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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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가락으로 승화시킨 서른 살 망부의 한, 안비취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로 지정된 경기민요에는 12잡가가 있다. ①유산가(遊山歌) ②적벽가(赤壁歌) ③제비가(燕子歌) ④소춘향가(小春香歌) ⑤집장가(執杖歌. 집장 사령) ⑥형장가(刑杖歌) ⑦평양가(平孃歌) ⑧선유가(船遊歌) ⑨ 출인가(出引歌) ⑩십장가(十杖歌) ⑪방물가(房物歌) ⑫달거리(月齢歌)가 그것이다. 이들 12잡가의 음악의 특징은 4분의 6박자인 도드리 장단이 대부분이며, 형식은 약간 불투명한 유절(마루) 형식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직설적 표현이 많다. 서울ㆍ경기도를 중심으로 충청 북부와 강원 일부 지역까지 애창돼 중부 지방 민요로도 불린다.12잡가는 세 사람의 인간문화재로 나뉘어 지정ㆍ보호받고 있다. 이중 안비취(安翡翠, 1926년 3월 21일생) 씨가 유산가ㆍ제비가ㆍ소춘향가ㆍ십장가를, 묵계월 씨가 적벽가ㆍ출인가ㆍ선유가ㆍ방물가를 부르며, 이은주 씨는 집장가ㆍ평양가ㆍ형장가ㆍ달거리로 지정돼 후진들을 양성하고 있다.매년 설날이나 추석 등 경축 무대에 ‘안비취와 그 제자들’로 소개되며, 기골 장대한 체구가 대중을 압도해 버리는 안비취 여사.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바로 옆의 이춘희(李春羲, 89년 준문화재 지정), 김혜란(본명은 숙근, 전수자), 이호연(본명 연화, 전수자) 씨 등도 TV 화면을 통해 낯익은 얼굴들이다."4남1녀의 외동딸로 태어났지요. 위로 언니가 일찍 죽자 명이 길라는 뜻에서 ‘복식(福植)’이란 남자 이름으로 지었답니다. ‘비취’란 예명은 12잡가를 떼 주신 최정식(崔貞植)선생이 제가 16세 때 방송에 첫 출연하게 되자 지어 주신 겁니다. 흔히 비취 반지로 알고 있지만 중국 문헌 속에 나오는 새 이름이라고 들었어요.”서울 종로구 효자동 대궐 가까운 곳에서 나고 자란 안씨는 순흥 안씨 보성군파로 당시 부친은 효자동에서 제일 큰 잡화상을 운영했다. 부잣집에다 절에 가 빌어서 난 딸로 애시당초 부족함이나 어려움 같은 건 남의 일이었다고 한다.손으로 태엽 감으며 아버지가 듣던 ‘빅타’ 유성기가 좋아 보여 늘 곁에서 참견했다는 것. 이 때 들은 ‘기막힌 소리’들이 이화중선(李花中仙), 김소희(金素姬), 백운선, 장학선 명창 들의 애절한 판소리. 소학교에 들어갔으나 머리는 좋았는데 공부는 못했다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등 소리 가사는 듣기만 해도 줄줄 외워 댔지만 특히 산수는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했다고 한다.안씨의 ‘팔자’는 열 세 살 때의 대담한 가출로 판가름난다. 세 살 위의 이웃집 민향심(閔香心)과 무단 가출, 하규일(河圭一) 씨가 운영하던 정악 교습소에 들어갔다. 그 때 하씨는 이왕직 아악부에 나가면서 별도 교습소를 차려 놓고 후진들을 양성하고 있었다. 여기서 안씨는 궁중정재(춤)와 4검무, 연하대무, 무산향 등을 익히고 이병성 씨한테 가곡을 정식으로 전수받았다. 뒤늦게 안 어머니의 지원으로 2년 뒤에는 한성준(韓成俊) 씨를 만나 민속춤(승무)을, 최정식(崔貞植) 씨한테는 경기12잡가를 배우기에 이른다. 이래서 가무에 능한 오늘의 안비취로 일가를 이루게 된 것이다.최정식 씨는 ‘금강산타령’, ‘풍등가’ 등을 작사ㆍ작곡한 장구 명인으로 그의 문하에서 세 명의 인간문화재가 배출됐다. 하규일 씨는 일제 때 조선 권번을 움직인 당대 가무의 대가였다."정악에서 민속악 쪽으로 나오니 창법이 달랐습니다. 특히 상성(고음)이 가곡보다 힘들어 적응하기가 힘들었지요.” 안비취 씨는 정악만을 끝까지 지켜 내지 못한 것을 지금도 아쉬워하고 있다."어려서부터 시집은 정말 가기 싫었고 소리만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사 뜻대로만 됩니까. 19세에 강기준(姜基準) 씨를 만나 결혼했지만 그 분은 내 나이 서른에 딸만 둘 남겨 놓고 훌쩍 떠나 버렸지요.”시집살이하는 동안 ‘여편네가 살림은 안 하고 소리질만 해 댄다’ 하여 가정 불화가 잦았다. 안씨는 그 때나 지금이나 예술 없이는 못 살겠다는 황소고집이었다고 한다. 남편을 잃은 천추의 한은 춤사위와 소리 가락으로 승화 됐고 결혼식에 참석조차 않은 친정 아버지 가슴을 녹이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6ㆍ25 때 부산 피난지에서의 공연과 1959년(34세) 박귀희(朴貴姬)ㆍ임춘앵ㆍ복혜숙(영화 배우)ㆍ최용자(무용가)ㆍ임유앵(임춘앵 언니) 씨와의 일본 순회 공연이 잊혀지지 않는단다. 일본 첫 공연은 최상덕(연출가), 박진(연출가), 이서구(李瑞求) 씨를 중심으로 ‘대춘향가’를 선보여 교포들을 울렸다. 자유당 말기에는 박초월(木初月), 김소희(金素姬), 박귀희 씨와 함께 당시 오재경(吳在璟) 공보처장관을 설득, 오늘의 국악협회를 인가 받아 창립하는 등 국악 발전에도 앞장섰다. 한때는 골프에 심취, 명동 사보이호텔 건너편에 실내 연습장을 만들기도 했으나 첫 사업은 보기좋게 실패했다.서울 중구 남산동의 안비취 후계양성소에는 대학을 나온 장학생들도 적지 않다. 50명이 넘는 제자 중 최영숙(35)ㆍ이금미(30, 본명 생길, 국립국악원)ㆍ전숙희(44) 씨는 전수자로 등록됐고, 남궁랑(35)ㆍ이유라(34)ㆍ전영희(39) 씨 등은 장학생.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했던가. 준문화재로 지정(1989년)된 이춘희(서울 출생) 씨도 중학 시절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민요만 부른다며 체육 선생한테 매맞은 소리 솜씨다. 이창배 민요학원에서 배우다 1971년 안씨를 만나 본격 학습에 들어간 뒤 1975년 안씨가 인간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수석 전수생으로 등록됐다. 한때는 김부해 음악학원에서 배운 숨은 솜씨로 가수 황금심 씨 노래를 구분 못 하게 잘했으며 최근에는 롯데월드에서 민요 부르기 강좌(매주 화요일)를 맡고 있다. 안비취 선생은 경기민요에 놀이가 끼지 않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판소리에는 고수와의 대화(아니리)가 있고, 굿에는 리듬ㆍ의상ㆍ소리ㆍ재담까지 포함된 바라지가 신바람을 내 주는데 12잡가는 단조로움의 연속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이지산 스님(재미)이 귀국하면 제자 김혜란 씨에게 바라지 가락을 배우게 해 경기민요와 굿장단의 만남도 시도해 볼 계획이다. 중대, 추계예술대, 서울예전에 나가 강의하면서도 이런 변신 가능성을 여러 번 토의해 보았다고 한다. "한생애 예인의 길을 걷느라 여자로서 잃은 것도 많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쌍계사(雙磎寺) 국사암과 서울 근교 절을 자주 찾으며 ‘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를 생각합니다. 인생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건지······. 경기민요에 담긴 내용들도 부의 허망함과 헛된 욕심을 나무라는 내용이 많지요.” • 안비취 경기민요 계보 출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초판 1995., 4쇄 2006., 이규원, 정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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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이 걸어 온 길 3국악신문 사장 ‘김호규의 김병섭’(2) 국악신문 특집부 네이버를 비롯한 모든 포탈 싸이트 검색에서 ‘김병섭’을 치면 설장고 명인 김병섭은 검색되지 않는다. 그러나 ‘김병섭 류 설장구’라고 치면 검색이 된다. 이는 김병섭의 존재는 장구잽이로만 존재한다는 것이 된다. 돌려 말하면 ‘가정도, 자식도 내치고 오직 장구에만 미쳐 살았다’가 된다. 한편 이 시대 일부 ‘잽이’들의 삶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평소 김호규의 어떤 발언에서도 부친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역시 부인(고 최경자)의 구술자료 어디에서도 남편에 대한 정을 표현한 대목은 없다. 국악신문 유일의 기사인 사진작가 정범태의 연재물 ‘명인(名人)’ 국악신문 제41호(1996년 06월 18일자)에도 가족관계 같은 사생활은 기술되지 않았다. 해적이(연보) 조차 정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회에 제시된 해적이도 본 보가 처음 작성한 것이다. ‘김호규의 김병섭’은 설장구 명인이다. ‘설장구’란 판굿에서 우두머리 장구잽이(명인)가 나와 다채로운 가락과 춤으로 솜씨를 보이며 하는 연행으로, 장구놀이 중 으뜸이란 말이다. 상(上)장구, 수(秀)장구라고도 말하는 이유이다. 호남 지역 설장구 춤 중에서 김병섭 류 설장구는 다스름·휘모리·동살풀이·굿거리·삼채·연풍대로 구성되어 독자적인 유파를 이루었다. 장구가락과 발디딤을 베 짜듯이 잉어걸이․ 엇부침․ 엮음살이 등에 소삼과 대삼의 음양배합으로 엮어 최고의 장구놀음으로 표출했다. 고대 농악에서 비롯된 장구춤이 김병섭에 이르러서는 독자적인 ‘타악음악’으로 다듬어져 예술로 승화되었다. 1984년 한국일보사와 국립극장이 주최한 ‘명무전’에서 최막동·백남윤·유지화 그리고 김병섭이 선보인 장구춤에서 김병섭의 무대는 돋보였다. "섬세하고 화려하고 드라마틱”했다. 시인 이승하의 시집 <박수를 찾아서>에 수록된 ‘김병섭의 설장구’도 이 ‘명무전’의 감동으로부터 기억되고 있다. 이후 작고하는 1987년까지 많은 제자들이 형성되어 ‘김병섭 류’라는 유파를 형성하였다. 현재 유튜브 채널에는 비록 흐릿한 화면이지만 풍부한 김병섭 설장구 품새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2002년 제자들이 개최한 제1회 설장구보존회 정기발표회 동영상 ‘김병섭 류 완판’(15분)이 올라 있다. 그 외 윤용준·한승철·박철선 등이 이 류를 계승하고 있다. ‘김병섭의 설장구’ 이승하 지 애비 죽고나서부터 장구를 쳐? 장구 가락 베를 짜듯 발놀림 연속무늬를 놓듯 신바람이 나서 쳤단 말이여? 우도농악 이어 받아 엇붙임 장단으로 좌를 때리고 우를 아우르면 세상은 음양이 어울려 잘 돌아가더라고이? 나라 빼앗겼을 땐 구성지게 구정놀이 나라 되찾을 땐 흥겨웁게 덩덕궁이 장구 하나에서 세상 살아가는 흥이 솟구치고 멋이 우러나서 아니, 그래 늙은 설장구 지 에미 죽은 날도 장구를 처? 치고 싶은데 못치고 않았으면 미쳐? 색동 끝동이 달리 붉은 쾌자를 입고 골수가 울리도록 치면 세 살 먹은 애도 춤이 나온다고이? 김병섭의 설장구에 대해서는 논문 1편과 단행본 한 권이 있다. 김병섭의 설장구 세계는 앞으로 다양한 국면에서 논의가 확장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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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태 작, 1976년 ‘설장고 명인 김병섭’김병섭 선생은 장고 하나로 한국농악판에서 최고의 기량을 인정받았던 명인이다. 1921년 정읍시 북면에서 태어나 김학순에게 설장고를 배워 우리나라 최고의 설장고 명인으로 올라섰던 김병섭은 어려운 형편 때문에 운명적으로 농악과 만나게 됐다.김병섭은 자신의 나이 열 한 살 때 자신의 형이 수리조합에서 돈을 빌어서 농악기를 장만하면서 농악을 접하게 된다. 당시 최고의 명성을 날렸던 김학순을 스승으로 사흘 만에 기본가락을 배울 만큼 김병섭은 타고난 재능을 보였다. 김병섭은 사흘 만에 기본가락을 웬만큼 터득할 만큼 배우는 속도가 빨랐기 때문에 김학순 씨도 김병섭의 타고난 재주에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나흘 만에 작파(作破)할 수밖에 없었다. 손자가 장고를 배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할아버지의 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김병섭은 몰래 숨어서 사흘 동안 배운 가락을 혼자서 연습을 해야만 했다.대동아 전쟁 때 일본인에 의해 싱가포르 함락 기념축제에서 장고잽이로 나서기도 했던 김병섭은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징용에 끌려 나가 아오지 탄광에서 스물다섯 살 때에 해방을 맞았다. 해방이 되자 마을마다 농악을 다시 쳤고 서울에서는 농악경연대회도 열렸다. 특히 일본군은 당시 정읍농악단의 명성을 알고 기념축제를 하라고 악기를 내주기까지 했으며 정읍마을 농악대회를 불러모아 굿을 하라고 해서 장고를 신나게 쳤다는 기록도 보여 당시 정읍농악의 인기가 우수성이 얼마나 높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이승만 정권시절 그는 새로운 삶을 맞는다. 이승만 정권은 농악을 장려, 해마다 농악경연대회를 열었고 재주 있는 잽이 들은 이곳 저곳에 불려 다니면서 솜씨를 뽐냈다고 한다. 당굿이며, 풍장이며, 걸궁이 쉼 없이 이어졌고 잽이 대접도 푸짐해졌는데 이 때 그의 솜씨는 최고의 주가를 올리게 된다. 이 시기에 정읍을 중심으로 전북 일원에서 그의 가락은 가장 높은 경지의 수준을 보여주게 된다.이렇게 한창 장고잽이로서 유명해졌을 때, 남원국악원이 우리나라 처음으로 여성들로만 구성된 여성농악대를 만들었다. 이 여성농악대가 순회공연을 하면서 성공을 거둑자, 흥행만을 목적으로 한 여성농악대들이 여기저기서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결국 남자들은 찾아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남자들은 농악을 배우려고 하지도 않고 김병섭은 그러한 여성농악대만을 지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여성농악대는 처음부터 농악의 원형과는 관계없이 흥행만을 노렸기 때문에 변질된 농악이 되어버렸고 그나마 여성농악대가 자취를 감추자 전통농악은 맥이 끊기고 말았다, 그 후 전국민속경연대회가 생겨나서 자유당 때 하던 농악경연대회를 그곳에 합류시켰다고 한다. 1956년 전국농악대회에서 정읍농악으로 개인상을 수상하며 중앙무대에서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한 김병섭은 1963년과 1964년에 개최된 제4회와 제5회 전국 민속경연대회에서 정읍우도농악이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하며, 1956년에 이어 1964년 서울에서 열린 제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설장고로 개인상을 수상해 명인반열에 오르게 된다.그러나 이 전국민속경연대회는 원형보존보다는 우선 눈에 잘 띄게 하는 것이 관심을 더 쏟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그나마 부분적으로 남아있던 여러 지방의 특색 적인 농악의 원형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고 생전에 몹시 애석하게 생각했다고 한다.김병섭은 정읍을 벗어나서 1968년부터 서울 생활을 시작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김병섭을 서울로 불러들인 사림이 바로 한국인이 아닌 평화봉사단원로 활약했던 미국인이라는 사실이다. 이 미국인은 김병섭의 장고솜씨를 보고 그에게 매달려 서울로 불러들였다고 한다. 그때 김병섭은 식구들을 고향에 둔 채로 올라와 서울 안국동에서 미국인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미국인과 동료들에게 장고를 가르쳤다.서울로 올라온 후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던 김병섭은 그의 명성에 걸맞게 한양대와 서울예고, 선호예고 등에 나가 후학들을 지도하며 동암동에 있던 김병섭 농악연습소에서 본격적으로 제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한다.그의 가락은 전라우도 농악 즉 정읍농악의 진수를 가장 잘 표현하는 명인으로 추앙 받을 만큼 튼튼했다. 혼자서 할 때는 설장고와 둘이 할 때는 쌍장고라 하는데, 그의 장고잽이놀이는 느린굿거리, 활발한 동살풀이, 구성진 구정놀이, 흥겨운 덩덕궁이, 격렬한 다르래기로 가락을 달고 맺고 풀면서 몰아간다. 김병섭은 한국 농악사에서 장고잽이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은 전통문화유산에 밑거름이 된다. 특히 그의 장기였던 고깔 설장고는 우도농악의 최고로 꼽히는 김도삼의 제자 김학순, 백남길에게서 배운 정확한 계보를 갖고 있어서, 설장고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해온 명인 김병섭, 당시 젊은 세 사람 이정범, 전사섭, 그리고 자신을 중심으로 향토적인 가락을 발전 시켰으나 그 내용과 형식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김병섭은 자신만의 독특한 가락을 근저로 정읍농악우도농악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산파(産婆)역할을 했다.김학순으로 이어졌던 설장고를 이정범이 이어받았고, 또다시 김병섭이 이정범의 전통을 이어냄으로써 정읍우도농악 설장고의 전승구조를 이어내는 가교 역할을 하게 한 인물이 설장고 명인 김병섭이다. 특히 김병섭은 설장고를 체계화하는데 큰 힘을 경주 한 것으로 확인된다. 김병섭의 장고가락을 악보로 만들기 위해 음악을 전공한 외국인들이 많았다는 점에서 그의 음악세계가 이해가 된다. 그것을 계기로 김병섭은 점차 학구적인 쪽으로 관심을 갖게 되어 농악을 정립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 돈암동, 동대문, 종로5가 등 여러 곳으로 농악연구소를 이전하면서 장고교습에 심혈을 기울였다.김병섭 선생은 1987년 9월 11일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 폐암이라는 지병으로 사망했다. 이제 김병섭은 떠났지만, 김병섭의 고깔 설장고는 우도농악의 최고로 꼽는 김도삼 제자 김학순, 백남길에게서 배운 뚜렷한 계보를 갖고서, 설장고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해 온 명인으로서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살아남고 있다.정읍에서 배운 정읍우도 설장고를 중앙무대에 수놓고 세계적 인물들에게 가르쳤던 선구자적 예술인생은 이제 전국 각지로 펴져 나간 후학들로 꽃을 피우고 있어 김병섭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농악사 속에서 예혼(藝魂)을 불태우고 있다.김병섭은 자신의 설장고가 앞장서기만 하면 대낮의 장도 파해버릴 정도로 기량면에서 최고를 구가했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천하의 김병섭”만이 쳐낼 수 있는 가락과 사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전에 이순을 넘겨서도 일단 설장고만 잡으면 신명을 몰아오고 놀음판은 그의 독무대가 되어 버리고 만다.판굿놀이의 변화가 다양하고 흥겨워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었던 전설적인 김병섭의 설장고가 그립다. "김병섭류 설장구보존회 정기공연 "김병섭선생 25주기 추모공연" 2013-07-26(금) ~ 2013-07-26(금) (국립국악원 발췌) 김병섭 명인 해적이 (1921~1987년) 1921년 정읍 북면 출생 1932년 (11세) 농악입문, 명인 김학순 사사 1935년 싱카포르 함락 기년 축제 참가 1938~45년 (17~25세) 함경도 명천 아오지탄광 강제징용 1945년 태평양전쟁 후 징용에서 귀향, 형과 함께 마을 농악단에서 활동 1950년 전북에서 담굿, 풍장, 걸궁에 명성을 얻다 1956년 전국농악대회 개인상 수상 1963년 전국민속경연대회 정읍우도농악 국무총리상 수상 1964년 제5회 전국민속경연대회 설장고 개인상 수상 1965년 남원국악원 여성국악단 설장고 지도 1966년 로버트 프로바인(朴巴人/메릴랜드대학 음악학교수) 외 외국인 설장고 지도 1968년 서울로 이주, 미국인 평화봉사단 설장고 강습 담당 1970년 돈암동, 동대문, 종로5가에서 <김병섭농악연습소> 운영. 한양대, 서울예고, 선화예고 학생지도 1971~87년 전라 우도농악 장고잽이 설장고, 쌍장고, 굿거리, 동살풀이, 구정놀이, 덩덕궁이, 다르래기 명인으로 전국적 활동 1975년 한양대, 서울예고, 선화예고 출강 1986년 서울국립극장 명무전 출연 1987년 (62세) 폐암으로 사망,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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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이 걸어 온 길 2국악신문 사장 ‘김호규의 김병섭’(1) 국악신문 특집부 "저는 국악인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아버님(故 김병섭)이 장구로 유명하셨던 분이시구 어머님(故 최경자)은 소리와 춤을 하셨어요. 자연스럽게 국악을 접한 것이지요. 학생 때부터 장고 치고 탈춤을 추었어요. 후에 제가 아는 국악을 어떻게 정리할까 생각하다 1994년 9월에 국악신문을 창간했어요.” 외부 언론과의 유일한 기사인 네이버 블로그 2016년 3월 31일자 ‘김호규 국악로전통문화학교 대표’라는 인터뷰에서 밝힌 신문사 창업 배경이다. 부모의 영향으로 장구 치고 탈춤을 추게 되어 국악계에 들게 되었고, 국악계의 기록을 남기는 일을 하고자 신문을 창간했다는 진술이다. 장구와 춤의 실기인에서 국악계 언론인으로 살게 된 배경과 계기를 밝힌 것이다. 이는 국악신문의 주 논조가 국악계 소식이고, 그 중 국악인 부고(訃告)기사를 가장 크게 보도(1995 만정 김소희 선생)하거나 수상 소식을 특집화 한 사실과 ‘명인명창 사진을 구합니다’(1995~96년)와 같은 사고(社告)를 통해 자료 구축과 기록정리 사업을 추진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수차의 주간, 격주간, 월간으로 형태 변경을 되풀이 하면서도 결코 휴간이나 정간을 하지 않고 견뎌온 사실에서 사명감도 발휘 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한 언론인으로서의 분명한 업적인 것이다. 국악신문 사장 김호규는 1959년 김병섭과 최경자 사이 3남 2녀 중 2남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부친이 장고를 시작한 나이와 같은 11세 때 장고를 치고 탈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 필연을 있게 한 주인공, 부친 김병섭은 누구인가? "우리의 어려운 마음을 다듬어 주시고 답답한 마음을 밝게 열어주셨던 아버님의 장고소리 새삼 아버님의 빈자리가 너무도 그립습니다.” 2009년 ‘고 김병섭 선생 20주기 추모공연’ 인사말의 일부이다. 자식으로서의 사적 감정보다는 장구 명인에 대한 추모의 정을 더 강조하고 있다. 부친 이기보다는 국악인 선배이며 객석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한 명인(名人)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 자신이 작성한 이력서에서 ‘부친’을 빼고 "김병섭 선생께 설장고 및 우도농악 사사”로 기록하고 있다. 김병섭을 객관적으로 기술한 자료는 사진작가 정범태의 ‘설장고 명인 김병섭’이 있다. 글 쓴 시기는 1996년이지만 실제 여러 차례 만나 인터뷰하고 사진으로 기록한 인연으로 쓰여진 글이다. 이 글에서 김병섭은 우도농악 고깔 설장고 가락의 대가 김도순, 김학순, 백남길을 잇는 뚜렷한 계보가 자랑이라고 했다. 그리고 설장고 치는 모습을 매우 세밀하게 기술하였다. "흰 바지 저고리 위에 반소매 색동끈 동달린 붉은 쾌자를 입고, 어깨 허리에 청황록 3색 띠를 두르고, 배꽃 달린 고깔을 쓰고 장고를 비껴 맨 차림으로, 우도농악 엇부침 장단으로 춤을 추는 모습에 관객은 어느새 하나가 된다.” 현장의 현란한 몸짓이 그려진다. 바로 이 묘사의 대본인 사진 한장이 남아있다. 아쉽게도 컬러사진이 아닌 흑백사진이지만 고깔 아래 눈빛은 살아있다. 그나마 전문가가 찍은 소위 ‘작품사진’은 유일한 것이다. 작고한지 9년 후 국악신문 제41호, 1996년 6월 18일자 ‘명인’란에 실린 기록이다. 김병섭 명인 해적이 1921년 정읍 북면 출생 1932년 (11세) 농악입문, 명인 김학순 사사 1938~45년 (17~25세) 함경도 명천 아오지탄광 강제징용 1945년 종전후 징용에서 귀향, 형과 함께 마을 농악단에서 활동 1950년 전북에서 담굿, 풍장, 걸궁에 명성을 얻다 1956년 전국농악대회 개인상 수상 1963년 전국민속경연대회 정읍우도농악 국무총리상 수상 1964년 제5회 전국민속경연대회 설장고 개인상 수상 1965년 남원국악원 여성국악단 설장고 지도 1966년 로버트 프로바인(朴巴人/메릴랜드대학 음악학교수) 외 외국인 설장고 지도 1968년 서울로 이주, 미국인 평화봉사단 설장고 강습 담당 1970년 돈암동, 동대문, 종로5가에서 <김병섭농악연습소> 운영. 한양대, 서울예고, 선화예고 학생지도 1971~87년 전라 우도농악 장고잽이 설장고, 쌍장고, 굿거리, 동살풀이, 구정놀이, 덩덕궁이, 다르래기 명인으로 전국적 활동 1987년 (62세) 폐암으로 사망, 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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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한국 춤 사진제전 8월 9일 ~ 10일『춤 사진 촬영대회』 제 1회 한국춤 사진제전 "가장한국적인 것이 세계화이다" 라는 말이 실감되는 오늘날, 본 행사를 통해 우리 민속악의 우수함을 사진예술작품으로 재 창조하여 세계에 알리고, 보다 많은 문화자원을 축적하는데 사진작가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1. 일 시 : 2005년 8월 9일 (화) ~ 10 (수) 14시 ~ 21시 * 우천불구 2. 장 소 : 국립국악원 예악당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700.) 3. 주 최 : 국악신문사 4. 주 관 : (주)국악엔터테이먼트 5. 후 원 : 문화재청, 서울시청, 국립국악원, (사)한국예총, (사)한국국악협회, (사)한국사진작가협회 6. 참가자격 : 전국 사진 애호가 및 국악동호인 7. 참 가 금 : 각 부문 50,000원 * 양일간 중복참가가능 제일은행 김호규 128 - 20 - 016969 8. 참가부문 : 첫째 날 -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지정종목 공연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춘앵전, 학무, 도살풀이춤, 탈춤 등 13개 프로그램 둘째 날 - 국가중요무형문화재 비지정종목 공연 진도북춤, 한량무, 산조무, 입춤, 장고춤, 농악, 지전춤, 교방춤 등 13개 프로그램 * 출연진 - 각부문 주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및 최고의 명무 출연 9. 출품내역 ▶ 작품내용 - 각부문 1, 2회 공연중 촬영한 컬러 및 흑백작품(합성사진 불가) ▶ 작품규격 - 컬러 및 흑백 11"×14" (장정불요) 10. 접 수 처 : 서울시 성북구 동선동 3가 28. 2층 국악신문사 02-922-1411 (* 서울시 성북구 동선동 3가 134. 3층 에서 변경) 우 136-053 e-mail - jy0989@kukak21.com 신청서 보내주세요. 11. 출품요령 : 작품 뒷면에 화제, 주소(우편번호), 성명, 전화번호(핸드폰) 모두 기재 요망(정확히) 12. 접수마감 : 2005년 9월 1일 (목) 당일 소인까지 유효 13. 심사일자 : 2005년 9월 9일 (금) 공개심사 (13시 예정) 14. 심사위원 : 조직위원장 - 정범태 (사)한국사진작가협회 고문 집행위원장 - 임익재 (사)한국사진작가 창작분과 부위원장 집행위원 - 이병옥 (용인대 무용과 교수) 김승국 (문화재 전문위원) 양종승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임춘섭 (www.dijdo.com 대표) 김호규 (국악신문사 www.kukak21.com 대표) 심사발표 : 2005년 9월 10일(토)예정 국악신문(www.kukak21.com), 뒤주(www.dijdo.com) 15. 전시기간 : 2005년 10월 중 전시 16. 시상일시 : 2005년 10월 중 전시오픈 행사 중 17. 시상내역 구분 상훈 상금 종합대상 1점 문화재청장상 상금 100만원 대 상 부문별 1점 국립국악원장상 각 상금 50만원 최우수상 부문별 1점 (사)예총회장상 각 상금 30만원 우 수 상 부문별 1점 (사)한국국악협회 이사장상 각 상금 20만원 장 려 상 5점 국악신문사장상 각 상금 20만원 입 선 100점 내외 국악신문사장상 * 18. 기타사항 ▶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의 무대촬영인 관계로 사진촬영의 편의를 위해 선착순 300명에한해 접수를 마감합니다. (당일 혼란을 피하기 위해 추첨으로 좌석배치) ▶ 본 대회장이신 정범태님으로부터 시작전 무대촬영기법에 대한 강의 있을예정 ▶ 입상작의 저작권은 당사에 귀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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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전통춤 평론집 <춤풍경>2016. 2. 25 / 신간 소개 전통춤 평론집 이 책은 전통춤이론가인 필자가 전통춤 공연 현장을 기록하고 리뷰한 글들을 모아 평론집으로 출간한 책이다. 4부 구성으로 편성하여, 1부 考. ‘전통춤의 역사와 원리’ 에서는 궁중무와 민속춤에서 전통춤의 원리로 거론될 수 있는 명제들을 분석했고, 현재 전통춤의 현황을 역사적 흐름 속에서 살펴보았다. 2부 論. ‘승무 검무 살풀이춤 그리고 한량무’는 한국 전통춤의 주요 종목인 승무, 검무, 살풀이춤, 한량무의 현재와 과거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갈 바를 언급했다. 3부 想. ‘전통춤의 다양성’은 2001년부터 2015년까지 필자가 관찰한 전통춤 공연에 대한 기록이자 논평이다. 4부 提 ‘전통춤의 방법론과 미래’에서는 현행 전통춤 공연에서 우려할 사항과 지양해야 할 대목들, 또는 새로운 관점들을 제기하였다. 궁중무와 민속춤 각 계열의 춤 공연에 대한 리뷰 뿐만이 아니라, 전통춤의 주요 종목에 대한 문제 제기와 전통춤의 방법론에 대한 제언도 포함하고 있다. 전통춤평론집 춤풍경 舞風景 김영희 지음 발행일 2016년 1월 25일 면 수 440면 판 형 신국판(소프트) ISBN 979-11-5516-515-7 93680 정 가 25,000원 발행인 김흥국 펴낸곳 도서출판 보고사 ❚목차 책머리에 추천사 채희완∥전통춤 관람은 문화재로서 교양체험이 아니라 살아 생동하는 예술체험인 것 추천사 김태원∥김영희 첫 춤평론집 출간에 부쳐 1부 考. 전통춤의 역사와 원리 춤은 八風을 행하는 것이다 춤은 그 모습을 짓는 것이다 한성준의 창의 정신과 열린 시야 최근 전통춤의 주요 현황과 특징 2부 論. 승무 검무 살풀이춤 그리고 한량무 승무의 미래와 승무의 과거 한국 춤의 역사에 등장한 검무의 양상 살풀이춤의 근대성 한량무의 기회 혹은 위기 3부 想. 전통춤의 다양성 왕조의 꿈 ‘태평서곡’이 울리기 시작했다 궁중무의 새로운 공연방식 - ‘정재 들여다보기’와 ‘고종 오순 경축 연향’ 민속춤, 우리 춤의 또 다른 유산 - ‘남무, 춤추는 처용아비들’을 보고 황해도굿의 당당한 이면, 황해도굿보존회의 ‘꽃맞이굿’ 기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주)서울옥션 특별기획전 ‘妓生’ 을 보고 광무대 재인들의 구극舊劇을 보셨습니까 -‘광무대 재인들의 발탈재담과 장님타령, 장대장타령’을 보고 80년 춤 인생 고스란히 - 宇峰 이매방 선생님 팔순 기념공연을 보고 ‘김수남 사진굿’에 온 굿에 목마른 사람들 - 굿사진가 김수남 추모 1주기를 맞아 조흥동의 한량무 무보집 발간공연과 한순서의 공연 ‘왕조의 꿈 태평서곡’, 창덕궁 공연의 의미 이애주 춤 ‘달의 노래’ - 경기 몸짓의 원류를 찾아서 원각사 백년 광대 백년 정동 명인뎐 - ‘안팎의 우리춤’을 보고 낯 설은 제주굿, 그래도 굿은 굿 -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을 보고 심소 김천흥선생 탄생 백년 기념 공연 ‘八舞傳’을 보고, 정범태선생과 구히서선생을 떠올리며 국립국악원의 새로운 국가 브랜드 명작 - ‘태평지악 - 세종, 하늘의 소리를 듣다’ 하용부춤판 전통춤 영역의 새로운 실험 무대 - ‘봄날, 우리 춤 속으로’ 우리 춤의 流가 더욱 別別해 지기를 기대하며 - ‘류별로 본 우리 춤 2009’ ‘왕의 춤’을 보고 예악당 무대에 올려진 을 보며 청산에 살어리 청산에 살어리 - ‘우리춤 神市 6인전’ 한순서 ‧ 이주희의 ‘모녀전승’ ‘고 양소운 선생 추모공연’을 다녀와서 전통춤 소극장 공연의 새로운 기류 장단 곶 디딤 마루를 부르는 ’배꽃춤판’ 서울교방의 ‘三人香’, 리을무용단의 ‘友樂’ - 2011년 가을, 새로운 해석과 전통을 담은 한국춤의 향연 ‘2人무 페스티발’의 전통춤 소극장 공연 전통춤에 대한 열린 시각, 한명옥드림무용단 ‘조율 II’ 소극장 전통춤 장기공연의 가능성 - ‘김수현 춤벗 열두마당’ 김천흥 선생 5주기 추모문화제 - 아쉬웠던 학술행사와 ‘처용랑’ 재연 시연 ‘강선영 불멸의 춤’ - 한성준 춤의 흔적을 찾아서 새로운 춤의 얼굴과 레파토리가 등장한 2013‘배꽃춤판’ 계통별 전통춤이 한 자리에 모인 ‘2013 팔무전’ 〈고깔소고춤〉의 명무 고 황재기 선생 10주기를 기리며 산조춤, 가슴에 담겨있는 심상(心像)을 그리는 춤 - 장승헌 기획 ‘산조예찬’ 서울시무용단의 대표작은 무엇인가요 풍물굿의 다양한 개념이 도출된 ‘2013 팔도풍물굿쟁이전’ 왕성했던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예술적 욕구 - ‘4道4色’과 ‘신궁중정재’ 20세기 중후반 한국춤의 유산, 박금슬 - 박금슬 선생 탄신 90주년 기념공연 ‘족정정(足定丁)’ 신무용의 예술적 성과를 재평가해야 한다 - ‘신전통, 춤 복원에 지평을 열다’를 보고 김백봉 고유의 표현과 미감을 찾아 - 우리춤협회의 김백봉 헌정무대를 보고 한국무용사로 풀어낸 2014년 ‘한국춤 100選 열두마당’ 영친왕 환국 환영연의 흥미로운 재현 - 국립국악원 무용단 정기공연 ‘마지막 황태자, 조선의 꿈을 보다’ 국수호 의 풍격, 표일(飄逸) 한성준의 창의 정신과 열린 시야 - 한성준탄생 140주년을 기념하는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 진혼춤의 새로운 전형 - 심우성, 이애주, 최일순의 ‘넋전아리랑’ 한국전통문화연구원 ‘평양정재 연광정 연회’ - 민간의 풍류 넉넉한 교방정재 전통춤 공연의 문제의식을 제기하기를 기대하며 - 한국춤협회 전승춤 공연 한국 정신문화의 원류, 국립국악원 기획 ‘사직대제’ 1950, 60년대 전통춤의 흔적 - 『한국무용도감』으로 만난 예기 김정연의 춤 4월의 전통춤 공연이 보여준 새로운 시도들 - , , 풍류사랑방 수요춤전의 효과를 기대하며 - 국립국악원 무용단 ‘남무(男舞) 궁의 하루’와 ‘여무(女舞) Battle’ 교방춤과 무속춤의 외연을 넓힌 굿춤 한 판 - ‘정영만과 남해안별신굿 무관’을 보고 영성제(靈星祭)에 담긴 우리 춤의 형식, 철조(綴兆) 춤이 먼저인가 춤꾼이 먼저인가 - ‘화무 – 팔무전’을 보고 4부 提. 전통춤의 방법론과 미래 명무名舞는 여하(如何)한 것인가 - ‘전무후무全舞珝舞’ 공연에 대한 단상 치마춤과 바지춤에 대한 재고 교방춤과 마당춤의 기법은 다르다 – 모든 전통춤의 교방춤화를 우려하며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차별적인 전통을 위해 - 궁중무용의 변주 ‘2014검무전(劍舞展)’을 마치며 – 전통춤의 영역 확장과 인문 액자 속의 인형처럼 전통춤을 추시렵니까 찾아보기 ❚저자소개 김영희(金伶姬) 서울예고, 국민대 국사학과, 중앙대 대학원 무용학과를 거쳐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전통춤의 움직임에 드러난 風의 양상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개화기 이후 근대기생과 근현대 춤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고,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원이다. 김영희춤연구소를 운영하며 2012년부터 매년 ‘검무전(劍舞展)’과 ‘검무심포지움’을 개최하고 있다. 한국근현대예술사구술채록연구시리즈 『김천흥』(2004), 『양소운』(2005), 『이매방』(2006), 『문장원』(2006)을 작업했고, 『고창농악 고깔소고춤』(2004),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2006), 『매일신보 전통공연예술 관련기사 자료집』(2006), 『전설의 무희 최승희』(공저, 2013), 『한국춤통사』(공저, 2014) 외 다수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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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굿의 시나위 - 哀而不悲 11. 11● 일시 : 2009년 11월 11일(금) 오후 7시 30분 ● 장소 : 과천시민회관 대극장 ● 주최 : 과천시 ● 주관 : 우리춤연구회, 진도군립예술단 ● 후원 : (사)한민족문화협회, 한국농어촌공사, 디자인돔 ● 협찬 : CNC TV방송, 日刊 바른세상,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 축사 : (사)한민족문화협회 이사장 송정희 ● 인사 : 우리춤연구회 정주미 회장, 진도군립예술단 김오현 단장 1회 전석 초대 공연으로 재인청 춤의 정수, ‘태평무’, ‘진쇠춤’, ‘엇중몰이신칼대신무’와 전통 재인청 소리 만가를 진도의 대표적인 소리굿인 씻김굿과 다시래기, 상여놀이를 결합하여 우리 고유의 한, 멋, 흥의 세계와 그 정수를 펼친다. ● 공연내용 ▷ 슬프되 슬퍼하지 않는 민족 고유의 끈질긴 생명력 - 哀而不悲 ◁ ▷ 한을 멋과 신명으로 환치시켜 온 전통예술의 역사! ◁ 1) 신명의 결정체 - 진도북춤, 진도북놀이 ● 진도북춤 ‘진도북놀이’에서 춤을 강조한 작품으로 한 해 농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풍요를 비는 농부들의 땅고르기(地神 밟기) 의식이 극적 요소가 갖추어지면서 집단놀이의 형태로 발전한 것이라 한다. 장단으로 막오름장단에서 막음장단에 이르기까지 자진모리, 굿거리, 오방진, 휘모리장단이 흐드러지게 어울려 신명 넘치는 춤판을 만들어낸다. ※ 출연 정주미(우리춤연구회 대표, 재인청전통무용 전승자) 권미영, 이미경, 송은미, 김인순, 성수희, 서혜승(우리춤연연구회 회원) ● 진도북놀이(지방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 북놀이는 다른 지방과는 달리 양손에 북패를 쥐고 장구처럼 치기 때문에 흥을 돋우고 멈춤과 이어짐이 아주 특별한 진도만의 자랑으로 가락이 다양하다. 특히 북 소리와 즉흥적 춤사위가 어우러져 흥을 북돋아 준다 ※ 출연 : 강은영, 노부희, 권민옥, 강인순, 하미순, 김나영(진도군립민속예술단 단원) 2) 꿈과 태평성대의 세계 - 진쇠춤, 태평무 ● 진쇠춤 진쇠춤은 시각적으로 황동빛의 꽹과리와 형형색색의 술을 길게 드린 꽹과리채, 정갈하면서도 화려한 무복과 다양한 춤사위로 엮어 내는 선과 색조의 조화가 일품이다. 이 춤이 추어지는 내내 흐르는 선의 아름다움은 재인청 계열의 수많은 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으로 우리 민족의 미의식이 선에서 비롯되고 선으로 귀결된다는 견해에 들어맞는 춤이라 할 것이다. 이 춤이 빚어내는 선의 황홀경은 춤꾼은 물론 관객과 함께 몰아지경으로 빠져드는, 곧 예술을 통한 엑스터시를 공유할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하다. ● 태평무 태평무는 경기 재인청의 대표적인 춤의 하나로 한영숙, 강선영류의 태평무에 비해 그저 무관복(武官服)을 춤옷으로 쓰고 있어 비교적 소박하나 춤사위가 대체적으로 크고 분명하고 양반들 사이에 행해지던 허튼춤의 골격을 닮아 기본적으로는 격식을 중요시하는 춤이다. 그러나 다양한 춤사위와 특히 앞선 장단에서 다른 장단으로 넘어가는 부분의 매듭을 화려하게 몰아서 추어 넘기는 특징으로 역동성도 갖추고 있어 항일시기에는 공연 때마다 인기를 누리는, 이른바 민중의 정서에 밀착된 춤으로 널리 사랑을 받았던 춤이다. ※ 출연 송은미, 김인순, 이종진, 전덕수, 권미영, 이미경(우리춤연구회 회원) 3) 재인청 소리 세계의 정수 - 경기만가 ● 경기만가 상여소리와 를 다른 말로 만가라고 부른다. 만(輓,挽)이란 끌어당긴다는 뜻으로 만가(輓歌)는 원래 상여를 끈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즉, 죽은 사람을 애도하여 그가 이승에 남긴 행적을 기리며, 저승에서 좋은 곳으로 가도록 인도하는 뜻으로 부르는 노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뜻은 국어 대사전이나 국악 대사전에도 잘 나와 있지 않다. 단지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또는 우리나라 구전 민요의 하나라고 소개되어 있을 따름이다. 이런 정황으로 판단해보면 현재 진도에서 불리는 만가, 즉 상여소리는 상여를 메고 나갈 때 상두꾼들이 불렀던 노래의 원초적 형태로 볼 수 있다. 서양의 엘레지(elegy), 즉 영가가 우리의 만가에 해당한다. 그런데 경기 만가는 여느 만가와 같이 상여 소리이나 망자의 일대기를 엮어 부른다는 점에서 다르다. 곧 서사적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별가를 통해 망자와 산자가 이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상주춤’을 추고, 이어 경기만가 중 망자가 길을 떠나는 ‘상여소리’와 함께 하관식이 끝난 뒤 봉분을 다지는 ‘회닫이소리’를 들려준다. ※ 출연 - 소리/이희완(경기 남창의 명인, 경기 재인청 마지막 세습 예인) 김명수(경기 남창의 명인, 고 김옥심 명창의 생질) 이명식(이희완 명창의 문하생) - 춤 /정주미, 정호남, 이종진, 조간난, 정현숙, 천현영, 성수희, 김민영, 서혜승, 한빨리나(우리춤연구회 회원) 4) 죽음에도 깃든 축제 - 진도씻김굿, 진도다시래기 ● 진도 씻김굿(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에서 행해지는 씻김굿은 망자가 이승에서 풀지 못하고 맺혀있는 한을 풀어주어서 극락왕생 하도록 기원하는 굿이다. 1980년 12월 7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진도 씻김굿은 원시종교인 샤머니즘과도 통하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초연한 자세를 예술의 세계로 승화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하루밤 내내 걸리는 씻김굿은 길 닦는 대목에서 그 절정을 이루는데 끊어질 듯 애절하게 이어지는 삼장개비 곡조는 모인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한다. 특히 진도 씻김굿 음악은 1979년 유럽(벨기에)에서 열린 세계 민속 음악제에서 금상을 탄 바 있다. 금번 공연에서는 전체 흐름을 위해 길닦음 대목을 올린다. 길닦음은 모든 넋과 영혼들이 좋은 곳으로 가서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천도의식으로 길게 펼쳐 놓은 베는 저승으로 가는 길을 의미하며 가는 길을 깨끗이 닦아주는 대목으로 씻김굿 중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 출연 박병원(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 김오현(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 송순단(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 박미옥(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 장필식(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이수자) 강은영(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이수자)외 진도군립예술단 단원 ● 다시래기(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는 일명 다시락(多時樂)이라고도 하는데 ‘다시 낳다’, ‘다시 생성하다’ 또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즐거움을 갖는다’는 말로도 전한다. 다시래기는 마을에 초상이 나면 마을 사람과 상두꾼들이 출상전야에 상가에 모여서 상주와 그 가족을 위로하며 상여를 꾸미면서 마당에서 벌리는 일종의 소박한 소극(笑劇) 형태다. 현재 민속극이 전국적으로 심청전이나 흥부전, 박첨지, 남사당놀이를 제외하고는 연극 성격을 띤 놀이는 거의 없고 남도에도 극형태 민속을 찾기 어려우나 이 다시래기는 사물 반주에 맞춰 노래와 춤과 재담으로 진행되는 가무와 개인기가 곁들인 유일한 민속극이라 할 수 있다. 서민들의 풍자극으로 엮어진 다시래기는 - 옛날 마을 주민의 협동과 상부상조 정신을 엿볼 수 있고, - 노래를 위주로 한 춤과 익살로 엮어지면서 권선징악이 깃들었으며, - 초상집 마당에서 밤놀이로 엮어지는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항일시대에는 협동과 단결이 깃들었다 하여 일제의 탄압으로 묻혀 있다가 뜻있는 분들에 의하여 재현시켜 1981년 제12회 남도문화제에 출연하여 우수상을 받았고, 1985년 2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로 지정되었다. ※ 출연 강준섭(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예능보유자) 김애선(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전수교육조교) 박광순(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전수교육조교) 김치선(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이수자) 5) 한을 풀어 멋과 신명으로 - 엇중몰이신칼대신무 ● 엇중몰이신칼대신무 재인청 춤인 이 춤은 재인청 마지막 도대방직을 자임한 고 이동안 선생과 60년 넘게 우리 춤 사진을 찍어온 정범태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진도씻김굿의 지전춤을 지고의 예술로 형상화한 작품이라 한다. 진도씻김굿 보존회 회원들 사이에서도 경탄을 금치 못하는 작품으로 씻김춤의 춤 요소가 경기 재인청 예인들에 의해 얼마나 높은 예술적 경지로 승화될 수 있는 가를 보여준다. 긴 대나무에 흰 창호지를 오려 대 양 끝에 술처럼 치렁치렁 매단 신칼을 양손에 들고 추는데, 양팔을 돌리고 뿌리거나 휘돌리는 맵시는 경건하기도 하고, 소복한 여인이 뜨거운 울음을 참아내는 듯 앙다문 이빨 사이로 독기를 느끼게도 하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춤이다. 마치 내림굿을 하듯 신칼로 하늘의 기운을 모으고 디딤새로는 지기(地氣)를 이끌어 올려 춤꾼의 몸에서 천지가 합일(合一)하는 신이(神異)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 춤은 바지춤(男舞) 전통을 이어온 재인청 춤에서 가장 여성스러운 춤으로 우리네 여성이 역사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눈물과 한을 어떻게 승화시켜 왔으며, 이를 어떻게 예술의 형식에 담아내었던가를 보여준다. 이 엇중몰이신칼대신무는 한과 그 풀이의 미학이다. 6) 산 자를 위한 위로 - 진도상여놀이 ● 진도만가 - 상여소리(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진도는 다른 고장에서는 찾아 볼수 없는 고유한 민속과 여러 가지 민요가 전승되어 오고 있어서 우리나라의 민속학이나 구비문학(口碑文學)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진도 만가(輓歌)는 사람이 죽었을 때 상여를 메고 가면서 부르는 민요의 일종이지만 운구하는 형태와 불리는 노래가 특이하다. 상여를 메고 갈 때 다른 지방에서는 남자만이 상두꾼이 되고 ‘만가’의 선창자는 요령이나 북을 치면서 매김 소리를 하지만 진도에서는 여자도 상두꾼으로 참여하고 만가의 반주 악기로 사물(四物)악기 ‘징, 꽹과리, 북, 장고’가 등장하여 매김 소리와 뒷소리를 뒷받침해 준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고유의 민속이 날이 갈수록 소멸되어 가고 있고 또 만가의 가락조차 변질되어 가고 있어서 이를 안타까워한 나머지 이를 재현하고 정립하여 1978년 춘천에서 개최된 제19회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진도의 상속(喪俗)과 만가의 대표적인 특색을 살펴보면, - 상복이 특이하고, - 여자들도 상두꾼으로 참여하고, - 만가의 종류와 가락이 다양할 뿐 아니라 판소리 장단과 같으며, - 만가 속에 무당과 부처의 사상이 절충 융합되어져 있고, - 반주 악기로 사물악기가 등장하는데 죽은 자의 영혼을 즐겁게 보낼 줄 아는 진도 사람들만의 초연한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독특한 민속이다. ※ 출연 - 상여소리/강송대(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남도잡가 34호 예능보유자) 박종숙(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 예능보유자) 박동매(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 예능보유자) - 사 물 /박재준(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 전수교육조교) 박강열(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김병천(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전수교육조교) 장필식(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이수자) - 상두꾼 및 호상꾼/박동천, 장희송, 김영태, 박민옥, 채규룡 외(진도군립민속예술단 단원) ○ 주요 스텝 - 해설 : 이병옥(용인대 교수, 경기도문화재 위원) - 기획 : 강영화(시인, 우리춤연구회 기획팀장) - 연출 : 최우칠(KBS 민속악단 단장) - 예술감독 : 김오현(진도군립예술단 연출단장), 정주미(우리춤연구회 대표) - 무대감독 : 박인춘(수지여성회관 무대감독) - 사업ㆍ홍보 : 한신자(우리춤연구회 사업본부장) - 진행 : 김순자(우리춤연구회 진행팀장), 정은수 - 의상 : 안희주(안희주 의상실 대표) - 분장 : 박서정(우리춤연구회 분장담당) - 사진 : 정범태(풍류방 대표), 이종길(글로리아사진관 대표) - 영상 : 천승요(아카이브천 대표), CNC TV방송 - 행정ㆍ기록 : 조숙희(진도군립예술단 사무국장). 성수희(우리춤연구회 행정팀장) 외 2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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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굿의 시나위 - 哀而不悲 11. 111회 전석 초대 공연으로 재인청 춤의 정수, ‘태평무’, ‘진쇠춤’, ‘엇중몰이신칼대신무’와 전통 재인청 소리 만가를 진도의 대표적인 소리굿인 씻김굿과 다시래기, 상여놀이를 결합하여 우리 고유의 한, 멋, 흥의 세계와 그 정수를 펼친다. ● 일시 : 2009년 11월 11일(금) 오후 7시 30분 ● 장소 : 과천시민회관 대극장 ● 주최 : 과천시 ● 주관 : 우리춤연구회, 진도군립예술단 ● 후원 : (사)한민족문화협회, 한국농어촌공사, 디자인돔 ● 협찬 : CNC TV방송, 日刊 바른세상,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진도 예인들과 경기 재인청의 후예들이 모여 1,500여년을 이어내린 전통 예인의 역사를 다시 잇는다. 부족국가 시절부터 300여 년간 내려오던 우리 민족의 원시적인 축제들이 한민족 고유의 색깔을 갖추면서 본격적인 우리 전통예술이 등장하게 된 역사는 신라 진흥왕 재위 12년째이던 서기 551년,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에 시작되었던 ‘팔관회’부터였다 한다. 오늘날 우리 전통예술은 바로 팔관회에서 비롯된 오랜 축제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이었고, 그 아름다움 또한 세계 예술사에 있어서도 독특한 경지를 이룩한 것이다. 팔관회를 담당한 예인들이 축제의 시대 고려를 거쳐 조선후기로 면면히 이어지면서 재인청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들의 전통예술이 세습무당이 주축이 된 무속 계열의 것과 전문 예인 그룹의 것으로 나뉘게 된 것은 조선사회가 갖는 숭유의식과 격변의 조선 후기 사회가 빚어낸 것이었다. 세습무당 계열은 그들이 역사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예술혼보다 무속은 곧 미신이라는 근대적 가치에 의해 천대 받았고, 순수 예인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신분적 멸시로 인해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에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들 두 집단이 이어내린 전통예술은 한줄기이며 가장 정제되고 미학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오는 11월 11일 오후 7시 30분, 과천시민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지는 ‘춤과 굿의 시나위 -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이름으로 올려지는 무대는 씻김굿으로 대표되는 예향 진도의 후예와 예인집단 경기 재인청의 후예가 한 자리에서 만나 만든 무대이다. 이를 위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와 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여섯 예인*을 포함하여 전수조교 및 이수자를 포함한 50여명의 진도군립예술단 단원들이 대거 참여하고, 20년 넘게 경기 재인청의 춤을 전승하고 있는 우리춤연구회 정주미 회장을 비롯한 50여 회원들이 힘을 합쳤다. 그리고 이들의 무대를 위해 과천시가 기꺼이 나서고 KBS민속악단 최우칠 단장이 연출을, 용인대학교 이병옥 교수가 해설을 맡아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우리춤연구회의 정주미 회장과 진도군립예술단의 김오현 단장은 “우리가 담당해 왔던 전통예술의 질긴 생명력과 수준 높은 예술성을 사회 일반과 공유해야 할 필요를 이야기 해왔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춤과 굿의 시나위’입니다. 여전히 어려운 우리네 일반의 살림살이에서 우리 민족이 어려움을 극복해낸 오랜 정신과 삶의 모습을 제시하고 삶의 여유와 멋과 웃음을 드리고자 합니다.”고 밝히면서 우수한 우리 전통예술의 극치를 보게 될 것이라 한다. 그리고 한의 정서를 멋과 흥으로 환치시켜 온 우리 춤과 죽음마저도 한 차원 높은 축제의식으로 승화시킨 진도씻김굿은 한 결로 금번 무대의 핵심주제는 슬프되 슬퍼하지 않는 민족 고유의 끈질긴 생명력과 한을 극복해내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민족정신이라 한다. 작품 구성은 진도의 작품으로 가장 신명성이 뛰어난 ‘진도북춤’과 ‘진도북놀이’로 무대를 열고, 우리가 소망하는 꿈과 태평성대의 세계를 ‘진쇠춤’과 ‘태평무’로 표현한다. 이어 경기 남창으로 ‘경기만가’가 재인청 소리 세계의 정수를 펼치면, ‘진도다시래기’와 정주미 춤꾼의 ‘엇중몰이신칼대신무’를 통해 한을 풀어 승화시키는 우리 민족 전통의 두 가지 시각, 해학과 멋을 보여준다. 이어 망자의 길을 닦는 진도씻김굿의 ‘길닦음’으로 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나면, ‘진도상여놀이’를 통해 무대와 객석이 하나 되어 산 자를 위로하고 희망을 기약하는 전통창작 연희무대로 구성한 무대이다. 두 지역으로 나뉜 경기 예인의 후예들과 진도 예인의 후예들이 함께 새로운 예술공동체를 만들어 우리 춤과 진도씻김굿을 재해석한 수준 높은 작품으로 구성하였다는 ‘춤과 굿의 시나위’, 1,500여년을 이어온 한국전통예술사의 도도한 예맥을 일반 관객과 향유하겠다는 무대, 흔치 않은 공연이다. * - 강준섭(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예능보유자) - 박병원(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 - 박종숙(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 예능보유자) - 박동매(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 예능보유자) - 박강열(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 강송대(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34호 남도잡가 예능보유자) ※ 추가 문의[우리춤연구회 기획팀 : 팀장 강영화, HP : 010-3420-3120, email : yhseom@daum.net] ● 공연취지 ○ 경기 재인청 후예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춤연구회의 예인들과 예향 진도의 예맥을 한데 아우르고 있는 진도군립예술단이 참여하여 제작한 작품으로 두 단체는 1,500여년을 이어온 한국전통예술사의 도도한 예맥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제작, 향유할 수 있고 두 지역으로 나뉜 예맥이 함께 하는 예술 공동체가 형성됨. ○ 오랜 예맥을 이어온 단체인 만큼 우리 민족 고유의 질긴 생명력을 함께 나누어 생활 속의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생활 속의 여유와 멋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음. ○ 슬프되 슬퍼하지 않는 우리 민족 고유의 ‘哀而不悲’의 멋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우리 춤과 진도씻김굿을 재해석한 수준 높은 작품 감상의 무대로 일반 관객의 문화예술적인 수준이 향상되고 삶에 활력소를 부여함. ● 작품주제 및 기획의도 부족국가 시절부터 300여 년간 내려오던 우리 민족의 원시적인 축제들이 보다 근대적인 모습을 갖추면서 본격적인 우리 전통예술이 등장하게 된 역사는 신라 진흥왕 재위 12년째이던 서기 551년,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에 시작되었던 ‘팔관회’부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전통예술은 바로 오랜 축제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이었고, 그 아름다움 또한 세계 예술사에 있어서도 독특한 경지를 이룩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재인청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들의 전통예술이 세습무당이 주축이 된 무속 계열의 것과 전문 예인 그룹의 것으로 나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나 이들은 한줄기이며 우리 전통예술의 역사에 있어 가장 정제되고 미학적으로 완성도가 높습니다. 본 공연은 남도 예향 진도의 세습무가 씻김굿의 후예와 예인집단 경기 재인청의 후예가 한 자리에서 만나 새로운 무대를 만들었다는데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담당해 왔던 전통예술의 질긴 생명력과 수준 높은 예술성을 사회 일반과 공유해야 할 필요를 이야기 해왔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춤과 굿의 시나위’입니다. 여전히 어려운 우리네 일반의 살림살이에서 우리 민족이 어려움을 극복해낸 오랜 정신과 삶의 모습을 제시하고 삶의 여유와 멋과 웃음을 드리고자 합니다. ● 공연개관 작품의 핵심주제는 슬프되 슬퍼하지 않는 민족 고유의 끈질긴 생명력과 한을 극복해내는 ‘哀而不悲’의 민족정신입니다. 한의 정서를 멋과 흥으로 환치시켜 온 우리 춤과 죽음마저도 한 차원 높은 축제의식으로 승화시킨 진도씻김굿은 한 결입니다. 진도의 작품으로 가장 신명성이 뛰어난 ‘진도북춤’과 ‘진도북놀이’로 무대를 열고, 우리가 소망하는 꿈과 태평성대의 세계를 ‘진쇠춤’과 ‘태평무’로 표현합니다. 이어 경기 남창의 살아있는 명인 이희완 소리꾼의 ‘경기만가’가 재인청 소리 세계의 정수를 펼칩니다. 이어 ‘진도다시래기’와 정주미 춤꾼의 ‘엇중몰이신칼대신무’를 통해 한을 풀어 승화시키는 우리 민족 전통의 두 가지 시각을 보여 드립니다. 이어 망자의 길을 닦는 ‘길닦음’으로 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우리 모두는 ‘진도상여놀이’를 통해 무대와 객석이 하나 되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자는 다짐과 약속을 하는 마당으로 구성한 전통창작 연희무대입니다. ● 주관단체 소개 ○ 우리춤연구회 1986년에 결성된 우리춤연구회는 구한말 김인호 춤꾼으로부터 이동안 춤꾼으로 이어지는 경기 재인청의 춤을 고스란히 익히고 전승시키는 단체이다. 재인청 춤은 단순히 한 계보로서의 춤이 아닌 팔도의 춤 특성을 종합한 춤으로 수부(首府) 경기의 위상에 걸맞은 춤으로 가장 민족 정서를 잘 담아낸 춤이자 경기도 고유의 특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어 전승 가치가 높다. 고 이동안 춤꾼의 직계 제자인 정주미 회장을 중심으로 과천의 본부와 경남 거창지부, 쌍트페테르부르크의 한국청소년문화교육센터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지부를 두고 있으며, 재인청 관련 사업을 전담하는 ‘재인청전통무용전승회’와 ‘과천어린이무용단’, 경기도 현직 교사들로 조직된 ‘소운교사무용단’, ‘과천불림무용단’, 러시아 ‘소운무용단’의 네 무용단이 활동하고 있다. ‘재인청춤판, 과천시어린이춤판, 춤길, 춤과 굿의 시나위, 해설이 있는 우리 춤, 한여름 밤의 춤, 고3 수험생을 위한 찾아가는 우리 춤, 9988우리 춤, 이희완의 소리여행, 우리 춤 강연회’ 등을 통해 300여회의 공연과 행사를 주관하였다. ○ 진도군립예술단 진도 군립민속예술단은 1995년 전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군 단위 민속공연단이다.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토요민속여행이라는 공연을 중심으로 공연되고 있으며, 2007년 4월 향토문화회관 개관이후부터 2009년 10월 현재까지 430회의 공연을 개최한 바 있다. 공연 내용은 진도지역의 민속음악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다수의 전국순회공연 및 해외공연을 했다. ● 프로그램 해설 ▷ 슬프되 슬퍼하지 않는 민족 고유의 끈질긴 생명력 - 哀而不悲 ◁ ▷ 한을 멋과 신명으로 환치시켜 온 전통예술의 역사! ◁ 1) 신명의 결정체 - 진도북춤, 진도북놀이 ● 진도북춤 ‘진도북놀이’에서 춤을 강조한 작품으로 한 해 농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풍요를 비는 농부들의 땅고르기(地神 밟기) 의식이 극적 요소가 갖추어지면서 집단놀이의 형태로 발전한 것이라 한다. 장단으로 막오름장단에서 막음장단에 이르기까지 자진모리, 굿거리, 오방진, 휘모리장단이 흐드러지게 어울려 신명 넘치는 춤판을 만들어낸다. ※ 출연 정주미(우리춤연구회 대표, 재인청전통무용 전승자) 권미영, 이미경, 송은미, 김인순, 성수희, 서혜승(우리춤연연구회 회원) ● 진도북놀이(지방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 북놀이는 다른 지방과는 달리 양손에 북패를 쥐고 장구처럼 치기 때문에 흥을 돋우고 멈춤과 이어짐이 아주 특별한 진도만의 자랑으로 가락이 다양하다. 특히 북 소리와 즉흥적 춤사위가 어우러져 흥을 북돋아 준다 ※ 출연 : 강은영, 노부희, 권민옥, 강인순, 하미순, 김나영(진도군립민속예술단 단원) 2) 꿈과 태평성대의 세계 - 진쇠춤, 태평무 ● 진쇠춤 진쇠춤은 시각적으로 황동빛의 꽹과리와 형형색색의 술을 길게 드린 꽹과리채, 정갈하면서도 화려한 무복과 다양한 춤사위로 엮어 내는 선과 색조의 조화가 일품이다. 이 춤이 추어지는 내내 흐르는 선의 아름다움은 재인청 계열의 수많은 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으로 우리 민족의 미의식이 선에서 비롯되고 선으로 귀결된다는 견해에 들어맞는 춤이라 할 것이다. 이 춤이 빚어내는 선의 황홀경은 춤꾼은 물론 관객과 함께 몰아지경으로 빠져드는, 곧 예술을 통한 엑스터시를 공유할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하다. ● 태평무 태평무는 경기 재인청의 대표적인 춤의 하나로 한영숙, 강선영류의 태평무에 비해 그저 무관복(武官服)을 춤옷으로 쓰고 있어 비교적 소박하나 춤사위가 대체적으로 크고 분명하고 양반들 사이에 행해지던 허튼춤의 골격을 닮아 기본적으로는 격식을 중요시하는 춤이다. 그러나 다양한 춤사위와 특히 앞선 장단에서 다른 장단으로 넘어가는 부분의 매듭을 화려하게 몰아서 추어 넘기는 특징으로 역동성도 갖추고 있어 항일시기에는 공연 때마다 인기를 누리는, 이른바 민중의 정서에 밀착된 춤으로 널리 사랑을 받았던 춤이다. ※ 출연 송은미, 김인순, 이종진, 전덕수, 권미영, 이미경(우리춤연구회 회원) 3) 재인청 소리 세계의 정수 - 경기만가 ● 경기만가 상여소리와 를 다른 말로 만가라고 부른다. 만(輓,挽)이란 끌어당긴다는 뜻으로 만가(輓歌)는 원래 상여를 끈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즉, 죽은 사람을 애도하여 그가 이승에 남긴 행적을 기리며, 저승에서 좋은 곳으로 가도록 인도하는 뜻으로 부르는 노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뜻은 국어 대사전이나 국악 대사전에도 잘 나와 있지 않다. 단지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또는 우리나라 구전 민요의 하나라고 소개되어 있을 따름이다. 이런 정황으로 판단해보면 현재 진도에서 불리는 만가, 즉 상여소리는 상여를 메고 나갈 때 상두꾼들이 불렀던 노래의 원초적 형태로 볼 수 있다. 서양의 엘레지(elegy), 즉 영가가 우리의 만가에 해당한다. 그런데 경기 만가는 여느 만가와 같이 상여 소리이나 망자의 일대기를 엮어 부른다는 점에서 다르다. 곧 서사적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별가를 통해 망자와 산자가 이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상주춤’을 추고, 이어 경기만가 중 망자가 길을 떠나는 ‘상여소리’와 함께 하관식이 끝난 뒤 봉분을 다지는 ‘회닫이소리’를 들려준다. ※ 출연 - 소리/이희완(경기 남창의 명인, 경기 재인청 마지막 세습 예인) 김명수(경기 남창의 명인, 고 김옥심 명창의 생질) 이명식(이희완 명창의 문하생) - 춤/정주미, 정호남, 이종진, 조간난, 정현숙, 천현영, 성수희, 김민영, 서혜승, 한빨리나(우리춤연 구회 회원) 4) 죽음에도 깃든 축제 - 진도씻김굿, 진도다시래기 ● 진도 씻김굿(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에서 행해지는 씻김굿은 망자가 이승에서 풀지 못하고 맺혀있는 한을 풀어주어서 극락왕생 하도록 기원하는 굿이다. 1980년 12월 7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진도 씻김굿은 원시종교인 샤머니즘과도 통하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초연한 자세를 예술의 세계로 승화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하루밤 내내 걸리는 씻김굿은 길 닦는 대목에서 그 절정을 이루는데 끊어질 듯 애절하게 이어지는 삼장개비 곡조는 모인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한다. 특히 진도 씻김굿 음악은 1979년 유럽(벨기에)에서 열린 세계 민속 음악제에서 금상을 탄 바 있다. 금번 공연에서는 전체 흐름을 위해 길닦음 대목을 올린다. 길닦음은 모든 넋과 영혼들이 좋은 곳으로 가서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천도의식으로 길게 펼쳐 놓은 베는 저승으로 가는 길을 의미하며 가는 길을 깨끗이 닦아주는 대목으로 씻김굿 중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 출연 박병원(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 김오현(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 송순단(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 박미옥(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 장필식(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이수자) 강은영(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이수자)외 진도군립예술단 단원 ● 다시래기(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는 일명 다시락(多時樂)이라고도 하는데 ‘다시 낳다’, ‘다시 생성하다’ 또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즐거움을 갖는다’는 말로도 전한다. 다시래기는 마을에 초상이 나면 마을 사람과 상두꾼들이 출상전야에 상가에 모여서 상주와 그 가족을 위로하며 상여를 꾸미면서 마당에서 벌리는 일종의 소박한 소극(笑劇) 형태다. 현재 민속극이 전국적으로 심청전이나 흥부전, 박첨지, 남사당놀이를 제외하고는 연극 성격을 띤 놀이는 거의 없고 남도에도 극형태 민속을 찾기 어려우나 이 다시래기는 사물 반주에 맞춰 노래와 춤과 재담으로 진행되는 가무와 개인기가 곁들인 유일한 민속극이라 할 수 있다. 서민들의 풍자극으로 엮어진 다시래기는 - 옛날 마을 주민의 협동과 상부상조 정신을 엿볼 수 있고, - 노래를 위주로 한 춤과 익살로 엮어지면서 권선징악이 깃들었으며, - 초상집 마당에서 밤놀이로 엮어지는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항일시대에는 협동과 단결이 깃들었다 하여 일제의 탄압으로 묻혀 있다가 뜻있는 분들에 의하여 재현시켜 1981년 제12회 남도문화제에 출연하여 우수상을 받았고, 1985년 2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로 지정되었다. ※ 출연 강준섭(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예능보유자) 김애선(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전수교육조교) 박광순(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전수교육조교) 김치선(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이수자) 5) 한을 풀어 멋과 신명으로 - 엇중몰이신칼대신무 ● 엇중몰이신칼대신무 재인청 춤인 이 춤은 재인청 마지막 도대방직을 자임한 고 이동안 선생과 60년 넘게 우리 춤 사진을 찍어온 정범태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진도씻김굿의 지전춤을 지고의 예술로 형상화한 작품이라 한다. 진도씻김굿 보존회 회원들 사이에서도 경탄을 금치 못하는 작품으로 씻김춤의 춤 요소가 경기 재인청 예인들에 의해 얼마나 높은 예술적 경지로 승화될 수 있는 가를 보여준다. 긴 대나무에 흰 창호지를 오려 대 양 끝에 술처럼 치렁치렁 매단 신칼을 양손에 들고 추는데, 양팔을 돌리고 뿌리거나 휘돌리는 맵시는 경건하기도 하고, 소복한 여인이 뜨거운 울음을 참아내는 듯 앙다문 이빨 사이로 독기를 느끼게도 하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춤이다. 마치 내림굿을 하듯 신칼로 하늘의 기운을 모으고 디딤새로는 지기(地氣)를 이끌어 올려 춤꾼의 몸에서 천지가 합일(合一)하는 신이(神異)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 춤은 바지춤(男舞) 전통을 이어온 재인청 춤에서 가장 여성스러운 춤으로 우리네 여성이 역사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눈물과 한을 어떻게 승화시켜 왔으며, 이를 어떻게 예술의 형식에 담아내었던가를 보여준다. 이 엇중몰이신칼대신무는 한과 그 풀이의 미학이다. 6) 산 자를 위한 위로 - 진도상여놀이 ● 진도만가 - 상여소리(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진도는 다른 고장에서는 찾아 볼수 없는 고유한 민속과 여러 가지 민요가 전승되어 오고 있어서 우리나라의 민속학이나 구비문학(口碑文學)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진도 만가(輓歌)는 사람이 죽었을 때 상여를 메고 가면서 부르는 민요의 일종이지만 운구하는 형태와 불리는 노래가 특이하다. 상여를 메고 갈 때 다른 지방에서는 남자만이 상두꾼이 되고 ‘만가’의 선창자는 요령이나 북을 치면서 매김 소리를 하지만 진도에서는 여자도 상두꾼으로 참여하고 만가의 반주 악기로 사물(四物)악기 ‘징, 꽹과리, 북, 장고’가 등장하여 매김 소리와 뒷소리를 뒷받침해 준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고유의 민속이 날이 갈수록 소멸되어 가고 있고 또 만가의 가락조차 변질되어 가고 있어서 이를 안타까워한 나머지 이를 재현하고 정립하여 1978년 춘천에서 개최된 제19회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진도의 상속(喪俗)과 만가의 대표적인 특색을 살펴보면, - 상복이 특이하고, - 여자들도 상두꾼으로 참여하고, - 만가의 종류와 가락이 다양할 뿐 아니라 판소리 장단과 같으며, - 만가 속에 무당과 부처의 사상이 절충 융합되어져 있고, - 반주 악기로 사물악기가 등장하는데 죽은 자의 영혼을 즐겁게 보낼 줄 아는 진도 사람들만의 초연한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독특한 민속이다. ※ 출연 - 상여소리/강송대(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남도잡가 34호 예능보유자) 박종숙(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 예능보유자) 박동매(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 예능보유자) - 사물 /박재준(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 전수교육조교) 박강열(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김병천(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전수교육조교) 장필식(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이수자) - 상두꾼 및 호상꾼/박동천, 장희송, 김영태, 박민옥, 채규룡 외(진도군립민속예술단 단원) 9. 주요참가자 1) 출연자 [진도군립예술단] - 강준섭(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예능보유자) - 김애선(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전수교육조교) - 박병원(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 - 김오현(진도군립예술단 연출단장,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 - 송순단(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 - 박미옥(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 - 장필식(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이수자) - 강은영(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이수자) - 강송대(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34호 남도잡가 예능보유자) - 박종숙(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 예능보유자) - 박동매(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 예능보유자) - 박재준(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 전수교육조교) - 박강열(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 노부희, 김복자(진도군립예술단 단원) [우리춤연구회] - 이희완(경기 남창 명인, 경기 재인청 마지막 세습 예인) - 김명수(경기 남창 명인, 고 김옥선 명창의 생질) - 이명식(이희완 명창의 문하생) - 정주미(우리춤연구회 대표, 경기 재인청 전승무용 전승자) - 송은미, 김인순, 전덕수, 김민영(우리춤연구회 수석회원) - 권미영(인천서곳예술제 예술감독) - 이미경(인천서곳예술제 무용분과장) - 정호남(소운교사무용단 단장) - 정현숙(소운교사무용단 단원) - 이종진(우리춤연구회 거창지부장) - 천현영(우리춤연구회 러시아지부장) - 조간난(과천불림무용단 단장) - 성수희(과천불림무용단 총무) - 서혜승(과천어린이무용단 총무) - 한빨리나(우리춤연구회 러시아지부 소운무용단 수석단원) [춤 담당 악사] - 타악 : 강민수(진도다시래기 이수자) - 타악 : 김태영(진도씻김굿 전수조교) - 피리ㆍ태평소 : 정석진(남해안별신굿 이수자) - 아쟁 : 조성재, 대금 : 정광윤(누리樂 동인) 외 2) 주요 스텝 - 해설 : 이병옥(용인대 교수, 경기도문화재 위원) - 기획 : 강영화(시인, 우리춤연구회 기획팀장) - 연출 : 최우칠(KBS 민속악단 단장) - 예술감독 : 김오현(진도군립예술단 연출단장), 정주미(우리춤연구회 대표) - 무대감독 : 박인춘(수지여성회관 무대감독) - 사업ㆍ홍보 : 한신자(우리춤연구회 사업본부장) - 진행 : 김순자(우리춤연구회 진행팀장), 정은수 - 의상 : 안희주(안희주 의상실 대표) - 분장 : 박서정(우리춤연구회 분장담당) - 사진 : 정범태(풍류방 대표), 이종길(글로리아사진관 대표) - 영상 : 천승요(아카이브천 대표), CNC TV방송 - 행정ㆍ기록 : 조숙희(진도군립예술단 사무국장). 성수희(우리춤연구회 행정팀장) 외 2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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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마치뎐 - 해어화 장금도 11 월 16 일일 시 : 2008 년 11 월 16 일 (일) 17 시 장 소 : 국립국악원 예악당 문 의 : 02-3216-1185 노름마치뎐 - 해어화 장금도 노름마치뎐 - '노름마치'란 '놀다'의 놀음(노름)과 '마치다'의 마침(마치)이 결합된 말로 최고의 명인을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입니다. 축제의 땅에서 올리는 '노름마치뎐'은 이 땅의 최고예인의 삶과 예술을 무대위에 기록하는 공연으로 책속의 춤꾼들이 책 밖에서 춤추는 반열의 판입니다. ▶ 공연내용 및 출연 1. 승무 | 진유림 2. 부포춤 | 유순자 3. 한량무 | 임이조 4. 태평무 | 이명자 5. 도살풀이춤 | 김운선 6. 민살풀이춤 | 장금도 7. 채상소고춤 | 김운태 시나위 연주 장고 : 김청만 / 아쟁 : 이태백 /가야금 : 정경옥 / 대금 : 원장현 / 피리 : 한세현, 정석진 해금 : 원나경 / 타악 : 유인상, 류정호, 이동헌, 박종훈 스탭 기획·연출 : 진옥섭 조연출 : 고명진 / 홍보·진행 : 윤혜성 / 음악감독 : 김청만 사진 : 정범태, 최영모, 김 기, 박상윤 / 의상 : 신근철 / 디자인 : ㈜생각의나무_한은영, 디자인필_이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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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미 춤추러 간다 8 월 29 일일 시 : 2008 년 8 월 29 일 (금) 19 시 30 분 장 소 : 국립국악원 우면당 문 의 : 010-8747-3120 ▶ 공연내용 및 출연 해 설 :이병옥 (용인대학교 교수 · 경기도 문화재 위원) 1. 태평무 : 정주미 경기 재인청의 대표적인 춤의 하나로 한영숙, 강선영류의 태평무에 비해 그저 무관복(武官服)을 춤옷으로 쓰고 있어 비교적 소박하나 춤사위가 대체적으로 크고 분명하고 양반들 사이에 행해지던 허튼춤의 골격을 닮아 기본적으로는 격식을 중요시하는 춤이다. 그러나 다양한 춤사위와 특히 앞선 장단에서 다른 장단으로 넘어가는 부분의 매듭을 화려하게 몰아서 추어 넘기는 특징으로 역동성도 갖추고 있어 항일시기에는 공연 때마다 인기를 누리는, 이른바 민중의 정서에 밀착된 춤으로 널리 사랑을 받았던 춤이다. 2. 진쇠춤 : 이종진, 김인순 이 춤은 시각적으로 황동빛의 꽹과리와 형형색색의 술을 길게 드린 꽹과리채, 정갈하면서도 화려한 무복과 다양한 춤사위로 엮어 내는 선과 색조의 조화가 일품이다. 이 춤이 추어지는 내내 흐르는 선의 아름다움은 재인청 계열의 수많은 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으로 우리 민족의 미의식이 선에서 비롯되고 선으로 귀결된다는 견해에 들어맞는 춤이라 할 것이다. 이 춤이 빚어내는 선의 황홀경은 춤꾼은 물론 관객과 함께 몰아지경으로 빠져드는, 곧 예술을 통한 엑스터시를 공유할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하다. 3. 검무 : 정주미, 권미영, 송은미, 이미경 진주 검무는 우리나라 전통 검무로 인정을 받아 그 법통을 이어가고 있는데 진주 본고장은 물론, 국립국악원 무용의 전통 레퍼토리 중의 하나로 공연된 춤이다. 1966년 무형문화재 지정 자료로 진주검무를 조사할 때 생존해 있었던 최순이는 고종 당시 진주교방의 자제였으며 그의 직계 제자 이윤례, 김자진, 서상달, 김옥주, 최예분 등도 지정 당시에 생존해 있어서 면면이 몸에서 몸으로 직접 전해진 정확한 계보가 있어 그 가치가 높다. 본회가 추는 오늘의 검무는 진주 검무를 바탕으로 하고 고 송화영 춤꾼에 의해 한층 더 다듬어 진 것을 그간의 수많은 춤꾼과 춤 집단에 의해 추어진 이력을 따라 조금씩 다른 검무의 장점들 모아 재! 구성한 것이다. 4. 입춤 : 권영심, 이정원, 송은미 일반적으로 전문 춤꾼들의 춤은 나름의 세계 구현을 위해 대단히 전형화 되어 있다. 널리 알려진 우리 춤으로 승무와 살풀이춤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두 춤에도 여러 유파의 춤제가 있지만, 무형문화재 이매방 선생의 것을 들여다보노라면 어쩌면 그리도 매끄러운 지, 필자는 연전에 이 춤 해설에서 서구 문예이론가의 용어를 빌어 ‘잘 빚은 항아리’라 한 바 있다. 이미 춤은 장단의 입장에서 보면 엇박에 맞추어 형상화된 어긋남의 미학이다. 철저하게 어긋남을 형상화한 까닭에 이매방 선생의 승무는 지나치게 잘 빚어 매끈하기 짝이 없는 춤이다. 이매방 선생을 찾아 승무를 익힌 정주미 회장이 “그 깊이를 떠나 맵시를 익히는 것만으로도 우리네 미학의 치장이 얼마나 화려한 가를 단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고백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승무에 비해 살풀이춤은 한 마디로 화려함을 걷어낸 단아함과 은근함의 미학이다. 단지 승무가 처음부터 일정한 격식을 염두에 두고 빚어진 것이라면, 살풀이춤은 즉흥적으로 멋을 부린 춤이 수많은 명무자들의 노력으로 예술적으로 전형화 된 춤이다. 5. 진도북춤 : 권미영, 이미경, 정주미 ‘진도북놀이’에서 춤을 강조한 작품으로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 해 농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풍요를 비는 농부들의 땅고르기(地神 밟기) 의식이 극적 요소가 갖추어지면서 집단놀이의 형태로 발전한 것이라 한다. 장단으로 막오름장단에서 막음장단에 이르기까지 자진모리, 굿거리, 오방진, 휘모리 장단이 흐드러지게 어울려 신명 넘치는 춤판을 만들어낸다. 6. 경기소리-亡歌(망가) : 이희완, 김명수(받는 소리) 망가는 상여 소리이다. 상여 소리이나 망자의 일대기를 엮어 부른다는 점에서 여느 상여 소리와는 다르다. 곧 서사적이다. 상여 소리를 서사적으로 풀어 부르는 소리꾼으로 우리는 이희완 선생 외에는 들어본 적이 없다. 경기 남부 일원에서 일흔을 넘긴 어르신 사이에서는 이런 망가를 들은 적이 있다 하는데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모두 이희완 선생의 이름을 올린다. 더러 다른 지방에서도 들었다 하나 역시 이희완 선생의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보아 선생의 말씀대로 망가는 경기 재인청 예인들 사이에서 전승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한 듯하다. 7. 엇중몰이신칼대신무 : 정주미 긴 대나무에 흰 창호지를 오려 대 양 끝에 술처럼 치렁치렁 매단 신칼을 양손에 들고 추는데, 양팔을 돌리고 뿌리거나 휘돌리는 맵시는 경건하기도 하고, 소복한 여인이 뜨거운 울음을 참아내는 듯 앙다문 이빨 사이로 독기를 느끼게도 하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춤이다. 마치 내림굿을 하듯 신칼로 하늘의 기운을 모으고 디딤새로는 지기(地氣)를 이끌어 올려 춤꾼의 몸에서 천지가 합일(合一)하는 신이(神異)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 춤은 바지춤(男舞) 전통을 이어온 재인청 춤에서 가장 여성스러운 춤으로 우리네 여성이 역사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눈물과 한을 어떻게 승화시켜 왔으며, 이를 어떻게 예술의 형식에 담아내었던가를 보여준다. 이 춤은 엇중몰이신칼대신무는 한과 그 풀이의 미학이다. ▶ 도와주신 분들 제자ㆍ휘호 : 송정희 / 해설 : 이병옥 / 무대감독 : 박인춘 / 사진 : 정범태 / 동영상 : 천승요 / 분장 : 박옥선 - 연주자분들 장고 · 꽹과리 : 김오현 / 구음 : 강송대 / 북 · 징 : 장필식 / 장고 : 김창진 / 타악 : 김태영 대금 : 정광윤 / 아쟁 : 조성재 / 타악 : 정명기 / 피리 : 박상후 - 스태프 기획ㆍ글 : 강영화 / 사업 : 한신자 / 홍보 : 문미경 / 진행 : 김순자, 김경호 / 행정 : 강미숙 소품 : 서혜승 / 의상: 조간난 / 무대운영 : 김수진, 성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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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문화의 달’기념식 전주에서2005 문화의달’기념식이 지난 15일 오후 3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연지홀에서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김완주 전주시장, 문화훈장 서훈자·예술상 수상자, 문화예술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기념식은 전주시립국악관현악단의 식전연주와 김명곤 문화의 달 행사추진위원장의 개회선언·대취타대 합주로 막을 열었다. 이날 제주를 차기 개최지로 발표한 김완주 전주시장은 환영사를 통해 “63만 전주 시민들은 앞으로 지난 5년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전주가 최고의 전통문화중심도시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뒤이어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대한민국문화예술상 시상, 문화훈장 서훈, 전북도립국악원 무용단의 축하공연 ‘겨울꽃’ 등이 진행됐다. 이날 기념식에는 국악신문사 사진부문 고문으로 자문을 해주시는 사진작가 정범태 선생을 비롯해 판소리 명창 신영희, 광주시립국극단장 홍성덕 씨 등 많은 문화계 인사들이 훈장 서훈자·예술상 수상자로 참석했다. 정동채 문화관광부장관은 축사를 통해 “지역의 전통문화는 우리 문화의 뿌리이자 미래를 열어갈 핵심동력이다. 이런 관점에서 올 문화의 달 행사가 전주에서 열린 것은 큰 의미가 있다”며 “따라서 정부는 올 연말까지 기본계획이 완성되면 오랫 동안 전통문화중심도시를 추진해 온 전주가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중심도시가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혀 많은 박수를 받았다. 한편 김완주 전주시장은 지난 14일 전주 경기전 특설무대에서 ‘무형문화재의 날’을 선포하고 매년 정기적으로 무형문화재의 날 행사를 개최하는 방안을 문화재청과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수상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문화훈장(25명) △화관문화훈장 정범태(사진가) 신영희(국악인) 홍성덕(국악인) 정광태(가수) 남선우(성남문화원장) 조규돈(강릉문화원 사무국장) △옥관문화훈장 조남식(전국문화원연합회 전남지회장) 김태원(전 영천문화원장) 고 오윤(판화가) 권창륜(서예가) 김규원(무용인·예명 김성일) △보관문화훈장 이중한(언론인) 김병모(한양대 교수) 이봉순(한국사회과학도서관장) 이복형(중남미박물관장) 고 임종국(문학평론가) 황용엽(서양화가) 고 윤용하(작곡가) 안성기(영화배우) 김남진(가수·예명 남진) 고 헬렌 포스터 스노우(‘아리랑’저자·필명 님 웨일스) △은관문화훈장 김성구(승려·법명 월운) 전숙희(수필가) 김충실(무용인·예명 김백봉) 故 고우영(만화가). ◇대한민국문화예술상(6명) △문화 조상호(나남출판 대표) △문학 천양희(시인 )△미술 최의순(서울대 명예교수) △음악 서울모테트합창단(지휘 박치용) △연극·무용 국립발레단(예술감독 박인자) △대중예술 이현세(만화가·한국만화가협회 회장).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8명) △문학 김영수(소설가·필명 김연수) △미술 조병철(현대미술가·예명 조습) △음악 한명원(오페라가수) △전통예술 이용탁(국립국악관현악단 부지휘자) △연극 이영호(연출가·예명 이해제) △무용 황재원(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영화 배용준(영화배우) △대중예술 나윤선(재즈보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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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한국 춤 사진 촬영대회 "내용 일부 변경 "제1회 한국 춤 사진 촬영대회 8월 9일 ~ 10일 『춤 사진 촬영대회』 "가장한국적인 것이 세계화이다" 라는 말이 실감되는 오늘날, 본 행사를 통해 우리 민속악의 우수함을 사진예술작품으로 재 창조하여 세계에 알리고, 보다 많은 문화자원을 축적 하는데 사진작가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1. 일 시 : 2005년 8월 9일 (화) ~ 10 (수) 14시 ~ 21시 * 우천불구 2. 장 소 : 국립국악원 예악당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700.) 3. 주 최 : 국악신문사 4. 주 관 : (주)국악엔터테이먼트 5. 후 원 : 서울시, 문화재청, 문예진흥원, 중부일보사, (사)한국예총, (사)한국국악협회, (사)한국사진작가협회 6. 참가자격 : 전국 사진 애호가 및 국악동호인 7. 참 가 금 : 각 부문 50,000원 <석식, 정기공연, 입장권 2매(타인양도가능)제공> * 양일간 중복참가가능 제일은행 김호규 128 - 20 - 016969 8. 참가부문 : 첫째 날 -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지정종목 공연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도살풀이춤, 바라춤, 농악 등 9개 프로그램 둘째 날 - 국가중요무형문화재 비지정종목 공연 북춤, 한량무, 소고춤, 입춤, 장고춤, 나비춤, 진쇠춤, 교방춤 등 13개 프로그램 * 출연진 - 각부문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및 최고의 명무 출연 9. 출품내역 ▶ 작품내용 - 각부문 1, 2회 공연중 촬영한 컬러 및 흑백작품(합성사진 불가) ▶ 작품규격 - 컬러 및 흑백 11"×14" (장정불요) 10. 접 수 처 : 서울시 성북구 동선동 3가 28. 2층 국악신문사 02-922-1411 e-mail - jy0989@kukak21.com 신청서 보내주세요. 11. 출품요령 : 작품 뒷면에 화제, 주소(우편번호), 성명, 전화번호(핸드폰) 모두 기재 요망(정확히) 12. 접수마감 : 2005년 9월 1일 (목) 당일 소인까지 유효 13. 심사일자 : 2005년 9월 9일 (금) 공개심사 (13시 예정) 14. 심사위원 : 조직위원장 - 정범태 (사)한국사진작가협회 고문 집행위원장 - 임익재 (사)한국사진작가 창작분과 부위원장 집행위원 - 이병옥 (용인대 무용과 교수) 김승국 (문화재 전문위원) 양종승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임춘섭 (www.dijoo.com 대표) 김호규 (www.kukak21.com, 국악신문사 대표) 심사발표 : 2005년 9월 10일(토)예정 국악신문(www.kukak21.com), 뒤주(www.dijoo.com) 15. 전시기간 : 2005년 10월 중 전시 16. 시상일시 : 2005년 10월 중 전시오픈 행사 중 17. 시상내역 구 분 상 훈 상 금 각 부문 대상 1점 국립국악원장상 각 상금 50만원 최우수상 부문별 1점 (사) 예총회장상 각 상금 30만원 우 수 상 부문별 1점 (사)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상 각 상금 20만원 장 려 상 부문별 1점 중앙일보사장상 각 상금 10만원 입 선 100점 내외 국악신문사장상 * 18. 기타사항 ▶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의 무대촬영인 관계로 사진촬영의 편의를 위해 선착순 200명에한해 접수를 마감합니다. (당일 혼란을 피하기 위해 추첨으로 좌석배치) ▶ 본 대회장이신 정범태님으로부터 시작전 무대촬영기법에 대한 강의 있을예정 ▶ 입상작의 저작권은 당사에 귀속됨. ○공연 (행사) 내용 2005년 8월 9일(화) ▶국가·지방 중요무형문화재 지정 춤 Focus 순 서 내 용 소 요 시 간 정명숙 살풀이 춤 7분 최윤희 도살풀이춤 7분 이명자 태평무 7분 김복련 경기승무 7분 일초스님 바라춤 7분 최 선 호남 살풀이춤 7분 유청자 홍애수건춤 7분 황해경 김병섭 류 설장고 7분 이혜선 부포놀이 7분 최창덕 이매방 류 승무 7분 2005년 8월 10일(수) ▶국가·지방 중요무형문화재 비지정 춤 Focus 순 서 내 용 소 요 시 간 채향순 장고춤 7분 이경화 소고춤 7분 임수정 북 춤 7분 정인삼 진쇠 춤 7분 이정희 김숙자 류 입춤 7분 이정순 나비춤 7분 임이조 한량무 7분 박경랑 영남 교방춤 7분 정고을 장검무 7분 차희정 한삼춤 8명 5분 이상희 해검무 4명 5분 전희자 한양 굿거리춤 8명 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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