게 강은일 특유의 활대질”이라며 “‘해금’이 강은일을 만나 국악의 중심악기로, ‘강은일’은 해금을 만나 국악계의 디바로 빛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강은일 명인은 지난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 환영 만찬 공연에서 북의 대표적 국악기 ‘옥류금’과 ‘해금’의 합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뉴힐하우스콘서트에서 강은일은 해금가락Ⅱ(이건용 곡), 김영재류 해금산조, 긴육자배기-자진육자배기-삼산은반락-개고리타령-흥타령-서울삼각산 등으로 이어지는 육자배기를 연주한다. 고수와 아쟁은 목원대학교 이태백 교수, 판소리는 2017 KBS국악대상 ‘판소리상’, 제38회 춘향국악대전 판소리 명창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한 임현빈이 맡는다. 후원사인 국악방송 웹TV를 통해 중계되는 것을 비롯, 페이스북을 통해 전세계로 라이브 중계되는데, 공연 2부는 음악평론가 이소영 교수(명지병원 예술치유센터장)의 진행으로 음악평론가 송현민 패널의 ‘강은일과의 대화’의 시간도 마련된다. 뉴힐 하우스콘서트 ‘전통의 원형을 찾다’ 명창명인열전은 강은일 공연에 이어, 6월 18일 거문고와 해금의 김영재 등 국악계의 스타급 중견 음악가들의 연주로 시즌 1을 마감한다. 한편, 이번 공연이 진행될 명지병원 뉴호라이즌힐링센터(New Horizon Healing Center, 약칭 뉴힐센터)는 첨단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VIP병동을 포함한 최고급 융복합 의료시설이다. 단순히 ‘치료’로서의 의료서비스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힐링’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으며, 기술적·문화적·서비스적인 면에서 기존의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개념과 새 지평의 공간이다. 뉴힐 하우스콘서트의 입장료는 3만원이며 30석 한정 판매되는데, 티켓은 공연예술컨설팅그룹 비온뒤(new@beondi.org)에서 구할 수 있다. 시리즈 티켓 3회 이상 패키지 구입시 30% 할인, 65세 이상 경로 우대 50%, 24세 이하 청소년 및 대학생 30% 할인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문의: 명지병원 예술치유센터 031-810-5608, 5635 비온뒤 02-703-6599 ※ 별첨 : 강은일 명인 뉴힐하우스콘서트 포스터 1개 ※ 자료문의 : 명지병원 홍보팀(031-810-5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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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만의 <김복만 STAGE 1> 7. 26김복만 첫번째 타악 프로젝트 김복만 STAGE 1 1. 일시 : 2013년 7월 26일(금) 오후 7시30분 2. 장소 : 남산국악당 3. 주최 : 타악연희 project 맥박 4. 주관 : 김복만 연희컴퍼니 5. 후원 : (사)한국연희단체총연합회,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43호 방짜유기장 이종덕선생님, 꽹과리연구회 금음회, 하늘소리, 신의상실 6. 문의 : 010-3956-3390,010-9282-8273 7. 공연소개 오는 26일(금) 저녁7시, 타악연희 project 맥박 주최와 김복만 연희컴퍼니 주관으로 이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열린다. 충남에서 태어난 김복만은 남사당 송순갑에게 웃다리 농악과 7채 가락을 전수받았고 1983년 유지화에게 우도농악 부포놀음, 1985년 설장구의 전설 전사섭에게 설장구 놀이를 전수 받았다. 또한 그는 아시안 게임 및 올림픽 홍보를 위한 예술단으로 일본 공연, 1989년 판문점 평화기념공연, 1989년 미국 알래스카 순회공연 등 총 700여 회 공연을 했었다. 8. 공연내용 ‘처용무’ ‘경기도 당굿’ ‘축하공연’ ‘설장구’ ‘부포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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