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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예술협회, 한국전통의 맥 '류파별 100인 춤전' 9일(사)한국전통예술협회가 주최하는 '한국전통의 맥 100인전'이 3월부터 6월까지 총 6일간 오후 5시에 서울 전통공연에술진흥재단 전통공연창작마루 광무대에서 올려진다. 전통예술컨텐츠 레파토리 공연물로 3월 21일, 3월 30일, 4월 11일, 4월 27일, 5월 9일, 6월 29일에 열린다. 신진무용가, 중견무용가들의 전통춤에 대한 열정과 기량을 감상할 수 있는 현장이다. 봄향기 완연한 5월 공연은 9일 열리게 되는데, 첫 번째 무대는 이지현(국가무형문화재 제21호 승전무 전수자)이 선보이는 '통영기방입춤'이 문을 연다. 통영기방입춤은 통영권번에서 예기 교육을 위해 추던 기본무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1호 '승전무'(통영 칼춤)의 예능보유자 엄옥자 선생님이 故 정순남 선생님께 사사받아 재구성한 작품이다. 쌍오리 사위, 겨드랑사위, 손춤 등 '승전무'의 춤사위와 유사하며, 아기자기하며 정제된 춤사위가 특징이다. 두 번째 무대는 오민경(춤집단 MIN 대표)이 '강선영류 태평무'를 선보인다. 국가무형유산 제92호 '태평무'는 강선영(1925-2016)선생에 의해 전해지면서 격조있는 무대예술로 발전 되었다. 태평무는 나라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의젓하면서도 경쾌하고 가볍고도 절도 있게 몰아치는 발 디딤새가 신명, 기량의 과시가 돋보이는 춤으로, 정 중 동의 미적형식을 가진 완벽한 춤이라 할 수 있다. 음악에 있어서는 경기도당굿에서 행하여진 무속 장단에 바탕을 둔 낙궁, 터벌림, 올림채, 도살풀이, 자진도살풀이 가락으로 연주되고 있다. 네 번째 무대는 오수연(국가무형유산 제97호 '살풀이춤' 전수자)이 '이매방류 호남검무'를 선사한다. 이매방류 호남검무는 검을 놓고 어르는 동작부터 칼을 잡고 행하는 춤사위는 무거우면서도 간결하다. 칼을 쓰는 춤이지만 살벌함이 없이 평화롭고 유연한 동작으로 일관된 아름다운 춤이다. 다섯 번째 작품은 황혜영(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 '호남살풀이춤' 이수자)이 선보이는 호남살풀이춤이다. 호남살풀이춤은 우아하면서도 섬세한 아름다운 춤이라 할 수 있다. 깊이 가라앉는 호흡의 춤사위와 엇가락을 타는 긴 수건 한 자락에 한 많은 꿈을 실어 던져버렸다 다시 휘감아 허공에 뿌리면 한 폭의 난을 그린 듯 하며 학이 날아와 앉는 모양을 한다. 이 춤의 특징은 철학 속에 혼이 담긴 춤사위로 기방예인들의 무무(巫舞) 형태인 민속예능에 바탕을 두고 있다. 맺고 풀어주는 가락에 실어내는 고운 선과 휘몰아 치는 춤사위로, 간결하면서도 시원스럽게 뿌려지는 긴 수건에 인간의 이중 구조적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는 정·중·동의 미학을 간직한 호남지방의 춤이다. 여섯 번째 작품은 김경은(국가무형유산 '승무' 이수자)이 선보이는 '한영숙-이애주류 승무'이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있는 승무는 그 정신과 구성으로 볼 때, 우리 민족의 역사적 몸짓을 바탕으로 그 골격이 세워졌다고 볼 수 있다. 조선말 한성준 선생에 의해 독자적인 춤으로 정립된 승무의 춤사위 안에는 인간의 희로애락, 생장수장, 우주만물의 이치가 모두 담겨있다. ‘승’은 넓은 의미로 나 자신을 포함한 ‘온 중생’이라는 점에서, 승무는 결국 대승의 세계를 염원하는 ‘우리 모두의 춤’이 된다. 일곱 번째 작품은 이봉주(국가무형유산 '승전무' 전수자)가 선보이는 '엄옥자류 수건춤'이다. 엄옥자류 수건춤의 가장 큰 남해안 통영적 특성은 깊고 거친 호흡에 있다. 가벼운 수건 한 장으로 한을 풀어내며 신명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무겁게 툭 떨어지는 호흡, 가볍게 떨어지다 멈추는가 하면 다시 강하게 툭 떨어지는 호흡법은 영남(통영)춤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가볍고 매끈한 호흡이 아니라 답지저앙의 변형인 배김새를 이끌어 내는 강하고 깊은 호흡이야 말로 영남춤의 시작이자 완결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래서 중력에 반하여 떠올리는 발디딤이 무거워 춤이 깊어지고, 거칠고 투박한 어깨짓에 따라 춤을 맺고 멈추고 풀어 남해안 통영지방의 해학적 한이 녹아내리는 과정을 표현하며, 분출하는 강력한 힘의 균형과 조화로 통영춤의 근원적 원형이라 할 수 있겠다. 여덟 번째 작품은 문진수가 '광대소고춤'을 선사한다. 광대 소고춤은 20세기 초 노르베르트 베버 독일 신부가 촬영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에 등장하는 소고춤의 기예와 타법을 발굴, 복원 및 재현하고, 재구성, 재창조한 작품이다. 이 기록영상이 나오기 전까지는 소고는 단순히 농악, 무용, 선소리 등에 등장하는 부수적인 공연요소로 구조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광대 소고춤은 소고를 활용한 다양한 타법과 신체의 조화, 화려한 기교와 몸짓의 조화, 춤적 움직임을 극대화하여 독특한 춤사위로 표현한 특징을 지닌다. 문진수는 대한민국연희춤협회 회장, 국가무형유산 남사당, 발탈, 승무, 우도농악 이수자이다. 마지막 작품은 재인청예술단이 '이동안류 태평무'를 선사한다. '태평무'는 나라의 국태민안과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춤이다. 이동안류 태평무는 재인청 전통을 따라 당상관의 관복을 입고 추는데, 바지춤의 장점이 드러나게 동작이 섬세하고 역동적이면서도 의식을 거행하는 제관(祭官) 같은 위엄과 격식을 갖춘 절제의 멋이 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구름 위를 걷듯 출렁이고, 살얼음을 깨뜨리지 않는 사뿐한 발디딤에 무심한 듯 위엄이 깃든 절제된 표정에서는 격조 있는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정주미(재인청춤전승보존회 회장), 이종진(재인청예술단 부단장), 성수희(재인청예술단원)가 선보인다. 한국전통예술협회 송미숙(진주교육대학교 교수)이사장은 이 시대의 가무악시리즈 Ⅱ-한국전통의 맥 100인전-류파별 춤전’ 공연을 통해 전통예술의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고 예술생태계의 숲을 일구는 백화제방을 위한 이음의 현장을 성황리에 진행하고 있다. 송미숙은 춤 역사의 시간을 함께 해온 한국전통문화유산에 대한 올곧은 받듬과 이음을 위해 60여년 동안 예인들에게 전통춤을 사사해왔다. 전통과 창작무용을 익혀 무용교육과 공연예술가로 활동해온 송미숙은 1994년 무용단을 결성하여 현재까지 1,000여회 넘게 전통춤 관련 기획, 연출, 예술감독 역할을 해왔다. 송이사장은 "’한국전통의 맥 100인전‘을 통해 전통춤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찾아보고 다양한 측면에서 예술현장과 학술적 접근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알아가는 담론의 장을 펼치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전통예술협회는 2019년 창립 이후 전통예술과 인문학 콘텐츠를 바탕으로 인문사회, 문화예술, 전통예술 분야까지 새로운 지평을 넓혀오고 있다. 협회에서 정기적으로 발간하고 있는 학술지 '한국예술문화연구'는 문화예술 공론장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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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춤협회, 한국전통춤협회, "전통춤문화제 수건춤 100년사" 성료사단법인 한국전통춤협회(이사장 한혜경)가 한국 전통춤 큰잔치 ‘2024년 대한민국 전통춤문화제-수건춤 100년’을 오는 23-24일 2일 동안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개최했다. 학계에서는 이번 수건춤 100년사 재현은 학술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 첫째날 해설을 맡은 원로 전통춤연구가 이병옥 교수는 수건춤은 교방춤, 재인청춤, 무속계열춤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번에 다 보여주는 판이 벌어진 것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둘째날 해설을 맡은은 양종승 박사는 수건춤 100년의 역사적 전개 양상과 우리 전통춤 뿌리를 알게 하고 전승 유파의 다양성을 알게 하는 귀한 무대이었다. 전통민속예술 수건춤의 지속과 변용을 보여준 학계의 평가다. 이 행사장에서 한혜경 이사장을 만나게 되었다. Q. 한국전통춤협회 언제 창립되었나요. A. 한국전통춤협회 창립을 위해 2012년 7월 7일 창립추진위원회(위원장 채상묵, 위원 김정녀, 한혜경, 양종승, 김은희, 진유림 등 7명)가 결성되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17년 4월 6일 정부로부터 공식 사단법인이 인가되었다. Q.설립 취지는. A. 한국 전통춤은 한민족 역사와 함께 탄생하여 발전되어 온 우리 고유 민족예술의 모체이자 시원이며 한민족 영혼과 사상을 담고 있는 역사이며 철학이다. 따라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민족춤 계승과 발전을 위해 그 역할을 확대해 나가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임회원 모두는 시대적 사명감을 안고 전통춤의 무궁한 창성을 위해 전통춤의 체계적 보존전승은 물론 사회교육, 홍보진흥, 학술연구, 인재양성, 공연기획, 국제교류, 대외협력, 춤 콩쿠르 등을 위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Q. 한국전통춤협회는 어떤 단체인가요? A. 한국전통춤창립추진위원회가 2012년 발족되고 위원장으로 채상묵 교수를 모셨다. 한민족예술의 정수, '한국전통춤'을 널리 알리고자 각 장르별 전통춤보존회로 구성되어 창립된 국내 유일한 협회이다. Q. 한국전통춤협회 창립 취지는? A. 전통은 한민족 역사와 함께 탄생하여 발전되어 온 우리 고유 민족예술의 모체이자 시원이며, 한민족 영혼과 사상을 담고 있는 역사이며 철학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민족춤 계승과 발전을 위해 그 역할을 확대해 나가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취지를 펼치고자 전국 전통춤을 전승하고 있는 보존단체가 협력 관계로 뭉쳤다. 2012년 초부터 민족춤의 체계적 보존전승은 물론 사회교육, 홍보진흥, 학술연구, 인재양성, 공연기획, 국제교류를 위해 회합을 갖고 범 전통춤 관련자 모임을 추진하여 왔다. 이러한 결실을 맺고자 우리는 한국전통춤협회 창립과 더불어 시대적 사명감을 안고 전통춤의 무궁한 창성을 위해 더욱 분발하고자 한다. Q. 초대 위원에는 어떤 분이 동참하셨는지요? A. 채상묵교수를 위원장으로 모시고 김정녀(예능), 한혜경(예능), 양종승(연구), 김은희(예능), 진유림(예능)으로 출범했다. Q. 한국전통춤협회은 초대 이사장은 A. 초대 이사장 채상묵, 2대 이사장 이길주에 이어 3대 이사장은 제가 맡고 있습니다. Q.지난 해 얻은 성과는 A. 주요 사업으로 <대한민국전통춤문화제>, <한국춤 차세대전>, <한국춤 학술세미나>, <전통춤 학술총서 발간>, <한국춤 대경연>, <한국전통춤 보물전 해외 공연>, <전통춤 연수회>, <한국춤 전국지부공연>, <대한민국전통춤 예술대상 시상식>, <대한민국전통춤 4대 명무상 시상식> 등이 있다. 전통춤 발전과 보급을 위해 제1회전통춤대경연대회를 개최했다. 참가 부분은 학생부, 일반부, 명인부, 신인부로 나누었고. 김숙자 명인상, 이매방 명인상, 한영숙 명인상을 제정했다. 장르는 전통춤에서 타악춤, 창작무용까지 확장했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심사규정을 엄수하고 진행은 투명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Q.올해 역점 사업은 A. 한국 전통춤 큰잔치 ‘2024년 대한민국 전통춤문화제-수건춤 100년’을 오는 23-24일 2일 동안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개최했다. 첫째날에는 이병옥 교수의 해설과 함께, 최지원의 군무 동초수건춤, 박은하의 살풀이춤, 이지은의 도살풀이춤, 고재현의 군무 교방입춤, 이정애의 쌍수건춤, 김진원의 살풀이춤, 이미숙의 군무 경기수건춤이 펼쳐졌고, 둘째날에는 양종승 박사의 해설과 함께, 윤미라의 달구벌입춤, 채향순의 살풀이춤, 권영심의 교방살풀이춤, 임현선의 즉흥무, 문숙경의 군무 살풀이춤, 김경란의 논개별곡, 이정희의 군무 도살풀이춤이 열렸다. 올해에도 제2회전통춤대경연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한국전통춤협회는 해외 지부를 거점으로 미국 및 유럽과도 연결하여 한국의 전통춤 보급과 전수 활동을 펼치려는 계획하고 있다. Q.국악계에 하고 싶은 말씀은 A.유구한 역사속에서 우리선조들의 피눈물나는 질곡의 삶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보존및 계승ㆍ발전이라는 사명감에 오늘 날 찬란한 국악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작금의 국악계는 온전한 계승의 문제점을 안고있다고 보고있다. 찬란히 빛나야 할 우리의 국악발전은 염두에 있지아니하고 이권 다툼과 계파싸움이 팽배해 있다고 보여진다. 우리의 후학들과 후손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남겨줄수 있을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부분이라고 생각한다.문화유산은 먼저 올곧은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습득하고 터득된 예술세계를 물려줌이 마땅하다고 본다. 서로 일보양보하고 화합하여 개인의 영리보다는 국악계의 발전을 꾀해야 할것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국악유산이 후대에 이르기까지 무궁한 보존 및 계승 발전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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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전통춤문화제-수건춤 100년' 성료사단법인 한국전통춤협회가 한국 전통춤 큰잔치 ‘2024년 대한민국 전통춤문화제-수건춤 100년’을 오는 23-24일 2일 동안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개최했다. 둘째날에는 양종승 박사의 해설과 함께, 윤미라의 달구벌입춤, 채향순의 살풀이춤, 권영심의 교방살풀이춤, 임현선의 즉흥무, 문숙경의 군무 살풀이춤(백수연, 하수연, 김주연, 유지숙, 나현아, 임정민, 김희영, 임예린), 김경란의 논개별곡, 이정희의 군무 도살풀이춤(이주원, 장보름이, 김영찬, 송창현, 김율희, 이병근, 엄아라, 이유담)이 무대를 열었다. 둘째날 선사된 7인 7색 수건춤 작품은 수건춤 100년의 역사적 전개 양상과 우리 전통춤 뿌리를 알게 하고 전승 유파의 다양성을 알게 하는 귀한 무대이었다. 양종승 박사는 "수건춤은 거슬러 올라가면 신앙 의례로 시작된 춤이었고, 그것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무대 예술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전문 예인집단의 놀이춤, 교방-권번 기녀의 향연춤 그리고 오늘날 무대 예술의 문화재춤으로 거듭났다. 이어 "이번 공연은 그러한 전통 수건춤의 역사적 흐름과 시대적 전승과정에서 미학적으로 꽃피어진 면모를 살필 수 있는 감동적 무대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옛 정신을 기반으로 현대적인 시대적 가치를 담아낸 지혜로운 춤판, 그 속에 큰 세상으로 나아 가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기에 더욱 의미있었다"고 전했다. 1990년 국가무형문화재 지정된 수건춤은 즉흥적인 춤을 말하며, ‘도살풀이춤’ 또는 ‘허튼춤’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수건춤, 산조춤, 즉흥춤이라는 이름의 수건춤이었으나 춤꾼 한성준이 1903년에 극장공연에서 살풀이란 말을 쓴 데서부터 살풀이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다. 첫째날 해설을 맡은 원로 전통춤연구가 이병옥 교수는 "살풀이는 무속 의식(巫俗儀式)에서 액(厄)을 풀어낸다는 뜻인 곧, 살(煞)을 푸는 춤으로 일명 도살풀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그 해의 액을 풀기 위하여 굿판을 벌이고 살을 푸는 춤을 추어 왔으므로 무속(巫俗)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여진다고 한다. 수건춤은 교방춤, 재인청춤, 무속계열춤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번에 다 보여주는 판이 벌어진 것은 역사적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수건춤은 행사에서 빠지지 않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하는 춤으로서 예술성을 인정하여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번 수건춤 100년사 재현은 학술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 독무와 군무로 웅장하게 펼쳐진 무대는 우리가 지켜 나아갈 전통춤의 지속과 변화에 대한 많은 관심과 기대를 가지게 하였다. 행사를 마치고 한국전통춤협회 한혜경 이사장은 "전통춤 전승자, 연구자, 지도자들이 힘을 모아 결성한 한국전통춤협회가 준비한 한국의 수건춤 100년 역사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값진 무대이다. 독무과 군무 무대를 구성하여 수건춤의 예술성과 진수를 선사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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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한국 전통춤 계승과 발전방향문화론적 시각과 미래 방안 1. 전통춤 패러다임과 계승 문제의 접근방법 문화는 시대가 변하고 사회환경이 변함에 따라 새롭게 적응하면서 변천한다. 따라서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발전하면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이 형성되며 춤의 양상(樣相)과 양태(樣態)도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라 변모(變貌)한다.서양춤의 변모는 고대의 의식적(儀式的)인 리투얼 댄스(Ritual Dance)로부터 중세 포크댄스(folk dance)와 코트댄스(court dance), 절제와 균형의 합일을 강조하는 18세기 클래식 발레(Classical Ballet), 꿈과 이상의 도약을 향한 19세기 로맨틱 발레(Romantic Ballet), 로맨틱 발레(Romantic Ballet)의 주관적인 형식미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창조된 모던 댄스(Modern Dance)로 변화되는 과정을 거쳐 왔다. 한국춤 역시 고대의 제천의식춤(祭天儀式舞), 중세의 종교의식춤(宗敎儀式舞), 민속춤(民俗舞), 근세의 궁중춤(宮中舞), 민속춤(民俗舞), 종교의식춤(宗敎儀式舞), 현대의 전통춤(傳統舞), 창작춤(創作舞), 외래춤(外來舞) 등 각 시대별로 주요한 패러다임(paradigm)이 존재해 왔으며, 또 각 시대별로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구시대의 패러다임이 대체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편의상 우리는 근대이전 시대의 전통양식을 갖춘 춤들을 통틀어 ‘전통춤’이라고 하고 근대 이후에 유입된 발레와 모던댄스를 ‘외래춤(외국춤)’으로 구분한다. ‘한국춤’은 협의로 전통춤과 한국창작춤을 포함하여 말하기도 하고, 광의로 한국에서 한국인이 추는 외래춤까지도 포괄하기도 한다. 명칭도 한때는 ‘신무용’, ‘고전무용’, ‘한국무용’, ‘민속무용’, ‘전통무용’ 등으로 두서없이 부르기도 하였고, ‘무용’과 ‘춤’도 혼용하여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근대는 갑오경장 이후 서구 열강들과 교류가 시작되면서 모든 문물이 서서히 유입되고 변화양상을 보이면서 1902년 협률사의 등장으로 과거에 궁중과 기방 등에서 추던 춤들이 최초로 극장공간과 공연문화가 태동하면서 극장춤으로 시도되었다. 외국춤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1920년대 이후는 발레와 현대춤이 자리 잡아 가면서 전통춤과 창작한국춤과 함께 한국춤계를 주도하며 저변을 확대해갔다.이에 근현대를 거치면서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전통춤의 계승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문화론적 시각에서 계승문제를 접근하고 미래 발전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전통춤 계승에 관한 다양한 문제점 중에서 문화환경적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문제점을 제기하여 계승문제를 파악하기로 한다.① 외래문명 범람에 대한 국가사회적 대처능력 문제② 외래문화에 대한 우월주의와 전통문화에 대한 비하주의 문제③ 사제전승의 도제식(徒弟式) 전수교육의 문제④ 새로운 전통문화 창조와 발전 문제 2. 전통춤 현황과 접근배경 1) 전통춤 종류와 무형문화재 지정종목 현황 한국의 전통춤도 시대변천에 따라 부침(浮沈)을 계속하면서 현대까지 전승되었다. 이상은 전통춤 분류와 몇몇 종목의 예시일 뿐이고 근현대로 전승한 궁중춤 50여종, 무당들의 무구춤 300여종, 재인청춤(화성 50여종, 안성향당춤 40여종)과 전통예인들이 전승한 춤(한성준 80여종, 김인호 30여종, 김덕명 20여종) 등등 정병호 정리 370여종을 포함한 필자 조사 1000여종의 전승춤 등 수없이 많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춤종목은 강강술래(8호, 소리춤), 진주검무(12호), 승무(27호), 승전무(21호), 처용무(39호), 학연화대 합설무(40호), 태평무(92호), 살풀이춤(97호) 등 8종이며,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춤종목은 한량무(서울45호), 살풀이춤(서울46호), 동래학춤(부산3호), 동래고무(부산10호), 동래한량춤(부산14호), 승무·살풀이춤(경기8호), 안성향당무(경기34호), 고깔소고춤(경기56호), 승무(대전15호), 입춤(대전21호), 살풀이춤(대전20호), 승무(충남27호), 살풀이춤(대구9호), 호남살풀이춤(전북15호), 한량춤(전북44호), 호남산조춤(전북47호), 예기무(전북48호), 진주한량무(경남3호), 진주포구락(경남12호), 진주교방굿거리춤(경남21호), 범패와 작법무(인천10호), 날뫼북춤(대구2호), 수건춤(18호), 진도북춤(전남18호), 화관무(황해4호), 평양검무(펑남1호), 부채춤(평남3호) 등 27종이 있다. 그밖에도 중국 동북3성 등지에서 전승되는 조선족춤 중에도 많은 춤종목이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전승하고 있다. 즉 유네스코에 등재된 조선족농악무(象帽舞、乞粒舞)를 비롯하여 길림성의 조선족아박무(牙拍舞, 안도현), 조선족부채춤(연변주), 조선족칼춤(도문시), 조선족원고무(도문시), 조선족학춤(안도현), 조선족접시춤(훈춘시), 조선족장고무(도문시), 조선족손북춤(手鼓舞, 도문시), 조선족방치춤(棒槌舞, 도문시), 조선족상모춤(연변주, 국가급), 조선족삼노인(화룡시), 조선족탈춤(도문시), 조선족칼춤(연변주), 조선족찰떡춤(떡메춤 打糕舞, 연변주), 요녕성의 조선족농악무(农乐舞, 乞粒舞, 본계), 조선족탈춤(철령), 흑룡강성의 조선족접시춤(碟子舞, 감남현), 조선족물동이춤(顶水舞, 목단강시), 조선족아박무(牙拍舞, 해림시) 등 20여종이 지정되어 있다(2012년 목록). 2) 전통춤 계승문제의 접근배경전통춤 계승문제를 분석하는 도구로 <문화의 5대 특성>과 <문화인류학적 3대 시각>에서 전통춤의 계승문제를 분석하고 나타난 문제점을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하는 발전방향을 제시하기로 한다. 현대생활에서 다양한 분야에서 흔히 쓰이는 ‘문화(culture)’는 학습성(후천성), 공유성, 축적성, 변동성(다양성), 전체성(통합성) 등 5대 특성(속성)을 가진다.① 학습성(후천성): 인간의 문화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학습된다는 것이다. ② 공유성: 인간은 서로 공통된 행동과 생활양식, 즉 서로 고유한 문화를 공유하게 된다.③ 축적성: 문화는 서로 발달하고 상호작용하며 축적되면서 진보하게 된다.④ 변동성(다양성): 축적되는 문화를 통해서 항상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게 변동하여 발전한다.⑤ 전체성(통합성): 문화는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로 비슷하게 연관되어 통합성을 지닌다. 또한 문화인류학의 문화에 대한 시각에는 ‘총체론적 시각(holistic perspective)’, ‘상대론적 시각(relative perspective또는 cultural relativism)’ 그리고 ‘비교론적 시각(comparative perspective)’이 있다(한상복 외, l985). ①총체론적 시각(holistic perspective) 문화는 생활양식의 여러 측면, 즉 정치, 경제, 법률, 가족, 친족, 종교, 예술, 관습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문화를 이해하는 데는 그 민족의 생활관습이라든가 사고방식, 생산양식, 인간관계, 신앙생활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하여 그 문화와 관련된 많은 항목들과 총체적으로 연관지어 설명해야 의미관련(relevance)을 좀 더 명확하고 본질적이고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승무는 언제, 어디서, 누가, 왜, 어떻게, 무엇으로 추었는지를 종합적으로 파악하여야 하는데 흔히 춤사위와 계보 수준에서 머물면 그 춤의 총체적인 면을 알 수가 없이 춤동작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②상대론적 시각(relative perspective, cultural relativism)타문화를 자신의 문화와 대등한 입장에서 사회적 맥락과 그 민족의 생활사(life history)를 이해하려는 것으로 타문화를 함부로 평가 비하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자세이다. 어느 민족의 문화이건 각기 역사와 가치, 신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타문화에 대해 편견이나 ‘자민족중심주의(문화국수주의, ethnocentrism)’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은 ‘문화적 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문화는 아무리 미개민족의 하찮은 민속춤이라 할지라도 예술적으로 뛰어난 발레와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거나 자기 민족춤은 우수하고 타민족춤은 열등하다는 시각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그동안 근현대기를 지나면서 한국전통문화를 우월하게 놓거나 비하하는 수많은 사례를 겪으면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전통춤에서도 한국과 여타 아시아국의 춤에 대해 비교우위나 비하의식이 남아있고, 무형문화재 지정춤과 비지정춤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나면서 추종과 외면현상으로 수많은 춤들이 소멸되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흔히 궁중춤은 품격이 있고 민간춤은 저급하다는 시각과 문화재 지정춤은 우수하고 비지정춤은 열등하다는 시각은 그릇된 태도이며 다같이 소중한 한국전통춤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③비교론적 시각(comparative perspective)비교론적 시각은 두 지역 이상의 민족이나 지역의 문화를 비교 연구하여 유사성 또는 공통점과 상이성을 명확히 규명하여 ‘보편화(普遍化, generalization)’하고 ‘특정화(特定化, specification)’하는 것이다. 즉 인간사회와 문화의 본질을 ‘일반화(一般化)’하는 관점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한영숙살풀이춤(재인계, 서울중부지역)과 이매방살풀이춤(기방계, 호남지역), 김숙자살풀이춤(신당계, 경기남부지역) 등의 보편성과 일반성, 지역성, 공통성, 상이성 등을 명확히 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3. 전통춤 계승의 문제점 1) 문화환경적 관점에서 본 문제점 문화환경적 관점에서 볼 때 전통춤은 이러한 특성에 맞게 잘 전승하고 있는지 파악해 볼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 전통춤 계승에서 나타난 문제를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외래문명 범람에 대한 국가사회적 대처능력 문제 –정책과 여과능력 부재 국권마저 상실했던 근대시기에 아무런 대응과 여과 없이 일본을 통해 서구문명이 유입되었다. 1926년 이시이바꾸(石井漠)을 통해 서구 현대무용이 유입되었고, 최승희, 조택원들이 제자로 일본유학을 다녀와 한국무용계를 주도하였다. 미국을 위시하여 유럽을 통해 지속적으로 발레와 현대무용이 유입되어 한국무용계에는 한국무용(전통춤 포함), 현대무용, 발레의 삼분법으로 대학무용학과가 설립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② 외래문화에 대한 우월주의와 전통문화에 대한 비하주의 문제- 열등주의와 사대주의 19세기말 갑오경장(1894)으로 구시대적 문물제도를 버리고 서양의 법식을 본받아 새 국가체제를 확립하려는 개혁을 기점으로 근대화는 점차적으로 정착되어갔으며, 한편에서는 한국 사회의 내재적 사정을 반영한 측면을 중시하였고 그것은 민족적 자각의 발로가 되어 민족주의가 발현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신문화의 유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힘입어 ‘신무용’이 ‘예술’로 인정되면서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나 전통시대의 춤을 ‘비예술(非藝術)’로 기녀나 무당이나 민간인들이 추는 낡고 촌스런 문화로 무시하는 경향도 팽배하게 되었다. 한편에서는 이에 대응하는 민족주의의식이 깨어나 최남선, 손진태, 송석하 등의 민족주의자들이 민속문화를 연구하고 민족자각 의식을 일깨우는 노력을 하였고, 신무용에 대응하는 전통춤을 발굴하고 무대화하는 노력도 미약하나 발현되기도 하였다. 1902년 협률사와 1907년 광무대 등에서 재인청출신 김인호와 뒤를 이은 한성준 등이 전통춤의 무대화를 위해 기녀들에게 춤을 가르치고 지도하여 무대에 지속적으로 올리고 정립하였다. ③ 사제전승의 도제식(徒弟式) 전수교육의 문제-원형전수와 폐쇄적 교육 한국의 전통적 교육방식은 도제식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예능분야 역시 스승의 독창적 비법을 전수받아 구전심수(口傳心授)로 계승하였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똑똑한 제자들은 스승의 기법을 배우고 자기개발을 통해 더욱 문화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발전시켜나갔다. 그런데 무형문화재법이 제정된 이후로는 ‘원형전수’라는 미명하에 스승의 기법을 한 치라도 변화시키면 위법이라고 하여 문화의 발전지체 현상 속에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는 이매방 승무와 살풀이춤을 순서 하나라도 틀리면 큰 죄를 짓는 국가문화적 구조 속에 살고 있다. ④ 새로운 전통문화 창조와 발전 문제 –창조적 계승의 원천봉쇄 해방 후에는 더 개방적이어서 미국과 유럽등지에서 외래문화가 직수입되어 이전보다 수용과 대응문제에서 여전히 갈피를 못 잡아 왔다. 전통문화의 위급상황이 되니 극약처방으로 1962년 문화재보호법(법률 제961호)을 시행하게 되어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등을 무형문화재 춤종목으로 지정하여 국가적 보호아래 보존 전승하게 되었다. 그리고 50여 년 동안 문화재보호법에 안주하여 특혜를 누리면서 지내왔지만 지정되지 못한 수많은 전통춤들은 반대로 더 소외되고 인멸되는 비극을 잉태하였다. 게다가 ‘원형보존’이라는 무형문화재법의 지시를 거스를 수 없어 일방적 전수만이 지속되면서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다. 변화해가는 현대문화와 세계화에 더욱더 멀어지고 대한민국시대의 전통춤을 창조해내지 못하는 편식과 전통문화적 암흑기를 맞이하고 있다. 2) 제도적 관점에서 본 문제점 ① 무형문화재 제도 지정당시의 문제-전통문화의 소멸위기-국가관리 전통문화의 위급상황이 되니 극약처방으로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시행하게 되어 승무, 살풀이춤, 태평무 등을 무형문화재 춤종목으로 지정하여 국가적 보호아래 보존 전승하게 되었다. 결국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근대 국제정세의 서세동점(西勢東占)과 근현대화로 인한 ‘전통문화유산의 소멸위기’를 극복하려는 시급성 때문이었다. ② 무형문화재 제도 현재의 문제-‘원형’보존의 박제화-‘전형’ 개념도입현재는 ‘문화원형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상 전승과 평가의 기준이 되는 ‘문화원형 실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불확실하고 애매한 것이다. 원형(原形)과 원형(原型)은 있긴 있으나 고정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문화의 속성은 원형질(原形質)은 있으나 형태(形態)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는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무형(無形)문화재인 것이다. 문화원형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해마다 변화된 형태를 남기면서 ‘성장(成長)하는 생명체(生命體)’와 같은 것이다. 시간의 흔적은 있으나 고정된 형태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최소한의 ‘시형(時形) 또는 시형(時型)’을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문화재보호법이 시행된 지 50여년이 지나는 과정에서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의 보존전승이라는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비지정문화재의 무관심과 소외현상도 심화되는 역기능도 나타나고 있으며, 지정종목도 ‘원형전승’이라는 굴레에 사로잡혀 퇴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어서 2015년 다시 ‘무형문화재법’이 제정되면서 ‘원형(原形)’논리에서 ‘전형(典型)’으로 그동안 지나치게 박제화 되었던 무형문화재의 발전변모의 가능성을 담보하면서 유네스코 무형유산 운영기준과 연계한 법안으로 시행하기에 이르렀다.근본적으로 전통시대의 문화 변동은 극히 제한적이거나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느슨하고 장기적인 변화였다. 이러한 정적인 문화환경에 살아온 한국인은 근대 서구문명의 범람과 현대화 과정에서 동적인 문화변동에 대처능력도 미흡했고, 보수적인 시각으로 개혁에 미온적이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도제식으로 똑같이 재현하는 방식으로 전수받아온 장인정신은 변화를 부정하고 자연발생적이고 수동적인 전승에 안주하여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일각의 전승 성향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4. 전통춤의 미래 발전 방향 1) 전통춤에 대한 문화론적 발전 방향① 문화에 대한 3대 시각인 '총체론적 시각(holistic perspective)', '상대론적 시각(relative perspective)' ,'비교론적 시각(comparative perspective)'을 견지해야 한다. 특히 '상대론적 시각(relative perspective)'으로 1000여종에 이르는 비지정 춤에 대한 관심과 전승에 지정춤과 동격으로 전승발전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화, 무대화, 전승력을 키워야 한다. ② 문화의 5대 특성인 학습성(후천성), 공유성, 축적성, 변동성(다양성), 전체성(통합성) 등의 입장에서 발전시킨다. 특히 변동성(다양성)에 관심을 가지고 이제는 ‘원형’보다는 ‘전형’의 개념으로 발전적인 방향모색이 필요하다. 전형개념에는 ‘원형’과 ‘발전’이라는 두 가지가 존재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최초 전수 당시의 춤을 기본으로 간직하며 시대변화에 적응하는 발전적인 노역을 경주하는 이중적이고 양면적 전승이 필요하다. 이것이 또한 축적성이며 역사성이 되어간다. 2) 전통춤에 대한 원론적 발전 방향 ① 삼원적(三元的) 전승방향 국제로 시야를 넓혀 한국과 가까이는 한중일, 그리고 세계라는 차원에서 볼 때 결국 삼원적(三元的)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즉 한국의 전통춤을 원형대로 지켜나가는 일(원형적 전승), 전통춤을 현시대에 맞게 발전시켜나가는 일(발전적 전승), 세계가 하나로 집약되고 가까워지는 현대사회에 세계춤과 함께할 수 있는 예술춤을 창조해 나가는 일(창조적 전승)이다. ② 세계화 방향 지금까지 전통문화는 「토착화」에 주력했다면 이후는 세계적인 「보편화」가 과제이다. 소멸되던 전통춤은 일차적으로 한국화(韓國化)작업이었다. 글로벌시대에는 세계화가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대세이다. 주체성이 ‘국내적’(한국문화, 한국춤)이라면 세계성은 ‘국제적’(국제문화, 국제춤)이다. 주체성이 자기를 지키는 ‘보수’라면 세계성은 자문화와는 별개로 타문화를 받아들이는 ‘개방’이다. 또 문화논리로 보면 주체성은 ‘전통성, 수구성, 독창성’이고 세계성은 ‘외래성, 통합성, 전파성’에 비유된다. 즉 주체성(국내문화)과 세계성(국제문화)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두 명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상반관계’가 아니라 ‘상호관계’에서 출발해야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는 문화수입이 문화수출보다 비중이 더 컸다. 그러나 문화예술의 국제경쟁력 측면에서 보면 여태 밑지며 살아왔다. 남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만 급급했지 우리문화를 세계시장에 내세우는 노력은 미흡했다는 것이다. 최근에 비로소 ‘한류문화, K-culture’(K-pop, 한국음식, 화장품, 드라마 등)가 세계무대에 전파되기 시작하는 추세이다. 따라서 전통춤이 국내적으로 스포츠댄스, 힙합 등에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는 일과 더불어 ‘한류춤, K-dance’로서 세계무대로 지평을 넓혀 나가야 한다. ③ 대한민국시대 신전통춤의 창조 노력 5천년의 한국 문화사에서 전통문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도자기문화를 살펴보면 선사시대 토기에서 고려시대 상감청자를 거쳐 조선시대의 백자기로 창조하여 찬란한 전통문화로 자리매김하였다. 전통춤도 시대별로 다양한 춤들이 창조되고 전승되었다. 근세말 효명세자는 20종의 궁중춤을 창조했다. 김인호와 한성준은 100여종의 전통춤을 정립하여 전승시켰다. 그러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한국무용가들은 대한민국시대 전통춤을 창조 또는 재창조하고 있는가? 지금까지 우리는 조선시대나 근대의 과거춤에 매달려 미래춤을 창조하는데 소홀히 했다. 우리보다 북한은 전통춤은 무시했지만 민족적인 색채를 띤 새로운 민속춤을 부단히 창출했다. 물론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가 전통고수에 매달리는 동안 북한은 재창조에 매달렸다.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신전통춤, 재창조춤 등을 지속적으로 창조해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김백봉 부채춤은 세계무대에서는 한국민속춤으로 이미 자리매김하고 있는데 우리는 전통춤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경향이다. 이러한 신전통춤들이 쏟아져 나와야 미래국가시대가 도래했을 때 대한민국시대에 찬란한 전통춤들이 창조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문화(춤)는 생명체는 아니지만 생명력(전승력)을 지니고 진화하며 오랜 동안 전승하게 되는데 문화의 속성에서 벗어나면 소멸된다.” -이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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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57)<br> 김숙자 명인의 '도살풀이춤' 춤사위도살풀이춤 살(煞)을 푸는 민속무용의 일종으로 경기도도당굿의 영향을 받은 살풀이춤을 가리키는데 주로 김숙자(金淑子)류의 살풀이춤을 지칭한다. ‘도살풀이’는 ‘도당 살풀이’를 줄인 말로서 흉살과 재난을 소멸시켜 안심입명, 행복을 비는 무속 행위이다. 경기도도당굿에서는 각 거리마다 연주되는 도살풀이장단에 맞추어 무녀가 소리를 하며 부채와 방울 등 무구(巫具)를 들고 어정거리며 춤을 춘다. 특히 경기도도당굿 12거리의 마지막 의식에서도 춤을 추는데 이 춤을 도살풀이춤이라 부른다. 그러나 경기도도당굿에서 추는 도살풀이춤은 의식적인 성격이 강해 단순한 춤사위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어서 이를 무용으로 양식화했다고 볼 수 없다. 이에 반해 김숙자류의 도살풀이춤은 경기도도당굿의 무속적 특성들이 전통무용의 내외적 형식미로 양식화되어 있어 전통무용의 범주에서는 이를 ‘도살풀이춤’으로 인식하고 있다. 판소리, 무용, 가야금 등 가무악에 능한 김숙자는 여성이지만 무속계와 재인청과 연계된 전통예능인의 집안 내력을 가지고 태어나 경기무속춤과 재인청춤의 두가지를 무대예술로 발전시켰다. 그의 할아버지는 조선조 고종, 순종 시기에 중고제 판소리 춘향가로 이름을 날리던 충청남도 공주 출신 김석창 명창이고. 아버지 김덕순도 조선성악연구회에서 활동한 춤과 창의 명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모친 정귀성은 세습무가의 전통을 가진 유명한 당골네이다. 경기도 지방의 도당굿에 나오는 춤을 고전무용으로 재창조해 진쇠춤, 터벌림춤, 제석춤, 부정놀이, 도살풀이춤 등을 발표함으로써 무속 예술 보존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도살풀이춤은 목젖놀이, 발차는 사위, 용 사위, 낙엽 사위 등 다른 전통춤에서 볼 수 없는 특징적인 동작을 갖고 있어 경기 무속춤 중 가장 어려우면서도 예술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숙자(1926〜1991) 경기도 안성 출생. 1932년(6세) 부친 김덕순에게 춤을 전수받기 시작 1937년(11세) 줄타기 학습 시작 1945년(20세) 칠성사에서 부친과 공부 1950년(25세) 대전 민속무용발표회(4회) 1961년(40세) 김숙자고전무용학원 창설 1961년(40세) 김숙자무용학원 창립 1962년(41세) 문화공보부 장관상 수상 1984년(59세)무용예술큰잔치: 민속무용 김숙자의 <도살풀이> (국립극장 대극장) 1990년(65세) 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 '도살풀이춤' 예능보유자 인정 1991년(66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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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꾼 이동안, 나의 스승 이동안운학 이동안 선생. 한 때 전국을 떠돌며 온갖 기예로 명성을 떨친 재인이다. 선생은 1906년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송곡리에서 재인청의 세습광대 후예인 이재학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이동안 명인은 재인청의 예맥을 이어 내린 세기의 광대로 김인호의 제자다. 명창 이동백과 근대무용의 아버지 한성준의 증언에 따르면 김인호는 구한말 순종과 함께 대청마루에서 놀았던 광대 중의 광대였던 인물이다. 이동안 선생의 집안은 세습광대의 집안으로 할아버지(이화실)는 단가와 피리의 명인이었고, 작은할아버지(이창실)도 줄타기의 명수였다. 이런 광대의 가문으로 맥을 이어온 이동안 선생의 집안이었지만, 선생의 아버지인 이재학은 이동안 선생에게 어렸을 때부터 사물(꽹과리, 북, 징, 장고)이나 젓대(대금), 피리를 잡게 하는 대신 서당에 보내 글공부를 시켰다. 하지만 선생은 집에서는 글방 간다고 나와서 글공부는 안하고 이 동네 저 동네 인근 마을에까지 남사당 패거리들의 굿판을 따라다니며 구경하는데 정신을 빼앗겼다. 급기야 선생은 글방에 간다고 집에서 메고 온 책보를 뒷산 소나무에 걸어놓고 김석철 광대를 따라나섰다. 결국 선생은 남사당패를 따라 황해도 황주땅까지 간다. 14세 소년 이동안은 그렇게 끼를 주체할 수가 없어 방랑의 길을 시작했다. 선생이 남사당패에 들어 간 지 일 년쯤 되었을 때, 어느 날 황해 장터에 아버지 이재학이 나타났다. 아버지에게 이끌려 화성 집으로 돌아온 선생은 두 살 위인 최연화라는 처녀와 결혼을 한다. 그때 선생의 나이가 14세였는데 신부보다는 소리와 어름타고 땅재주 넘는 모습만이 눈 앞에 어른거려 결혼 4년 만에 집을 다시 뛰쳐 나온다. 선생은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방황 끝에 광무대에 취직 이곳에서 재인청의 춤 선생인 . 김인호선생으로부터 팔박기본무.태평무.진쇠춤.엇중몰이신칼대신무등 30여 종 춤을 배웠다. 발탈로 국가무형문화재 기예능 인정을 받은 선생에게는 춤을 배우는 제자들이 그리 몰려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춤으로 문화재 지정을 받지 못한 것이 가장 한스런 일이다. 발탈의 맥이 끊기지 않기 위해 받은 것이지만. ”(이동안) 나는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재인청 춤의 정수인 태평무를 전수받았다. 이동안 선생은 정주미에게 ‘태평무 이수증’을 수여하고 재인청 본류의 장단이 담긴 ‘태평무’음악을 연주녹음하여 재인청 '이동안류 태평무’의 본류를 지키도록 전수를 해주셨다. "나는 춤꾼이다. 우리 춤에도 이른바 여러 유파가 있어서 굳이 유파 속에 나를 넣는다면 ‘재인청’이라는 유파의 춤꾼이다. 그런데 재인청은 한국무용사의 입장에서는 결코 유파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재인청은 하나의 유파인데 유파가 아니라는 얘기다."(정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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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성 화백의 춤새(56) <br> 이동안 명인의 '재인청 이동안류 태평무' 춤사위이동안류 태평무 격조와 품격의 아름다움이 절도 있게 드러나는 춤이다.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으면서도 구름 위를 걷듯 출렁이면서 살얼음을 깨뜨리지 않는 사뿐한 디딤은 압권이다. 여기에 긴 한삼자락을 펼치고 뿌려 거둬들이는 팔사위와 의식을 거행하는 제관(祭官) 같은 위엄이 깃든, 그러면서도 무심한 듯한 표정은 절제의 멋을 더해 준다. 장단으로는 긴 호흡을 가다듬는 춤의 첫 장면에서는 ‘길군악’ 음악을 뒤집어 ‘낙궁’이라 부르는 장단으로 시작한다. 구음이 들어가는 행차 걸음으로 의식무로서의 분위기를 잡는다. 부정놀이 장면에서는 24박을 한 장단으로 엮어 제관의 의식처럼 사방을 다니며 인사로 예를 다하는 춤을 춘다. 반서림(터벌림)에서는 5박 x 5박을 한 장단으로 하여 홑박의 묘미인 밝고 경쾌함이 나타나며 ‘흥’의 감정으로 리드미컬한 발동작과 팔사위로 짜임새를 만든다. 엇모리로 넘어오면서 타악기로만 반주하는 음악이 10박을 한 장단으로 하여 기악과 구음이 들어와 떠들썩하게 흥청거리고 비틀거리고 고뇌하며, 서민적인 정서를 엮어 고뇌가 깃들어 있는 관과 민을 아우르는 마음이 드러난다. 갑자기 번개치는 올림채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장구와 꽹과리 음악으로 몰아치며 춤이 잘게 쪼개어지고 급박한 다이나믹함으로 숨 막히게도 하지만 결코 위엄을 잃지 않는 속도감 있는 역전의 분위기를 만든다. 잦은몰이 일환인 경상도 엇굿거리, 넘김채, 겹마치기장단이 이어질 땐 급하면서도 질서와 규범이 있는 발동작이 이어지는데, 땅을 꾹꾹 디디는 발놀림이 화려하다. 열정과 신명이 솟는가 하면 넉넉하고 편안한 분위기와 생기 있고 발랄한 분위기가 이어지는데, 하늘을 향하여 한껏 펼쳐지는 한삼은 땅과 하늘이 하나 되듯 연출되며 태평성대를 느끼게 한다. 위의 요소들은 여느 태평무와는 다르게 이동안 선생의 태평무만이 갖는 중요한 특징이다. 그래서 이동안 태평무는 민속무의 대표적 두 줄기인 승무와 살풀이춤 못지않은 극적 요소를 갖춘 춤으로 인정받는다. 이동안 이동안 선생은 전통 무용가이며 재인청의 춤꾼이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인으로, 화성 재인청 마지막 도대방(수장)이었다. 재인청은 조선시대 직업적인 예능인들의 연예 활동을 행정적으로 관장하고 교육하던 기관으로 오늘날의 예술인총연합(예총) 격인데, 예로부터 전해오던 모든 춤을 다듬고 창안하며 전승시킨 위대한 춤꾼 김인호 선생이 재인청 출신이다. 이동안 선생은 재인청의 수장이 되어 우리 전통춤과 장단 그리고 당대 최고의 명인들로부터 배운 기예와 전통 예술을 지키고 보존하며 전통 예술과 예맥의 전승이라는 과업을 완수하고자 했다. 당대의 춤 명인이던 김인호 선생은 이동안 선생의 뛰어난 춤 실력을 인정하고 그를 유일한 제자로 삼아 10여 년에 걸쳐 살풀이, 태평무, 승무, 진쇠춤, 검무, 희극무, 북춤, 소고춤 등 30여 종의 전통무용과 장단을 전수해주었다. 이동안 선생은 국극전용극장인 광무대를 시작으로 원각사, 문락정 등 극장과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재인청 춤을 공연하였다. 또한 우리 전통춤의 맥을 잇고자 부산대, 동아대, 부산교대, 선화예고, 리틀엔젤스 어린이무용단과 전통예술고 등에서 우리 춤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여성농악단을 조직하고 무용연구소를 열어 내로라하는 춤꾼들을 길러내고 전통문화의 기틀을 세우는 데 공헌했다. 김인호 선생의 전통을 잇는 이동안 선생의 태평무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발탈과 함께 1983년에 중요무형문화재 보고 조사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당시 이동안 선생이 가지고 있는 기예인 ‘발탈’을 독특한 종목이라 판단한 심사위원들은 ‘발탈’을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결정하였다. 80년 춤 인생을 인정받지 못한 이동안 선생은 "내가 안 하면 끊긴다고 해서 발탈로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았지만, 사실 나는 춤꾼이지 재주꾼이 아니다”라며 크게 낙심하였다. 기회는 다시 왔다. 1988년 태평무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한 심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심사과정에서 발탈로 인간문화재가 된 이동안 선생을 춤꾼으로, 그의 춤을 무형문화재로 인정할 수 없다는 시선에 갇히고 말았다. 결국 전통 그대로의 바지춤을 고수하며 재인청의 예맥을 이어온 이동안류 태평무는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해 무형문화재에서 탈락하였고,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김인호와 이동안의 태평무는 전통을 지켜왔음에도 비주류로 전락하는 아픔을 겪고 말았다.(재인청춤보존회장 정주미) 이동안(1906-1995) 1920 광무대 생활 시작. 태평무, 진쇠춤 등 공연 1927 일본 전역 순회공연 (태평무, 진쇠춤) 1929 대동가극단의 임방울, 이화중선 함께 중국 순회공연 1983 국가무형문화재 제79호 ‘발탈’ 예능보유자로 지정 1992 한국명인전 (엇중몰이신칼대신무) 1994 이동안 전통무용 발표회 (태평무, 진쇠춤, 엇중몰이신칼대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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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재인청의 맥을 이은 조선의 마지막 춤꾼, 이동안 명인운학(雲鶴) 이동안(1906~1995)은 경기도 화성이 낳은 재인청의 춤꾼이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인이다. 수많은 제자들을 배출하고 전통문화의 기틀을 세우는데 기여했다. 열네 살 어린 나이에 화성 재인청의 최고 자리인 도대방에 올랐던 그는 광무대(光武薹)에서 공연 생활을 하게 되면서 경기재인청 출신인 춤과 장단의 명인 김인호, 줄타기의 명인 김관보, 발탈과 재담의 명인 박춘재, 남도소리의 명인 조진영, 대금 피리 해금의 명인 장점보, 태평소의 명인 방태진 등으로부터 각종 기예를 익혔다. 당대 최고의 명인들로부터 배운 기예는 이후 이동안이 경기재인청 춤의 전승자로, 줄타기 명인, 발탈 보유자로서 탁월한 예능인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화성재인청이 1922년 폐지되면서 이동안 선생은 마지막 도대방으로 기록된다. 이동안의 가계는 대대로 무업(巫業)을 주업으로 하던 경기재인청의 재인(才人)들이었다. 이동안은 1906년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송곡리 137번지에서 아버지 이재학과 어머니 해주 오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해금 전문가, 조부 이하실은 단가와 피리의 명인이었다. 작은 할아버지 이창실은 줄타기 명인으로, 친가와 외가 모두 최고의 재인들이라 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재인의 피를 물려받고 민속예술의 환경에서 자라났다. 재인청춤전승보존회 정주미 회장은 "한성준이 승무의 한영숙과 태평무의 강선영이라는 인간문화재 제자를 배출하면서 문화예술계의 주목과 인정을 받는 반면, 전통춤의 원형을 간직한 재인청 춤의 대가인 이동안은 무형문화재 중심으로 춤이 주목받고 평가되는 세태 속에서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춤이 아닌 발탈로 보유자가 된 이동안이 "내가 안하면 끊긴다고 해서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받았지만 사실 나는 춤꾼이지 발탈 재주꾼은 아니다”라고 한탄했다. 이동안에 대한 올바른 재평가는 그가 태어난 화성시에서부터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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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청 춤꾼 이동안한국무용가 정주미 춤꾼이 스승 이동안 명인에 대한 에피소드와 함께 재인청 춤에 대한 자신의 진솔한 여정을 에세이집으로 출간하여 화제다. 이동안 명인은 재인청의 예맥을 이어 내린 세기의 광대로 김인호의 제자다. 명창 이동백과 근대무용의 아버지 한성준의 증언에 따르면 김인호는 구한말 순종과 함께 대청마루에서 놀았던 광대 중의 광대였던 인물이다. 저자 정주미 춤꾼은 스승 이동안과의 만남과 사사, 그리고 스승의 사후로 이어지는 관계 가치를 진솔하면서도 질곡한 문장으로 소개한다. 스승과 제자라는 사이에서만 가능할 수 있는 소통의 과정을 여느 무용평론가의 문장과는 현저히 다른 편안하면서도 역사적인 통찰의 눈을 보여준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나는 춤꾼이다. 우리 춤에도 이른바 여러 유파가 있어서 굳이 유파 속에 나를 넣는다면 ‘재인청’이라는 유파의 춤꾼이다. 그런데 재인청은 한국무용사의 입장에서는 결코 유파가 아니다. 정리하면, 재인청은 하나의 유파인데 유파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 모순적 진술을 해명하기 위해” 자신의 시각을 에세이 형식으로 이야기한다. 이 책은 저자가 현실에서 만난 날줄의 스승 이동안은 낯선 언어와의 만남이라 규정한다. 그 낯선 언어들이 해독되는 지점이 바로 역사 속에서 만난 씨줄의 스승 이동안이 날줄과 교차하는 지점이다. 여기에 이르러서야 일정한 어법이 있었음을 이해하고 드디어 스승의 정체를 파악하는 구조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읽히는 한 편의 인물론이자 무용사라 할 것이다. 저자는 스승의 정체를 파악함과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과 앞으로의 지향에 선명성을 획득하고 있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단은 이를 잘 보여준다.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내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쏟은 시간이 이동안 선생께서 이 땅에 쏟은 시간에 대한 보답이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선생의 삶이 ‘내가 왜 재인청 춤을 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이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이 책이 스승 이동안 춤꾼을 향한 제자의 헌사(獻辭)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다.” 정주미 -재인청춤전승보존회회장 -재인청 이동안태평무 전승자 -국가무형문화재 제 27호 '승무' 이수자 -경남무형문화재 제 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 이수자 -개천예술제국악경연대회 대상 -한민족예술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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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청 춤꾼 이동안한국무용가이자 재인청 춤 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정주미 춤꾼이 스승 이동안 명인에 대한 에피소드와 함께 재인청 춤에 대한 자신의 진솔한 여정을 에세이집으로 출간했다. 이동안 명인은 재인청의 예맥을 이어 내린 세기의 광대로 김인호의 제자다. 명창 이동백과 근대무용의 아버지 한성준의 증언에 따르면 김인호는 구한말 순종과 함께 대청마루에서 놀았던 광대 중의 광대였던 인물이다. 저자는 스승 이동안과의 만남과 사사, 그리고 스승의 사후로 이어지는 관계 가치를 진솔하면서도 질곡한 문장으로 소개한다. 스승과 제자라는 사이에서만 가능할 수 있는 소통의 과정을 여느 무용평론가의 문장과는 현저히 다른 편안하면서도 역사적인 통찰의 눈으로 보여준다. 저자 정주미는 프롤로그에서 "나는 춤꾼이다. 우리 춤에도 이른바 여러 유파가 있어서 굳이 유파 속에 나를 넣는다면 ‘재인청’이라는 유파의 춤꾼이다. 그런데 재인청은 한국무용사의 입장에서는 결코 유파가 아니다. 정리하면, 재인청은 하나의 유파인데 유파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 모순적 진술을 해명하기 위해...” 자신의 시각을 에세이 형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자가 현실에서 만난 날줄의 스승 이동안은 낯선 언어와의 만남이라 규정한다. 그 낯선 언어들이 해독되는 지점이 바로 역사 속에서 만난 씨줄의 스승 이동안이 날줄과 교차하는 지점이다. 여기에 이르러서야 일정한 어법이 있었음을 이해하고 드디어 스승의 정체를 파악하는 구조를 선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읽히는 한 편의 인물론이자 무용사라 할 만하다. 공연예술평론가인 이태주 박사는 서평에서 "재인청은 1824년 순조가 세운 중앙예인단체이다. 명무 이동안은 재인청의 혈맥을 이어나갔고 정주미는 그의 ‘태평무’ 이수자 제1호”라고 강조하고 "이 책은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사람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을 담고 있다. 재인청과 이동안의 관계, 재인청 춤의 원리와 스타일, 이동안 스승과의 만남, 춤 이수과정, 이동안의 삶과 예술 등 이동안의 심부(深部)를 파헤치고 있다. 무형문화재로 '발탈(발(足)에 탈을 씌우고 갖가지 동작을 연출하는 민속연희)이 지정되고 '태평무(왕과 백성의 마음을 담아 태평성대를 축원하기 위하여 추는 춤)'가 탈락하자 이동안 춤방에서 제자들이 사라진다. 그 암울한 상황에서 정주미는 홀로 스승 옆에 남아서 그의 지팡이가 되었다. 저자는 스승의 정체를 파악함과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과 앞으로의 지향에 선명성을 획득하고 있다.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단은 이를 잘 보여준다.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내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쏟은 시간이 이동안 선생께서 이 땅에 쏟은 시간에 대한 보답이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선생의 삶이 ‘내가 왜 재인청 춤을 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이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이 책이 스승 이동안 춤꾼을 향한 제자의 헌사(獻辭)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는 염원을 담았다. 시인 정희성도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음악은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이 음악보다는 춤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묵언으로서 어떤 경지에 이르는 일이 가능할까? 나는 시를 쓰지만 시로서는 그것이 가능한 일이 아님을 안다. 오직 춤만이 그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그렇다고 춤에 언어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춤에는 춤만의 언어가 있다. 춤꾼 정주미는 그 '낯선 언어'의 연원을 탐색하며 '삶 자체가 춤이 된 인물 이동안'을 만나고 마침내 그를 복원한다. 전통은 이렇게 하여 계승되는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며 그동안의 지난했던 노고를 치하했다. 한영혜 서울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책속 엿보기 오프닝과 함께 오는 24일(토) 오후 3시, 과천시 소재 경기소리전수관 상상홀에서 조금은 특별한 출판기념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 자리에는 재인청 춤과 인연을 갖고 있는 서정숙 한국민족춤협회이사장, 신새별 동시작가, 김세철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 출판사 진인진의 김태진 대표의 축사에 이어 ‘저자에게 묻다’ 좌담과 저자의 ‘재인청 팔박기본무’ 공연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저자 정주미는 초등학교 3학년때 한국무용에 입문하여 국가무형문화재 27호 승무와 경남무형문화재 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을 이수했고 1992년 춤꾼 이동안 선생을 찾아가 재인청 춤과 장단을 익혔다. 1998년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이동안 춤 세계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양대학교 평생교육원 무용과 강의를 위해 ’한국무용사 강의노트‘를 집필했다. 현재 전승 및 연구단체인 ‘재인청춤전승보존회’와 공연단체인 ‘재인청예술단’을 설립해 재인청 춤의 전승과 대중화를 위해 어린이와 노년층을 대상으로 활발히 황동하며 우리 춤의 대중화에 공헌하고 있다 특히 2002년 저자의 개인 공연인 ‘정주미 춤추러 간다’를 시작으로 2004년부터는 재인청예술단의 정기 공연인 ‘재인청 춤판’을 본격적으로 펼치면서 재인청 춤의 정수를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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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굿의 시나위 - 哀而不悲 11. 111회 전석 초대 공연으로 재인청 춤의 정수, ‘태평무’, ‘진쇠춤’, ‘엇중몰이신칼대신무’와 전통 재인청 소리 만가를 진도의 대표적인 소리굿인 씻김굿과 다시래기, 상여놀이를 결합하여 우리 고유의 한, 멋, 흥의 세계와 그 정수를 펼친다. ● 일시 : 2009년 11월 11일(금) 오후 7시 30분 ● 장소 : 과천시민회관 대극장 ● 주최 : 과천시 ● 주관 : 우리춤연구회, 진도군립예술단 ● 후원 : (사)한민족문화협회, 한국농어촌공사, 디자인돔 ● 협찬 : CNC TV방송, 日刊 바른세상,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진도 예인들과 경기 재인청의 후예들이 모여 1,500여년을 이어내린 전통 예인의 역사를 다시 잇는다. 부족국가 시절부터 300여 년간 내려오던 우리 민족의 원시적인 축제들이 한민족 고유의 색깔을 갖추면서 본격적인 우리 전통예술이 등장하게 된 역사는 신라 진흥왕 재위 12년째이던 서기 551년,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에 시작되었던 ‘팔관회’부터였다 한다. 오늘날 우리 전통예술은 바로 팔관회에서 비롯된 오랜 축제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이었고, 그 아름다움 또한 세계 예술사에 있어서도 독특한 경지를 이룩한 것이다. 팔관회를 담당한 예인들이 축제의 시대 고려를 거쳐 조선후기로 면면히 이어지면서 재인청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들의 전통예술이 세습무당이 주축이 된 무속 계열의 것과 전문 예인 그룹의 것으로 나뉘게 된 것은 조선사회가 갖는 숭유의식과 격변의 조선 후기 사회가 빚어낸 것이었다. 세습무당 계열은 그들이 역사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예술혼보다 무속은 곧 미신이라는 근대적 가치에 의해 천대 받았고, 순수 예인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신분적 멸시로 인해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에도 어려운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들 두 집단이 이어내린 전통예술은 한줄기이며 가장 정제되고 미학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오는 11월 11일 오후 7시 30분, 과천시민회관 대극장에서 펼쳐지는 ‘춤과 굿의 시나위 -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이름으로 올려지는 무대는 씻김굿으로 대표되는 예향 진도의 후예와 예인집단 경기 재인청의 후예가 한 자리에서 만나 만든 무대이다. 이를 위해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와 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여섯 예인*을 포함하여 전수조교 및 이수자를 포함한 50여명의 진도군립예술단 단원들이 대거 참여하고, 20년 넘게 경기 재인청의 춤을 전승하고 있는 우리춤연구회 정주미 회장을 비롯한 50여 회원들이 힘을 합쳤다. 그리고 이들의 무대를 위해 과천시가 기꺼이 나서고 KBS민속악단 최우칠 단장이 연출을, 용인대학교 이병옥 교수가 해설을 맡아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우리춤연구회의 정주미 회장과 진도군립예술단의 김오현 단장은 “우리가 담당해 왔던 전통예술의 질긴 생명력과 수준 높은 예술성을 사회 일반과 공유해야 할 필요를 이야기 해왔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춤과 굿의 시나위’입니다. 여전히 어려운 우리네 일반의 살림살이에서 우리 민족이 어려움을 극복해낸 오랜 정신과 삶의 모습을 제시하고 삶의 여유와 멋과 웃음을 드리고자 합니다.”고 밝히면서 우수한 우리 전통예술의 극치를 보게 될 것이라 한다. 그리고 한의 정서를 멋과 흥으로 환치시켜 온 우리 춤과 죽음마저도 한 차원 높은 축제의식으로 승화시킨 진도씻김굿은 한 결로 금번 무대의 핵심주제는 슬프되 슬퍼하지 않는 민족 고유의 끈질긴 생명력과 한을 극복해내는 ‘애이불비(哀而不悲)’의 민족정신이라 한다. 작품 구성은 진도의 작품으로 가장 신명성이 뛰어난 ‘진도북춤’과 ‘진도북놀이’로 무대를 열고, 우리가 소망하는 꿈과 태평성대의 세계를 ‘진쇠춤’과 ‘태평무’로 표현한다. 이어 경기 남창으로 ‘경기만가’가 재인청 소리 세계의 정수를 펼치면, ‘진도다시래기’와 정주미 춤꾼의 ‘엇중몰이신칼대신무’를 통해 한을 풀어 승화시키는 우리 민족 전통의 두 가지 시각, 해학과 멋을 보여준다. 이어 망자의 길을 닦는 진도씻김굿의 ‘길닦음’으로 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나면, ‘진도상여놀이’를 통해 무대와 객석이 하나 되어 산 자를 위로하고 희망을 기약하는 전통창작 연희무대로 구성한 무대이다. 두 지역으로 나뉜 경기 예인의 후예들과 진도 예인의 후예들이 함께 새로운 예술공동체를 만들어 우리 춤과 진도씻김굿을 재해석한 수준 높은 작품으로 구성하였다는 ‘춤과 굿의 시나위’, 1,500여년을 이어온 한국전통예술사의 도도한 예맥을 일반 관객과 향유하겠다는 무대, 흔치 않은 공연이다. * - 강준섭(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예능보유자) - 박병원(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 - 박종숙(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 예능보유자) - 박동매(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 예능보유자) - 박강열(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 강송대(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34호 남도잡가 예능보유자) ※ 추가 문의[우리춤연구회 기획팀 : 팀장 강영화, HP : 010-3420-3120, email : yhseom@daum.net] ● 공연취지 ○ 경기 재인청 후예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춤연구회의 예인들과 예향 진도의 예맥을 한데 아우르고 있는 진도군립예술단이 참여하여 제작한 작품으로 두 단체는 1,500여년을 이어온 한국전통예술사의 도도한 예맥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제작, 향유할 수 있고 두 지역으로 나뉜 예맥이 함께 하는 예술 공동체가 형성됨. ○ 오랜 예맥을 이어온 단체인 만큼 우리 민족 고유의 질긴 생명력을 함께 나누어 생활 속의 숱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생활 속의 여유와 멋을 회복하는 계기로 삼음. ○ 슬프되 슬퍼하지 않는 우리 민족 고유의 ‘哀而不悲’의 멋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우리 춤과 진도씻김굿을 재해석한 수준 높은 작품 감상의 무대로 일반 관객의 문화예술적인 수준이 향상되고 삶에 활력소를 부여함. ● 작품주제 및 기획의도 부족국가 시절부터 300여 년간 내려오던 우리 민족의 원시적인 축제들이 보다 근대적인 모습을 갖추면서 본격적인 우리 전통예술이 등장하게 된 역사는 신라 진흥왕 재위 12년째이던 서기 551년, 지금으로부터 1,500여 년 전에 시작되었던 ‘팔관회’부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전통예술은 바로 오랜 축제의 역사를 통해 형성된 것이었고, 그 아름다움 또한 세계 예술사에 있어서도 독특한 경지를 이룩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조선후기에 이르러서는 재인청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하게 되는데 이들의 전통예술이 세습무당이 주축이 된 무속 계열의 것과 전문 예인 그룹의 것으로 나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나 이들은 한줄기이며 우리 전통예술의 역사에 있어 가장 정제되고 미학적으로 완성도가 높습니다. 본 공연은 남도 예향 진도의 세습무가 씻김굿의 후예와 예인집단 경기 재인청의 후예가 한 자리에서 만나 새로운 무대를 만들었다는데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담당해 왔던 전통예술의 질긴 생명력과 수준 높은 예술성을 사회 일반과 공유해야 할 필요를 이야기 해왔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춤과 굿의 시나위’입니다. 여전히 어려운 우리네 일반의 살림살이에서 우리 민족이 어려움을 극복해낸 오랜 정신과 삶의 모습을 제시하고 삶의 여유와 멋과 웃음을 드리고자 합니다. ● 공연개관 작품의 핵심주제는 슬프되 슬퍼하지 않는 민족 고유의 끈질긴 생명력과 한을 극복해내는 ‘哀而不悲’의 민족정신입니다. 한의 정서를 멋과 흥으로 환치시켜 온 우리 춤과 죽음마저도 한 차원 높은 축제의식으로 승화시킨 진도씻김굿은 한 결입니다. 진도의 작품으로 가장 신명성이 뛰어난 ‘진도북춤’과 ‘진도북놀이’로 무대를 열고, 우리가 소망하는 꿈과 태평성대의 세계를 ‘진쇠춤’과 ‘태평무’로 표현합니다. 이어 경기 남창의 살아있는 명인 이희완 소리꾼의 ‘경기만가’가 재인청 소리 세계의 정수를 펼칩니다. 이어 ‘진도다시래기’와 정주미 춤꾼의 ‘엇중몰이신칼대신무’를 통해 한을 풀어 승화시키는 우리 민족 전통의 두 가지 시각을 보여 드립니다. 이어 망자의 길을 닦는 ‘길닦음’으로 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우리 모두는 ‘진도상여놀이’를 통해 무대와 객석이 하나 되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자는 다짐과 약속을 하는 마당으로 구성한 전통창작 연희무대입니다. ● 주관단체 소개 ○ 우리춤연구회 1986년에 결성된 우리춤연구회는 구한말 김인호 춤꾼으로부터 이동안 춤꾼으로 이어지는 경기 재인청의 춤을 고스란히 익히고 전승시키는 단체이다. 재인청 춤은 단순히 한 계보로서의 춤이 아닌 팔도의 춤 특성을 종합한 춤으로 수부(首府) 경기의 위상에 걸맞은 춤으로 가장 민족 정서를 잘 담아낸 춤이자 경기도 고유의 특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어 전승 가치가 높다. 고 이동안 춤꾼의 직계 제자인 정주미 회장을 중심으로 과천의 본부와 경남 거창지부, 쌍트페테르부르크의 한국청소년문화교육센터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지부를 두고 있으며, 재인청 관련 사업을 전담하는 ‘재인청전통무용전승회’와 ‘과천어린이무용단’, 경기도 현직 교사들로 조직된 ‘소운교사무용단’, ‘과천불림무용단’, 러시아 ‘소운무용단’의 네 무용단이 활동하고 있다. ‘재인청춤판, 과천시어린이춤판, 춤길, 춤과 굿의 시나위, 해설이 있는 우리 춤, 한여름 밤의 춤, 고3 수험생을 위한 찾아가는 우리 춤, 9988우리 춤, 이희완의 소리여행, 우리 춤 강연회’ 등을 통해 300여회의 공연과 행사를 주관하였다. ○ 진도군립예술단 진도 군립민속예술단은 1995년 전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군 단위 민속공연단이다.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토요민속여행이라는 공연을 중심으로 공연되고 있으며, 2007년 4월 향토문화회관 개관이후부터 2009년 10월 현재까지 430회의 공연을 개최한 바 있다. 공연 내용은 진도지역의 민속음악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다수의 전국순회공연 및 해외공연을 했다. ● 프로그램 해설 ▷ 슬프되 슬퍼하지 않는 민족 고유의 끈질긴 생명력 - 哀而不悲 ◁ ▷ 한을 멋과 신명으로 환치시켜 온 전통예술의 역사! ◁ 1) 신명의 결정체 - 진도북춤, 진도북놀이 ● 진도북춤 ‘진도북놀이’에서 춤을 강조한 작품으로 한 해 농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풍요를 비는 농부들의 땅고르기(地神 밟기) 의식이 극적 요소가 갖추어지면서 집단놀이의 형태로 발전한 것이라 한다. 장단으로 막오름장단에서 막음장단에 이르기까지 자진모리, 굿거리, 오방진, 휘모리장단이 흐드러지게 어울려 신명 넘치는 춤판을 만들어낸다. ※ 출연 정주미(우리춤연구회 대표, 재인청전통무용 전승자) 권미영, 이미경, 송은미, 김인순, 성수희, 서혜승(우리춤연연구회 회원) ● 진도북놀이(지방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 북놀이는 다른 지방과는 달리 양손에 북패를 쥐고 장구처럼 치기 때문에 흥을 돋우고 멈춤과 이어짐이 아주 특별한 진도만의 자랑으로 가락이 다양하다. 특히 북 소리와 즉흥적 춤사위가 어우러져 흥을 북돋아 준다 ※ 출연 : 강은영, 노부희, 권민옥, 강인순, 하미순, 김나영(진도군립민속예술단 단원) 2) 꿈과 태평성대의 세계 - 진쇠춤, 태평무 ● 진쇠춤 진쇠춤은 시각적으로 황동빛의 꽹과리와 형형색색의 술을 길게 드린 꽹과리채, 정갈하면서도 화려한 무복과 다양한 춤사위로 엮어 내는 선과 색조의 조화가 일품이다. 이 춤이 추어지는 내내 흐르는 선의 아름다움은 재인청 계열의 수많은 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으로 우리 민족의 미의식이 선에서 비롯되고 선으로 귀결된다는 견해에 들어맞는 춤이라 할 것이다. 이 춤이 빚어내는 선의 황홀경은 춤꾼은 물론 관객과 함께 몰아지경으로 빠져드는, 곧 예술을 통한 엑스터시를 공유할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하다. ● 태평무 태평무는 경기 재인청의 대표적인 춤의 하나로 한영숙, 강선영류의 태평무에 비해 그저 무관복(武官服)을 춤옷으로 쓰고 있어 비교적 소박하나 춤사위가 대체적으로 크고 분명하고 양반들 사이에 행해지던 허튼춤의 골격을 닮아 기본적으로는 격식을 중요시하는 춤이다. 그러나 다양한 춤사위와 특히 앞선 장단에서 다른 장단으로 넘어가는 부분의 매듭을 화려하게 몰아서 추어 넘기는 특징으로 역동성도 갖추고 있어 항일시기에는 공연 때마다 인기를 누리는, 이른바 민중의 정서에 밀착된 춤으로 널리 사랑을 받았던 춤이다. ※ 출연 송은미, 김인순, 이종진, 전덕수, 권미영, 이미경(우리춤연구회 회원) 3) 재인청 소리 세계의 정수 - 경기만가 ● 경기만가 상여소리와 를 다른 말로 만가라고 부른다. 만(輓,挽)이란 끌어당긴다는 뜻으로 만가(輓歌)는 원래 상여를 끈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즉, 죽은 사람을 애도하여 그가 이승에 남긴 행적을 기리며, 저승에서 좋은 곳으로 가도록 인도하는 뜻으로 부르는 노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뜻은 국어 대사전이나 국악 대사전에도 잘 나와 있지 않다. 단지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 또는 우리나라 구전 민요의 하나라고 소개되어 있을 따름이다. 이런 정황으로 판단해보면 현재 진도에서 불리는 만가, 즉 상여소리는 상여를 메고 나갈 때 상두꾼들이 불렀던 노래의 원초적 형태로 볼 수 있다. 서양의 엘레지(elegy), 즉 영가가 우리의 만가에 해당한다. 그런데 경기 만가는 여느 만가와 같이 상여 소리이나 망자의 일대기를 엮어 부른다는 점에서 다르다. 곧 서사적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이별가를 통해 망자와 산자가 이별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상주춤’을 추고, 이어 경기만가 중 망자가 길을 떠나는 ‘상여소리’와 함께 하관식이 끝난 뒤 봉분을 다지는 ‘회닫이소리’를 들려준다. ※ 출연 - 소리/이희완(경기 남창의 명인, 경기 재인청 마지막 세습 예인) 김명수(경기 남창의 명인, 고 김옥심 명창의 생질) 이명식(이희완 명창의 문하생) - 춤/정주미, 정호남, 이종진, 조간난, 정현숙, 천현영, 성수희, 김민영, 서혜승, 한빨리나(우리춤연 구회 회원) 4) 죽음에도 깃든 축제 - 진도씻김굿, 진도다시래기 ● 진도 씻김굿(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에서 행해지는 씻김굿은 망자가 이승에서 풀지 못하고 맺혀있는 한을 풀어주어서 극락왕생 하도록 기원하는 굿이다. 1980년 12월 7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진도 씻김굿은 원시종교인 샤머니즘과도 통하는 죽음에 대한 인간의 초연한 자세를 예술의 세계로 승화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하루밤 내내 걸리는 씻김굿은 길 닦는 대목에서 그 절정을 이루는데 끊어질 듯 애절하게 이어지는 삼장개비 곡조는 모인 사람들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한다. 특히 진도 씻김굿 음악은 1979년 유럽(벨기에)에서 열린 세계 민속 음악제에서 금상을 탄 바 있다. 금번 공연에서는 전체 흐름을 위해 길닦음 대목을 올린다. 길닦음은 모든 넋과 영혼들이 좋은 곳으로 가서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는 천도의식으로 길게 펼쳐 놓은 베는 저승으로 가는 길을 의미하며 가는 길을 깨끗이 닦아주는 대목으로 씻김굿 중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 출연 박병원(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 김오현(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 송순단(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 박미옥(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 장필식(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이수자) 강은영(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이수자)외 진도군립예술단 단원 ● 다시래기(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는 일명 다시락(多時樂)이라고도 하는데 ‘다시 낳다’, ‘다시 생성하다’ 또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즐거움을 갖는다’는 말로도 전한다. 다시래기는 마을에 초상이 나면 마을 사람과 상두꾼들이 출상전야에 상가에 모여서 상주와 그 가족을 위로하며 상여를 꾸미면서 마당에서 벌리는 일종의 소박한 소극(笑劇) 형태다. 현재 민속극이 전국적으로 심청전이나 흥부전, 박첨지, 남사당놀이를 제외하고는 연극 성격을 띤 놀이는 거의 없고 남도에도 극형태 민속을 찾기 어려우나 이 다시래기는 사물 반주에 맞춰 노래와 춤과 재담으로 진행되는 가무와 개인기가 곁들인 유일한 민속극이라 할 수 있다. 서민들의 풍자극으로 엮어진 다시래기는 - 옛날 마을 주민의 협동과 상부상조 정신을 엿볼 수 있고, - 노래를 위주로 한 춤과 익살로 엮어지면서 권선징악이 깃들었으며, - 초상집 마당에서 밤놀이로 엮어지는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항일시대에는 협동과 단결이 깃들었다 하여 일제의 탄압으로 묻혀 있다가 뜻있는 분들에 의하여 재현시켜 1981년 제12회 남도문화제에 출연하여 우수상을 받았고, 1985년 2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로 지정되었다. ※ 출연 강준섭(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예능보유자) 김애선(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전수교육조교) 박광순(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전수교육조교) 김치선(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이수자) 5) 한을 풀어 멋과 신명으로 - 엇중몰이신칼대신무 ● 엇중몰이신칼대신무 재인청 춤인 이 춤은 재인청 마지막 도대방직을 자임한 고 이동안 선생과 60년 넘게 우리 춤 사진을 찍어온 정범태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진도씻김굿의 지전춤을 지고의 예술로 형상화한 작품이라 한다. 진도씻김굿 보존회 회원들 사이에서도 경탄을 금치 못하는 작품으로 씻김춤의 춤 요소가 경기 재인청 예인들에 의해 얼마나 높은 예술적 경지로 승화될 수 있는 가를 보여준다. 긴 대나무에 흰 창호지를 오려 대 양 끝에 술처럼 치렁치렁 매단 신칼을 양손에 들고 추는데, 양팔을 돌리고 뿌리거나 휘돌리는 맵시는 경건하기도 하고, 소복한 여인이 뜨거운 울음을 참아내는 듯 앙다문 이빨 사이로 독기를 느끼게도 하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춤이다. 마치 내림굿을 하듯 신칼로 하늘의 기운을 모으고 디딤새로는 지기(地氣)를 이끌어 올려 춤꾼의 몸에서 천지가 합일(合一)하는 신이(神異)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 춤은 바지춤(男舞) 전통을 이어온 재인청 춤에서 가장 여성스러운 춤으로 우리네 여성이 역사적으로 감당해야 했던 눈물과 한을 어떻게 승화시켜 왔으며, 이를 어떻게 예술의 형식에 담아내었던가를 보여준다. 이 엇중몰이신칼대신무는 한과 그 풀이의 미학이다. 6) 산 자를 위한 위로 - 진도상여놀이 ● 진도만가 - 상여소리(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진도는 다른 고장에서는 찾아 볼수 없는 고유한 민속과 여러 가지 민요가 전승되어 오고 있어서 우리나라의 민속학이나 구비문학(口碑文學)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진도 만가(輓歌)는 사람이 죽었을 때 상여를 메고 가면서 부르는 민요의 일종이지만 운구하는 형태와 불리는 노래가 특이하다. 상여를 메고 갈 때 다른 지방에서는 남자만이 상두꾼이 되고 ‘만가’의 선창자는 요령이나 북을 치면서 매김 소리를 하지만 진도에서는 여자도 상두꾼으로 참여하고 만가의 반주 악기로 사물(四物)악기 ‘징, 꽹과리, 북, 장고’가 등장하여 매김 소리와 뒷소리를 뒷받침해 준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고유의 민속이 날이 갈수록 소멸되어 가고 있고 또 만가의 가락조차 변질되어 가고 있어서 이를 안타까워한 나머지 이를 재현하고 정립하여 1978년 춘천에서 개최된 제19회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하여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진도의 상속(喪俗)과 만가의 대표적인 특색을 살펴보면, - 상복이 특이하고, - 여자들도 상두꾼으로 참여하고, - 만가의 종류와 가락이 다양할 뿐 아니라 판소리 장단과 같으며, - 만가 속에 무당과 부처의 사상이 절충 융합되어져 있고, - 반주 악기로 사물악기가 등장하는데 죽은 자의 영혼을 즐겁게 보낼 줄 아는 진도 사람들만의 초연한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독특한 민속이다. ※ 출연 - 상여소리/강송대(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남도잡가 34호 예능보유자) 박종숙(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 예능보유자) 박동매(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 예능보유자) - 사물 /박재준(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 전수교육조교) 박강열(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김병천(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전수교육조교) 장필식(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이수자) - 상두꾼 및 호상꾼/박동천, 장희송, 김영태, 박민옥, 채규룡 외(진도군립민속예술단 단원) 9. 주요참가자 1) 출연자 [진도군립예술단] - 강준섭(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예능보유자) - 김애선(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 다시래기 전수교육조교) - 박병원(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 - 김오현(진도군립예술단 연출단장,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 - 송순단(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 - 박미옥(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 - 장필식(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이수자) - 강은영(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이수자) - 강송대(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34호 남도잡가 예능보유자) - 박종숙(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강강술래 예능보유자) - 박동매(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 예능보유자) - 박재준(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51호 남도들노래 전수교육조교) - 박강열(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8호 진도북놀이 예능보유자) - 노부희, 김복자(진도군립예술단 단원) [우리춤연구회] - 이희완(경기 남창 명인, 경기 재인청 마지막 세습 예인) - 김명수(경기 남창 명인, 고 김옥선 명창의 생질) - 이명식(이희완 명창의 문하생) - 정주미(우리춤연구회 대표, 경기 재인청 전승무용 전승자) - 송은미, 김인순, 전덕수, 김민영(우리춤연구회 수석회원) - 권미영(인천서곳예술제 예술감독) - 이미경(인천서곳예술제 무용분과장) - 정호남(소운교사무용단 단장) - 정현숙(소운교사무용단 단원) - 이종진(우리춤연구회 거창지부장) - 천현영(우리춤연구회 러시아지부장) - 조간난(과천불림무용단 단장) - 성수희(과천불림무용단 총무) - 서혜승(과천어린이무용단 총무) - 한빨리나(우리춤연구회 러시아지부 소운무용단 수석단원) [춤 담당 악사] - 타악 : 강민수(진도다시래기 이수자) - 타악 : 김태영(진도씻김굿 전수조교) - 피리ㆍ태평소 : 정석진(남해안별신굿 이수자) - 아쟁 : 조성재, 대금 : 정광윤(누리樂 동인) 외 2) 주요 스텝 - 해설 : 이병옥(용인대 교수, 경기도문화재 위원) - 기획 : 강영화(시인, 우리춤연구회 기획팀장) - 연출 : 최우칠(KBS 민속악단 단장) - 예술감독 : 김오현(진도군립예술단 연출단장), 정주미(우리춤연구회 대표) - 무대감독 : 박인춘(수지여성회관 무대감독) - 사업ㆍ홍보 : 한신자(우리춤연구회 사업본부장) - 진행 : 김순자(우리춤연구회 진행팀장), 정은수 - 의상 : 안희주(안희주 의상실 대표) - 분장 : 박서정(우리춤연구회 분장담당) - 사진 : 정범태(풍류방 대표), 이종길(글로리아사진관 대표) - 영상 : 천승요(아카이브천 대표), CNC TV방송 - 행정ㆍ기록 : 조숙희(진도군립예술단 사무국장). 성수희(우리춤연구회 행정팀장) 외 2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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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청춤판 초청공연 2월 20일일시 : 2009년 2월 20일 (금) 19시 00분 장소 : 국립남도국악원 진악당 주최 : 국립남도국악원 문의 : 061 - 540- 4033 1. 엇중모리 2. 신칼대신무 3. 경제시조 4. 태평무 5. 진쇠춤 6. 재인청 춤본 7. 경기소리 8. 진도북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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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시립 민속예술단 창단공연포천시립 민속예술단 창단공연이 시사하는 몇 가지 의의 -이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직업예술단의 시대이다- 공연에 대한 평가에 앞서 우선 포천시립 민속예술단 창단이 가지는 우리 문화예술계의 던지는 몇 가지 시사점을 짚어보기로 한다. 첫째, 인구 15만명 밖에 안 되는 신생 소도시(금년 10월에 포천군에서 포천시로 승격)에서도 시립예술단을 창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성공사례가 가장 큰 관심사이다. 전국에 포천시보다 크고 예산규모도 큰 중소도시는 얼마든지 많지만 예술단 창단이나 공연지원에 대해서는 단체장들이 고자세이고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런 문화계에 대한 정치권과 단체장들의 태도와는 달리 포천시 박윤국 시장은 오히려 자신이 먼저 나서서 민속예술단 창단에 앞장서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몇몇 시의회 의원들의 반대에도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고 창단 을 관철시킨 문화시장으로 우리시민들은 기억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성공사례가 전국 지방자치 단체에 메아리치고 도미노현상으로 물결치고 나아가 지방마다 예술단이 창단되어 지방문화창달 에 주역이 되고 문화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왔으면 한다. 둘째, 우리나라 공연예술계 활성화에 긍정적인 미래를 예견해주고 공연예술계 역학구도를 재편해주 는 계기가 될 것이다. 최근까지의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는 사실 대학이 주도해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무용, 국악 등 공연예술은 대학교수들이 제자들을 활용한 공연활동이 주류를 이룬 게 사실이다. 그리고 몇 몇 국ㆍ공립예술단이 특권적 위치에서 예술활동을 해왔고, 개인예술단들은 예산문제로 어렵게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살상가상으로 IMF를 지나면서 돈이 많이 든다는 선입견으로 예술계 지망생들은 급격히 감소하 고 공연활동도 감소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 그러나 이제는 대학예술이 주도하는 시대를 지나 앞 으로는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직업예술단이 공연예술계를 주도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사실 이다. 이것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긍정적이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지방문화예술발전과 시민들의 문화향수의 기회가 극대화된다는 점이고, 예술계 졸업생들의 고급인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직업창출의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셋째, 문화향수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경기도 북부권지역에서 유일하게 창설된 시립예술단이란 점이다. 수도권은 정치ㆍ경제ㆍ문화 등 모든 면이 서울중심이며, 상대적으로 열세인 경기도에서도 경기남 부가 중심이 되어 있는 현실에서 경기도 북부권은 더더욱 열악한 상태이다. 이러한 경기북부의 지 역환경에 시립예술단이 창단된 것은 ‘가뭄 끝에 단비’와 같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사실 경기북부권은 도시규모가 제일 큰 의정부시가 그중 중심역할을 해야 했으나 이제는 선취점 을 포천시에 내준 셈이며, 오히려 포천시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할 판이다. 포천시립민속예술단은 단지 포천시만의 예술단이 아니라 경기북부권 전체를 망라하는 문화향수계획을 수립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또한 이것이 경기북부권에 신선한 충격과 자극이 되어 북부권 문화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주도적으로 할 것이다. 넷째, 포천시립 예술단이 굳이 ‘민속예술단’이라고 한 것은 상대적으로 소외된 경기도 민속예술을 중심 으로 예술활동을 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역할은 사실 경기도립 예술단들이 나서서 해야하는데 제 대로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포천시립 민속예술단이라도 나서서 해야겠다고 김영란 단장은 야 심에 찬 포부를 밝히고 있다. 경기도에는 도립 무용단, 도립국악단이 있으나 경기도만의 특성화된 예술단이 아니라 서울이 국ㆍ 공립예술단처럼 일반예술활동만 하고 있다. 즉 경기도립예술단이면 경기도춤, 경기도가락, 경기 소리를 중심으로 발굴하고 무대화시켜 경기전통예술발전에 전념해야 한다. 필자는 경기도 문화재위원으로 경기도에서만 조사된 전통춤만도 100여종 넘는다. 예를 들어 재인 청춤만도 30여종이 있고, 부천. 인천. 안성. 노량진 등 지방 향당춤만도 50여종이 있었다. 그밖에도 각 지방 산대탈춤, 향토춤, 허튼춤, 농악춤, 무속춤 등이 사라진 것도 많지만 아직도 산재 해 있다. 지금까지 경기도에서만 조사된 재인청춤, 지방향당춤, 토속춤, 향토춤 등 100여가지가 넘는 전통춤과 민속연희를 포천시립 민속예술단이 공연 레퍼토리로 채택할 것이라고 하여 기대된다. 다섯째, 포천시립 민속예술단은 포천의 향토예술을 복원하고 무대화하고 발전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이 지방 자치단체의 예술단이 창단되어야 할 가장 큰 당위성이다. 포천에는 ‘포천 메나리’와 ‘풀피리’가 경기도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그밖에도 포천농악, 포천농요, 포 천만가, 포천무속, 민속놀이 등 아직도 소박한 옛날 농경문화유산으로 남아있는 전통이 살아있 다. 이러한 민속예술과 향토문화를 발굴개발하고 무대화하는데 주력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것 이다. 여섯째, 포천시립 민속예술단은 무용단만 설립한 것이 아니고 무용부, 풍물부, 기악부, 민요부를 아우른 종합민속예술단이란 점이 참 좋다. 우리예술은 악가무(樂歌舞)일체의 종합예술인 점을 감안할 때 종합적으로 조직되어야 제대로 민속예술을 공연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국ㆍ 공립예술단들은 무용단과 국악단이 따로 독립되어 있다. 서양적인 예술개념이 잘못 도입된 소산 이다. 대학에서도 무용학과, 국악학과 등이 분리되어 있어 전통예술활동이 절름발이 격이다. 그러나 지금도 원로 전통예술가들은 대부분이 악가무에 능통하다. 바로 이렇게 악가무에 능통해 야 진정한 우리의 전통예술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예술단을 창설 할 때는 이 점을 참고해야한다. 이밖에도 포천시립 민속예술단이 가지는 의의는 더 찾아볼 수 있겠지만 이만 줄이고 이번 창단 공연을 보고 느낀 점을 피력할까한다. 우선 이번에 개관한 포천 반월아트홀의 공연장으로써 규모나 시설 면에서 놀랐다. 1,000석 규모의 문예회관이 공연장으로써 우수하다는 점이다. 그 동안 다른 지방의 문예회관은 겉은 번지르하지만 공연장은 말뿐이고 무대가 협소하고 객석만 많아 집회장 같은 구조가 많았 다. 그러나 포천 반월아트홀은 무대규모가 크고 무대바닥의 리프트나 오케스트라 피트 시설, 음향시설 등은 우수하였다. 조명시설은 앞으로 보완해야할 있는 여지가 있어 보였다. 그러므로 무대공연에 필요한 하드웨어는 대체로 우수한 점수를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소프트웨어라 고 할 수 있는 조명기사나 음향기사나 진행요원들의 손발은 처음이라 원활하지 못한 것은 이해 가 가지만 무대감독이 없어 총체적인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작품은 창단공연인 만큼 ‘아름다운 첫만남’이란 주제로 포천시민들과의 첫만남을 잘 대변해주다. 1부는 포천시의 승격과 아트홀 개관과 예술단 창단 등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축원무대로 ‘비나이 다’의 뜻의 ‘비나리’와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태평무’로 의미 있는 축원적 성격을 잘 살렸다. 이어서 이성준의 ‘대금산조’와 ‘대고’와 ‘모듬북’으로 정중동(靜中動)의 분위기를 대비시켜 안정감 과 흥분감을 관객에게 교차시키며 막을 내렸다. 이날 필자가 작품해설자로 참가하면서도 첫 공 연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하면서 진행을 하였는데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대 극장 좌석이 꽉 차, 서서 관람하는 모습을 보고 해설자도 흐뭇했지만 출연자들도 신바람이 나게 잘 해주었다. 2부는 축하무대로 ‘사물놀이’와 ‘풀피리 입춤’이 올려졌다. 사물놀이는 영남가락 별달거리에서 “포천시 를 비춰주네-!”로 산뜻하게 맺어주었으며, 풀피리 입춤은 경기도 무형문화재 38호로 지정된 오세 철의 풀피리에 맞춰 무용단들이 입춤을 추어 지역정서를 잘 살렸다. 이어서 ‘부채 장고춤’은 부채 춤과 장고 춤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독특한 무대였으며, ‘기악팔도민 요모음’과 ‘판 굿’과 ‘소고 춤’으로 창단공연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이번 무대의 작품에서는 무용보다는 풍물 비중이 너무 커서 작품안배에 좀더 조화를 주어야겠 고, 민요무대가 없어 아쉬움을 남겼지만, 첫 창단 공연치고는 대체로 성공한 무대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아울러 가족단위의 관람객이 많았고 어린이들도 많았는데, 로비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페이스 페인팅(얼굴그림)’, 그림엽서 모으기, ‘민속예술단 문화가족’ 등록하기 등의 다채로 운 행사로 보다좋은 성과 를 올린 것 같고, 고정 관객확보 전략에서도 출발이 좋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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