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창극, 사물놀이 등, '근현대 무형유산', 문화재청 조사 실시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근현대에 형성된 무형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전하고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올해 '근현대 무형유산 제도'의 도입을 추진할 예정이다. 근현대 무형유산은 형성된 지 50년 이상이 지난 것으로 형성과정에서 근현대적인 가치와 양식 등이 반영되었거나 획기적 전환이 이루어진 무형유산을 지칭한다.무형유산의 역사성을 중시하는 지금의 무형유산 제도 하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형성이 되었거나 복원된 무형유산은 그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기 어려운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2003)'을 계기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무형유산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는 등 근현대 무형유산에 대해서도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이에 문화재청은 가치 있는 비지정 근현대 무형유산을 연구·전승하기 위해 ‘미래 무형유산 발굴육성’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으며, 예를 들면 18세기 말에 행해진 정조의 융릉행차를 축제로 재현한 ‘정조대왕능행차’, 천주교 신자들의 상장례 의례인 ‘당진 합덕 천주교 연도’ 등을 미래 무형유산으로 선정해 육성해오고 있다. 2022년에는 ‘근현대 무형유산 보호 기반 마련 연구 용역’을 수행하여 근현대 무형유산의 개념을 정립하고, 관련 제도개선안과 기초목록 등을 마련한 바 있다.올해에는 근현대 무형유산을 제도권 안에서 보존·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근거, 대상 및 절차 등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심화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창극’, ‘사물놀이’ 등 근현대적인 가치와 양식이 반영되어 새롭게 생성된 무형유산을 대상으로 폭넓게 조사를 실시하고, 관계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근현대 무형유산에 대한 새로운 전망(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다. 문화재청은 "앞으로 과거와 미래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근현대 무형유산의 가치와 위상을 정립하여, 올바르게 향유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
고성오광대 '겨울 탈놀이 배움터' 운영(사)국가무형문화재 고성오광대보존회(대표 전광열)가 지난 5일 시작한 '2024 고성오광대 겨울 탈놀이 배움터'가 인기다.탈놀이 배움터는 오는 2월 3일까지 4주 동안 진행한다. 2024년은 고성오광대가 국가지정문화재(1964년 12월 24일) 지정된 60주년이 되는 해다.배움터 프로그램은 고성오광대의 기본무ㆍ개인무와 고성오광대 탈놀이 반주로 쓰이는 악기 장단을 기본으로 하며, 의상 특강을 통해 의상과 탈의 용어와 착용법을 배울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심폐소생술 교육과 고성 대표 특산물인 가리비를 시식하는 프로그램, 참가자 공연 프로그램도 마련한다.겨울 탈놀이 배움터는 현재까지 약 5만 명 이상의 전수생이 참가했다.올해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희과, 서울예술대학교 한국음악과, 세한대학교 전통연희과, 경주대학교 한국음악과, 국립전통예술중ㆍ고등학교 예술전공 학생들과 고려대, 중앙대, 성신여대, 서울여대 등 전국 각지의 대학생, 일반인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또한, 푸른숲발도르프 등 대안학교에서 많은 청소년이 참가한다. 현재까지 겨울 탈놀이 배움터 1기가 진행됐고, 고성군과 (사)오광대보존회에서는 앞으로 3주 동안 배움을 위해 고성을 찾는 참가자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할 계획이다.아울러 고성오광대보존회에서는 고성군민에게 지역의 무형문화재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민의 관심을 높이고자 교육비를 무료로 진행한다.고성오광대는 2022년 전통적 공연예술과 무형유산의 상징을 인정받아 '한국의 탈춤'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
‘국악을 국민속으로’ 사업, 지역 공연장 찾는다국립국악원은 '국악을 국민속으로' 사업의 일환으로 국립국악원 우수 작품을 무대에 올릴 공연장을 오는 1월 15일(월)부터 26일(금)까지 모집한다. 2009년 처음 실시한 '국악을 국민속으로'는 균형적 문화 발전과 지역 간 문화 격차 해소를 위해 전국 문화 소외 지역 등을 국립국악원 연주단이 직접 찾아가 공연을 개최하던 사업으로,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올해 우수작품 지역 순회공연을 위해 다시 부활했다. ‘국악을 국민속으로’를 통해 지역을 찾아갈 작품은 그동안 국립국악원 연주단의 정기공연과 기획 공연 등으로 선보인 작품 중 공연 평가단의 호평과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품들로 엄선했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필운대 풍류’, 무용단의 ‘교방정재’, ‘태평이여 오라’, 민속악단의 ‘경셩유행가-판을 나온 소리’, ‘왔구나 왔어! 3인의 배뱅이’, 창작악단의 ‘국악관현악-축제’, ‘국악실내악-환상기행’, 그리고 종합작품으로 ‘세계가 인정한 우리 음악과 춤’(유네스코 등재종목), ’한국의 멋과 신명‘ 등 9개의 대표작품이 지역 공연장을 찾아간다. 국립국악원 및 소속원 소재(남원, 진도, 부산) 지역의 공연장은 신청할 수 없다.
-
올해 8천 100여 명의 관람객이 무형유산 공연 찾았다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안형순)은 개원 10주년을 맞아 올 한 해, ‘명인오마주’와 ‘이수자뎐’ 등 상설공연 12회와 ‘전통연희 판놀음’과 송년 공연 등 기획공연 16회, 인류무형유산인 탱고 초청공연과 K-무형유산 페스티벌 등 8회의 초청·특별·협업 공연 등 총 36회 공연, 8,171명의 관람객이 무형유산 공연을 즐긴 것으로 집계했다. 2023년 상설공연(전통예능의 품격, 이수자뎐, 명인 오마주) 12회- 1,640명, 기획공연(전통연희 판놀음, 개막 및 송연공연, 너나들이) 16회- 3.621명, 인류무형유산 초청공연 3회(탱고)- 944명, K-무형유산페스티벌(생각하는 손) 3회- 1,760명, 협업공연 2회- 206명이다. 또한, 자체 설문조사 결과 올해 무형유산공연 관람객의 종합만족도는 93.0점으로, 세부적으로는 공연 콘텐츠와 관람 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특히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주목할 만한 공연으로는 지난 9월 26일에 한독 수교 140주년을 맞아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공연으로 국가무형유산 ‘사기장’과 ‘매듭장’의 실제작업을 현대무용가들과 함께 공연화한 <생각하는 손- 흙과 실의 춤>을 선보여 861명의 관람객을 모았으며, 베를린 현지의 예술평론가들에게 ‘예술과 공예의 경계’, ‘한국의 장인정신’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한국의 무형유산 공연에 대한 큰 관심을 이끌어냈다. 지난 10월 13일부터 14일에는 국립무형유산원 얼쑤마루 대공연장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의 가치 확산을 위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초청공연’의 일환으로 '탱고(Tango)' 초청공연 '탱고, 시간을 만나다'가 열려 총 3회에 걸쳐 944명의 관람객에게 남미의 정열적인 춤과 음악을 즐기는 특별한 기회를 제공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탱고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강연과 실제 무용수들에게 탱고를 배워볼 수 있는 연수회도 부대행사로 진행됐으며, 명실상부 살아있는 인류무형유산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러한 공연들 외에, 지난 9월 1일부터 9월 10일까지 「2023 무형유산축전」이 열려 무형유산 보유자들의 초청 및 합동공연과 작품전,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 외벽 영상(미디어 파사드), 학술대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무형유산축제의 새로운 의미를 밝혔으며, 국가무형유산 보유자 등 전승자가 다양한 전시와 공연에 참여하여 무형유산의 아름다움을 선보인 동시에, 관람객 등 13,925명이 무형유산축전에 참여하여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무형유산 공연을 지속적으로 선보여 국내외 무형유산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우리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 이만유 위원장, "실제적 아리랑고개는 문경새재"인류무형문화유산 '문경새재아리랑'을 보급, 전승하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위원장 이만유)에서는 문경시의 지원을 받아 '아리랑도시 문경'의 정체성과 위상 확립 및 '문경새재아리랑'의 저변 확대와 대중화에 기여하기 위해 '2021 찾아가는 아리랑학교'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지난 코로나 기간에서는 방역상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방역지침을 지키며 문경을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문경새재아리랑 알리기와 아직 문경새재아리랑을 제대로 알고 부르지 못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아리랑학교'를 시행해 오고 있다. 문경새재아리랑이 근대 아리랑의 시원이라는 사실과 아리랑사에서의 위상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전승, 보급하지 못하였고 정선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에 비교해 전 국민은 물론 시민들에게도 인지도가 낮은 상황이다. 특히 지난 2020년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가 만들어(작사, 작곡) 발표한 ‘코로나아리랑’을 함께 교육하고 불러온 아리랑으로써 코로나19의 방역을 계도하고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게 노력했다는 점은 주목해야 한다. Q: 지난 해를 회고하신다면? A: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가 2017년 창립된 이후 꾸준히 참여하고 추진해 온 ‘찾아가는 아리랑학교’를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지 1위 ‘문경새재' 등 유명 관광지에서 개최하여 총 5회에 걸쳐 921명이 함께 전통 춤사위와 함께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참석자들은 단순 관광객을 넘어 ‘문경새재아리랑’을 전파 확산하는 전도사이면서 아리랑홍보대사로서 역할을 하게 한 것입니다. 특히 지난해 세 번째 ‘찾아가는 아리랑학교’ 프로그램을 사할린동포와 함께 한 것입니다. 사할린 귀국 동포 100여 명이 새 둥지를 틀어 살고 계시는 경기도 양주시 율정마을을 찾아가 디아스포라(이산)의 아픔을 아리랑으로 풀어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 연말에 (주)국악신문이 주관하여 추진한 ‘사할린 동포 청소년 장학금 지원사업’에 우리가 작지만 100만 원을 후원하여 아도위 42명 모두 뜨거운 동포애를 나눈 기억입니다. 사할린에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 중 68 퍼센트가 경상도 사람이라는 것을 듣고 너무나 가슴이 아펐습니다. 처음 만나서 손잡고 아리랑을 부르면서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아리랑으로 70년 동안 겪으신 이산의 아픔이 치유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날 함께한 행사가 사할린 새고려신문에 기사가 2번이나 나간 것을 받아 보고 진정한 동포애를 느꼈습니다. Q: 시민위원회의 활동 목표는? A: 궁극적인 목적은 같지만. 기존하는 각 지역의 ‘아리랑보존회’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지닌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는 아리랑의 주인이며, 아리랑을 향유하는 주체(민초, 백성, 국민)인 순수 민간인들로 구성된 국내 유일 자발적 전승단체입니다. ‘문경새재아리랑’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고, 많은 아리랑에 영향을 주고 여러 아리랑을 파생시켰으면서도 정선, 진도, 밀양 등 유명 아리랑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2012. 12. 05.),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9호 지정(2015. 09. 22.),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문경, 세상의 모든 아리랑을 품다”라는 주제로 ‘아리랑 도시 문경’을 선포함(2015. 12. 13.)에 이르러게 됨에 이에 호응하여 ‘아리랑도시문경시민위원회’(2017. 06. 29)를 창립하여 아리랑에 대한 조사, 연구, 발굴, 보존, 전승, 보급에 역점을 두고 교육과 공연, 아리랑 관련 콘텐츠 개발, 학술발표회 등에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시민위원회의 활동 목표는 모든 아리랑을 품으면서 ‘근대 아리랑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문경새재아리랑’을 대한민국 5천만 국민이 모두 알고 즐겨 부를 수 있도록 하며, 아리랑고개가 우리 민족의 심성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경새재’가 ‘아리랑고개’임을 인식하게 하여 ‘아리랑의 성지, 문경새재’가 될 때까지 진력할 것이며 그 상징으로 꺼지지 않는 ‘아리랑의 불꽃’이 영원히 타오르도록 할 것입니다. Q: 문경시 보호문화유산 문경새재아리랑 제정 이후의 변화와 기대는? A: 2022년 ‘문경새재아리랑(송옥자)’이 ‘문경시보호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아리랑도시 문경’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고 환영합니다. 아직은 보호문화유산 지정 이전이나 이후의 변화는 희박합니다. 한가지 바램은 전수자, 이수자 등은 문경지역에 뿌리를 둔 문경지역 정서를 지닌 사람이 선정되어 토속민요의 전통성을 이어갔으면 합니다. Q: 문경새재아리랑축제의 2년 연속 휴면 상태에 대해? 타개책은 무엇인가요? A: 우선 선결과제로 ‘대동, 상생, 저항’이라는 아리랑 3대정신을 망각하고 아리랑이란 이름 앞에 아리랑을 욕되게 하고 아리랑 관련인들의 상호 화합을 저해하고 분쟁과 편 가르기를 일삼는 사람이 아리랑을 주무르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또 내외부 인사들이 그런 류의 사람과 뇌동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며 지역 내 아리랑 관련인 모두 하나 되길 기원해 봅니다. 문경시는 2015년 ‘아리랑도시 문경’을 선포하는 등 적극적인 사업을 추진하여 다소 성과를 내었지만, 아직도 관에서는 제한적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아도위는 문경시 일원 중 유명 관광지, 휴식처 등 시민,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서 문경새새아리랑 이론 교육과 노래 교습, 다듬이 체험 등으로 누구나 직접 참여하고 부를 수 있는 마당을 펼쳐 문경새재아리랑을 보급하고 있다. ‘문경새재아리랑축제’가 2년 연속 개최되지 못함의 원인과 대책은 이렇습니다. 첫째, 내분, 편 가르기, 내 아니면 안 된다는 잘못된 우월 의식, 분쟁 조성자의 망동입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아리랑 관련인들의‘대동, 상생, 저항’이란 아리랑 정신의 회복과 의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둘째, 관련 기관과 리더가 아리랑에 대한 가치와 인식의 부족함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또 문화예술 분야의 장르 편향이 아주 심합니다. 예를 들면 축제의 공간에서 트롯트에 치중하고 아리랑은 소홀히 하는 것이지요. 이제 아리랑의 가치 회복과 리더와 관련자들이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예산의 편중 지양과 아리랑축제의 쥐꼬리 예산을 해소해야 합니다. 셋째, 아리랑축제 주관 단체를 한 곳에 고정하여 안일, 나태로 변화를 추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정체성과 전통을 지키면서 시대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이 미흡한 것도 문제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축제 주관단체를 공모제로 전환하고 예산하마인 셀럽형 축제를 지양하고, 주민이 주체가 되는 축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내 공연 위주의 축제에서 야외 공연(실제적 아리랑고개=문경새재)으로 전환해야 하고, 지역 내 모든 아리랑 단체 및 전문가가 모인 ‘아리랑축제추진위원회’를 구성해야 합니다. Q: 귀 단체의 새해 역점 사업은? A: 변화를 추구하면서 ‘찾아가는 아리랑학교’를 지속해서 추진할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울릉도와 독도를 찾아가서 ‘독도는 한국 땅’이다. ‘근대 아리랑 시원'은 문경새재아리랑이다. ’문경새재는 실제적 아리랑고개’란 깃발 아래 '제3회 문경새재아리랑 공연과 문경아리랑 알리기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독도를 가는 여정에서 거리에서 '문경새재아리랑 버스킹'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전국 지역 아리랑답사, 전국아리랑경창대회 참가, 제4회사할린아리랑축제 참가는 계속 이어지는 아도위의 여정입니다. 아도위 자체 사업의 일환으로 문경새재아리랑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리기 위해 ‘관광객과 함께하는 '아리랑 버스킹' 공연을 관광 시즌에 문경새재에서 열 계획입니다. 공동체 결속에 기여하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을 통해 회원들의 친목 도모와 역량 강화를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Q: 기타 하시고 싶은 말씀은? A: 우리 아도위는 ’문경새재는 실제적 아리랑고개’라는 역사적 사실과 명실공히 ‘아리랑 도시 문경’이란 이름이 빛나기를 바랄뿐입니다.
-
진도군, '대한민국 문화도시' 선정전남 진도군은 2일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한민국 문화도시'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문화도시는 지역 고유 문화자원을 활용해 특색있는 도시브랜드를 창출하고 도시의 경제적 발전과 지역주민의 문화향유 확대를 선도할 지자체를 지정하는 사업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도시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역중심 문화균형발전을 선도할 문화도시 조성계획 승인 대상지로 진도군 등 13개 지자체를 선정했다. 조성계획을 승인받은 지자체는 1년간의 예비사업을 추진하고 문체부는 문화도시심의위원회의 예비사업 추진실적 심사를 거쳐 최종 '대한민국 문화도시'를 지정한다. 최종 선정 지자체에는 2027년까지 최대 200억원(국비 100억원)씩의 사업비를 투입한다. 진도군은 진도아리랑, 전통무용 등을 기반으로 하는 '민속문화 마스터 클래스' 특성화(앵커) 사업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민속문화도시로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받았다. 진도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2종과 무형문화재 12종, 예능보유자 15명, 향토문화유산 36종을 보유한 국내 유일 민속문화예술특구이다. 김희수 군수는 "주민 참여와 소통이 함께 하는 문화도시를 건설해 삶이 윤택해지고 지역발전을 끌어낼 수 있는 진도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제주 김영철 심방,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수상제주 김영철 심방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김영철 심방은 국립민속박물관 사업에 적극 협조하며 민속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을 받았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김영철 심방 도움으로 제주 기메를 심층 조사하며 보고서 ‘종이예술로 빛나는 제주굿의 세계’를 12월 29일 출간한 바 있다.김영철 심방은 ▲백남준과 제주, 굿판에서 만나다(2023) ▲대한민국예술축전 ‘海’ 공동연출 우수상(2022) ▲대한민국문화재대전(2021) ▲제주4.3 위령굿 ▲일본군위안부 위령굿 등 전시와 공연, 굿을 포함해 많은 활동을 해왔다. 미국, 일본, 중국, 대만, 필리핀 등을 찾아 제주의 굿과 해녀문화를 알리는데도 일조했다.김영철 심방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국가무형문화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와흘본향당, 제주돌문화공원 설문대할망당, 조천영등풍어제, 함덕영등풍어제를 집전할 뿐만 아니라 해마다 기메 체험전도 열고 있다. 기메란 굿을 할 때 제상 주변에 신이나 저승사자, 지전 등의 의미로 걸어두는 갖가지 모양의 종이나 천을 말한다.
-
반크, 역사 속 한류스타 영어엽서 4만8000장 제작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가 한국 역사와 문화유산 소개하는 영어 엽서를 제작해 배포했다반크는 "전세계 한류 열풍을 통해 높아진 한국에 대한 관심을 대중문화를 넘어 한국의 찬란한 역사와 문화유산으로 확대시켜나가는 글로벌 활동을 추진한다"며 "직지를 포함한 한국 문화유산을 알리는 ‘역사 속 한류스타’ 영어 엽서 4000세트(1세트 내 12장, 총 4만 8000장)를 제작, 전 세계에 배포한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역사 속 한류스타' 엽서는 반크가 전 세계에 소개하고 싶은 대한민국 5000년 역사 속 각 시대별 한류스타를 선정해 제작했다. 직지, 고려청자, 한복, 한지, 택견, 태권도, 김치, 인삼, 3.1운동, 울릉도와 독도, 탈춤, 재외동포 등 반크가 선정한 ‘역사 속 한류스타’ 엽서 12개를 이어 붙이면 '한류스타'라는 글씨가 완성된다. 특히 반크는 우리 역사 속 한류스타로 직지를 강조했다.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직지'는 1377년 고려시대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됐다. 지난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며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2004년에는 유네스코 직지상을 제정하여 인류 기록문화의 보존과 접근에 공헌한 개인이나 단체를 시상하고 있다. 직지의 고장 청주시에서 기록유산 분야의 첫 국제기구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가 지난 11월 공식 출범했다.반크는 "이번 ‘역사 속 한류스타’ 엽서를 한국문화유산 홍보대사, 사이버 외교관들에게 배포해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하고, 전 세계 한인 청소년과 한국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배포해 수업시간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문화재→국가유산 명칭 변경2024년부터 통합문화이용권 1인당 지원금이 연간 11만원에서 13만원으로 오른다. 31일 정부가 발간한 '2024년부터 이렇게 달라집니다' 책자에 따르면 내년 2월1일부터 통합문화이용권 연간 지원금이 13만원(18% 증가)으로 늘어난다. 2017년 이후 가장 큰 인상폭이다.통합문화이용권은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258만명을 대상으로 문화예술·여행·체육활동에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읍·면·동 주민센터 또는 홈페이지, 모바일앱 등으로 발급 신청할 수 있고 문화예술·관광·체육 활동과 관련된 전국의 2만 9000여개의 온·오프라인 가맹점에서 이용할 수 있다.내년 5월17일부터는 '문화재' 명칭이 '국가유산'으로 변경된다. 지난 5월 제정된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이뤄지는 조치다. 재화적 성격이 강한 '문화재' 용어가 확장된 문화재 관련 정책범위를 포용하는데 한계가 있고 유네스코 유산 분류체계와 상이해 과거·현재·미래가치를 포함하는 '국가유산'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전면 교체된다.정부는 기존 문화재 분류체계를 '문화유산·자연유산·무형유산'으로 변경하고 통칭 '국가유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예정이다. 내년 3월22일부터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공연관람권 부정판매 등에 대한 법적 제재가 가해진다.여행업 등록기준도 내년부터 간소화된다. 2월9일부터 법인이 여행업을 등록하려는 경우 자본금 증빙을 위한 대차대조표 제출이 불필요해지고 납입자본금에 대한 증빙서류(법인등기부등본 등)만으로도 가능하다.게임 분야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정보공개가 3월22일부터 의무화된다.확률정보 미표시, 거짓 확률 표시 등으로부터 게임이용자를 보호하고 투명한 확률 공개를 통한 공정한 게임 이용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조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확률형 아이템을 제공하는 모든 게임물은 해당 게임물과 홈페이지, 광고·선전물마다 그 종류와 확률정보 등을 공개하도록 했다.
-
[축사] 제1회울릉도전국영창대회, "울릉도아리랑의 전형성" 획득‘경창대회’와 전형성 전세계 41개 아리랑전승단체의 존재는 지남 12월 5일 강원도 정선에 건립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 등재 10주년 기념비’ 기단에 명문화 됨으로써 확인이 된다. 그동안 이 아리랑 전승단체는 명예롭게도 자발적 결성체이다. 이는 명예로운 것이다. (사)울릉도아리랑보존회는 명예로운 울릉도아리랑의 자발적 전승단체이다. 비로소 울릉도아리랑은 제도적 전승 활로를 맞게 된 것이다. 이를 분명히 하는 것이 이번 제1회 울릉도아리랑 경창대회 개최이다. 경창대회는 내적으로는 전승 활성화를 꾀하는 것이고, 외부적으로는 타지 국악인들에게 존재를 알려 전국으로의 확산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1회인 만큼 다른 지역 아리랑경창대회 같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경비 등의 어려움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며 개최하는 용기가 박수를 받을 만한 것이니, 이 행사를 통해 보존회 회원들 간의 결속을 확인하고 해결능력을 점검하는 것으로 성과를 생각한다면 이 역시 박수를 받을 만한 것이다. 이제 비로소 울릉도아리랑은 문화재보호법에서 규정한 전형성을 입증받게 되었다. 울릉도아리랑이 독특한 지역성과 다양성을 입증하는 아리랑으로 평가를 받기 바란다. 첫 경창대회를 진심으로 축하한다.
-
[축사] 아리랑문화 연대, 한일문화교류 재정립 端緖로!㈜국악신문 대표 기미양입니다. 오늘 이 모임은 재한일본인 모임 ‘라일락회’가 주최하는 송년회입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아리랑’을 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우리는 2012과 14년 남북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로 아리랑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고, 동시에 중국이 자국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에 대해 중국 당국의 저의와 중국동포사회 아리랑 실상에만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그런데 일본 속의 아리랑 사정은 또 다른 차원의 아리랑문화임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습니다. 2010년 신나라레코드사 발매 ‘일본에 건너간 아리랑’ 음반 기획 과정에서 막연하게 짐작했을 뿐인데, 2000년대 들어 인터넷 검색이 가능해져서 전모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창관 선생의 조사로는 1930년대부터 현재까지 일본 음반 속에 수록된 아리랑음원 수가 200여종이나 돤다고 합니다. 이는 매우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는 충분히 진지한 대화를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2014년은 북한이 유네스코에 아리랑을 등재한 10주년이고, 2025년은 한일회담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리고 2026년은 영화‘아리랑’ 개봉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다시 아리랑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본아리랑’의 존재는 한일회담 60주년을 맞으며 관심을 갖고 접근할 필요를 갖습니다. 민족적 감정 문제가 있기 때문인데, 여기에서 새로운 교류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됩니다. 이를 근거로 새로운 한일문화교류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선 바라기로는 양국 국영방송에서 공동 기회 보도를 하고, 양국 전문가들 간의 학술대회를 펼치고, 이어 양국 교차 공연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이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리라고 봅니다. 오늘 발표자 네 분은 일본아리랑에 대한 1차적 접근자들로 너무나 적합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자리를 확대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저희 ㈜국악신문은 주목하여 다루고자 합니다. 귀한 자리를 제공해 주신 라일락회에 다시 감사 드립니다. 2023. 12. 22. ㈜국악신문 대표 기미양
-
정선아리랑제, 2024-2025 문화관광축제 선정정선아리랑문화재단은 정선아리랑제가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2025 문화관광축제'로 선정됐다고 20일 밝혔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정선아리랑의 전승·보존을 목적으로 개최한 제48회 정선아리랑제는 12개 부문 83개 프로그램이 선보이며 10만명의 관람객을 유치했다. 정선아리랑제는 앞으로 2년간 국비는 물론 홍보 마케팅, 수용 태세 등에 대해 전문 상담을 지원받는다. 정선아리랑제는 축제 콘텐츠의 차별성과 축제 조직의 운영 역량, 지역사회 기여도, 안전 관리체계 등 전문가 서면·현장평가를 비롯해 관광객 인지도와 만족도, 지역주민 지지호응도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최종수 정선아리랑문화재단 이사장은 "2024년 제49회 정선아리랑제와 2025년에 맞이할 50주년 정선아리랑제를 더욱 뜻깊고 풍성한 축제로 만들어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
‘일본아리랑’을 아십니까?‘일본아리랑’을 아십니까? ‘일본아리랑’ 40종, 1931년부터 1965년 까지 일본 속에서 제작되어 음반에 수록되어 음원이 확인 되는 아리랑 종류가 40여 종이 확인이 된다. 이를 ‘일본 속의 아리랑’ 또는 ‘일본아리랑’이란 이름으로 논하는 자리가 펼쳐진다. 그동안 남북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 중국이 자국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상황에서 이웃나라 일본인들이 듣고 부른 아리랑이 40여종에 이른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예를 든다면 1932년 소화시대 최고의 작곡가 고가마사(古賀政男) 編曲 佐藤惣之助 作詞에 淡谷のり子와 長谷川一郎(蔡奎燁)이 부른 ‘アリランの唄’ 등이다. 이런 아리랑이 1965년까지 발매된 음반에 수록된 것이 53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여가수 스가와라 스즈코(菅原 都々子)가 자신이 부른 아리랑만해도 6종(‘아리랑’, ‘아리랑 달밤’, ‘아리랑 애가’, ‘그리움은 아리랑고개 넘어’, ‘아리랑 이야기’, ‘아리랑 애가 이야기’)이나 된다. 그리고 이를 SP·LP·EP 음반을 발매하며 여기에 60여번이나 아리랑을 수록하기도 했다. 이는 매우 주목할만 한 사항이다. 그런가 하면 장르에서도 엔카, 전통성악 신나이, 째즈 형식의 아리랑도 있고, 영화, 미술, 공연 분야로도 확대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에 의해 아리랑문화를 형성시켰다. 이는 일본의 음악적 개방성에 의한 아리랑 정서 수용일 수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피압박 민족 ‘고난극복 메타포(metaphor)’로서 아리랑의 보편 가치를 수용한 것일 수도 있다. ‘일본아리랑’ 40여종의 곡명을 살피면 가장 많은 것은 아무런 수식 없이 쓴 ‘아리랑’(アリラン)이다. 1931년 첫 아리랑부터 1965년까지 12가지가 되는데, 8가지는 곡조가 ‘본조아리랑’이다. 가사도 1, 2절은 거의 본조아리랑을 수용하고 있다. 후렴도 반드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アリランアリランアラリヨ アリラン峠を越えゆく)를 썼다. 또한 3, 4절은 모두 개사한 것이다. 여기에 ‘노래’라는 의미로 쓰이는 ‘アリランの唄’(小唄, 節 포함)가 13종인데, 이 역시 거의 곡조는 본조아리랑이다. 이 경우는 1절과 후렴 전행은 같으나 2~3, 4절을 개사한 것이다. 이 같이 두 경우는 번안작품이 분명하다. 이는 언급한 바 있듯이 ‘일본아리랑’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것은 1926년 개봉된 영화‘아리랑’의 주제가임을 재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悲歌’, ‘哀歌’, ‘夜曲’, ‘新曲’이 각 1종이다. 주제(主題)가 짐작이 된다. 지명을 쓴 것은 단 두 가지만 확인된다. 만주아리랑(満州アリラン-1937)과 도쿄아리랑(東京アリラン-1959)이다. 같은 곡명은 アリラン夜曲(1935)과 아리랑 항구(アリラン波止場-1960) 이 각 2종이다. 그리고 서양 음악 리듬을 제목에 쓴 경우가 두 가지인데, 아리랑룸바(アリランルンバ-1952)와 아리랑맘보(アリランマンボ-1954)이다. 1950년대 일본의 댄스 음악의 유행상을 짐작케 한다. 장르상 주목하는 작품도 있다. ‘가요이야기(歌謡物語)’ 가 두 작품인데, ‘아리랑가수’ 스가와라 쓰즈코의 두 작품이다. 그 내용 등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핀 바 있다. 한편 ‘고개’를 쓴 것은 한 종이 있는데, ‘고개 상’(峠)을 쓴 ‘아리랑고개 (アリラン峠-1951)이다. 한자권에서는 주로 고개를 ’嶺‘을 쓰는데 일본에서는 이를 쓴 것이 확인되었다. 이외의 곡명은 다음과 같다. 아리랑의 추억(アリランの思ひ出-1933) ‘가요이야기 아리랑애가 엘레지’(歌謡物語アリラン哀歌 エレジー1951) ‘가요 아리랑이야기’(歌謡物語 アリラン物語-1952) 울지마 아리랑처녀(泣くなアリラン娘-1952) 아리랑 달밤(アリラン月夜-1953) 동경아리랑 고개 저편(憧れはアリラン峠の彼方-1954) 아리랑 자장가(アリラン子守唄-1955) 아리랑 고개의 추억(アリラン峠の思い出-1960) 이상의 곡명에서 작품의 주제를 어느정도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즉, ‘이별의 정한’ 내지는 ‘과거 회상’이 된다. 30년동안 발표된 전체 곡명 중 ‘아리랑(アリラン)’과 ‘아리랑우타(‘アリランの唄)’를 쓰는 것이 절반에 이른다. 곡조와 후렴 전행 또는 후행을 거의 공통으로 쓰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아리랑’ 주제가 또는 ‘본조아리랑’의 번안(飜案) 작품들이다. 본조아리랑의 자장력(磁場力)이 매우 큼을 알 수 있다. 이를 대상으로 4인이 모여 이에 대한 의미와 성격 등을 논의 한다. 자료를 유튜부에 정리하여 검색을 가능케 한 ‘정창관의 아리랑’ 운영자 정창관 선생, 이를 분석 해제와 번역을 한 ‘라일락회’, 가장 오랜 재한 주재 일본인 구로다 가쓰히로(黑くろ田だ 勝弘かつひろ)기자, 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이사장이 함께한다. 주최는 ‘라일락회’, ㈜국악신문이 후원한다. 22일 오후 2시, 인사동 태화빌딩 회의실에서 열린다.
-
‘아리랑’의 역사 오롯이 담긴 기록영상 공개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국가무형유산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인 ‘아리랑’의 기록영상을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누리집(www.iha.go.kr)에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한다. 국가무형유산 전승공동체 종목으로는 최초의 기록화 사례이다. 아리랑은 국가무형유산 지정(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2012년, Arirang, Lyrical folk song in the Republic of Korea)되었다. 전승공동체 종목은 특정 보유자(보유단체)를 인정하지 않는 종목 아리랑, 제다, 씨름, 해녀, 김치담그기, 제염, 온돌문화, 장담그기 등이다. ‘아리랑’은 누구나 부를 수 있는 한민족의 정서가 깃든 노래이다. 이번에 제작된 ‘아리랑’ 기록영상은 국립무형유산원이 무형유산의 기록보존과 조사·연구를 위해 1995년부터 진행 중인 기록화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으며, 국가무형유산 전승공동체 종목으로서 아리랑의 정의, 그 어원과 노래의 시작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역사 기록과 음반을 비롯하여, 지역별 유형으로 구분한 8대 주요 악곡을 포함하였다. 긴아라리, 엮음아라리, 자진아라리, 구아리랑, 긴아리랑, 본조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등이다. 특히, 전국 각지의 아리랑 전승 현장을 담기 위해 직접 아리랑 가창 등에 나선 정선·진도아리랑보존회 등 7개 단체를 비롯하여, 금광(강릉)·은지(인천) 초등학교 등 7개 기관이 관련 자료와 촬영 장소를 제공하는 등 총 200명에 달하는 인원이 이번 영상 제작에 참여하였다. 정선 30명, 밀양 58명, 진도 50명, 서울 및 외국인 54명, 관계전문가 8명이다. 이번 기록화 영상은 온 국민이 자유롭게 부를 수 있는 노래로서 아리랑의 가장 큰 특징인 다양성을 잘 살린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2023년에도 여전히 우리나라 곳곳에서 활발하게 전승되어오고 있는 아리랑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담은 소중한 자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립무형유산원은 이번 ‘아리랑’ 기록영상과 함께 올해 국가무형유산 기록화 사업으로 제작한 ‘김천농악’의 기록화 영상과 ‘불화장’ 기록도서를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누리집에 무료로 공개한다. (단, ‘불화장’ 기록도서는 12.22. 공개) 또한, ‘아리랑’과 ‘남원농악’의 기록도서를 온라인(12.25.까지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누리집에서 사전 예약 가능)과 수도권 소재의 대형 서점(12.27.부터 교보문고, 알라딘 서점, 예스24 서점, 영풍문고에서 주문 가능)을 통해 판매할 예정이다. *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누리집: https://www.iha.go.kr * 교보문고 누리집: https://www.kyobobook.co.kr * 알라딘 누리집: https://www.aladin.co.kr * 예스24 누리집: https://www.yes24.com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앞으로도 국가무형유산을 지속적으로 기록하여 관련 기초자료를 축적하고, 그 가치를 국민과 함께 누릴 수 있도록 공유할 것이다.
-
정선에 세워진 인류무형문화유산아리랑비에 부쳐일주일 전부터 강원도에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 소식을 듣고 정선 아우라지에 갈 채비를 했다. 우리는 주말에만 운행하는 아우라지 가는 정선아리랑 열차 첫 차를 타고 드디어 아우라지역에 내렸다. 작년 12월 5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0주년 기념비 제막식에 오고, 이후 건립 100일기념 공연, 그리고 오늘 왕십리아리랑보존회 회원들과 같이 왔다. 이 기념비에 세워진 이름들을 보니, 벌써 두분이 안계시다. 우리를 리더해 주신 전국아리랑공연예술연합회 회장이신 '아리랑 명인' 정은하! 그리고 상주아리랑보존회 김동숙 회장님 하얀 눈처럼 아름답게 살다가신 정은하 선생님. 그립고 그립습니다. 우리는 비를 향해 인사를 하고 아리랑을 불러 드렸다. 아라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다 아리랑의 시원설을 있는 정선 땅에 이 큰 돌을 내놓아주신 정선군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국내외 아리랑보존회, 그리고 동포들 인류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이여! 영원하리라
-
한국전통문화대, 세계유산 분야의 전문 인재 양성 나선다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대학교는 (사)이코모스(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한국위원회와 12월 14일 오후 2시 유네스코회관(서울 중구) 유네스코홀에서 우리나라의 국가유산을 비롯한 세계유산의 보존·관리와 관련 분야의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다.주요 협약 내용은 ▲ 우리나라의 국가유산을 비롯한 세계유산 보존·관리·활용 전문인력 양성 교육 협조 ▲ 이집트 문화유산 보존·관리 지원사업 자문 ▲ 유산영향평가(HIA, Heritage Impact Assessment) 등에 관한 인적교류 및 기술협력 등이다. 유산영향평가는 해당 사업의 시행이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예측·평가하여 세계유산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피하거나 제거 또는 감소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두 기관은 이번에 체결한 업무협약에 따라 유산영향평가 분야의 역량 제고를 위한 인적·기술적 교류와 한-이집트 간 협력사업에 대한 자문을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다.문화재청 한국전통문화대학교는 이번 업무협약을 계기로 (사)이코모스 한국위원회와 교류·협력체계를 긴밀히 하여 국제적인 역량과 소양을 갖춘 세계유산 분야의 전문인재를 양성하고, 지속가능한 발전과 미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한국전통문화대학교는 문화재청 산하 교육기관으로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문화유산의 보존, 관리, 활용의 전문 인재 양성을 목표로 설립된 국내 전통문화 유산 특화 국립대학이다.
-
한국문화재재단, 유네스코 무형유산 분야 자문기구로 재인가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최영창)은 12월 8일 보츠와나 카사네에서 열린 제1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유네스코 무형유산 분야 자문기구로 재인가 받았다. 한국문화재재단은 2010년 유네스코 무형유산 분야 자문기구로 인가를 받은 이래로, 무형유산의 가치를 국내외에 알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추진해오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무형유산보호협약 채택 20주년을 기념하는 ‘무형유산보호협약 20주년 국제회의 및 서울비전 선포’ 행사를 외교부, 문화재청, 유네스코아태무형유산센터와 함께 주최했다. 재단은 이번 제1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무형유산보호협약 채택 20주년 기념으로 진행된 포스터 세션의 참가자로 선정되어 전통 공예 분야 무형유산 전승자와의 협력 사업에 대한 발표를 진행하여 주목을 받았다. 2023년 12월 기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정부간위원회에서 인가한 비정부기구는 총 217개이다. 전 세계에 있는 무형유산 비정부기구들은 국제적⸱국내적으로 무형유산보호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무형유산을 전승하는 공동체와 정부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 정부간위원회는 자문기구들의 사업 내용을 검토하여 4년마다 재인가 하고 있다. 전 세계 총 91개 자문기구 중 80개 기관이 재인가 권고를 받았고, 한국문화재재단은 최종 재인가 되었다. 한국문화재재단은 "앞으로도 적극적인 무형유산 자문기구 활동을 통해 무형유산의 인지도를 높이고, 인류의 무형유산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
(36) 연변인민출판사가 발행한 ‘연변무형문화유산화첩’이 자료집을 통해 2012년 3월 중국이 자국 빗물질무형문화재로 지정을 한 사실을 밝혔다. 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사전 조처였다. 이 사실을 확인 한 (사)아리랑연합회가 성명서를 발표, 이를 연합뉴스와 MBC 뉴스가 언급하여 문제를 삼았다. 이는 큰 반향을 이르켜 12월 우리가 유네스코에 아리랑을 등재하여 중국의 등재를 막을 수 있었다.
-
유네스코 무형유산 55건 신규 등재…한국 '장 담그기' 내년 도전태국의 대표 축제 '송끄란', 이탈리아의 오페라 성악 문화 등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지난 8일(현지시간) 폐막한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 간 위원회 회의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45건, 긴급보호목록 6건, 보호모범사례 4건 등 총 55건이 신규로 등재됐다. 이에 따라 2008년 목록 등재를 시작한 이래 이름을 올린 유산은 총 730건이 됐다. 이번에 등재된 무형유산에는 이탈리아가 신청한 '이탈리아 오페라 성악 관행', 태국의 '태국 송끄란, 태국 전통 새해 축제', 스위스의 '고산 목초지 방목 시즌' 등이 포함됐다. 아제르바이잔과 튀르키예가 공동으로 낸 '자개 상감 공예'도 대표 목록에 올랐다. 아울러 독일·키르기스스탄·룩셈부르크·나이지리아·슬로베니아·토고·콜롬비아·키프로스 등 여러 대륙의 국가가 공동으로 신청한 '산파술: 지식, 기술 및 관행'도 공동 등재에 성공했다.
-
소프라노 조수미, 신곡 '러브 러브' 발매"전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어린이들의 뉴스를 접하며 눈물을 흘리곤 한다.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힘들고 지친 모두에게 희망과 사랑을 전한다.” 최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소프라노 조수미가 사랑과 희망을 가득 담아낸 신곡 ‘Love Love’를 11일 워너뮤직코리아를 통해서 발매한다.클래식 어법과 대중적 감성을 더한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노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이라는 조수미의 오랜 믿음과 염원을 담아 윤자은 음악감독이 작곡·작사했다.노래는 '매일 아침 눈뜰 때 볼 수 있기를, 아이들의 미소 평화로운 햇살'로 시작한다. 어두운 폭풍이 지나가고 길을 읽은 듯 보여도 결국 사랑으로 상처를 치유한다는 이야기를 특유의 밝고 따뜻한 목소리로 전한다.꿈과 희망을 상징하는 어린이들의 합창이 간주부터 등장한다. '러브 러브, 원 앤 온니 러브'로 반복되는 후렴구는 클라이막스인 하이 C로 마무리하며 승리를 보여준다.조수미는 1986년 이탈리아 베르디 극장에서 세계 무대에 데뷔한 이래 성악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이어가고 있다. 이탈리아 최고 소프라노에게 수여하는 '황금 기러기상'(1993), 푸치니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수여한 '푸치니 상'(2008), 이탈리아 도나텔로 어워드 주제가상(2016) 등을 수상했다. 2003년 유네스코 평화예술인에 선정됐으며, 지난 10월에는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
(28) 우봉 이매방의 삶과 예술춤생애와 무용사적 의의 1. 들어가는 말 "하늘이 내린 춤꾼’, ‘세기에 하나 나올까 말까하는 전통춤꾼’이라 칭송되는 이매방(李梅芳)이기에 더더욱 이 시대의 국무로 꼽지 않을 수 없다. 그가 2015년 8월 7일 88세로 영면하였다. 필자가 볼 때 한국 전통춤을 오늘날처럼 곱게 다듬고 정립한 전통무용가는 한국무용사에서도 유일한 분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명창 중에서도 뛰어난 명창을 ‘국창’이라고 하는 만큼, 명무 중에서도 빼어난 명무를 ‘국무(國舞)’라고 한다. 그러면 무엇이 이매방을 국무로 칭하고 인정하게 될 만큼 춤꾼으로 만든 요인들이 무엇이었을까 살펴보기로 한다. 이매방은 1927년 5월 5일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7세 되던 해에 목포 권번(券番)의 권번장 함국향의 눈에 들어 춤 학습을 받았고, 목포 권번에서 승무와 검무 그리고 고법을 가르쳤던 이대조(李大組) 명인으로부터 춤과 북놀이 사습을 8년 동안 받았으며, 주로 여자들만 입학할 수 있었던 권번에서도 유일하게 남자 학습생으로 들어가 남다른 사랑을 받으며 전수받았다. 오늘날 이매방은 국가무형문화재 제 27호 승무와 제97호 살풀이춤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것도 그의 외길 춤인생에서 갈고 닦아진 예술적 가치와 전통적 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2. 이매방의 춤생애 1) 입문기(入門期, 1930년대)-목포권번과 만주대련의 소년시절 이매방은 1927년 음력 3월 7일(호적상 1927년 5월5일)에 전라남도 목포시 대성동 186번지에서 부친 이경식(李敬植)과 모친 조병림(曺炳林) 사이에서 3남2녀의 막내둥이로 태어났다. 이매방은 태몽과 관련 독특한 내력을 가지고 있다. 모친 조씨는 이매방을 낳기 전 태몽에서 모친이 밭에서 호미질을 하는데 동그란 불덩이가 굴러와 치마폭에 안기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 명무로서 예사롭지 않은 인물임을 예고한 것이었다.이매방은 세 살적부터 끼가 발산된 천생의 춤꾼이다. 어려서부터 계집애들 같이 누님의 치마저고리를 입고 옷고름을 매만지며 경대 앞에서 춤추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이매방은 여자 같은 행동을 보고 부모형제들은 미쳤다고 야단법석이면서도 그가 철이 안 들어 그런 것일 거라고 지나치곤 하였다. 그가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세(1934년)가 되던 해 옆집에 세 들어 살던 조도 출신 목포권번의 권번장 함국향(咸菊香)씨가 그의 춤추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춤 학습을 권유하였다. 한편 이매방의 할아버지벌격인 이대조(李大祚, 김금옥에게서 춤사사)씨는 호남일대에서 명성이 높았던 춤의 명인으로써 승무와 북놀이에 탁월한 예인이었다. 이매방의 할아버지이면서 스승이었던 이대조 명인은 목포 권번(卷番)에서 승무와 북놀이, 검무 그리고 고법(鼓法)을 가르쳤던 권번 선생이었다. 당시 목포에는 포배당이라는 절마당 앞에 드럼통을 이삼십개 깔고 판자를 올려 가설무대를 만들어 공연을 하였다. 이때 이대조(1870년초~1950년대, 북반주)와 한성준(1874~1941, 장구반주)이 서로 잘 아는 친구사이로 공연에서 이동백, 이화중선 등의 반주를 맡았다. 절에서의 공연은 조선시대 굿중패, 절걸립패, 사당패들의 근거지이며, 공연장이 절이었기 때문에 일제 강점기까지도 이러한 연희문화 현상은 지속된 것이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매방은 함국향씨가 소개한 목포권번에 입문하게 된다. 이매방이 목포 권번에 입문하여 춤뿐만 아니라 판소리 학습도 함께 시작하였으나 판소리는 그의 목청이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청이 터지질 않아서 곧바로 그만두었다. 이렇게 시작된 이매방의 춤과 북놀이 학습은 8년 동안 계속 이어졌다. 여자들만 입학할 수 있는 권번에서 유일하게 남자 학습 생이 들어가자 주위 선배들과 동기들은 귀염과 사랑을 듬뿍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호남 권번에서 다양한 춤을 익힌 이매방은 유년시절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기를 맞는다. 중국 대련에서 운수회사를 운영하던 큰 형님에게 가서 약 5년간을 지내게 되면서 대련 정포소학교(1935~1939)를 다니면서 그는 매란방, 배구자 등을 만난다. 그리고 12세 무렵 대련에서 우연한 기회에 신무용의 대가인 배구자 무용공연에 출연하게 된다. 또 북경에 있던 큰 누나의 연결로 당대 최고의 경극 배우 매란방(梅蘭芳)과 조우한다. 매란방의 공연을 접하고 이국적인 향취에 매료되어 그에게 <장검무>, <등불춤>, <꿩털춤> 등을 배운다. 공연 때마다 무대에 오르는 이매방의 장검무는 그때 매란방에게 배운 장검무의 기법을 토대로 창작된 춤이다. 6. 25 이후에는 본명 이규태를 버리고 매방(梅芳)이라는 예명을 지어 사용하게 되는데, 매란방에게서 배우고 느낀 예술혼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되는 대목이다. 그러다가 대련정포소학교 5학년 때(1939년) 말도 잘 안통하고 해서 고향 목포북교소학교에 전학하여 졸업하면서 본격적으로 춤에 정진하게 된다. 2) 학습기(學習期, 1940년대)-역경 속에서 다져진 승무로 데뷔무대목포소학교를 졸업 후 이매방은 뜻에 없었지만 아버지의 간곡한 권유로 마음에 없는 목포공립공업학교를 입학(1940년)하였다. 공업학교를 다니고 있었지만 항시 그의 마음에는 춤사위와 북놀이가 떠나질 않았었다. 원래 손재주가 있어 자신과 제자들이 입을 의상은 물론 공연에 필요한 무구(舞具) 소품들을 직접 바느질하거나 제작하였다. 성격이 섬세하고 꼼꼼하여서 바느질 솜씨가 일품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의 결벽성과 치밀한 성격으로 아무리 소소하고 간단한 것이라도 매사가 완벽하게 갖춰야 하는 성품이므로 그의 바느질 솜씨는 전문적인 한복 제작자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대접을 받았다. 1942년(16세) 목포역전에다 쇠가래를 세워 그 위에 막을 치고 드럼통을 깔아 만든 가설무대를 만들어 놓고 밤낮 춤과 소리로 명인명창대회를 열고 공연을 했었다. 그런데 승무를 담당한 박봉선이 사정이 생겨 춤을 출 수 없는 상황이 생겼다. 목포 사는 신두옥도 놀음을 나가 없었고, 성산호주 역시 결혼을 하여 무대에 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임방울은 승무를 추어야할 사람이 갑자기 참석치 못하게 되자 함국향에게 승무를 대신해서 출 사람을 수소문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함국향선생은 마침 이매방의 춤이 무르익은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곧바로 이매방을 불러 임방울선생에게 소개하였다. 그리하여 이매방이 김연수의 장삼을 빌려 입고 무대에 나섰다. 피리에는 임세균, 거문고에는 한갑득, 설장고에는 전사업, 전이섭, 김오채 등 당대 최고의 명인들과 함께 한 무대였다. 이때 이매방은 승무를 춤추어 관객의 열렬한 호응 속에서 첫 데뷔무대를 가졌다. 그리고 해방 후로는 그동안 배운 실력으로 1948년 임춘앵의 여성국극단에 삼고무를 가르쳐 여성국악인들의 공연을 도와주었으며, 그해 승무로 첫 데뷔했던 목포 역전에서 다시 임방울이 이끄는 명인명창발표회에 승무로 출연하였다.이처럼 1940년대는 본격적인 춤과 가락을 익히는 학습기였다. 그동안 만주에서 소학교를 다닐 때는 방학 때 귀국하여 간간히 춤을 익혔지만 목포로 전학한 후로는 당내에 명성을 날렸던 박영구(화순 능주출신)선생에게 학습하기 위해 주말마다 광주를 오가면서 광주권번을 다녔다. 당시 박영구선생은 광주권번에서 승무와 북놀이를 가르치고 있던 권번선생이었다. 광주권번에서 박영구선생과 함께 춤선생으로 있던 이창조(장성출신)선생에게는 검무를 학습하였다.목포권번과 광주권번을 오가며 박영구, 이창조, 그리고 이대조(무안출신) 선생에게서 승무, 승무북놀이, 검무, 입춤, 살풀이춤, 장고춤, 태평무, 한량무, 보렴승무, 흥춤, 장검무, 장고기법들을 배웠다. 특히 이대조에게서 가장 많은 레퍼토리를 배웠으며 이대조의 북가락은 다양하고 가짓수가 많아 ‘천수북’이란 말이 전해졌다. 오늘날까지 이매방 북가락이 일품이라고 하는 것은 이대조로부터 전수받은 가락이다. 3) 방랑기(放浪期, 1950년대)-6.25사변 군예대 활동-대구, 군산, 부산, 광주, 서울해방 후 진지하고 평화롭게 예인의 길에 정진하던 것도 잠시뿐 1950년 6.25사변이 터졌다. 북한군의 뒤를 따라 예술동맹 공연단들이 내려와 목포에서 인민들을 위한 위문공연에 최승희의 딸 안성희와 전황(본명 전두황, 전옥의 동생, 전미례의 부친), 최옥산, 임종옥, 한계만, 유선도, 이경팔, 박정호 등이 내려와 공연한 것을 이매방은 보게 되었다. 이때 전황은 <처녀총각>, 안성희는 <장검무> 등을 추었다. 그리고 이매방을 강제로 무용동맹에 가입시켜 무용활동을 시켰다. 당시 무용동행위원장에 차범석, 국악동맹위원장에 장월중선 등이었다. 무용동맹에서 춤을 가르치거나 공연을 하였고 또 국악동맹에 가서 안무도 해주며 지냈다. 안성희가 "규태동무 북조선으로 갑시다”하는 바람에 피신해 있었지만 수복 후 국군이 들어와 무용동맹에 강제로 가입했던 것에 곤욕을 치루었다. 가까스로 해명하고 국군 군예대(KAS)에 가입하여 1951년 대구 역전 태평로에 본부를 두어 활동했다. 그 때 군예대에는 황해(전영록 부친), 허장강(허준호 부친), 그리고 무용가 김진걸, 황무봉 등이 소속되어 있었다. 군예대(종군연예인공연단) 일원(1951년)으로 활동하면서 지방순회공연을 다녔다. 또 광주에서 전라남도 경찰국 선무공작단을 맡아 단장으로 호남 일대를 돌며 순회공연을 한다. 이렇게 지방순회공연을 하던 중 군산에서 연구소를 개설해주겠다는 유지들이 나타나 이매방이 24세(1951년)에는 잠시 군산으로 옮겨 군산시 영화동에다 이매방무용연구소를 개설하여 2,3년간 활동을 하였다. 그때부터 이 매방은 그가 직접 운영하는 연구소를 통하여 그의 춤과 북놀이를 전수하기 시작하였다. 군산에서 무용연구소를 운영할 때 춤을 배웠던 제자들로서는 박문자, 김옥순, 양향옥, 그리고 채영옥 등이 배웠다. 1953년에 문하생들을 데리고 광주에서 첫 발표회를 가진다. 그 후 1953년 부산으로 내려가 장홍심이 운영하는 영도에 함께 연구소를 했지만 결별하였다. 부산에서의 제자는 김진홍, 성승민, 이도근 등이 있었다. 1954년 광주로 옮겨 남동 양조장 옆에 국악원을 개설하여 어리지만 춤을 잘 추는 한순서를 조교로 무용연구소를 운영하면서부터는 쇼무대나 악극단 등 순수 무용활동 이외의 출연은 일체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문하생들과 함께 광주에서 다시 이매방의 무용발표회(1955년, 광주극장)를 가졌다. 한편 서울에서는 올라와 창신동 신익희의 딸 신영균의 집에서 활동을 하였다. 이때 서울에서는 여성창극단, 삼성여성국악단(박옥진, 박보아, 조양금 3인)등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1955년 부산으로 내려가 초량동에 자리잡았다. 그동안 부산에서 초량동, 범이동, 대신동 등지와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다가 1956년 대통령 입후보했던 신익희의 사망으로 인하여 서울연구소를 청산하고 부산으로 내려가 부산에서 첫 발표회를 대영극장(1957년)에서 공연을 하였다. 이때에도 어리지만 춤을 잘 추는 한순서의 역할이 켰었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1959년 원각사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이매방의 공연작품으로 역시 <승무>와 <쌍검무>로 전통무용의 진수로 보여주며 춤기법이 매우 빼어났음을 표현하면서 전통에만 매달리지 말고 현대적인 무대예술로 승화되면 좋겠다는 평을 하였다. 당시의 이매방의 춤활동은 전국적으로 목포, 대구, 부산, 광주, 서울이었지만 주근거지는 사실상 부산이었다. 임시수도였던 부산에 많은 예술인들이 체류하였었고 일부는 잔류하면서 예술의의 중심역할을 하였다. 이매방도 1950년대 중후반까지 부산에 중심을 두어 고전무용의 중심인물이었고 부산무용가협회 정회원이었으며, 1957년과 58년에 부산공연을 올렸으며 1960년대 말까지 부산에 둥지를 틀었다. 4) 정립기(定立期, 1960년대)-다양한 춤 레퍼토리1960년대는 1950년대를 이어 많은 무대를 누비면서 점차 춤 레퍼토리를 확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우선 이매방은 그의 선생에게서 배운 북놀이를 그가 혼자 활동하던 1948년 북3개를 놓고 추는 삼고무를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창작하였지만 그 후 북5개를 놓고 치는 5고무, 7개를 놓고 치는 7고무 그리고 9고무와 11고무로 확대하였다. 따라서 전국 각지에서 연희되고 있는 삼고무의 원조는 이매방류라 할 것이다. 그리고 <초립동>, <화랑무>, <검무>, <장검무>, <박쥐춤>, <흥춤>, <무당춤>, <장고춤>, <학춤> 등을 정립하였고, 늘 추어온<승무>, <입춤>, <검무> 등과 함께 추었다. 그러한 이매방의 춤예술 정립은 그의 탁월한 예능적 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까지도 이매방의 주 활동무대는 부산이었으나 점차 활동무대를 서울로 넓혀나간다. 그리하여 1967년 10월에는 서울 명동국립극장에서 창작무용 <꽃신 짚신>발표회를 가졌고, 1968년 8월에 일본 대판(大阪) 상은 창립 15주년기념제전(대판후생회관)에 초청되어 <승무>로 출연하였고, 이어서 제23회 광복절기념공연(일본동경 거류민단 본부 주최)에 <승무>를 추어 갈채를 받았다. 5) 비상기(飛翔期, 1970년대)-전통춤의 예술성과 가치 인정1970년대 초까지는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였으나 이매방의 승무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연구소를 서울로 옮겨 현재까지 서울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서울에서 한 때 1956년 해공 신익희(海公 申翼熙)선생 집에 신세지며 서울 창신동에다 연구소를 개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6.25직후에 주 활동무대였던 부산에서의 활동은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매방은 <보렴승무>, <삼현승무>, <살풀이춤>, <검무>, <입춤>, <한량무>, <태평무>, <흥춤>, <장검무> 그리고 <장고춤> 등도 <승무>와 함께 끊임없이 연마하여 왔다. 1970년대 초부터 이미 국악계에서는 이매방의 춤의 가치를 파악하고 많은 국악제전에 초청하여 출연하게 된다. 1970년부터 매년 부산에서 3.1절 기념 국악대제전에 <승무>공연, 1973년 4월 동래야류발표회에 <승무>초청공연, 그해 12월 전통예술감상회에는 <초립동>을 공연하였다. 1974년 5월 인간문화재 초청공연에 <승무>로 초청이 되었고 12월에 무용대공연에는 <화랑도>(전주삼남극장)로 출연하였다. 1975년 5월 강백천 대금산조발표회에 <승무>출연(부산민속예술관)하였고, 8월에는 이선옥 초청 신적무용발표회에 <사랑과 이별>을 안무하여 이선옥과 2인무로 출연(국립극장 소극장)하였다. 이선옥과의 콤비를 맞추게 되면서 그동안 함께해온 한순서는 자연히 독자적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다. 1976년 1월 문예진흥원 창작지원금 무용공연 <신검(바리공주)>를 부산시민회관에서 가졌다. 이리하여 이매방 선생이 서울무용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앙대 명예교수인 무용학자 정병호에 의해 1977년 7월30일 서울 YMCA에서 한국전통무용발표회에서 승무를 추면서부터이다. 전통무용연구회(회장 정병호)가 주최한 <이매방 승무 발표회>에서 삼현승무와 보렴승무를 추었고, 찬조로 김소희 국창의 판소리(고수 김득수)와 이선옥의 살풀이춤이 올려졌고, 악사에 지갑성, 전태용, 이생강, 김순봉, 오주환, 서용석, 김한국 등이 반주하였다. 이 자리에서 정병호 교수가 최초로 ‘승무의 미학’를 발제하였으며 안내장에는 김천흥의 축사가 기록되었다. 또한 이날 이매방 춤을 감상하고 조선일보 기사에 발표한 홍종인은 다음과 같은 평문을 남겼다."등골이 으쓱 들었다가 놓는 그 순간 그 깊은 한숨소리는 들은 바 없었으나 그 순간의 한숨은 하늘이 꺼지는 듯 깊은 느낌이었다..... 이씨의 춤이 각별하다는 점은 악곡이 지닌 장단과 가락 속에 섬세하고 대담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온몸에 매듭과 힘줄이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부분에 작동하고 있다는 그 기교를 훨씬 넘어서 그의 전신에 넘쳐 흐르는 예술적, 창조적 그리고 또 즉흥적인 감흥이 압도적이었다는 데에 있다 할 것이다”(홍종인, "이매방씨의 승무를 보고”, 『조선일보』(1977년 8월 3일자).홍종인의 평문은 사실상 이매방의 전통춤이 우리 무용계에 새로운 별이 등극했음을 시사는 글이다. 감상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춤, 전율을 느끼게 하는 춤, 심장박동을 자극하는 북가락, 섬세하고 고운 춤사위에 모두 감동을 받은 공연이었음을 암시해준다. 아울러 그때까지 한성준류의 한영숙 승무에 매료되었던 이들에게 새로운 유파의 승무가 있음을 지상을 통해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 무대에서의 성공은 이듬해 1978년 3월 세계민속예술제 한국대표로 프랑스 렌느시에 참가하는 영광을 얻게 된다. 6) 만개기(滿開期, 1980년대)-<북소리> 시리즈와 승무 예능보유자 인정평생 춤의 길을 걸으면서 외길로만 살아온 이매방은 지난날의 춤생활을 돌이켜 보면 한과 정으로 가슴이 벅차다고 말한다. 이매방은 평생 동안 춤을 추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광대, 굿쟁이, 기생, 당골소리 등 별의별 말을 다 들으며 살아왔다. 거기에다 이매방의 성격이 직설적이고 입바른 소리를 잘 할 뿐 아니라 수틀리면 욕잘 하기로 유명한 그는 호랑이, 사자이빨, 따발총, 직사포, 욕보, 욕대장 등의 별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나타난 한 면일 뿐이다. 이매방의 내면에는 그간 겪어온 진솔한 삶의 모습과 예술혼이 오롯이 담겨있다. 그래서 당시 이매방 춤의 진수를 처음 제대로 알아본 이는 당시 전통무용연구회장이던 중앙대 정병호 교수였다."이매방씨가 예술가로서 높이 평가받는 것은 거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승무의 명무자라는 것과 오늘의 북틀춤을 탄생케 한 창조자로서의 장본인이라는 점일 것이다. 이씨의 승무에서 돋보이는 것은 하나는 그가 치는 북놀이이다. 그는 북놀이를 할 때 마치 한(恨)을 풀 듯이 신명나게 치고, 감정을 한곳으로 몰입시켜 주술경에 도달한 정도이다....이매방의 승무는 비단 춤사위의 멋 만이 아니라 북놀이에도 그 정수를 느낄 수가 있다. 그의 북놀이는 궁편과 각을 조화있게 타주(打柱)하는 가운데 많은 가락을 만들뿐만 아니라 그 기교는 무아경(無我境)에 이르는 신비스런 율동이다”.(정병호, "이매방의 승무”, 『전통문화』,1984년 5월호)이매방의 천재적 재능을 발견하고 무대공연을 주선하는 등 그가 문화재 반열에 오를 수 있게 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민속학자 정병호는 그의 춤 중에서 승무를 으뜸으로 꼽는다. 승무에 있어 북틀의 창시자라는 점과 감정이입에 입각한 승무의 춤사위를 주술적 무아경에 이르게 하는 신비한 묘술로 풀어내면서 이매방을 최고의 춤꾼으로 극찬하기를 서슴치 않았다. 그리고 국가무형문화재로 인정받도록 조사에 착수하여 이매방 승무의 가치와 미학을 연구하였다. 당시 정병호교수의 제자로 연구에 참여했던 필자도 함께 YMCA 이매방 승무발표회(1977년), 이매방전통무용의 밤(명동유네스코회관, 1981년)을 동참하였고, 이매방춤 마포연구소에 찾아가 면담하면서 특히 당시에 이미 승무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던 고 한영숙 승무와의 차별성과 승무의 미학과 지역적 특징을 중심으로 비교 연구하였다. 이매방 춤판 최고의 결정판 <북소리> 씨리즈의 시작이었다. 1984년 6월 이매방 무용인생 50주년 기념공연 <북소리>(문예회관 대극장)에 이어 1985년 6월 이매방 전통무용 <북소리 Ⅱ>였다. 또한 전통예술의 보급과 선양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결과로 정부로부터 옥관문화훈장(1984)과 성옥문화상 문예부문 대상(1995)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중요무형문화재 인정에서 보류된 이매방의 승무에 대해 사생활과 예술세계는 별개라는 당시 정병호 문화재위원의 일관되고 끈질긴 노력과 더 열정적으로 이매방 승무를 알리기 위해 1981년 유네스코 회관 공연을 주선하여 문화재위원들을 초청하여 이매방 승무의 예술적 가치와 지역성과 전통성을 알리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결과 1987년 7월1일 이매방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로 인정되어 명실상부한 명무의 대열에 서게 된다. 그리하여 1989년 일본무용예술제 참가와 국악대공연에 참가 등의 더욱 왕성한 공연활동을 펼치게 된다. 7) 결실기(結實期)(1990년대)-살풀이춤 예능보유자 인정과 이매방 춤인생 60년1990년대의 이매방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예능보유자에 이어 1990년 10월10일 제97호 살풀이춤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아 전통춤의 최고 명인으로 추앙받게 되었으며 수많은 한국무용가들이 이매방류 춤을 전수받기 위해 구름같이 모이게 된다. 서울에 정착한 후 이매방은 창신동, 돈암동, 대현동, 운니동, 삼성동, 그리고 마포를 거쳐 지금의 양재동에 이르기까지 이곳 저곳을 옮겨가며 무용연구소를 운영했었다. 그후 지금까지 무용연구소를 중심으로 제자를 양성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는데, 한국무용계를 대표하는 무용가들 대부분이 그의 춤을 전수받은 제자들이다. 하지만 춤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제자로 들이지 않는다. 새로 입문할 사람이 재능이 없어 보이거나 꾸준히 학습에 임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처음부터 받아들이지 않는다. 승무와 살풀이춤의 보유자로 인정되자 그의 많은 옛 제자들이 다시 찾아들기 시작하였고 새로이 입문한 문하생들이 그의 춤과 북놀이를 배우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1990년의 활동은 ’90 북경아시안게임 문화예술축전 참가와 이매방 전통무용 <북소리Ⅲ>(호암아트홀)를 가진 후, 1991년 미국순회공연, 1992년 유럽순회공연을 마치고 1994년에 춤인생 60년을 정리하는 <북소리 Ⅳ>를 가진다. 이어서 1995년 광복50주년 민속종합예술제 출연과 1996년 인생70 고희기념공연, 1997년과 98년 일본공연을 가졌고,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1999년에 우봉 이매방 춤인생 65주년 기념 대공연을 가지면서 1990년대 20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천년 밀레니엄 시대를 맞이하였다. 8) 국무기(國舞期, 2000년대)-외길인생 우봉 이매방 춤 70년격변기를 살아온 우리의 춤선구자 대부분이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왔듯이 명무 이매방의 삶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몇 년 전 이매방은 또 한 번의 고비를 맞았다. 2001년 갑작스럽게 발병한 위암으로 투병생활을 해야했다. 주위의 걱정과 안타까움 속에 위 대부분을 도려내는 수술을 받고 몸무게가 15kg 빠지는 등 체력이 급격하게 저하되어 활동이 어렵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매방은 작년 ‘우봉이매방팔순기념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뤄냈다. 직접 살풀이춤과 입춤을 추는 저력의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오직 춤만을 생각하는 열정이 아니라면 감히 이루어 내지 못할 일이다 ‘우봉 이매방 춤 전수관’은 2005년 7월 목포문화예술회관 1층에 마련된 이매방의 살풀이와 승무를 전승하는 공간으로 이매방의 이수자들이 승무와 살풀이춤, 입춤, 삼고무 등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06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우봉이매방춤경연대회’는 이매방의 예술혼을 예향 목포 이미지로 연결시키기 위해 창립된 행사이다. 전통춤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이매방의 열정을 엿볼 수 있었다. 3. 우봉 이매방 춤의 무용예술적 가치 이매방의 춤에서는 구전(口傳)으로 내려오는 호남제 시나위 춤사위로 짜여져 있다. 그중 대삼소삼(大杉小杉), 비정비팔(比丁比八), 양우선(兩雨線), 비디듬, 좌우걸이, 완자걸이, 잉어걸이, 지숫기 등의 곱고 아름다운 사위와 자태를 자아내고 한을 신명으로 풀어내는 정중동의 몸놀림이 배어나온다. 결국 이매방춤은 호남 지방의 권번에서 추어왔던 춤사위 기법이지만 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본인 스스로의 속멋에서 우러나온 춤으로 발전된 것이기에 단순한 전수춤이 아니라 스승들의 춤을 뛰어넘어 본인의 혼을 담은 전통춤이었기에 아무도 넘겨볼 수 없는 국무의 자리를 지켜온 것이다. 이제 우봉 이매방이 왜 국무의 칭호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거론하고자 한다. 첫째는 남자이면서도 여성보다도 더 곱고 섬세한 기방계통의 ‘춤바디’와 여성적 ‘춤속’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전승되는 한국 전통춤의 기법과 미학적 표현법을 볼 때 우봉 이매방 만큼 아름다운 춤사위를 구현하는 전통무용가는 없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더 나아가 이제까지 한국 전통춤의 역사상에서도 우봉 이매방 만큼 아름다운 춤사위를 구가하는 무용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면 왜 이처럼 아름다운 춤사위기법을 가지게 되었을까? 몇 가지 추론되는 점이 있다. 하나는 어릴 적 처음 춤입문에서 고운춤만을 추는 기방에서 춤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당시 목포권번 함국향이라는 권번장이 이웃에 살아 그 집을 드나들면서 기방춤을 처음 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여자처럼 예쁜춤의 기본이 몸에 배여있어 이매방춤에는 기방예술의 전형적 아름다움을 담겨 있다. 그리하여 이매방이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여성들보다도 더 여성적인 기방춤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전통소리꾼들에게는 유파별로 또는 계통별로 ‘소리바디’가 있듯이 이매방의 춤맵시에는 이미 기방계통춤의 고운 ‘춤바디’가 형성된 것이다. 그렇지만 남자가 아무리 아름답게 춘다고 해도 여성만큼 섬세하고 아름답게 추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 한계성을 극복하는 그 무엇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이매방은 성의 정체성을 뛰어넘는 여성적 감수성이 정신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아무리 춤바디가 기방계적 표현력을 지녔다 해도 대개의 남자춤꾼들은 남성의 ‘춤속’이라는 본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매방의 춤사위와 표현법에는 여자보다 더 여성화된 ‘춤속’을 지니고 있다. 제아무리 성정체성이 뒤바뀐 남성춤꾼이라 해도 모두 춤속이 여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뒤섞인 혼성춤속이거나 어설픈 여성춤속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매방은 완벽한 기방계 ‘춤바디’에다 가장 섬세한 내면적 정서의 여성보다 더 여성적인 ‘춤속’을 지닌 특별한 춤꾼이다. 둘째, 호남지역의 명무들로부터 뼈대있는 전통춤을 다양하게 전수받아 호남춤의 정통성을 확립하였기 때문이다. 목포권번에서 호남기생에게 처음 춤을 사사한 이매방은 그후 이대조, 신방초, 박영구, 이창조 등 호남지역의 명무자들의 가르침을 받아 전통무용가로 성장한다. 맨 처음 정식으로 춤을 가르친 이는 이대조는 무안 출신으로 목포권번 사범으로 춤과 음악에 능통한 전통예인이며, 이매방에게 승무, 검무, 장고춤을 가르쳤다. 또한 옥과 출신인 신방초에게 육자배기, 화초사거리, 가곡, 검무, 승무 등을 익혔고, 10대 중반에는 광주권번에서 화순 출신 박영구 문하에서 승무와 북을 배웠고, 장성 출신 이창조에게 검무를 사사하기도 했으며, 춤과 기악에 능통한 이장선의 문하생이 되어 다양한 예능을 접하게 되었다. 스승 모두가 호남일대와 경향에까지 활동영역을 넓혀 궁중 어전 출입도 잦았던 당대 최고의 전통예인들이었다. 이처럼 이매방은 목포권번과 광주권번을 오가면서 권범사범들인 박영구, 이창조 등 호남의 제일가는 명무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승무, 승무북놀이, 검무, 입춤, 살풀이춤, 장고춤, 태평무, 한량무, 보렴승무, 흥춤, 장검무, 장고기법들과 다양한 춤가락을 익혀 호남춤의 특성과 미학을 정립한 전통성과 정체성을 보유한 명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간에 호남춤의 대를 이은 한진옥을 비롯한 몇몇의 호남춤의 명인들이 있었으나 크게 빛을 발하지 못하고 고향에서만 활동하다 잊혀져 갔다. 그러나 이매방은 고향 목포에 머무르지 않고 부산, 군산, 광주 등지를 거쳐 한국예술의 중앙무대인 서울로 진출하여 호남춤의 예술성을 범한국춤으로 위상을 높였다. 이매방 춤에서 전승되는 보석같이 소중한 호남제 춤사위는 실로 다양하다. 춤사위 용어상에 나타난 대표적인 춤사위 명칭은 대삼소삼(大杉小杉), 비정비팔(比丁比八), 양우선(兩雨線), 비디듬, 좌우걸이, 완자걸이, 잉어걸이, 지숫기 등이다. 이매방이 춤을 가르칠 때 매번 강조하는 대삼소삼은 장단의 강약을 따라 춤사위도 강약으로 표현하는 춤기법으로 강과 약으로 반복하면서 조율하여 추는 방식으로 춤의 섬세한 리듬성과 변화성을 보여준다. 또한 움직임의 기법 중 정중동 또는 음양의 조화를 표현하는 양우선도 중요한 춤 특징으로 손짓과 발짓의 모든 동작은 양우선의 원리를 따른다. 가령 발은 뒤꿈치부터 앞꿈치로 옮겨지고, 팔은 엎으면 반드시 뒤집고, 뿌리가 내려오면 끝이 올라간다거나 끝이 쳐지면 뿌리가 올려지는 등의 자연스러운 기교와 원리가 연출된다. 또한 보법에서 비정비팔(比丁比八)이라는 발디딤은 호남춤에서 내려오는 오랜 춤기법 중의 하나로, 발 딛는 자세가 한자의 정(丁)자 혹은 팔(八)자의 모양으로 딛는 독특한 형태의 보법이다. 오른발에 이어 왼발 끝으로 딛어 오른발 옆에 옮겨 딛고 제자리에서 무릎을 굽혔다고 펴는 형태의 섬세하고 정교한 발디딤은 이매방 춤의 몸가짐과 돋음새, 오금새, 디딤새로 이어지는 걸음걸이의 진수이다. 셋째, 천부적인 예술적 감각과 재능성을 지니고 태어난 춤의 천재이기 때문이다. 이매방의 첫 스승 이대조는 그의 집안 할아버지벌이 된다. 즉 이매방의 집안은 스승이자 할아버지인 이대조 대(代)까지 대대로 무업(巫業)을 해온 무계의 혈통을 이었다. 이들은 오랜 세월 세습되면서 천부적인 예능성을 이어받아 오게 된다. 대개 천부적인 재능이 없는 경우는 도중에 도태되지만 선천적 예능성을 지닌 유전인자를 지닌 예인들은 대를 이을수록 더 유명해진다. 이매방의 천재성은 이미 어린 나이인 15세 때 증명되었다. 목포역전에서 임방울이 가설무대에서 명인명차대회를 열었는데 승무를 추기로 한 박봉선이 불참하여 대타자로 승무를 추었으나 관중들의 찬사가 뜨거웠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매방은 이 모든 스승들의 춤기량을 뛰어넘는 춤기법과 춤사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천재만이 할 수 있는 재능이다. 그래서 천재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다고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전승된 전국의 모든 류파와 계통의 전통춤 전승자와 명무들을 볼 때 이매방만큼 춤을 곱고 아름답게 구사하는 명무는 없었다. 바로 이러한 특성으로 인하여 현재의 한국전통춤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고 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바로 이 점이 이매방을 명무 중에서 명무인 국무로 호칭하는 것이다. 넷째, 현대교육개념으로 볼 때 어린나이부터 춤의 조기영재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매방은 예닐곱 살부터 목포권번에서 예기들의 춤을 접하고 춤 배우기를 권유받아 이대조로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만주 대련 정포소학교를 다니면서 방학 때면 북경 매란방연구소에서 춤을 배우거나 목포로 돌아와 춤을 배웠다. 이처럼 이매방은 어린 10대에 호남의 이름난 명인들 이대조, 신방초, 박영구, 이창조 등 호남지역의 명무자들의 가르침을 받아 악가무를 두루 섭렵하였다.
-
2023 '고판사' 연말 발표회를 마치고'고판사'의 2023 연말 발표회와 총회가 10일 오후 3시 동숭동 대학로에 위치한 서울 문화재단 예술인지원센타 5층 프로젝트룸에서 열렸습니다. 비영리민간단체 '고법과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판사라는 독특한 명칭과 새로운 운영 방식으로 많은 국악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9일 한글날 강감찬전국국악대회를 성공적으로 주최하였습니다. 바쁜 한해를 보내 은 고판사는 2024년 더 나는 미래를 위해 사무총장과 감사 그리고 임원들을 보강하여 조직을 강화하고 금년결산과 내년예산을 보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곧 이어 발표회에서는 1달전 미리 신청한 20여명의 회원들과 관객들의 자유스러운 소리 발표가 있었습니다. 발표는 5분으로 자유스럽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판소리를 공부한 지 1년도 채 안된 회원들 부터 이미 30년이 넘은 프로 소리꾼까지 회원으로써 부담없이 함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격식도 그리고 틀려도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자리였습니다. 다음은 오늘 발표회에서 22명의 회원들이 그동안 닦은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 이승한: 요령은 ~(심청가) 2. 박세순, 노영란: 범피중류~(심청가) 3. 김대현. 가지마오 (흥보가) 4. 구정수. 만첩청산 (춘향가) 5. 정영렬: 싻바느질 (심청가) 6. 배금희: 기가막혀 (심청가) 7. 박선주: 배는 고파 (심청가) 8. 남은진: 일개한퇴 (수궁가) 9. 박애숙: 타루비 (심청가) 10. 김순정: 제비노정기 (흥보가) 11.정진택:쑥대머리 (춘향가) 12. 최미자: 적성가 (춘향가) 13. 한진희: 두손합장 (흥보가) 14. 김기찬: 예 소맹인(심청가) 15. 양정인: 주과포혜(심청가) 16. 박정덕: 흥타령 창밖에(남도잡가) 17. 이여심: 고당상(적벽가) 18. 장주산: 일절통곡(춘향가 ) 19. 김도연: 흥보가 쫒겨나는 대목 20.이규호: 음식타령(흥보가) 21.배명옥: 새타령(적벽가) 22.김정애: 범내려온다 (수궁가) 고판사는 한분의 명창(보유자) 선생님을 중심으로 우리 소리의 어느 계파로 이어지는 하나의 뿌리보다는 변천과 발전으로 여러가지 형식으로 변화한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소위 각자 공부하는 단체입니다. 판소리는 각 분류마다 특성이 서로 다르고 나름의 가치가 있습니다. 판소리는 무대, 창자와 고수, 청중으로 구성됩니다. 따라서 수련하고 배운 것들을 표현하는 기술 또한 필요합니다 실제 많은 분들이 군중앞에 서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대부분 적지 않게 긴장합니다. 고판사는 여러 분류와 많은 선생들께 배운 소리를 두달에 한번씩 공연장을 마련하고 희망자를 모집하여 각자 발표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시스템을 마련하여 추구해 가고 있습니다. 세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지정된 판소리(2003년 11월7일)는 무엇보다 현실비판 의식에 따른 민중성과 판소리 사설에 따른 문학성, 음악적 짜임새에 따른 예술성을 손꼽을 수 있겠습니다. 판소리는 소리(창), 아니리, 발림 등 판소리 3요소를 갖추어야 하고, 여기에 음악적 3요소인 성음(음색), 악조(음계), 장단(리듬)을 자유자재로 넘나들어야 합니다. 그만큼 연습을 많이 해야하는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랑스런 인류무형문화유산 판소리 꽃을 피어나게 하였습니다. 청중을 감동시키고 공감대를 만들어서 국악 향유자들과 함께 판소리 전승단체 고판사 공동체 결속에 기여를 하였습니다. 민속음악의 꽃, 판소리는 이제 세계무대에서 박수를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고판사는 작은 나비의 날개짓으로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
청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킴이 경진대회, ‘무슨 일 일성’팀 대상문화재청은 '청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킴이' 우수 사례에 세 팀을 선정했다고 4일 밝혔다.문화재청은 지난 1일 '2023 청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킴이 우수활동 경진대회'를 열고 올해 선발한 20개 팀의 지난 7개월 간의 활동 성과를 함께 돌아보고 우수 사례를 선정해 시상했다.문화재청장상은 대상 1팀, 최우수상 2팀으로 나눴다. 대상은 조선후기(1760~1910년) 왕의 일기인 '일성록'(국보 제153호)을 통해 기록의 중요성을 알린 ‘무슨 일 일성’팀에게 돌아갔다.최우수상은 탈춤을 통해 '내면의 나'를 성찰해보는 활동을 수행한 '탈탈몽'과 한국의 김장문화를 다양한 방법으로 홍보한 '케이벌시티(K-Versity)'가 받았다.이외에도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상(2), 유네스코 아태무형유산센터장상(2),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상(2), 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장상(3)까지 총 12팀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편 '청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킴이'는 청년들이 특정 세계문화유산을 직접 선정하고, 보존, 체험, 교육, 홍보, 모니터링, 국제교류 등 활동을 선보이는 단체다. 나이 제한 없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문화재청과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가 주관해 매해 5월 선발하며, 올해 20개 팀(80명)이 선정됐다.올해 13기는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야 고분군'을 비롯해 창덕궁과 조선왕릉, 백제역사지구, 성산일출봉, 한국의 갯벌, 판소리, 대목장, 김장문화, 한국의 탈춤, 일성록, 난중일기, 우포늪(잠정목록) 등 다양한 유네스코 유산을 주제로 한 팬 상품 제작, 문화유산 쓰담 달리기(플로깅) 활동, 각종 정책 제언, 시민 대상의 교육,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증강현실(AR)을 활용한 홍보 등으로 세계유산을 알리고, 지키고, 가꾸는 활동을 펼쳤다.
-
훈장 김봉곤·국악 김다현 부녀 정선 홍보대사 위촉강원 정선군은 김다현 국악트롯가수와 김봉곤 선촌서당 훈장을 지역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6일 정선군에 따르면 홍보대사로 임명된 이들 부녀는 2년간 정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국내외 활동과 각종 축제 및 행사에 참여하는 등 문화·예술·관광 활성화에 나서게 된다. 네살 때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김다현은 종편 경연 프로그램에서 준우승과 3위에 오른 실력파 가수다. 최근 MBN 서바이벌 예능 '현역가왕'에 참가해 트롯 국가대표를 위한 도전장을 내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가뭄 극복 생수 기부, 소아암 어린이를 위한 성금 및 산불 성금 기부 등 아름다운 마음으로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김다현은 "정선군과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지역을 오가며 정선아리랑을 배운 인연이 있다. 정선아리랑의 고장 홍보대사가 되어 기쁘다"며 "정선의 문화와 예술, 유명 관광지를 널리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위촉식을 마친 김다현씨는 아리랑센터 아리랑홀에서 열린 아리랑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11주년을 기념하는 제5차 세계한민족 공연예술축제 '한인화락'에 특별출연해 큰 호응을 얻었다. 최승준 정선군수는 6일 "전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김다현 양이 아리랑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전국 최고 웰니스의 도시 국민고향정선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2023 문화유산보호 유공자 포상’ 수상자 선정(왼쪽부터-은관문화훈장 수상자) 김삼대자, 김현곤 님 (왼쪽부터-보관문화훈장 수상자) 이재순, 김용래 님 문화재청은 ‘2023 문화유산보호 유공자 포상’ 수상자로 문화훈장 4명, 대통령표창 6명(단체 4개 포함), 국무총리표창 1명 등 11명(개인 7, 단체 4)을 선정해 발표하고 12월 8일 오후 1시 한국문화재재단 ‘민속극장 풍류’(서울 강남구)에서 시상식을 개최한다.올해 ▲ 은관문화훈장은 국내외 목칠공예품과 민속품을 중심으로 한 한국 문화유산의 조사·연구에 탁월한 전문성을 발휘하여 조선시대 의례용 목가구와 왕실공예품 분석, 운영궁 가구집기 연구 등을 통해 왕실유물 기초자료를 완성시킨 공로가 있는 김삼대자 전(前)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무형문화재분과)이 받았다. 김삼대자 전 문화재위원은 고려 나전칠기인 '나전국화넝쿨무늬합'(2020)을 비롯하여 '인장함'(2019), '나전매조죽문합'(2021), 어보(御寶) 보관 용도로 제작된 왕실공예품 <보록>(2022) 등 유물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데에도 크게 공헌했다. 또 다른 은관문화훈장 수상자로, 편종과 편경을 제작하고 태평소와 대금, 소금 등 국악기들을 복원하고, 중음태평소, 저음피리 등의 개량과 합죽을 개량한 대금, 오죽을 깎아 만든 단소, 조개로 소리를 내는 나각 등 다양한 전통소리를 내는 악기 제작에 기여해 국악의 정통성을 잇고 현대화하는 데 헌신한 김현곤 국가무형유산 악기장 보유자가 선정되었다.▲ 보관문화훈장은 ‘농악’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에 공헌하고 평택농악의 전승과 보존을 위한 후계양성에 기여한 김용래 국가무형유산 평택농악 보유자, 석조문화유산 수리·복원에 매진하고 후계양성에 이바지한 이재순 국가무형유산 석장 보유자가 선정되었다.▲ 대통령표창은 개인 2명과 단체 4개가 선정됐다. 강형원 사진작가, 전봉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가 선정됐다. (사)신라오릉보존회, 악단광칠(국내외 한국 전통음악과 문화 홍보), (사)임원경제연구소('임원경제지' 21년째 번역)가 선정됐다.▲ 국무총리표창은 창경궁 등 400여건의 문화유산을 보수하여 전통건축의 원형보존에 기여한 홍경선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이사장이 수상한다.
많이본뉴스
많이 본 뉴스
- 1한글서예로 읽는 우리음악 사설(193)<br>강원도아리랑
- 2‘2024 광무대 전통상설공연’
- 3국립남도국악원, 불교 의례의 극치 '영산재', 특별공연
- 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45)<br>한국 최초 '도깨비 학회', 아·태 도깨비 초대하다
- 5춘향국악대전 판소리 명창부 대상에 이소영씨
- 6국립민속국악원, '제6회 2024 판놀음 별별창극'
- 7서울문화재단, 클래식부터 재즈까지 '서울스테이지 2024' 5월 공연
- 8이무성 화백의 춤새(91)<br> 춤꾼 한지윤의 '전통굿거리춤' 춤사위
- 9제3회 대구풍물큰잔치 ,19일 디아크문화관광장
- 10국립극장 마당놀이 10주년…“새로운 얼굴 찾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