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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함으로 꽉 채운 무대…281명이 춤추고 연주한 '세종의 노래'(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국악기와 서양악기 연주자, 합창단, 소리꾼, 무용수 등 281명의 예술가가 한꺼번에, 무대에 올랐다. 지난 29일 개막한 국립극장 남산 이전 50주년 기념 기획공연 '세종의 노래: 월인천강지곡'은 말 그대로 웅장함으로 무대를 꽉 채웠다. 공연 시작과 함께 막이 오르자 객석에서는 압도적인 규모에 놀란 듯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반지 모양의 대형 원형 무대를 중심으로 무대 안쪽에는 아쟁, 해금,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 등 현악기 연주자들이, 무대 바깥쪽에는 대금, 트럼펫, 드럼, 팀파니 등 관악기와 타악기 연주자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그 뒤에는 합창단이 계단식으로 배치됐다. '세종의 노래'는 국악관현악, 서양 오케스트라, 판소리, 합창, 무용 등이 한데 어우러진 공연으로 국립극장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음악극이다. 서사가 있는 여러 악장의 성악곡인 칸타타 형식에 무용과 연출을 덧붙였다. 원래는 300명이 넘는 인원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지만, 최종 연습 과정에서 인원수가 조정됐다. 이 대형 작품을 완성한 이들은 국립극장의 남산 시대를 함께한 원년 멤버들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초대 단장인 작곡가 박범훈, 국립무용단 1호 남성 무용수인 국수호, 국내 공연계를 이끌어온 손진책 연출가 3명이 뭉쳤다. 국립극장은 1950년 서울 태평로에 처음 자리 잡았다가 1973년 현재 자리인 남산 아래 장충동에 자리를 잡았다. 곡을 작곡한 박범훈이 지휘봉을 들고 성큼성큼 무대에 오르자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세종의 노래'는 세종이 세상을 먼저 떠난 소헌왕후의 명복을 위해 한글로 쓴 '월인천강지곡'을 바탕으로 했다. 악보 없이 가사만 남아있는 월인천강지곡은 석가모니의 전 생애를 담고 있는 찬불가다. 박범훈은 국악기뿐만 아니라 서양악기를 더해 풍성한 선율을 만들고, 독창과 중창 중심의 우리 소리에 혼성합창을 더해 폭발력 있는 성악곡을 완성했다. 해금과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의 선율, 대아쟁과 묵직한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이 원래부터 함께 연주되어온 듯 이질감 없이 어우러졌다. 이야기를 이끄는 소리꾼의 창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음색의 호른, 트럼펫, 팀파니 등도 튀지 않고 녹아들었다. 벨칸토 창법의 합창은 단전에서 소리를 뽑아내는 우리 소리인 창(唱)을 자연스럽게 뒷받침했다. 무엇보다 비교적 짧은 역사 속에서 빠르게 기량을 끌어올린 국악관현악단은 물론이고 전통만 고집하지 않고 '트로이의 여인들', '베니스의 상인들', '패왕별희' 등 이국적인 작품들을 소화해온 국립창극단,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움직임으로 한국의 미를 표현하는 국립무용단 등 국립극장 전속 3개 단체의 역량이 돋보였다. 세종이 월인천강지곡을 쓴 600년 전이나 세존(석가의 다른 이름)이 살았던 2천500년 전의 시대상을 반영하지 않은 연출도 눈에 띄었다. 원형 무대에 오르는 소리꾼, 무용수 등 출연진은 현대적으로 개량된 한복을 입고, 무대 뒤에 들쭉날쭉한 높이로 설치된 스크린에는 현대 건물을 형상화한 영상이나 일렁이는 물결 영상 등이 투사됐다. 다만 석가의 탄생, 출가, 성불, 열반의 일대기를 다룬 월인천강지곡의 줄거리는 국립극장의 남산 이전 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라는 역사적인 의미와 잘 맞아떨어지지는 않았다. 서곡을 붙여 세종과 소헌왕후의 사랑 이야기를 덧붙이고, 가사에도 불교적인 색채를 배제했지만, 오늘날 관객에게 다가가기에는 다소 괴리감이 있어 보였다. 공연은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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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2024 신년 음악회'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 전속단체 국립국악관현악단(예술감독 겸 단장 채치성)은 2024년 1월 12일(금)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2024 신년 음악회>를 공연한다. 2020년 시작한 ‘신년 음악회’는 새해를 맞아 꼭 들어야 하는 우리 음악을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힘찬 연주로 들려준다. "신년 음악회 중 최고” "황홀한 국악의 신세계” 등의 관객 호평 속, 매 공연 만석을 이어온 국립극장 대표 신년 공연으로, 이번 공연도 티켓 오픈 직후 전석 매진돼 높은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를 기운차게 열어줄 '2024 신년 음악회'는 마에스트로 정치용의 지휘로 국악관현악 주요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하프 연주자 황세희, 국립국악관현악단 타악 연주자 5인, 크로스오버 보컬 그룹 크레즐(CREZL) 등과 함께 다양한 협연 무대를 선사한다. 1부는 청룡의 해를 맞아 생동하는 자연의 기운을 담아낸 작품으로 구성했다. 첫 곡은 국악관현악 ‘청청(淸靑)’(작곡 조원행)으로 맑고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자연의 소리를 풍성한 국악관현악으로 표현한다. 빠름과 느림을 대비적으로 활용했으며 악기군마다 고유의 음색과 매력을 드러내는 주제 선율이 생동감 넘치게 전개된다. 이어서 세계적인 하프 콩쿠르를 석권한 하프 연주자 황세희의 협연으로 ‘춘설(春雪)’ 주제에 의한 하프 협주곡(작곡 황병기·편곡 손다혜)을 들려준다. 이른 봄의 아름다운 풍경을 5악장으로 풀어낸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대표작 ‘춘설’을 작곡가 손다혜가 편곡한 작품이다. 오른손으로만 줄을 뜯고 튕겨 소리를 내는 가야금과 달리 양손으로 줄을 뜯고 튕기는 하프의 특징을 잘 담아냈다. 타악 협주곡 ‘파도: 푸른 안개의 춤’(작곡 홍민웅)에서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타악 연주자 연제호·이승호·이유진·김예슬·김인수가 각각 꽹과리·장구·북·징·제금 등을 맡아 협연자로 나선다. '2024 신년 음악회'를 위한 위촉 창작곡으로, 험한 바위와 세찬 바람 앞에서도 자유롭게 춤추는 파도의 모습을 강렬한 타악 연주와 국악관현악의 조화로 풀어낸다. 2부는 JTBC 오디션 프로그램 <팬텀싱어4>에서 3위를 기록한 크로스오버 보컬 그룹 크레즐이 함께한다. 성악가 이승민, 뮤지컬배우 임규형, 가수 조진호와 국립창극단 소리꾼 김수인으로 구성된 크레즐은 그룹의 대표곡인 ‘나 하나 꽃피어’ ‘홀로 아리랑’ ‘황진이’ 등을 국악관현악 편곡으로 선보인다. 공연의 대미는 국립국악관현악단 신년 대표곡 ‘하나의 노래, 애국가’(작·편곡 손다혜)가 장식한다. 2020년 ‘신년 음악회’에서 초연한 ‘애국가 환상곡’을 확장시킨 곡으로, ‘대한제국 애국가’ ‘임시정부 애국가’, 오늘날의 ‘애국가’ 등 우리 현대사에 존재하는 다양한 애국가를 엮어 통합과 화합의 의미를 되새긴다. 지휘는 서양음악은 물론 우리 음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바탕으로 한국 창작 음악의 가능성을 열어온 정치용이 맡았다. 갑진년(甲辰年) 새해, 국립국악관현악단 <2024 신년 음악회>는 우리 음악과 장르를 넘나드는 화려한 새해 음악 성찬으로 희망찬 기운을 전한다. 한편, 2024년 1월 국립극장에서는 국립오페라단 '신년 음악회'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2024 시즌 오프닝 콘서트'도 펼쳐져 한 해를 여는 다채로운 공연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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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24)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싸구려 어허허 굵은 엿이란다 정말 싸다 파는 엿/ 강원도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석달 열흘 백일삼제/ 화초가리 더덕가리 동삼가리가 다 들어간 엿/ 열아홉살 먹은 크내기가 동삼물로 제조를 했다 지름이 찍찍 흐른다~" 2009년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졸업식 발표회 장면 중 하나, 객석의 뒷자리에서 갑자기 엿판을 든 엿장수가 등장하더니 관객들을 훑으며 무대로 올라온다. 엿가위로 리듬을 맞추며 해학적인 엿타령을 구수하게 뽑아낸다. 저자에 흘러 다니는 말은 '엿장시 맘대로'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격조 있고 운율 있는 노래이니 '엿장수 가락'이라고나 할까. 무대에 오르자 걸쭉한 입담이 판소리의 아니리처럼 이어진다. "에, 이 엿장시로 말할 것 같으면 저 멀리 진도에서 올라온 엿장시인디, 오늘 엿을 쪼깐 많이 폴아서 진도 갈 여비를 해야 쓰거쏘!" 객석에서 웃음이 터진다. 자그마한 키에 귄 있는 몸짓, 엿타령을 한 주인공은 졸업생 조유아다. 엿타령 하며 객석을 돌았는데 엿판에 수북이 돈이 쌓였다. 자그마치 진도를 십수 번 다니고도 남을 금액이었다나. 그뿐 아니다. 당시까지는 이름이 조은심이었던 송가인이 씻김굿으로 졸업 공연을 준비했으니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응이 어쨌을 것인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후 조유아는 전공 판소리보다 엿타령 가수로 더 많이 알려져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고 송가인은 트롯트 가수로 전향하여 이미 국민가수가 되었다. 박색구, 조오환, 조유아로 이어진 삼대 엿타령 국립창극단 정단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조유아가 엿타령을 잘하는 데는 그만한 내력이 있다. 아버지 조오환이 엿타령의 명인이기 때문이다. 무형문화재 닻배노래(전남도지정 제40호) 보유자이기도 한 조오환은 엿타령 뿐만 아니라 만년필타령, 뱀장수타령, 비손소리 등 못하는 소리가 없다. 일찍이 고향 민속문화의 보전 전승에 눈을 떠, 진도북놀이며 사물놀이, 상여소리 등에 주도적으로 관여해왔다. 조오환의 엿타령은 어머니 박색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MBC민요대전(한국민요대전)에 고 박색구의 엿타령과 민요가 여러 곡 실려있다. 명실상부한 삼대의 엿타령이다. 뿌리를 추적하면 아득한 조상으로 연원을 좇아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들 엿타령이 현장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찍 남편을 여읜 박색구는 좁쌀 등으로 엿을 만들어 오일장인 진도군 의신면 돈지장이나 읍장에 내다 팔았다. 친척이나 이웃들의 비웃는 소리를 감수하며 목포, 무안 등 서남해 일대를 유랑하며 엿을 팔기도 했다. 그 현장에서 엿을 팔면서 불렀던 노래가 지금의 조유아 엿타령이다. 조오환은 이 현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진도민속예술단'이라는 연희단체를 만들어 활동한다. 진도읍에서 실제 엿을 만들어 팔면서 엿타령 공연도 하고 전수도 한다. 무쇠솥에 장작을 지피는 등 엿 만드는 과정도 전통방식 그대로를 고집하고 있다. 농업이나 어업의 맥락이 사라져 노래만 남은 문화재들에 비하면 컨텍스트까지 보존하고 전승하는 명실상부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장시(場市)와 엿타령 엿타령은 엿판을 지고 엿을 팔면서 부르던 노래다. 엿장수타령, 엿파는 소리 등 지역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통칭하여 엿타령이라 한다. 어떤 시점 이후에 유흥을 위한 노래나 현장 맥락이 소거된 민요로 정착했다. 근대 이후 무대화되어 유희 민요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북한 민요집이나 전국 각지의 민요자료에도 엿타령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잘 알려진 정보 중 하나는 김홍도의 씨름 그림이다. 엿판을 지고 엿을 파는 엿장수가 그림의 포인트다. 당대 풍속을 소상하게 알려준다. 엿판 지고 엿을 팔기에 통상 시장을 배경 삼는 상업풍속으로 해석한다. 상업민요니 상업노동요니 하는 이름이 그래서 나왔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15년(1520) 3월 21일자 기사를 참고한다. "신이 전라도 관찰사로 있을 때 철저하게 금지했는데도 지금은 전일보다 심하여 시장에 나오는 자가 몇만 명에 이르니 (중략) 장시(場市)는 근년부터 생기기 시작하여 시장이 열리는 날에는 남녀간에 주육(酒肉, 술과 고기)을 마련하여 시장에서 팔아 그 이(利益)를 취하고 있으니..." 이 행간에 엿장수가 있다. 엿의 문화사를 추적해보면 명절떡과 조청엿에 닿고 장시의 엿장수에 닿는다. 16세기 이후 서울 중심으로 급속하게 확산된 장시(오일장)가 엿장수의 배경이라는 점 명백해 보인다. 엿파는 행위만 있는게 아니다. 예컨대 농사를 지어 좁쌀을 생산하고 무쇠솥과 장작 등 전통적인 방식으로 엿을 만들며 또 오일장에 내다 팔면서 엿타령을 연행하는 것은 명백한 종합장르다. 개별단위가 아닌 종합장르를 무형문화재 지정 등의 방식을 빌어 보존 전승할 필요가 있다. 장시의 맥락을 전제하면 장타령, 각설이타령까지 포괄한다. 생산, 유희, 소비까지 포섭한다. 더구나 김치, 식혜, 주류 등 우리 발효문화의 중요한 키워드라는 점에서 엿타령이 재조명되어야 한다. 조유아(들)의 활동을 응원한다. 어뜬 엿장시/이윤선 우리집 모방에 총각 엿장시가 한 분 살았습니다. 쌀엿 좁쌀엿 호박엿 감자엿 통째로 엿 한 통을 솥에 곱고는 손뿌닥 철석철썩 때래감시로 가락엿을 맹글았습니다. 양짝에서 질게 엿을 느래 잡고 고운 가루 무채 찰싹찰싹 때래 니리믄 크내기 허벅지만하던 것이 쫑쫑한 가락들이 됩니다. 귀갱삼아 문을 빼꼼이 열믄 어서 들온나. 어서 문 다채라. 바람 따라올라 조막만한 나를 다그채며 문을 닫아걸었습니다. 가락엿 맹글 때 바람 들어오면 안 된담시로요. 어짜다 한골목에서 총각 엿장시 만나믄 가락엿을 냉큼 집어 고사리 내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쥔집 귀한 아들래미라 그러했을 것입니다. 버짐한놈 코흘린놈 종기난놈 내 동무들 앨곤하니 쳐다보믄 어찌 나 혼자 먹을 수 있겄습니까. 대가리 큰놈부터 척척 나놔주고 엿치기를 합니다. 딱 부러띠래갖고 끊어진 자리 훅! 불고서는 모도 벌어터진 손꾸락 사이 삐죽삐죽 엿가락들을 대봅니다. 어뜬 날은 똘똘말이 몰아주어 한 입 못 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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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뮤지컬 '한국괴물백과사전' 23일어린이 뮤지컬 '한국괴물백과사전'이 오는 23일 서울남산국악당에서 막이 오른다. ㈜백두호랑단(대표 조세은, 연출 마성혁)이 주최·주관하는 이 공연은 2023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예술창작 작품’ 지원사업 선정작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위원장 정병국)가 후원한다. 뮤지컬 '한국괴물백과사전'은 『삼국유사』, 『삼국사기』, 『조선왕조실록』 등 고서에 나오는 다양한 괴물과 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창작된 가장 한국적인 어린이 판타지다. (주)백두호랑단은 한국의 역사와 이야기로 신비로운 판타지 뮤지컬을 만들고자 오랜 시간 준비해 왔으며 '한국괴물백과사전'이 그 결과물이다. 국립창극단 주연으로 활동 중인 서정금, 이광복과 함께 무용수, 어린이 배우 등 총 20명이 한마음으로 뜻을 모았고, KBS 국악 대상 작곡상을 받은 김백찬 음악감독과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의 참여로 풍성한 음악과 노래가 함께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또한 3D 애니메이션 배경, SF 특수분장, 라이브 캐스팅 특수 탈 제작, 괴물들의 특수의상, 마술 효과 등 첨단 기술과 예술을 융합한 무대 구성으로 관객들에게 생생한 현장감과 높은 몰입감을 제공한다.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10세 쌍둥이 건이와 곤이는 난생처음 한국의 할머니 댁을 방문한다. 어느 날 산속에서 들개를 닮은 괴물(수류견 : 중종실록에 나온 괴물)을 만나고, 건이와 곤이는 괴물과 맞서 싸운다. 그러다 곤이가 괴물 수류견들에게 잡혀가고, 건이는 곤이를 구출하기 위해 산속을 헤매고 다닌다. 건이는 마침내 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 도착해 곤이의 행방을 알아낼 실마리를 찾게 된다. 작품 속에는 10세 어린이가 느끼는 분단된 나라의 현실, 점점 파괴되어가는 자연과 환경, 숲을 지키려는 신과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 등 메시지가 담겨 있다. 공연 전에 어린이 관객들에게는 괴물 페이스 페인팅 서비스를 제공하여 환상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어린이 관객들의 기분을 최고조로 높여준다. (주)백두호랑단은 기술과 예술을 접목해 더 빛나는 개인과 사회를 만들고, 더 나아가 예술을 통해 대한민국을 문화강국으로 만들어 나가고자 2010년 창단한 문화예술 기획사다. 한국 전통문화를 토대로 다양한 콘텐츠를 발굴해 영상물 및 공연물로 작품화해 K-컬처를 세계로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 공연은 12월 23일 (토) 오후 2시/6시 두 차례 진행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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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송년판소리 '안숙선의 심청가-강산제'국립극장은 2023년 완창판소리 마지막 무대인 <송년판소리-안숙선의 심청가>를 오는 30일(토)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한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는 판소리 한바탕 전체를 감상하며 그 가치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연으로, 12월에는 연말을 맞아 명창 안숙선과 함께하는 <송년판소리> 무대가 마련된다.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이자, 이 시대를 대표하는 대명창 안숙선은 지난 2010년부터 <송년판소리> 무대를 도맡아 오고 있다. 올해는 강산제 ‘심청가’를 들려주며, 국립창극단 단원들과 함께 꾸미는 특별 무대도 선보인다. 2023년 <송년판소리>는 총 2부로 구성된다. 1부는 강산제 ‘심청가’ 완창 무대로, 안숙선 명창을 중심으로 다섯 명의 제자 박성희·김지숙·허정승·박민정·박자희가 분창자로 함께한다. 강산제는 조선 후기 8대 명창 중 한 명으로, 서편제의 시조 격인 박유전이 전남 보성군 강산마을에서 여생을 보내며 창시한 유파다. 박유전-정재근-정응민-성우향으로 계승됐고 안숙선 명창은 성우향에게 강산제 ‘심청가’를 배웠다. 강산제는 음악적 형식미가 뛰어나고 이면에 맞게 잘 짜인 소리라고 평가받는다. 절제된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며 성음 변화를 중시한다는 특징이 있다. 강산제 ‘심청가’ 완창은 국립남도국악원 성악악장인 허정승의 소리로 시작한다. 허정승은 곽씨부인이 죽은 후 심봉사가 통탄하는 대목까지 들려준다. 이어지는 대목은 2023년 ‘임방울국악제’ 판소리 명창부 대상을 거머쥔 박자희가 맡는다. 공양미 삼백 석을 얻기 위해 남경장사 선인들에게 몸을 판 심청이 행선 날 아침 부친과 이별하는 장면까지를 부른다. 이어 안숙선 명창이 무대에 올라 ‘심청가’의 대표 대목인 ‘범피중류’를 들려준다. 진양조의 장중한 대목을 대명창의 우아하고 깊은 소리로 감상할 수 있다. 네 번째 주자는 소리꾼 박민정으로, 심청이 물에 빠진 후 수궁에서 모친과 상봉하는 대목까지를 선보인다. 국립창극단 단원 출신으로, 현재 전북대학교 한국음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김지숙은 ‘화초타령’부터 심봉사가 맹인 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황성에 올라가는 대목까지 책임진다. 마지막은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수석단원 박성희가 장식한다. 고수로는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예능보유자 김청만, 국립창극단 기악부장 조용수가 함께한다. 2부에서는 안숙선 명창과 국립창극단원이 30명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안 명창은 66년 소리 인생 중 절반에 가까운 세월을 국립창극단에서 보냈다. 1979년 국립창극단 입단 이래 20년간 소리꾼이자 배우로 수백 편의 창극 무대를 빛낸 것은 물론, 활발한 ‘작창(作唱, 창극에서 소리의 바탕을 구성 또는 창작하는 작업)’ 작업을 펼쳤고 1998년부터 약 7년간 단장 및 예술감독으로서 창극 발전에 기여했다. 국립창극단 후배들과 안 명창이 함께 꾸미는 무대는 안 명창뿐만 아니라, 국립창극단 관객에게도 특별한 순간이 될 것이다. 국립창극단 기악부의 깊이 있는 시나위 연주를 비롯해 화초사거리·육자배기·개구리타령·남한산성 등의 남도민요를 만날 수 있다. 국립창극단 개성파 배우 서정금과 최용석은 작은 창극 ‘뺑파전’을 선보인다. 해설과 사회는 유은선 예술감독 겸 단장이 직접 맡는다. 유 감독은 국립국악원 연구실장과 (재)국악방송 본부장을 역임했고 국악 작곡가이자 공연 평론가, 전통예술 분야 전문가로서 역량을 쌓아왔다. 국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다수 방송 프로그램 진행하며 대중과 소통해온 유 감독의 해설과 사회가 곁들여져 더욱 의미 있는 시간을 제공할 예정이다. 유은선 감독은 "연말을 맞아 국립창극단을 사랑해준 관객들과 함께 넉넉하고 풍성한 소리를 나누고 싶어 이번 송년음악회를 기획했다”라며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끝을 특별하게 마무리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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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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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장관 "내년 국악진흥법 큰 변화 일어날 것"올해 제정된 '국악진흥법'의 내년 7월 말 시행을 앞두고 새로운 국악 정책의 청사진을 준비한다. ‘국악진흥법’은 국악진흥 기본계획의 수립과 시행, 국악 창작지원, 국악 향유 문화 활성화 등 지원 시책 마련을 주요 내용을 하는 법안으로 올해 제정돼 내년 7월 말부터 시행된다. 이날 간담회는 ‘국악진흥법’ 관련 현장 의견 및 국악 전승·보존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장의 애로사항과 신진 국악인의 정책 건의 사항 등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국악진흥법이 내년 시행되니 국악계에 상당한 변화가 오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국악계 현장간담회에서 "국악의날 지정과 지원기관 지정 등이 기본법에 담겨 있어 새롭게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대금 연주가 이생강,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흥보가) 보유자 정순임, 김덕수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김영임 아리랑보존회 이사장, 박상후 KBS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 이건회·유지숙·권성택 등 국립국악원 예술감독, 유은선·채치성 등 국립극장 예술감독, 한국국악협회 이용상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유 장관은 국악계 지원 정책과 관련해 "내년 중반 이후 혹은 내후년부터는 문체부가 주관하는 각 지원 기관의 방향이나 예산 형식을 바꿀 것"이라며 "지자체와 달리 중앙에선 사람을 키우고 (국악을) 해외에 소개하는 방향으로 지원할 것이다. 국가 대표 브랜드를 만들어 전통예술이 한류를 일으키는 요소로 부각되도록 바꿔나갈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국립국악원과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등에 국악 관련 민간 단체 지원이 분산돼 있다"며 "전문성을 갖고 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통폐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 장관은 이건희 국립국악원 정악단 예술감독을 비롯해 유지숙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 유은선 국립극장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등 국립 단체 예술감독들에게 '국가대표 브랜드'가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김덕수 명인, 김영임 명창 등은 "소규모 지역공연 활성화 등 생활국악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하여 청년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생강 명인, 정순임 명창 등은 "우리 국악의 원형을 보존하고 방송, 해외 공연 등 매체에도 ‘퓨전’이 아닌 전통국악을 더욱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국악계 지원정책과 관련해 "내년 중반 이후 혹은 내후년부터는 문체부가 주관하는 각 지원 기관의 방향이나 예산 형식을 바꿀 것"이라며 "지자체와 달리 중앙에선 사람을 키우고 (국악을) 해외에 소개하는 방향으로 지원할 것이다. 국가 대표 브랜드를 만들어 전통예술이 한류를 일으키는 요소로 부각되도록 바꿔나갈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김덕수 한예종 전통예술원 연희과 명예교수과 김영임 아리랑보존회 이사장 등은 "무형문화재가 어느날 감투가 됐다"며 "보유자만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지역에서도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고 건의했다. 연희집단 The광대의 대표인 음대진, 대금연주가 이아람 등은 순수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연습공간과 공연장 등 간접지원 방안을 예시로 들었다. 김삼진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 소리꾼 이봉근은 국악인들이 창작이 집중할 수 있도록 홍보와 마케팅 등 공연 외적 요소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유 장관은 지난달 국립예술단체장 간담회에 이어 이날도 국립단체의 역할을 강조했다. 유지숙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은 단원 연수제도에 대해 "단원을 늘려달라는 문제가 예민하기도 하고 조심스러운데 객원이 하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연수단을 좀 확보했다가 국가기관 경험도 쌓고 본인이 기량이나 모든 면에서 좋아질 수 있다. 또 좋은 단원이면 정식 채용할 수 있는 제도를 확대해 주시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이건회 국립국악원 정악단 예술감독, 권성택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예술감독 등은 국립단체의 역할을 강조하며 내년부터는 종묘제례악 지방공연, 타 국악기관과의 협업 등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조수황 소리꾼은 "국악도 뮤지컬이나 서양 음악처럼 제 값을 받는 공연이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이아람 대금연주자는 "국악 창작자들이 작품을 새로 만들고 올릴 공간, 네트워크 플랫폼이 필요하다. 국악의 고급화도 고민해야 한"고 말해 공감을 샀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국악진흥법’ 제정에 따라 지정하게 되는 ‘국악의 날’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유 장관은 "‘국악의 날’이 만들어지면 축제 한마당을 펼칠 것”이라며 "내년 설날에는 전통국악으로만 된 신년음악회를 열어서 모든 전통예술 분야가 모인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형문화재 지정 심사와 관련된 문제점도 거론됐다. 이에 대해 유 장관은 무형문화재 제도를 소관하고 있는 문화재청에 새로운 방법을 찾아달라고 요구했다며 "내년에는 변화가 있을 수 있도록 근본적인 무형문화재 제도를 검토하겠다”고 답했다.유 장관은 취임 이후 인터뷰와 현장 간담회 등에서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며 기초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문체부 관계자는 "국악계를 비롯한 기초예술계와 직접 소통하며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하는 데 힘쓸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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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명의 연주·노래·춤 어우러진 대형 칸타타…'세종의 노래'(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국악관현악, 서양 오케스트라, 판소리, 합창, 무용 등이 한데 어우러진 대형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화제의 작품은 바로 국립극장의 남산 이전 5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공연 '세종의 노래: 월인천강지곡'(이하 '세종의 노래')이다. 국립극장 3개 전속단체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과 서양 오케스트라, 합창단 등 총 313명이 무대에 오른다. 박인건 국립극장 극장장은 28일 하늘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올해는 국립극장이 창작예술 거점으로 탄생한 지 50년이 되는 해"라며 "그동안 쌓아온 창작역량을 모두 보여드릴 만한 공연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국립극장은 1950년 서울 태평로에 처음 자리 잡았다가 대구, 서울 명동을 거쳐 1973년 10월 현재 위치인 남산 장충동으로 터를 옮겼다. 공연장과 연습실, 행정 시설, 무대 제작소까지 갖춘 국내 유일의 제작극장으로 기반을 마련하며 국립예술단체들의 창작활동에 전환점을 가져왔다. '세종의 노래'는 567년 전 세종이 훈민정음을 백성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직접 쓴 '월인천강지곡'을 바탕으로 한다. 월인천강지곡은 세종이 먼저 떠난 소헌왕후의 명복을 위해 지은 찬불가로 석가모니의 전 생애를 담고 있다. '세종의 노래'에서는 불교적인 색채를 최대한 배제하고, '사랑'과 화합'에 방점을 찍었다. 공연은 서사적 가사를 바탕으로 한 여러 악장의 성악곡인 칸타타 형식에 무용과 연출을 추가했다. 무대 중앙에 국악관현악단과 서양 악기 연주자 97명이 원형으로 자리를 잡고, 뒤쪽 양 끝에 합창단 174명이 자리를 잡는다. 소리꾼 11명과 무용수 31명은 악기 연주자들을 둘러싼 원형 무대에 등장한다. 대규모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공연예술계 거장인 작곡가 겸 지휘자 박범훈, 연출가 손진책, 안무가 국수호가 의기투합했다. 작사는 작가이자 시인인 박해진이 맡았다. 박범훈은 "21세기의 월인천강지곡을 만들기 위해 고민을 많이 한 결과 지금의 우리 소리를 엮기로 했다"며 "월인천강지곡이 백성을 위해 쓰인 것이란 역사성도 생각해서 쉽게 이해되고 쉽게 부를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악관현악이 중심이 되지만, 긴 시간 다양한 하모니를 만들어내려면 부족한 부분이 있어 서양악기 연주자 35명 정도를 넣었다"며 "서양악기가 돋보이기보다는 국악관현악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또 "창극단은 판소리의 독특한 발성법을 이용해서 독창곡, 중창곡을 노래하고, 그걸 받쳐주는 혼성 합창이 주를 이룬다"며 "판소리 창법과 벨칸토 창법이 한데 어우러지는 시도를 해봤다"고 덧붙였다. 박범훈은 곡을 완성하고 손진책과 국수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했다. 작품을 보다 종합적인 예술공연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세 거장은 모두 국립극장 남산 시대의 시작을 함께했던 인물들이기도 하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초대 단장을 역임한 박범훈은 26세 나이에 국립극장 남산 개관기념 작품 중 하나인 '별의 전설'을 작곡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 작품의 주역 무용수이자 유일한 남자 무용수였던 이가 바로 국수호다. 국립무용단의 '제1호 남자 무용수'인 그는 국립무용단 단장도 지냈다. 손진책 역시 국립극장 남산 개관작인 '성웅 이순신'의 조연출로 참여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초대 단장을 역임한 박범훈은 26세 나이에 국립극장 남산 개관기념 작품 중 하나인 '별의 전설'을 작곡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 작품의 주역 무용수이자 유일한 남자 무용수였던 이가 바로 국수호다. 국립무용단의 '제1호 남자 무용수'인 그는 국립무용단 단장도 지냈다. 손진책 역시 국립극장 남산 개관작인 '성웅 이순신'의 조연출로 참여했다. 세종이 월인천강지곡을 남긴 이유에 관심을 두고 안무를 만들었다는 국수호는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국수호는 "세종이 소헌왕후에게 보내는 시지만, 결국은 인내천 정신으로 백성에게 다가가려는 사랑이 담겨있다"며 "움직임도 어떤 사랑의 부딪침, 그로 인해 화합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독감으로 이날 간담회에 참석하지 못한 손진책은 "조선 최고의 커플인 세종과 소헌왕후의 이야기"라며 "소리와 음악을 시각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공연은 다음 달 29일부터 31일까지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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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창극,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 심포지엄국립창극단은 오는 12월 5일 서울 중구 5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심포지엄 '창극,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를 개최한다고 22일 밝혔다. 작창가인 한승석 중앙대 교수, 연출가인 고선웅 서울시극단 단장 등 창극을 만들어온 창작진과 평론가, 학자 각계 전문가가 모여 창극의 역사와 현주소를 짚어보고, 창극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다. 이번 심포지엄은 우리 고유 음악극인 창극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창극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다. 총 2부로 구성되며 1부에서는 창극 관련 연구자와 창작진 등 전문가들이 모여 ‘창극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주제발표가, 2부에서는 ‘미래의 창극’에 대한 패널 토의가 펼쳐진다. 1부 좌장은 서인화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 전통예능분과 전문위원이 맡는다. △국립창극단의 역사(윤중강 음악평론가) △창극 배우의 역사와 정체성(최혜진 목원대 교수) △창극에서 작창과 작곡의 의미(한승석 중앙대 교수 겸 작창가) △창극 연출(고선웅 서울시극단 단장 겸 연출가) △2010년대 이후 판소리의 세계화(송소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를 다룬다. 작품을 매개로 국립창극단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어온 창작진과 평론가, 학자 등 각계 전문가가 모여 다채로운 화두를 던질 예정이다. 2부에서는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이 좌장으로 나서 토의를 이끈다. 1부 발표자 5명을 포함해 △김향 호서대 창의교양학부 교수 △남인우 극단 북새통 예술감독 겸 상임연출가 △박애리 전 국립창극단원 △이주현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팀장 △이진주 서울대 강사 등이 참여해 창극의 발전 가능성과 가치를 짚어본다.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은 "창극과 관련한 다방면의 전문가 집단이 참여하는 열린 소통과 논의의 장을 통해, 창극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확인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창극에 대한 건강한 담론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라며 "이번 심포지엄을 계기로 국립예술단체를 주축으로 하는 창극 연구 네트워크 구축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참가비는 무료이며 창극에 관심 있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오는 28일 오후 2시부터 국립극장 홈페이지에서 사전 등록을 받는다. 심포지엄 당일 현장 등록도 가능하다. 창극에 관심 있는 사람은 누구나 국립극장 홈페이지(http://ntok.go.kr)에서 사전 등록하거나 현장 등록으로 참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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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별희' 소리꾼 김준수 "연습 때도 치마 입고 사뿐사뿐 걷죠"얼굴에 새하얀 분칠을 하고, 몸 선을 드러내는 새빨간 의상을 입은 우희는 경극 '패왕별희'에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캐릭터다. 동명 영화에서 장궈룽(장국영)이 극 중 경극 배우로 여장했던 캐릭터로도 유명하다. 이 역을 창극 무대에서 소리꾼 김준수(32)가 맡는다. 다음 달 11일부터 18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창극 '패왕별희'는 국립창극단의 가장 파격적인 레퍼토리다. 2019년 초연과 재연 이후 4년 만에 중극장에서 대극장으로 규모를 키워 올리는 공연이다. 김준수는 초연과 재연 때도 우희 역을 맡아 중국 경극의 전설적 배우 메이란팡을 보는 것 같다는 호평을 받았다. 지난 25일 국립극장에서 만난 김준수는 "작품을 할 때마다 캐릭터에 몰입하려고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더더더더' 노력했다"고 힘줘 말했다. 배역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 창극 무대에 서는 소리꾼의 자질이지만, 남자인 그가 여자 캐릭터 우희를 연기하는 데는 '더'가 4번은 들어가야 할 만큼 노력이 필요했다. 캐릭터의 성별뿐만 아니라 손끝으로 세상을 표현한다는 경극의 몸짓을 익히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김준수는 "여성이 가진 섬세함과 유연함이 필요한 역이라 연습실에서도 계속 치마를 입고 있다"며 "손동작이나 몸동작을 여성적인 선을 살리면서 작게 해야 하고, 보폭을 아주 짧게 해서 걸어야 한다. 그렇다고 요란하면 안 되고, 우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격이 급한 편이어서 평소 걸음걸이가 빠르다. 사뿐사뿐 걷는다고 걷는데도 남성적인 면이 툭툭 튀어나온다"고 머쓱해했다. 김준수가 여성 캐릭터를 맡은 건 '패왕별희'가 처음은 아니다. 2016년 초연한 '트로이의 여인들'에서 헬레네 역을 맡았다. 다만 헬레네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존재로 중성적인 느낌이 강한 캐릭터였다. 머리 스타일도 가발 없이 짧은 상태 그대로 무대에 올랐다. 반면 우희는 항우와 슬프고 애절한 사랑을 나누는 여성이다. 머리카락도 엉덩이를 덮을 정도로 길게 내려오고, 진한 화장은 물론 긴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도 칠한다. 의상에서도 호리호리한 몸 선을 한껏 드러낸다. 김준수는 "사실 초연 때는 빨간 매니큐어나 긴 머리, 치마 모든 게 다 어색했다.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했던 것 같다"며 "그런데 지금은 예뻐 보이고 싶은 욕심에 얼굴에 뭐라도 하나 더 바를 수 있을지, 네일아트도 뭘 더 해야 할지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러 살도 2㎏ 정도 뺐어요. 의상이 타이트하거든요. 재연 때는 의상을 좀 더 넉넉하게 만들어주셨는데, 핏(모양새)이 타이트할 때보다 안 예쁘니까 도저히 못 입겠는 거예요. 옷 자체에 우희의 예쁜 선이 들어가 있는데, 그 디자인을 포기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이번에는 핏도 살리면서 팔을 들거나 움직일 때 안 불편할 정도로 옷을 고쳤어요." 우희는 '패왕별희'의 명장면인 '쌍검무'도 소화해야 한다. 양손에 긴 칼을 들고 추는 고난도 검무다. 이 춤의 백미는 허리를 뒤로 90도 가까이 젖히는 장면이다. 김준수는 '쌍검무'를 어떻게 준비하냐고 묻자 "너무 혹독해요"라며 웃었다. 그는 "허리 꺾는 신이 딱 절정이다. 우희가 항우의 이별을 암시하는 이별의 춤이라 잘 마무리돼야 관객들도 함께 슬픈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다"며 "그러다 보니 허리를 꺾을 때 검이 땅에 닿는 순간까지 꺾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초연 때는 춤추다 보면 숨이 턱까지 차서 노래를 부르는 게 힘들었다"며 "지금도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그때의 호흡을 알고 있어서, 호흡을 분배할 줄 알게 되니 여유가 좀 생겼다"고 덧붙였다. 창극에는 없는 경극 특유의 손동작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판소리에도 소리의 가락이나 사설의 극적인 내용에 따라 감정을 표현하는 몸짓인 '발림'이 있지만, 경극의 손동작은 마임처럼 극의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어서 차이가 있다. 김준수는 "소리꾼의 발림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지만, 경극의 손동작은 정형화돼 있다"며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손동작으로 표현한다. '대왕님, 근심을 달래보시는 게 어떠신지요' 이 대사도 '근심', '달래다', '어떤가' 하나하나 표현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창극 '패왕별희'가 경극의 양식을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시각적인 부분은 경극의 요소를 살리되, 대사나 음악 등 청각적인 측면은 창극의 매력을 부각했다. 김준수는 "경극의 창법이나 발성은 쓰지 않고, 소리꾼에게 편한 목소리로 노래한다"며 "대신 우희는 여성 캐릭터이기 때문에 제 목소리에서 부드러움을 찾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보통 소리꾼은 단전에서 뽑아 올리는 힘찬 소리를 내잖아요. 슬프면 '아이고∼'라고 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우희는 전쟁을 겪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상황이니, 그 절절한 마음을 누르면서 노래하려고 해요. 절제된 소리를 경극 특유의 동작들과 함께 보시면 새로운 맛이 있으실 거예요." 김준수는 창극뿐 아니라 TV 예능, 뮤지컬 등에서도 활약하며 '국악계 아이돌'로 불리지만, 자신의 뿌리는 '소리'에 있다고 강조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김준수는 방학 때면 스승 박금희 명창을 따라 '산공부'를 다녔다고 했다. 박 명창의 또 다른 문하생 송가인도 함께 산공부를 다니던 멤버였다. 고등학생 때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돈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소리를 안 하겠다며 방황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결국 내가 가야 할 길은 소리'라는 생각에 몇개월 만에 돌아왔다고 했다. 이후 2013년 국립창극단에 최연소 단원으로 입단했고, 2018년에는 3시간이 넘는 '수궁가' 완창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후에도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틈틈이 소리 공부를 해왔다. "몇 달 전에 10년 만에 춘향가 공부를 끝냈어요. 국립국악원 유미리 선생님께 배운 6시간 분량이에요. 공부를 게을리해서 이제야 끝냈다고 혼날 줄 알았는데, 선생님께서 '끝까지 소리를 놓지 않아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소리는 제 근본이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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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심포지엄 '창극,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국립중앙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은 오는 12월 5일 오후 2시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2023년 국립창극단 심포지엄 '창극,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를 개최한다. 우리 고유 음악극 창극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창극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다. 심포지엄은 총 2부로 구성되며 1부에서는 창극 관련 연구자와 창작진 등 전문가들이 모여 ‘창극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주제발표가 펼쳐진다. 서인화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회 전통예능분과 전문위원이 1부 좌장을 맡았다. ▲국립창극단의 역사(윤중강 음악평론가) ▲창극 배우의 역사와 정체성(최혜진 목원대학교 교수) ▲창극에서 작창과 작곡의 의미(한승석 중앙대학교 교수 겸 작창가) ▲창극 연출(고선웅 서울시극단 단장 겸 연출가) ▲2010년대 이후 판소리의 세계화(송소라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를 다룬다. 작품을 매개로 국립창극단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어온 창작진과 평론가, 학자 등 각계 전문가가 모여 다채로운 화두를 던질 예정이다. 이어지는 2부에서는 ‘미래의 창극’에 대한 패널 토의가 진행된다.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이 좌장으로 나서 토의를 이끈다. 1부 발표자 5명을 포함해 ▲김향 호서대학교 창의교양학부 교수 ▲남인우 극단 북새통 예술감독 겸 상임연출가 ▲박애리 전 국립창극단원 ▲이주현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팀장 ▲이진주 서울대학교 강사 등이 참여해 창극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과 가치를 짚어본다.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은 "창극과 관련한 다방면의 전문가 집단이 참여하는 열린 소통과 논의의 장을 통해, 창극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확인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창극에 대한 건강한 담론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심포지엄을 계기로 국립예술단체를 주축으로 하는 창극 연구 네트워크 구축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심포지엄은 창극에 관심 있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참가비는 무료다. 사전등록은 국립극장 홈페이지(http://ntok.go.kr)에서 11월 28일(화) 오후 2시에 시작되고, 심포지엄 당일 현장 등록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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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수능 수험생을 위한 국립극장 특별 이벤트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극장은 2024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수험생을 격려하기 위해 수험생 특별 이벤트를 마련했다. 수험표를 지참하고 3편의 공연을 예매할 경우, 50% 할인을 제공한다. 공연예술박물관전시를 단체로 관람하는 수험생들에게는 해설을 들려주고, 이 중 전시 관련 퀴즈를 많이 맞히는 참가자에게 기념품도 증정한다. 수험생 특별할인은 국립극장 기획공연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12월 6~10일/달오름)과 국립무용단 <묵향>(12월 14~17일/해오름), 국립극장 연말기획공연 <세종의 노래 : 월인천강지곡>(12월 29~31일/해오름) 세 작품에 적용된다. 좌석 등급 관계없이 50% 할인된 가격으로 1인 1매 구매할 수 있으며 티켓 수령 시 수험표를 지참해야 한다. 할인 구매는 11월 17일부터 가능하다. 국립극장 기획 <나는 재미있는 낙타예요>는 앤 설리번과 헬렌 켈러의 특별한 여정을 그린 음악극으로 한글 자막과 음성 해설, 수어 통역이 제공되는 무장애(배리어프리, Barrier-free) 공연이다. 애니의 성장 과정에서 쌓아온 관계와 그로 인한 영향에 비춰 헬렌의 삶을 바라보며, 두 인물의 성장과 연대를 이야기한다. 판소리, 노래를 부르는 듯 운율감 있는 대사, 수어 등 다양한 요소로 두 인물의 세계를 풀어낸다. 국립무용단(예술감독 겸 단장 김종덕) <묵향>은 2013년 초연 후 10년간 국내외에서 매진을 이어온 작품이다. 정갈한 선비정신을 사군자에 담아 수묵화처럼 그려낸다. 윤성주 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이 故최현의 사군자를 바탕으로 안무하고 자신만의 독보적 미적 세계를 구축한 정구호가 연출했다. 최근 캐나다(국립예술센터), 미국(존 에프 케네디센터) 투어를 통해 한국무용 한류의 열기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국립극장 남산 이전 50주년 기념공연 <세종의 노래 : 월인천강지곡>은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국악관현악단 3개 전속단체를 포함해 합창단, 서양 오케스트라까지 300여 명의 출연진이 함께하는 대규모 칸타타(교성곡)이다. 국립극장 남산 시대를 함께 열었던 세 명의 거장, 연출가 손진책, 작곡가 박범훈, 안무가 국수호가 창작진으로 참여했다. 세종이 지은 노래 ‘월인천강지곡’을 주제로 ‘사랑’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통해 현재에도 울림이 있는 메시지를 작품에 담아낸다. 연말을 맞아 사랑과 화합의 메시지가 담긴 무대를 선사할 것이다. 공연 예매 및 문의 국립극장 고객지원팀(02-2280-4114) 또는 국립극장 홈페이지(www.ntok.go.kr) 국립중앙극장-국립중앙도서관 공동기획전<이야기, 무대에 오르다-도서와 아카이브로 보는 공연예술>은 세계가 열광하는 K-컬처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옛이야기가 담긴 책과 공연기록물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1차 전시를 마치고 공연예술박물관으로 장소를 옮겨 순회 전시로 선보인다. 수능 수험표를 지참하고 단체 관람을 신청하면 상세한 해설을 들을 수 있으며, 전시 해설 마무리 단계에 진행되는 퀴즈를 많이 맞힌 사람에게는 특별한 기념품도 주어진다. 기념품은 달오름극장 1/50 크기의 무대 미니어처를 직접 조립해 만들어 볼 수 있는 제작 재료와 활동지로 구성돼 있다. 전시는 11월 14일(화)부터 24년 3월 31일(일)까지 이어지며 관람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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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임방울국악상, 본상 모보경· 특별상 김승호 선정광주시는 국악 발전에 뛰어난 공적을 보인 국악인을 발굴·시상하는 '임방울국악상' 본상 수상자로 모보경(59·전북) 씨를 선정했다고 6일 밝혔다. 국악 장래가 유망한 45세 이하 국악인에게 수여하는 특별상(42·광주) 수상자는 김승호씨를 선정했다.수상자에게는 광주시장상패와 2024년 문화예술창작지원금으로 본상 1000만원, 특별상 500만원이 지원된다. 시상식은 11월 중 열린다.본상 수상자인 모보경 명창은 전라북도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로, 서울국악예고를 졸업하고 1983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했다.2000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명창 부문 대통령상 수상, 국립극장 6시간 판소리 완창 공연 등 국악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폈다.1998년 전북도립국악원에서 정정렬제 춘향가를 가르치기 시작해 현재 전북도립국악원 판소리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특별상 수상자인 김승호씨는 지역 대표 대금 연주가다. 광주예고와 전남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전남도립국악단‧광주시립창극단 등에서 활동했다.국내외 초청 공연, 축제 공연, 광주상설공연 50여 회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제33회 춘향국악대전‧제15회 임방울국악제 기악부 대상 등 다수의 전국 경연대회에서 수상했다. 현재 김승호국악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광주시는 지역 출신인 국창 임방울 선생의 숭고한 예술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00년부터 국악 발전에 뚜렷한 공적이 있는 국악인을 선정, 시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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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겸 단장 유은선)이 12월 8일(금)과 9일(토) 양일간 하늘극장에서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를 연다. ‘작창가 프로젝트’는 국립창극단이 차세대 작창가를 발굴하고 성장 발판을 제공하기 위해 2022년부터 시작한 사업이다. 시연회에서는 2023년 선발된 신진 작창가 이연주‧이봉근‧강나현‧신한별이 지난 10개월 간 이뤄낸 창작 결과물을 공개한다. 국립창극단은 판소리가 중심이 되는 창극에서 ‘작창’의 중요성에 주목해 ‘작창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작창(作唱)’은 한국 전통음악의 다양한 장단과 음계를 활용해 극의 흐름에 맞게 소리를 짜는 작업으로, 작품 전반의 정서를 이끄는 핵심 요소이자 창극의 성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다. 지난 10년 사이 그리스 비극·중국 경극·웹툰 등 창작 소재를 확장하며 창극의 대중화를 이끌어 온 국립창극단에게 이 시대 관객과 가깝게 호흡할 수 있는 차세대 작창가 발굴과 양성은 절실한 과제였다. 판소리에 대한 동시대적 방향성 아래, 이야기 흐름을 판소리 적으로 구성하고 다채로운 캐릭터를 입체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전통 판소리 다섯 바탕은 물론 민요‧정가‧굿 음악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소리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다. 이처럼 작창은 전문적인 분야임에도 정규 교육 과정이 전혀 없는 현실에서, 국립창극단은 지속 가능한 창극 창작 환경을 만들고 나아가 장르의 저변을 넓히고자 ‘작창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2023년 첫 번째 운영을 통해 4명의 작창가가 각각 30여 분의 작품을 선보인 결과, "미래 창극의 가능성 발견” "신선하고 기발한 도전과 실험” 등의 평을 받았다. 관객 만족도가 높았던 <옹처>와 <덴동어미 화전가>는 각각 70분 분량의 정규 작품으로 확장·발전시켜 2024년 12월 선보일 예정이다. 국립창극단은 ‘작창가 프로젝트’ 1기의 성과에 힘입어 올해 2월, 작창 창작물 심사와 면접을 거쳐 4명의 신진 작창가 이연주·이봉근․강나현․신한별을 선발했다. 선발된 작창가들은 10개월 간 창작 워크숍부터 소재 개발, 멘토링, 전속단체와의 협업 등 단계별 작품 제작 과정에 참여하며 현장 전반에 대한 이해와 창작 역량을 길렀다. 멘토로는 지난해 참여했던 5명의 예술가 안숙선·한승석·이자람(작창), 고선웅·배삼식(극본)이 함께했다. 6월까지는 고선웅·배삼식을 주축으로 작창의 기초가 되는 극본에 대한 멘토링을 진행했고, 7월부터는 본격적인 작창 멘토링이 이뤄졌다. 한승석과 이자람은 대본에 담긴 상황과 정서를 장단(리듬)‧길(음계)‧성음(악상)을 활용해 적절하게 표현하는 실질적인 작창 노하우를 전수했다. 작창의 바탕이 되는 대본도 새롭게 탄생했다. 국립창극단은 탄탄한 대본을 집필해줄 4명의 중진 작가 이철희·김도영·진주·윤미현을 선정하고, 신진 작창가들과 1:1로 팀을 이뤄 협업하도록 했다. 작가와 작창가로 조합된 4팀은 동서양의 동화와 설화 등을 소재로 삼아 오늘날에 맞는 이야기로 각색했다. ▲이연주․이철희는 동명 동화를 현대판으로 각색한 <금도끼 은도끼>를 선보인다. 치열하게 살아도 인생 한방에 뒤처지고 매사 제자리뿐인 삶을 자탄하고 비정한 사회를 해학적으로 비판한다. ▲이봉근․김도영은 그리스 신화 ‘메두사’를 <두메>로 새롭게 풀어낸다. 겉으로는 험악하지만, 알고 보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인생을 사는 ‘두메’의 여정을 조명한다. ▲강나현․진주는 안데르센의 동명 동화를 재구성해 <눈의 여왕>을 공연한다. 친구를 찾아 떠난 ‘겔다’의 여정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방식’과 우리에게 ‘영원한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신한별․윤미현은 전래동화 ‘도깨비감투’의 스핀오프 격인 <도깨비 쫄쫄이 댄스복 아줌마!>를 보여준다. 쓰기만 하면 투명인간이 된다는 감투를 쫄쫄이 댄스복으로 개조해 입고 한바탕 일을 벌이는 아줌마를 통해 인간이 지닌 욕망의 부질없음을 지적한다. 시연회에서는 작창가와 작가로 조합된 4팀의 작품을 연이어 선보인다. 각 작품은 약 30분 분량으로, 작품별로 캐스팅된 국립창극단 배우들이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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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극장-국립중앙도서관 ‘이야기, 무대에 오르다’ 순회전시국립중앙극장과 국립중앙도서관은 국립극장 남산 이전 50주년을 기념한 공동기획전 '이야기, 무대에 오르다-도서와 아카이브로 보는 공연예술'을 14일(화)부터 24년 3월 31일(일)까지 120일간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에서 개최한다. 세계가 열광하는 K-컬처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옛이야기가 담긴 책과 공연 기록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1차 전시를 성황리에 마무리하고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으로 장소를 옮겨 선보이는 순회전시다. 극장으로 돌아온 만큼 공연 관련한 새로운 전시자료를 추가해 풍성한 볼거리로 관람객을 기다린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문학이 공연으로 재창작되는 과정과 창작물을 비교 관람할 수 있는 전시로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무대에서 노래하는 옛이야기’에서는 대표적 구비문학 중 하나인 판소리를 조명한다.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이 담긴 판소리는 문학, 음악, 극 요소가 어우러진 전통예술이다. 판소리 속 이야기는 1900년대부터 서민보급형 책자인 ‘딱지본’ 형태로 발간되며, 국민에게 사랑받아 왔다. 소설 <심청전> <별주부전> 등 오랜 흔적이 깃든 딱지본 원형을 전시에서 확인하고, 이어 옛이야기가 공연 <심청가> <수궁가>로 발전한 모습을 국립창극단 작품의 포스터, 대본, 영상 등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2부 ‘무대에서 펼쳐지는 옛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신화‧전설‧민담 등을 다룬다. 특히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서동설화’, ‘처용설화’ 등이 기록된 문헌『삼국유사』『삼국사기』의 영인본(影印本)이 공연예술박물관 전시를 통해 공개된다. ‘견우와 직녀’ ‘아기장수’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국립무용단 <은하수>(1986), 국립창극단 <용마골장사>(1986) 등의 공연 실황 영상도 시청할 수 있다. 3부 ‘아카이브로 보는 공연예술 이야기’에서는 1950년 설립된 국립극장 73년 역사가 묻어나는 공연예술 기록물을 선보인다. 현재까지 연극‧무용‧창극‧오페라 등 공연예술 아카이브 자료 약 46만 점을 보유한 공연예술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50여 년 전 공연의 사진 앨범과 기사 스크랩북 등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다. 또한 전시 관람객을 대상으로 ‘엽서체험존’도 마련된다. 옛이야기를 각자 재해석해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해 보는 공간도 준비된다. 한편, 국립극장 73년 역사의 전환점 남산 이전 50주년 의미를 되짚어보는 특별 전시가 오는 12월 해오름극장 로비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전시 관람은 무료이며 자세한 내용은 국립극장 공연예술박물관 홈페이지(www.ntok.go.kr/museum)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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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판소리 "춘향가 – 눈대목" 비교 시연회100년 전의 판소리 명창들이 부른 <춘향가>의 눈대목을 한 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무대가 펼쳐진다. ‘논문 한 편을 보고 듣는 시연회’라는 부제처럼 이 공연은 100년 전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들이 판소리를 어떻게 발전·변화시켰는지를 비교해 볼 목적으로 마련한 것으로, <춘향가> 중 대표적인 눈대목인 ‘기생점고’와 ‘어사장모 상봉’ 대목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번 공연은 서편제의 시조로 추앙받는 명창 김창환의 아들이자 전설적인 명창 임방울의 스승으로 알려진 김봉이(金鳳伊. 1878~1929. 전남 나주생)가 1915년 미국 빅타 레코드에 남긴 <춘향가> 중 ‘기생점고’가 109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또한 같은 해 이동백이 남긴 <춘향가> 중 ‘어사장모상봉’ 대목 전 곡이 사상 처음으로 공개되며, 1925년 중고제 명창 김창룡(金昌龍. 1872-1943. 근대 5명창. 충남 서천생)과 서도 명창 박월정(朴月庭. 1901~1960. 평남 강서생)이 일동 레코드에 각각 남긴 판소리 ‘기생점고’ 대목도 함께 공개된다. 김봉이(1878~1929)는 판소리 5명창으로 아버지 김창환을 사사했다. 1915년 미국빅타 레코드사가 김봉이의 <춘향가> 중 ‘이별가’와 ‘기생점고’를 녹음했는데, 그 중 ‘이별가’ 실물은 1993년 신나라레코드를 통해 존재 여부가 확인된 적 있다. 반면 ‘기생점고’는 그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으나 이번에 존재 여부가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김봉이의 판소리는 김창환에 비해 장식음이 많고 전조 현상이 보이는 등 서편제 초기 모습을 가진 판소리로 평가받는다. <수궁가> 인간문화재였던 명창 정광수는 김봉이의 소리를 ‘사람 소리가 아니라 귀신 소리’라고 평하기도 했다. 한편 같은 해 녹음된 이동백의 ‘어사장모상봉’ 대목은 그가 40대에 녹음한 <춘향가>의 유일한 자료로서, 박석티부터 장모가 좋아라고 대목까지 총 14분에 걸쳐 녹음되어 있다. 이 녹음 역시 이번에 처음으로 전모가 공개된다. 다른 유파의 ‘어사장모상봉’ 대목과 다른 점은 춘향이 옛집을 묘사하는 부분이 매우 섬세하고 장모 축원 대목이 길며, 장모가 좋아라고 대목으로 끝을 맺는다는 점이다. 아니리가 적고 슬픈 대목의 목구성이 담담하게 표현되는 전형적인 중고제 소리를 보여준다. 김창룡과 박월정의 ‘기생점고’는 1925년 일동레코드에서 녹음되었는데, 김창룡의 ‘기생점고’는 아니리를 창으로 부르는 특징이 있으며, 서도소리꾼이면서 판소리 명창이기도 한 박월정 역시 ‘기생점고’를 아니리 없이 부른 공통점이 있다. 박월정은 조선 후기 대명창 정춘풍제를 잇고 있는 충남 홍성의 유공렬과도 친분이 있는 등 중고제를 배운 것으로 추정되는 소리꾼으로, 서도 시김새와 남도 창법을 절묘하게 배합해 판소리를 구사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날 무대는 현재 판소리계에서 젊은 천재 소리꾼으로 인정받고 있는 5명의 국악인이 꾸민다. 판소리 대통령상 수상자로 국가문화재 판소리 이수자 박은정(45)은 정정렬의 <춘향가>를 재현하며, 조상현 명창의 제자로 22년 KBS국악대경연 대상을 수상한, 국립창극단의 새내기 단원 이성현(28)은 이동백의 <춘향가>를 재현한다. 오랫동안 중고제 명창의 소리 재현에 힘쓰고 있는 이효덕(37)은 김봉이와 정정렬(丁貞烈. 1876~1938. 근대 5명창. 전북 익산생)의 <춘향가>를, 구례동편 판소리를 잇고 있는 차세대 소리꾼 박지수(22)는 김창룡의 <춘향가>와 김초향(金楚香. 1900~1983. 대구생)의 <춘향가>를 각각 재현한다. 판소리가 아닌 서도소리를 전공하며 현재 ‘타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나라(36)는 박월정의 <춘향가> 중 ‘암행어사 출도’ 대목을 부른다. 고수는 송만갑 고수대회 명고부 장원을 차지한 김민서(44), 최재명(23) 명고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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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극과 창극으로 엮어낸 걸작 '패왕별희'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겸 단장 유은선)은 창극 <패왕별희>를 11월 11일(토)부터 11월 18일(토)까지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동명 경극을 원작으로,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패왕 항우와 한나라 황제 유방의 대립, 전쟁에 패한 항우와 연인 우희의 이별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2019년 4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초연과 같은 해 11월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재공연 모두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4년 만에 돌아온 창극 <패왕별희>는 대극장인 해오름극장으로 무대를 옮겨와 한층 광대해진 규모와 촘촘해진 완성도로 관객과 만난다. 국립창극단 <패왕별희>는 손끝으로 세상을 표현하는 경극과 소리에 우주를 담아내는 창극의 결합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국내외 최고 제작진과 국립창극단이 의기투합해 제작 초기부터 화제를 모았다. 작품의 연출은 대만의 배우이자 당대전기극장 대표로 경극의 현대화 작업에 천착해 온 우싱궈가 맡았다. 작창·작곡·음악감독에는 창극 <정년이><나무, 물고기, 달><흥보씨> 등을 함께한 이자람이, 의상디자이너로는 아카데미 미술상에 빛나는 예진텐(Tim Yip)이 참여했다. 제작진은 두 나라의 전통예술인 경극과 창극이 지닌 멋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신선한 조화를 이뤄냈다. 의상‧분장‧소품‧안무 등 시각적인 부분에서는 경극의 요소를, 대사나 음악 등 청각적인 측면에서는 창극의 매력을 부각했다. 재공연을 위해 모인 제작진은 세밀한 수정·보완 작업을 통해 더욱 밀도 높은 무대를 완성할 계획이다. 우싱궈 연출가는 "창극 <패왕별희>는 판소리의 정수를 담아내고자 힘쓴 작품으로, 원작 경극과는 달리 소리가 빚어내는 처량한 아름다움과 강한 생명력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며 "작품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져주셔서 4년 만에 다시 선보이게 됐는데 이번에는 출연진도 충원하고 악기 편성 보강하는 등 정교하게 다듬었으니, 기대해주시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작품은 창극의 도창(해설자) 격인 맹인노파의 구슬픈 소리로 시작된다. 이어서 항우가 유방을 살려줘 패전의 원인이 된 ‘홍문연’ 장면부터 중국 역사상 위대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히는 ‘십면매복’, 유방에게 패해 달아나다 포위된 항우의 죽음을 다룬 마지막 ‘오강에서 자결하다’까지 긴장감 넘치게 흘러간다. 그중에서도 작품의 백미는 항우와 우희의 이별을 그린 ‘패왕별희’ 장면이다. ‘우희’ 역을 맡아 요염한 몸짓과 고난도 검무까지 소화한 국립창극단원 김준수와 굵은 목소리와 떡 벌어진 어깨로 장수의 기개를 보여준 ‘항우’ 역에 정보권의 연기가 주목할 만하다. 패왕이지만 영웅으로 기록된 항우의 삶과 죽음을 총 2막 7장에 걸쳐 그린 창극 <패왕별희>는 어떤 상황에서도 술수를 쓰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 강직하고 대범한 항우의 면모를 통해 진정한 승리와 영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더불어 권력을 둘러싼 치열한 암투와 전쟁 속에서도 일상을 걱정하는 평범한 이들의 모습, 한 사람을 향한 애절한 사랑 등 시대불변의 이야기로 관객의 공감 자아낸다. 이번 공연은 해오름극장으로 무대를 옮긴 만큼 국립창극단 전 단원 포함, 총 47명 출연진이 무대에 올라 더욱 깊어진 연기와 호방한 소리, 힘찬 에너지를 선사한다. ‘항우’ 역 정보권, ‘우희’ 역 김준수, ‘범증’ 역 허종열, ‘여치’ 역 이연주 등 우리 소리는 물론, 경극의 몸짓까지 완벽히 소화한 배우들이 한층 농익은 소리와 섬세한 연기를 보여주는 가운데 ‘유방’ 역에는 국립창극단원 이광복이 새롭게 출연한다. 국립창극단 <패왕별희>는 동명 경극을 원작으로 한다. 2019년 4월 초연과 11월 재공연 당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것은 물론 두 공연 객석점유율이 각각 97%, 99.7%를 기록해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시각 중심의 경극과 청각 중심의 창극, 오랜 세월에 걸쳐 완성된 두 나라의 전통예술이 가진 강점을 조화롭게 엮어 만들어낸 결과였다. 새로운 장르·소재와의 결합으로 동시대 관객과 호흡하는 창극을 선보이고 있는 국립창극단의 레퍼토리 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시도로 평가받는 창극 <패왕별희>가 4년 만에 돌아온다. 국립창극단 <패왕별희>는 창극이 다른 세계의 전통과 만나 새로운 공연 미학을 창조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중국 경극은 분장부터 깃발 개수, 배우의 걸음걸이, 손끝 떨림에도 상징적인 의미를 담는 예술로, 시각적이며 고도로 양식화되어 있다. 반면, 판소리의 창과 아니리, 악기의 합주로 이루어지는 음악 중심의 창극은 청각적이고 유연성이 돋보인다. <패왕별희>는 창극이 지닌 포용성과 유연함이 십분 발휘된 작품이다. 우싱궈‧이자람‧예진텐 등 국내외 최고 예술가들이 경극과 창극의 공존을 모색하며 색다른 조합을 만들고자 했고 그 결과, 보는 즐거움과 듣는 즐거움이 모두 충족되는 무대가 완성됐다. 창극 <패왕별희>는 중국 춘추시대 초패왕 항우가 한나라 황제 유방에게 패하는 과정과 항우와 그의 연인 우희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총 2막 7장에 걸쳐 그린다. 창극 대본을 쓴 린슈웨이는 동명 경극의 서사를 따르면서도 중국 역사가 생소할 수 있는 한국 관객을 위해 두 장면을 추가했다. 항우가 유방을 놓쳐 패전의 원인이 된 ‘홍문연’ 장면과 항우를 배신하고 유방의 편에서 그를 위기에 빠뜨린 한신의 이야기다. 여기에 창극에서 도창(해설자) 격인 맹인노파 캐릭터를 새롭게 만들었다. 맹인노파가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구조로, 노파는 극 밖에서 극 안의 상황을 논평하는 동시에 항우의 비범하고 영웅적인 면모를 노래한다. 한편, 11월 12일(일) 공연 종료 후 제작진‧출연진과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관객과의 대화’가 예정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극장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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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타고난 안무가 전황의 춤인생과 예술세계국악계로 지평 넓힌 정통파 무용가 이매방(1927-2015.8.7, 국가무형문화재 97호 살풀이춤 보유자, 27호 승무보유자), 강선영(1925-2016.1.21., 국가무형문화재 92호 태평무보유자), 김덕명(1924-2015.10.24, 경남무형문화제 제3호 한량무보유자) 전황(1927-2015,5,16,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국립창극단장)등 원로무용가들과 중견무용가 정재만(1948~2014), 임이조(1950~2013), 지희영(1949~2015) 등의 작고는 격동기 근대무용사의 산증인들이자 역사적인 인물들, 과거사를 증언해주고 알려줄 대영박물관과 같은 역사자료가 소실된 것 같은 안타까운 현실이 되었다. 전황선생님은 80대에도 청년같은 외모와 건강한 모습으로 공연현장에서 유일한 원로관객으로 뵙던 분으로 가장 장수하실 것 같았는데 지난해 갑작스런 비보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간 전황선생님을 뵐 때마다 늘 말쑥한 양복차림, 반듯한 자세로 빼어나게 멋진 노신사의 모습에 부러움과 존경을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움과 불가사이한 점도 많은 분이라는 데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80대 고령임에도 청년같이 건강하고 멋지고 미남인 신사로 사셨던 비결은 무엇이었는가? 둘째, 세계적인 근대무용가 최승희의 정통파 제자이면서 몇 안 되는 남성 한국무용가인데 어찌하여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국립창극단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국악인들을 이끄는 수장이 되었는가? 타고난 공연예술의 스타집안과 성장배경 전황(全璜, 본명 전두황)은 1927년 3월8일 함경남도 함흥시 남문리에서 전영술과 신명이의 5남3녀 중 7번째로 태어났다. 부친 전영술은 함흥시 재판소 앞에서 사법서사를 하며 유복한 가정을 꾸렸다. 부친은 해방 직후에 작고하였고, 모친은 6·25전쟁 직전에 작고하여 어려움도 겪었지만 형제자매들이 대중스타로 우뚝 솟아 있었기에 전황은 많은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맏형 전두옥은 역시 함흥출신 무용가 조택원과 고향친구였고, 영화 ‘아리랑’의 감독 나운규와 절친으로 영화배우 겸 권투선수였으며, 중국에서 배운 18기 무예를 이 땅에 처음 들여왔고, 승용차를 팔로 끄는 차력도 자랑했다. 누나 전옥(全玉, 배우, 본명 전덕례, 1911~1968)은 ‘눈물의 여왕’으로 무대와 스크린의 톱스타인 그녀를 보려고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셋째형 전두철은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제1바이올린 주자로 활동했다. 사촌형 전운봉은 남한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였고 북쪽에서도 인민배우로 대접을 받았다. 누나 전옥과 매형 강홍식(姜弘植, 1902~1971, 이시이 바꾸의 제자, 해방공간 당시 북조선영화촬영소 부소장, ‘봄타령’을 처음 부르고 유성기음반 취입한 가수)의 딸 강효실(姜孝實, 1932~1992)도 다 아는 영화배우이며, 강효실의 아들 최민수도 현재 유명한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어 전황의 가계가 한국 근현대공연사의 한 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전황의 딸 전미례는 본래 한국무용을 전공하였지만 아버지처럼 분야를 바꾸어 ‘재즈계 여왕’이라 불리는 재즈무용가로 활약하고 있다. 전황의 어린 시절 누나 전옥이 함흥 진사관에 공연하러 고향이 오면 집 앞에는 스타 전옥을 보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그때 열서너 살 된 전황은 자랑스런 누나의 연극을 보기위해 친구들과 공짜손님으로 극장을 드나들곤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전황은 1941년 함흥 제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함흥상업학교를 졸업하면서 예인의 삶 속에 젖어들어 갔으며, 맏형 전두옥의 영향을 받아 1946년(19세)까지 권투선수생활을 하면서 강인한 체력과 민첩한 몸동작을 단련하였다. 이러한 가계내력과 성장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우선 국가적인 스타가 될 만큼 수려한 외모를 선대로부터 물려받았으며, 형제들과 친척들이 예술가들이 많다 보니 전황도 자연스럽게 그런 무용, 국악 등 전통문화를 익힐 수 있는 가정환경이었다. 또 새로운 문물, 스포츠, 영화, 연극 등 다양한 문물과 예술에서도 적응력이 강하여 뛰어난 연기력, 체력의 유전적 DNA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황선생님의 인물치레가 범상치 않은 점은 이러한 천부적인 집안내력에서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유명 연기자들과 예술스타들이 타고난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 후천적인 환경과 노력이 가미될 때만이 보석의 빛을 발산하는 것이다. 말년까지 정정하고 강건한 자태와 인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맏형으로부터 배우고 익힌 권투선수의 기초훈련에서 익힌 날렵한 잽 동작과 발 스텝과 빠른 호흡과 민첩성 등으로 무용가로서의 유연성과 리듬감, 손놀림과 발놀림 등의 신체적 바탕을 갖추게 된 것임도 알 수 있다. 최승희 제자로의 입문배경과 공연활동 전황의 춤인생은 당시 아시아는 물론 세계무대에도 잘 알려진 무용가 최승희와의 조우에서 비롯하였다. 1947년 3월 최승희가 전황의 고향 함경남도 함흥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마침 남녀무용수 단원을 한명씩 뽑는다는 소식에 명성을 듣고 전국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응시하였다. 전황은 젊은 혈기에 한번 도전해보자고 가벼운 마음으로 응모하여 오디션을 받았는데 뜻밖에 최승희의 눈에 들어 많은 젊은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남자로는 유일하게 합격통지를 받고 평양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이것으로 무용경력도 없었던 전황은 1등 합격으로 운명적인 춤인생이 시작되었다. 권투선수로 다져져 손발이 빨랐고 눈썰미가 좋아 최승희의 춤시범을 센스있고 날렵하게 잘 따라 추어 무용수의 가능성을 인정받아 평양의 최승희무용연구소(1946년 8월 개소) 3기 연구생으로 입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집에서는 ‘하고많은 거 놔두고, 남자 놈이 춤을 추냐’고 반대했었다. 전황은 집에 있는 공기총과 아코디언을 팔아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로 갈 여비를 만들었다.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받는 국비 400원과 전옥누나에게 받은 용돈 50~100원, 어머니가 보내주는 100원으로 생활비를 삼아 알뜰하게 살면서 열심히 춤을 추었다. 얼마 되지 않아 30여명의 연구생이 묵는 기숙사생 중에서 최승희의 숙소에서 먹고 자면서 배우는 수제자로 발탁됐으며 이로 인해 국비를 300원씩 더 받게 되었다. 당시 북측 정부에서 최승희에게 국비를 지원하고 있었는데, 최승희와 안막선생님께 면회를 요청하여 가정형편이 어려워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전하니 국비 중에서 추가로 200원씩 더 지급해 주었다. 이곳에서 전황이 신흥(新興)무용(지금의 현대무용), 조선춤, 남방춤, 러시아춤, 발레 등을 배울 때 바로 위 선배로 김백봉도 있었다. ‘딴 딴 따따딴, 딴 딴 딴딴딴’ 최승희선생이 북을 치면 그대로 발맞춰 따라하는데 다른 사람보다 빨리 배웠다. 반주악사가 없을 땐 리듬감각이 탁월하다며 북과 장구를 치게 했던 것이 국악을 섭렵하는 시초가 되었으며, 이렇게 국악에 눈떠 훗날 국악협회 이사장을 지낸 바탕이 이때부터 형성된 것이었다. 그 후 전황은 국비 외에 800원의 월급도 받았는데, 그에겐 금전적인 수입보다 4년 동안 허실없이 배운 최승희 안무법과 음악선택법이 소중할 뿐이었다. 최승희 안무의 ‘초립동’은 안성희에게 배워 1947년(20세)에 추었다. "최승희 선생은 히스테리가 많았어요. 1948년 평양예술극장에서 제가 안성희·김백봉과 3인무 ‘옥중투사’를 추는데, 객석에 앉아 계신 어머님과 사람들이 ‘황아! 황아!’ 부르며 야단이셨죠. 그 소리에 저는 춤순서를 잊어버렸죠. 결국 최선생께 혼나고 긴 손톱으로 꼬집혀 살이 뭉개졌죠. 그만큼 완벽을 추구하셨고, 기억력, 창작력,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셨구요” 전황은 1948년 고된 훈련 중에도 단원들 누구보다 동작과 자세, 그리고 순서익히기에서 남다른 끼와 천부적인 표현력을 인정받아 최승희무용단원으로 중국순회공연을 처음으로 다녀왔다. 중국순회공연을 하던 중 매란방의 〈손오공〉을 보게 되었는데 분장실의 매란방은 남성인데도 춤출 때는 여자같이 곱게 추었다고 하였다. 당시 최승희는 안무작업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는데, 매일 아침마다 두 달 동안 몰래 숨어 ‘노사공’ 안무를 보던 전황이 결국 최승희에 발각되었다. 그러나 의외로 스승은 ‘재주있는 놈’이라며 악사 옆에 앉아서 보라고 승낙하였다. 이렇게 1947년부터 1950년 사이 4년 동안 최승희의 작업, 공연, 생활 등 모든 것을 전황과 김백봉만이 가장 소상히 알고 있는 산증인이 되었다. 1950년 6월 7일에는 100명 규모의 방소예술단원으로 출국하여 9일 걸려 러시아 모스코바에 도착했었다. "하루 종일 달려야 역 하나가 나와요. 치타에 도착하니 거지 떼들이 몰려들어 돈 달라, 빵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우리도 기차 안에서 빵과 과자를 배급받아 먹었을 뿐인데...” 이런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당시 소련) 모스크바 공연 중에 6·25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허정숙 단장이 ‘조국전쟁이 일어났다. 남한이 쳐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하면 방소예술단은 정치적 색채를 띤 단체였어요. 러시아 공연도 이미 약속된 공연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허정숙은 전쟁 중에도 예술단을 이끌고 공연을 감행하였지요. 러시아에서 기억에 남는 곳은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공연장이었어요. 러시아에서 가장 크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고 했는데, 무대에서 탱크가 돌고 10마리의 말이 거니는 규모였습니다.” 그 후로 예술단은 밤마다 이동해 귀국길에 올랐다. 평양으로 돌아온 후에 전황을 비롯하여 최승희무용단원들은 춤연습을 하다가도 폭격이 오면 최승희연구소의 지하실에 피하곤 하였다. 전쟁의 와중에 인민군이 점령한 서울 구민관에서 ‘해방의 노래’를 공연했다. 어수선하고 자유롭게 나다니지도 못했는데 장추화, 송범 등이 구경을 왔었다. 전황은 군인으로 위장하고 동양극장에 출연하는 전옥의 충정로 집으로 갔는데, 누나는 없고 그 집은 민청사무실로 사용 중이었다. 전황은 이산의 고통을 억누르며 ‘초립동’과 ‘목동과 처녀’를 추었다. 춤출 때는 이산의 고통을 잊었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평양으로 돌아가 가족과 만날 꿈만 꾸었다. 1950년 8월 예술단은 광주. 목포(여기서 이매방이 안성희와 전황의 춤을 봤다는 생전 증언을 들었다), 군산을 순회공연하고 평양으로 돌아가던 길인 조치원에서 북한 군표와 남한 돈을 한 뭉치씩 받았다. 전황은 남한 순회공연을 하다 철수 명령을 받고 평양으로 되돌아가던 중 최승희의 딸 안성희 일행과 헤어졌다. 중도에 안성희는 인민군에 붙잡히지만 최승희의 딸이어서 평양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가을 전황은 최승희딸 안성희와 헤어져 빨치산 잔류들과 산을 타고 군화 소리 난무하는 평양에 겨우 도착하였다. "최승희 무용연구소로 가니 러시아에서 공연할 때 사용하던 물건들이 그대로 있는 겁니다.” 그러나 가족은 없었다. 양복과 구두 등을 챙겨 스승 최승희가 있는 자강도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때 전황의 운명은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평안도 석암에서 과일을 사러 가다 예술단 악사가족을 만났다. 그들은 "최승희도 여기 있다. 자강도로 가면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누나가 있는 남한으로 가라”하였다. 그때 안성희와 김백봉도 만났다. 그리하여 전황은 석암의 악사네 집 지하에 숨어버렸다. 순수예술가로 살 길은 남한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울 가는 산길에서 사흘을 굶고 허기져 살길이 막막해 허리띠를 나무에 걸었다. 목을 매 자살하려는 순간에 드라마같은 일이 생겼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연주자 최옥삼(가야금산조 명인, 최승희 반주자)이 "어떡하든 살아야 한다”며 말렸다.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 숨어 있다가 숨은 사람들 대표로 전황이 미국 제일기갑사단 대적선전대를 찾아가 "최승희 제자지만 전옥의 동생”이라 하여 도움을 받으며 지냈다. 1951년 1·4후퇴 때 평양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그때 조카 강효실(당시 20세)은 작가 이서구(백조가극단 작품 집필)가 지프차에 태워 서울로 보냈다. "충정로 누님댁에 가니 누님과 재혼한 매형 최일이 있더군요. 후에 누님댁은 트럭을 빌려 부산으로 피란가고 저는 국민제일 군위병으로 뽑혔으나 늑막염으로 군면제를 받고 뒤늦게 부산으로 갔죠.” 전옥은 백조가극단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당대스타인 김승호, 허장강, 배삼룡, 고복수, 황금심 등 백조가극단장 전옥의 밥을 먹지 않은 이가 없었다. 작고 전에 현재 육군사관학교 뒤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에 배밭을 소유했는데 남편 최일이 훗날 그 땅을 많이 팔았다고 한다. 전쟁은 함흥부자인 전황의 가족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고, 북한에 생활기반을 둔 채 남한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힘겨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중부터 안무가로 인정받은 남한생활 1951년 부산피난시절 전황은 한국민속무용연구소를 개소하여 전옥누님이 단장으로 있는 백조가극단과 무관하게 활동했다. 정인방이 전황을 찾아와 부산극장에서 공연할 무용극 〈처용랑〉의 마귀역할을 이인범(발레)이 사정으로 출연하지 못한다고 대신 출연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대본도 없이 음악을 맡은 나운영의 집에 가 피아노곡을 듣고 안무하여 마귀옷을 입고 현대무용같은 발레를 추었는데, 안무를 잘했다는 평을 받았다. 1953년 박녹주, 박귀희, 김소희, 박초월, 임춘앵 등이 주축인 여성국악동호회(여성국극의 효시, 1948년 창단)에서 활동하는 최승희 반주악사였던 박성옥을 따라 동래온천장에서 창극연습에 참가하여 유치진 작 창극〈가야금〉 초연 때 아쟁(박성옥으로부터 이미 배웠음)을 연주하였다. 그때 전황은 박성옥의 연주를 돕다가 한영숙의 춤 〈가야금의 노래〉를 보는데 안무적인 관점에서 아쉬운 춤판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햇님창극단장 김주전이 한영숙에게 전황이 최승희 제자니 한번 시켜보라는 귀뜸을 주었다. 이 말을 들은 한영숙이 전황에게 안무해보라고 부탁해 인정받은 것이 오늘날까지 안무가로 자신감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특히 여성군무인 만큼 춤은 추지않고 안무에만 열중하여 여성국악동호회의 후신인 햇님창극단은 잘 나가게 되었고 전황은 안무가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작품 〈햇님달님〉에서 라이벌인 박귀희(햇님)·김소희(달님)가 노래하고 안무는 전황의 몫이었다. 국악을 듣는 귀가 있으니 다른 이가 일주일 걸릴 안무를 하루나 이틀에 완성했다. 동래온천장 공연은 자금이 넉넉해 신선놀음이었지만, 여성국극단이 예닐곱 개씩 생기다보니 서로 제살깎기식 경쟁을 했고 결국 해체를 거듭하다 국립창극단이 태동하게 되었다. 당시 출연료는 명창이 1만원, 악사는 9천원, 안무가는 6천원 정도 받았다. 돈을 벌게 된 23세 전황은 1951년 11월 이조판서를 지낸 집안의 딸 다섯 살 연하의 김봉선과 금정사에서 결혼하였다. 여성국극에 반한 동래여고 출신 김봉선이 햇님창극단 오디션에 뽑혀 무용수로 투입되면서 사귀다가 눈이 맞았었다. 처형이 예기 김강남월로 7세에 레코드를 취입한 천재소녀 명창이었다. 그가 소리한 뒤 순서에는 서로 무대에 나가길 꺼릴 정도였다고 하였다. 당시 누님 전옥은 예술가가 일찍 결혼하면 신세망친다고 반대했었지만 결혼 후에는 처가살이를 했다. 첫아이는 출생 직후 죽었고 5년 후 태어난 전미례(52·서울전미례 재즈무용단대표), 죽은 딸의 이름 ‘미례’를 다시 붙였다. 전황의 2남2녀 중 맏딸 전미례만 춤을 물려받았다. 펄펄 나는 힘과 예술적 열정을 미국 재즈유학에 쏟았고 국내 재즈무용계 무용학 박사 1호를 기록했다. 6·25 전쟁 후 부산에서 북한 출신들이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살 때 최승희 제자인 전황은 전옥의 신원보증으로 안무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당시 이인범, 송범은 활동하지 않았고, 김백봉도 북한출신의 최승희 제자라는 이유로 조용했었다. 생업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적의 터전이 국극판이었다. 김백봉, 강선영 등도 여성국극단에서 안무했었다. 국극에는 오프닝춤, 상징춤, 경사춤, 피날래춤 등 적어도 너댓 가지 춤이 필요했다. 전황은 국극을 안무하며 창을 계속 들었기에 귀명창이 되었다.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창을 들으며 누구보다 빨리 안무했다. 50여년 이상 국악을 들으며 입으로는 안 되지만 손하고 가슴 속으로는 연주가 가능했다. 〈벌에 쏘인 꽃〉 등 수많은 국극과 창극을 안무했다. 대표작은 첫 작품인 〈가야금〉. 부귀영화를 다 버리고 우륵을 따라간 가실왕과 그를 사모한 배꽃아기의 사랑이야기 자체가 건전해 마음에 쏙 든다고 했다. 무용작품도 전황류 〈부채춤〉, 〈장구춤〉, 〈소고춤〉, 〈장검무〉, 무용극〈황우와 우미인〉, 〈시집가는 날〉 등 셀 수 없이 많았다. 당시 명창 박귀희와 김소희는 형님아우 하면서 잘 지냈지만 서로 최고이고 싶어 했고, 서로 전황에게 하소연했었다. 박귀희의 명성이 더 앞섰기에 김소희는 늘 불만이었다. "내가 나이도 위고 소리도 잘 하는데 왜 밤낮 박귀희 다음에 김소희냐?”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박귀희는 스스로 김소희만큼 소리가 못하다는 걸 깨닫고 가야금병창으로 인간문화재 지정을 받았고, 김소희는 판소리로 지정받았다. 북한출신이고 최승희의 제자라는 이유로 소외시켰지만 실력으로 춤을 인정 전황은 최승희 선생에게 배운 춤을 바탕으로 창작했으니 내 몸에서는 항시 최선생님의 춤냄새만 난다고 술회하였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자 무용만으론 생활비가 되지 않자 영화사 일도 하고 백조가극단도 봐주고 돈이 되는 일이면 창극단 안무도 하는 등 최승희선생님으로부터 배우고 익힌 춤실력과 안무력을 바탕으로 바쁘게 살았다. 또한 늘 북한콤플렉스가 있었다. 예를 들어 흰 의상과 빨간 의상을 입고 추던 무용수들 가운데 빨간색이 가운데로 몰리는 춤이 나오면 임검석에서 보자고 하여 누가 안무했느냐? 왜 빨강색 의상이 가운데로 몰리느냐? 꼬치꼬치 따져 마음대로 창작할 수 없었다. 또 남한 무용가들은 '이북에서 온 주제에 어디를 넘봐' 하는 식으로 질투하기도 했다. 부산피난시절 여성국극단 안무를 할 때 "전황이가 누구냐” 고 하더니 무조건 쇠고랑을 채운 적도 있었다.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간 그에게 "왜 남한으로 넘어왔느냐”면서 간첩취급을 했다. 물론 매번 누나 전옥이 보증을 서서 풀려났지만 그 후로도 국가보안법으로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다른 이들은 북한출신임을 숨겼지만 전황은 스스로 떳떳하게 밝히곤 하였다. 자신뿐만 아니라 당시 김백봉과 남편 안제승도 종로경찰서에 불려갔으며 북한출신이어서 차별도 받았다. 올림픽 때 안무를 맡고 싶었는데, '전황이는 이북에서 왔다'며 그를 추천하지 않아 참여를 못한 적도 있었다. 초기의 무용가들은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행사안무를 추천하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외롭게 홀로 투쟁하며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아 자리를 얻었다. 문화관광부 등 정부에서는 실력 있다고 알아주었다. 한국민속예술단원 및 안무자로서의 왕성한 해외활동 1958년 국극의 전성기까지 안무가로 활동한 전황은 결혼 후 서울로 이주하여, 1963년 광화문에 신흥무용학원을 내었고, 체계적인 춤교육 덕분에 조교를 두 명이나 두고 지도하였다. 1963년 서울민속무용단 활동과 더불어 예그린 무용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 합창단, 무용단, 관현악단 등 300명의 단원들은 운영에 어려움이 있어 해체와 재창단을 거듭하며 예그린도 100명으로 줄었다. 이렇게 말기 멤버로 동참한 전황은 권려성의 후임으로 예그린 무용부장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1964년 일본 도쿄올림픽 경축파견 한국민속예술단 총감독 및 안무·연출을 맡았으며, 1964년에는 명동국립극장에서 이틀 동안 제1회 춤 발표회를 가졌다. 이틀 공연은 대박이었다. 흥행사가 붙은 공연은 대전에도 초청됐다. 당시 김백봉은 필동에 연구소를 차렸고, 장추화의 제자 송범은 현대무용을 추었다. 그 후에도 1967년까지 매년 전황 민속무용 발표회를 가졌다. 1967년 정일권 국무총리 때도 계속 민속예술단에서 활동했다. 1968년 한국민속예술단 지도위원 및 출연자로 멕시코 올림픽·일본 공연을 하였다. 송범, 김백봉, 김문숙, 전황 등과 함께 조택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그들은 세계 각국을 순회공연을 하였다. 그 때 전황은 〈부채춤〉 〈농악〉 〈장고춤〉 〈무당춤〉 등 동적인 춤을 안무하고 추었다. 1970년 정부문화사절단 지도위원으로 일본 및 동남아 순회공연을 하였고, 1971년 정부문화사절단으로 네덜란드 영국 스페인 레바논 일본 등 순회공연, 1972년 정부문화사절단 무용총감독으로 유럽·중동·아프리카·동남아 등 24개국 순회공연, 1973년 문공부 파견 일본 신주쿠 고마극장에서 〈춘향전〉 안무와 국립창극단 〈배비장〉 안무를 하였다. 1976년 국립무용단 지도위원으로 문공부 파견으로 일본 도쿄국제극장 쇼치구가무단의 〈심청전〉을 안무하였다. 1977년 정부문화사절단 유럽 11개국 순회공연을 가졌다. 1978년 하와이이민 75주년 기념 한국민속예술단 연출·안무를 맡았으며, 1981년 제12대 전두환 대통령 취임기념 공연 및 대예술제에 연출·안무로 농악을 올렸다. 이처럼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국가적 행사와 해외공연의 안무자로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무용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특히 전국적으로 흩어진 〈농악〉을 무대화한 주인공이 바로 전황이다. 한두 시간씩 치는 농악을 15분 정도로 압축해 많은 가락과 춤사위를 정리했다. 김덕수와 최종실 등 사물놀이패가 구성되기 전 좌도농악과 우도농악의 좋은 점을 뽑아 50~60명이 오르는 무대농악으로 구성했다. 처음 선보인 건 1963년 박정희 대통령 취임식 공연에서다. 교방춤과 마당춤을 극장예술로 다듬으면서 극장양식의 변화를 주도했다. 한국국악협회 이사장과 국립창극단 단장을 역임한 전황 최승희 제자로 안무가와 무용가로 활동한 전황이 어찌하여 무용협회 활동을 하지 않고 국악협회로 발을 돌렸을까 의문이 든다. 1964년 한국국악협회 무용분과위원장을 맡고 14년 동안 국악협회 활동을 하다가 1988부터 1991까지 한국국악협회부이사장으로 활동한 배경도 무용계에서는 북한출신이라는 배타성, 남성이 남성춤을 추지 않고 여성춤에만 치중하는 모습, 성정체성의 문제를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고 하였다. 1992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이 된 그는 한국방송광고공사에서 하는 대한민국국악제를 협회 주최로 이끌어 오는 등 40여 년 동안 한국국악협회에서 역동적인 남성춤을 안무하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타악과 현악과 성악을 터득하여 국악계에서 활동한 것이다. 국립창극단과의 인연은 1973년 〈배비장〉 안무를 맡으면서부터였다. 물론 여성국악창극단이 활동한 1950년대와 1960년대까지 창극에서의 역할은 거슬러 올라가지만 1996년부터 1997년까지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맡게 된 것이다. 이어서 1999년 중국 베이징 국극공연 〈황진이〉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그해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고법(鼓法) 이수자가 되었다. 고법은 창극단 시절 한일섭과 정철호로부터 조금씩 배워 연주에 참여했던 것을 인정받아 이수증을 받게 된 것이다. 2000년 창작민요극〈진도에 또 하나의 고려 있었네〉와 창무극〈해상왕 장보고〉를 안무했다. 일본어능력시험 1급 자격도 땄다. 일본공연을 자주 가고 일본작품 〈제비〉도 번역할 정도였다. 2002년 문화재청 파견 한·일문화교류의 해 〈천년의 소리〉 일본순회공연 예술총감독도 맡았다. 그리고 2004년 국립창극단 자문위원을 위촉받아 자문하였고,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겸임교수로 10년을 출강하여 마지막까지 춤열정을 후학들에게 쏟았다. 그리고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의 대상으로 춤과 국악 생애를 증언하였다. 다만 장년 이후 춤을 많이 추지 않고 안무를 주로 했기 때문에 제자가 많지만 어려서부터 춤을 배워온 윤성주와 딸 전미례 등이 있고 말년의 제자로는 김지원, 백선희 등이 있을 뿐이다. 전황의 예술세계 전황은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 문하에서 사사했고, 1951년 한국민속무용연구소를 설립했으며, 1964년 일본 동경올림픽 경축파견 한국민속예술단 총감독과 안무연출을 맡는 등 정부 문화사절단으로 각국에서 '춘향전', '심청전' 등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한국민속예술단원과 안무자로 유럽 3회, 동남아시아 2회, 미국, 러시아, 중국, 중동, 일본 등 당시엔 한 번 나가기도 힘들다는 외국 공연을 수십 차례 다녔다. 덕분에 국민훈장인 동백장도 받았다. 1988년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을 거쳐 1992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했고, 1996~97년 국립중앙극장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무용계뿐만 아니라 국악계에서도 널리 업적을 남겼다. 전황이 남긴 예술혼과 예술철학은 몇 가지 굵직한 교훈과 한국공연예술사에 족적을 남겼다. 첫째, 최승희의 가르침에서 터득한 창작력과 뛰어난 안무력을 바탕으로 민간예술을 민족적 무대예술로 승화시킨 점이다. "저, 최승희 제자예요. 최승희! 최승희 무혼(舞魂)의 흐름이 제 춤에 들어 있다고요. 그 자부심 하나로 이 땅에서 타협하지 않고 외롭게 홀로 투쟁하며 살았습니다.” 음악적 소양이 뛰어났던 최승희가 전통악기를 개량한 악기반주에 맞춰 민족무용과 국극을 안무하고 창작하던 것을 이어받은 전황은 안무력과 창작력을 발휘하여 ‘마당농악’을 ‘무대농악’, ‘민간춤’을 ‘무대춤’ 등으로 민족무대예술을 발전시켰다. 둘째, 북한출신 콤플렉스를 딛고 일어서 이념갈등 속에서도 남한예술가로 자리매김하며 본인만의 순수공연예술작품을 창작하였다. "북한콤플렉스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빨간 의상을 입고 추던 무용수들 가운데로 몰리는 춤이 나오면 임검석에서 저를 보자고 하여 마음대로 창작할 수도 없었죠.” 때로는 쇠고랑도 채웠고,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가 간첩취급도 당하는 등 북한출신이어서 차별도 많이 받았으며, 북으로 넘어간 최승희 제자라는 이유로 편견이 상존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운 고향마저 버리고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을 펼칠 수 있는 남한을 택했고, 굴하지 않은 신념으로 자신만의 예술혼을 살려보고자 각종 공연예술에 전념하였다. 셋째, 여성편향적 경향과 비중에 편향된 사조에 맞서 외롭게 역동적인 남성예술의 복원과 추구에 앞장서 남녀예술의 균형발전과 공존사상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최승희 선생께 남성춤, 여성춤을 확연히 구분해 배웠는데, 왜 남성들이 그리 여성스럽게 추는지‥‥‥‥” 여성춤은 곱고 이쁘지만 남자는 남자다운 춤을 추어야한다고 주장하면서 본인 스스로도 살풀이춤, 입춤같은 춤을 춘 적도 없고 장검무, 소고춤, 장고춤, 농악춤 등 남성성이 강한 춤을 추고 가르쳤다. 혼자의 힘으로 대세를 역전시키기는 역부족이었지만 그는 남성은 치마(여성)춤만 추지 말고 바지춤을 추어야한다며 남성예술과 여성예술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일념으로 살았다. 하지만 전황은 이매방이 가장 춤을 잘 춘다고 했다. 60여년 친구이지만 전황은 남자가 여자처럼 춤추는 게 싫었다. 최승희 문하에서 수년 동안 남성춤과 여성춤을 구분해야 한다는 사상이 골수에 박힌 그는 춤추는 남성들의 대부분이 여성화된 춤을 추는 게 못마땅했다. 그때부터 그는 무대가 좋지만 무대에 가급적 서지 않았다. 여성적인 춤을 추는 이들과 동일시되는 게 싫었다. 게다가 딸 전미례가 아버지의 성정체성과 취향을 의심하는 듯한 발언을 해 그때부터는 가끔 서던 무대마저 무대화장을 전혀 하지 않다가 전두환 대통령취임식 때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선 것이 마지막이 되었다. 넷째, 한민족예술의 본질인 가무악(歌舞樂) 일체사상과 악무극(樂舞劇) 합체사상을 표방하고 심어주었다. "국악을 알아야 무용을 창작할 수 있어! 특히 장단의 귀가 뚫려야 산조를 들을 줄 알아야 춤을 만들 수 있지!” 우리 민족은 원래 국악따로 무용따로가 없이 악가무 일체의 예술적 특성을 지닌 민족이다. 전황은 이러한 민족예술과 춤의 본질적 특성을 올곧게 지닌 예술가였다. 서구예술의 전공분화시대에서 소외됨을 무릅쓰고 총체예술의 중요성을 몸소 실천하였다. 전황이 한국예술계에 남긴 것 한국 신무용의 핵심이 최승희에서 비롯됐기에 스승 최승희에 대한 기억을 소상히 간직한 전황의 자부심은 귀하고도 올곧았다. 최근까지 남한에 생존해있는 최승희의 대표제자로는 김백봉과 전황뿐이었는데, 유일한 남자제자인 전황선생님의 작고는 신무용시대의 대표적인 적통자이며 전승자의 인맥단절을 의미한다. 그는 평생 최승희의 춤사상을 실천하고 끊임없이 남성춤을 추구해온 근대무용의 산증인이었으며, 무대농악의 창시자이고 국극과 창극에서도 영원한 안무자로 자리매김하여 국악계의 수장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등 한국 근대예술사의 한 획을 긋고 떠났다. 끝으로 전황은 예술계의 간디라는 생각이 든다. 간디가 비폭력, 불복종, 무저항, 평화주의자이였듯이, 전황은 빼어난 외모와 타고난 스타집안의 피를 이어받았고 당시 세계적인 한국무용가 최승희의 남성제자였기에 한국무용계에서 스타반열과 직책에 오를 수도 있었지만, 여러 정체성 문제로 혼돈의 시대를 살면서도 묵묵히 세태에 복종하지 않았고, 이념전쟁의 희생양이었지만 본인만의 색깔과 예술혼을 불사르며 국가, 사회, 문화계에 무언의 항거를 보여주었다. 국악계로 발을 돌려 커다란 족적을 남기면서 끝까지 무용계를 탓하지 않았다. "전황류 소고춤, 전황류 검무, 전황류 쌍검무, 전황류 농악을 만들었지만 최승희 선생의 혼이 들어가 있다는 거죠. 남자는 남자답게 씩씩하게 ! 그래서 저는 절대로 무대에 오를 때 화장하지 않았습니다. 미례가 나의 성정체성에 의심을 품을 때부터 완전히 화장을 그만두었죠.” 그러나 인생을 살다보면 아쉬움도 남는 법이어서 전황선생님이 마지막 남긴 말씀이 떠오른다. "피리 등 관악기만 못해보고 타악과 현악은 웬만큼 해봤지! 그런데 아쉬움이라면 거문고 산조를 못해본 것이 가장 한이 맺혀! 술대로 현을 드르렁 긁는 소리가 마음을 후벼 파는 듯한 멋을 느낄 수 있는데 말이다.” 〈수상〉국무총리표창(68년), 문화공보부장관 표창(69·70·71·72년), 국민훈장 동백장(73년), 문화공보부장관 감사장(81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공로패(82년), 한국국악협회 국악대상(98년), 문화재청 공로 감사장(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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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 2천명 관객과 함께 청와대 야외무대 수놓은 국악의 신명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국악관현악단(예술감독 겸 단장 직무대행 여미순)이 지난 7일~8일 양일간 청와대 내 헬기장 잔디마당에서 <격格, 한국의 멋>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국립극장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주관한 이번 공연은 청와대 국민개방을 계기로 청와대에 방문하는 모두가 한국 음악의 격과 멋을 즐길 수 있는 자리로 마련, 양일간 총 3회에 걸쳐 무료로 진행됐다. 예매 오픈 하루 만에 전 회차가 매진되는 등 개최 전부터 높은 관심과 기대를 모았으며, 지난 주말 야외무대를 찾은 2,000여 명의 관객은 각 곡의 연주가 끝날 때마다 뜨거운 성원을 보냈다. <격格, 한국의 멋>은 한국의 정서를 담은 국악관현악 명곡과 국악관현악이 낯선 관객을 위한 다채로운 협연 무대로 구성됐다. 아나운서 진양혜가 부드럽고 편안한 해설로 관객의 이해를 도왔으며, 지휘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정치용을, 미국 피바디 음악원에서 마린 알솝을 사사한 차세대 지휘자 정예지가 맡았다. 공연은 손다혜 작곡의 ‘하나의 노래, 애국가’로 시작했다. 역사 속 애국가 세 곡을 엮어 완성한 곡으로 숭고한 희생을 바탕으로 지켜낸 대한민국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어서 국립창극단원 민은경이 협연한 ‘사철가’와 영화 <라라랜드> 삽입곡 메들리가 이어졌다. 대중에게 친숙한 ‘어나더 데이 오브 선(Another Day of Sun)’과 ‘시티 오브 스타(City of Stars)’ 등이 포함돼 많은 호응을 끌어냈다. 또한 회차별로 세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협연자가 교체 출연해 화려하고 다채로운 무대를 선사했다. 10월 7일(토) 11시 공연에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양방언이 협연자로 나서 ‘플라워즈 오브 케이(Flowers of K) & 프론티어(Frontier)’ 등 그의 대표곡을 들려주었다. 이어진 15시 공연에는 <데스노트> <드라큘라> 등 다수의 뮤지컬에서 활약해 온 배우 강홍석이 출연해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10월 8일(일) 15시 공연에는 크로스오버 4중창 그룹 크레즐이 함께 했다. JTBC '팬텀싱어 4' 결승 진출 팀 중 하나로 국악·성악·뮤지컬·아이돌 등 색다른 조합으로 구성해 장르를 넘나드는 폭넓은 소화력과 하모니를 선보이는 그룹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나 하나 꽃피어’ ‘홀로아리랑’ 등을 국악관현악 연주에 맞춰 노래했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원일 작곡의 ‘신뱃놀이’는 한국 음악의 흥과 신명을 전해주었다. 공연에 대한 높은 관심과 기대를 증명하듯 공연 당일 현장에는 사전예매 관객 외에도 현장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으로 북적였다. 공연에 함께 한 관객들은 "청와대 관람과 더불어 이렇게 풍성한 구성의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어 특별했다”라고 감상 소감을 전했다. 한편, 연주자로서 공연에 함께한 여미순 예술감독 겸 단장 직무대리는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청와대 야외무대에서 많은 관객과 함께 우리 음악의 가치와 멋을 나눌 수 있어서 뜻깊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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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람 작창 ‘노인과 바다’ 공력 돋보였다9월 20일, 소리꾼 이자람의 판소리 ‘노인과 바다’가 영등포아트홀 무대에 올랐다. 영등포아트홀 기획공연 '시리즈Q'의 ‘주제극장’ 일환으로 진행된 판소리 ‘노인과 바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 소설을 바탕으로 '사천가', '억척가', '이방인의 노래', '추물/살인' 등의 작품이다.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판소리 창작자이자 소리꾼인 이자람이 직접 작창한, 2019년 11월 두산아트센터 초연 이래 국내외 다양한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난 작품이다. ‘추물/살인’으로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한 박지혜가 연출하고, 무대미술가 여신동이 시노그래퍼로 참여했으며, 이자람의 목소리와 고수 이준형의 소리북 장단으로 2시간의 무대가 풍성하게 채워졌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책으로 읽으며 느꼈던 감정은, ‘이건 책이 아니라 영화가 아닌가?’였다. 분명 글을 읽고 있는데 눈앞에는 노인, 그리고 노인과 사투를 벌이는 청새치 두 생명체의 긴장감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펼쳐졌다. 당대 최고의 문학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이 대작을 판소리로 들려줄 때, 과연 눈 앞에 펼쳐지던 영화 같은 장면을 또 경험할 수 있을 것인지가, 이번 공연을 앞둔 나의 가장 큰 궁금증이었다. 오래도록 많은 무대에서 작창이나 소리를 통해 다양한 무대를 만들어 온 이자람은 희곡이나 근현대 소설을 판소리의 다양한 소재와 형식으로 개발하는 작업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오랜 시간 그의 다양한 행보에 관심이 있던 터라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는 작품 ‘노인과 바다’의 무대가 더욱 기대될 수밖에 없었다. 작년 10월 관람했던 국립창극단의 ‘나무, 물고기, 달’ 공연에서는 이자람이 음악감독을 맡아 대중적인 무대화와 창극단원들이 주축이 된 신선한 무대를 만들어 보였다. 이번 무대 ‘노인과 바다’는 ‘나무, 물고기, 달’과 다르게 많은 대사나 화려한 무대 연출이 아닌 이자람의 소리로만 무대를 채워 나가기에 어떻게 흥미를 끌어낼지, 어떤 흡입력을 보여줄지에 초점을 맞추고 관람하였다. 외국 고전 소설을 한국에서 무대화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문화가 다른 탓에 공감대를 얻기 어렵고, 그렇기에 그런 부분을 관객들에게 쉽게 설명하는 동시에 감동과 이해를 동시에 주기란 어렵다. 이자람은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이 고전, ‘노인과 바다’를 그만의 특출난 상상력과 유쾌함, 관객과 편안하게 소통하며 무대를 장악하는 능력, 능수능란한 재간으로 재해석해 만들어 냈다. 노인이 회를 썰어 먹는 장면에서는 "회는 간장에 와사비를 풀어 먹어야 하는데 그곳엔 와사비가 없다”고 유쾌하게 너스레를 떨며 문화적 차이를 좁혀 나가고자 했고, 관객들에게 편안하게 말을 건네며 자진모리장단과 추임새를 가르쳐 주는 등 관객들이 극에 편하게 참여할 수 있게끔 유도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무대를 보고 관람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탄성을 내뱉거나 자유롭게 추임새를 하고, 박수치고 웃기도 하며 편안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작창’은 새로운 이야기에 판소리를 싣는 작업이다. 판소리가 지닌 특성과 문법을 이해한 후, 이를 활용하여 해체하거나 조합하고, 장단을 선택하며 소리를 구성한다. 가사를 잘 전달하기 위해 음고나 운율을 살리고, 가사의 내용에 맞게 소리의 어법이나 특성을 활용해야 한다. 작창 작업은 다양한 음악적 지식 외에도 수많은 관점과 해석을 고려해야 하며, 작창가의 역량에 따라 작품이 천차만별이 될 수밖에 없다. 이자람은 우리나라 대표 작창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다양한 작품에서 작창을 해 왔기에 그 명성은 명실상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일 수 있지만, ‘노인과 바다’ 작품을 통해 그의 오랜 공력이 더욱 돋보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건 그의 독창적인 아니리와 다양한 몸짓이었다. ‘아니리’란 판소리에서 음률이나 장단에 의하지 않고 일상적 어조의 말로 하는 부분을 가리킨다. 일상적 어투로 이루어져 있기에 작품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는 부분으로, 판소리에서의 아니리는 소리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자람은 특히 동화책을 읽어주듯 편안하게 대사를 전하는 능력이 탁월하여, 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여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또 바지를 움켜잡고 올려 입는 흉내를 내거나 부채를 상대방의 손인 양 잡고 팔씨름하는 모습, 청새치와 힘겨루기를 하는 등의 다양한 몸짓은 유쾌함과 집중력을 끌어내는 무대 장악력이 특히 돋보였다. 음악적인 부분에서의 작창도 훌륭했다. 관객들에게 자진모리장단을 가르쳐 준 후 ‘역시 산티아고-’ 의 가사를 반복해서 부르는 노래에서는 정박, 엇박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말 그대로 장단을 가지고 노는 유쾌함을 선보였고, 사람들이 속닥속닥 수군대는 장면은 고음의 속소리로 노래하여 장면과 잘 어우러지게끔 만들어 냈다. 또 청새치를 잡는 장면은 5박인 엇모리장단을 활용하여 긴장감과 몰입감을 최대치로 표현하였다. 그렇게 장면에 맞는 장단과 소리의 톤, 강약과 다이나믹이 한데 어우러지며 매끄럽게 변화하는 가운데 극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무엇보다 이 무대는 소리꾼 이자람이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청새치와 긴 힘겨루기를 하며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 노인은 멍하니 앉아 주변을 둘러보며 말한다. ‘나는 어부다. 나는 지금 바다 위에 있다.’ 그는 힘들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 본인이 있는 공간과 자기 자신을 자각하며 정체성을 드러낸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을 깨닫는다. 바다 위에 있는 어부가 할 일은, 물고기를 잡는 것. 그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청새치와 싸워 결국 이겨낸다. 이자람은 ‘지금 이곳에서 내가 할 일’에 노인을 대입하여 이야기했다. ‘버티고 또 기다린다.’ ‘나는 왜 판소리를 할까?’ ‘기다리는 것은 결국 나타날까?’ 등의 대사는 이자람이 오랜 세월 소리꾼으로 살아오며 고민했던 물음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났다. 그는 우리가 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노인과 본인을 빗대어 말해주었다.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하는 어려움과 고민, 힘든 마음이 올 때도, 우리는 묵묵히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하며 이 삶을 계속해서 즐겁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관객들의 환호성과 벅찬 감동은 무대가 끝나고도 지속되었다. 이야기의 흐름에 맞추어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무대의 빛과 조명, 이자람의 강인하고 단단한 소리, 소리와 가장 조화로운 합을 보여준 이준형의 장단, 노인과 청새치, 그리고 상어와의 사투를 통해 조명해 보는 삶에 대한 의지와 주제 의식까지. 과연 책을 읽었을 때처럼 눈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질 것인가 궁금했던 나는, 책과는 또 다른 색다른 영화 한 편을 경험한 느낌을 받았으며, 전통성과 창의성, 현대성이 가미된 창작 판소리 ‘노인과 바다’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창작 판소리의 발전, 이자람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었다. 존재하는 그 자리에서, 나만의 정체성으로 묵묵히 지금 할 일을 해내는 것. 바로 노인과 소리꾼 이자람처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끊임없이 집중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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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완창판소리 '김영자의 수궁가-정광수제'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은 <완창판소리-김영자의 수궁가>를 10월 14일(토)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한다.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 김영자 명창이 깊고 탄탄한 성음으로 정광수제 ‘수궁가’를 완창한다. 1951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영자 명창은 8세에 강산제 보성소리의 계승자인 정권진 명창으로부터 ‘심청가’와 ‘춘향가’를 배우며 판소리에 입문했다. 이후 김준섭 명창을 비롯해 김소희·박봉술·성우향 등 당대 최고의 명창들을 두루 사사한 김 명창은 안정적인 중하성(아랫소리의 음)부터 시시상청(최고조의 고음)까지 거뜬하게 소화해 탁월한 목청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판소리 다섯 바탕(흥부가·춘향가·수궁가·심청가·적벽가)을 모두 완창한 것은 물론, 1985년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부 장원으로 대통령상을 받으며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또한, 1974년부터 1999년까지 국립창극단원으로 활동한 그는 소리뿐 아니라 발림(신체를 활용한 몸짓‧부채 등으로 극적인 상황을 표현하는 것)과 아니리(일상적 어조로 말하듯 표현하는 것)에도 뛰어나 20여 년간 여러 창극 무대에서 주역을 도맡았다. 이외에도 전북 전주시에 국악 전수관을 개관하는 등 후학 양성을 위해 꾸준히 힘을 쏟아왔다. 김영자 명창은 국내뿐 아니라 미국 카네기홀과 링컨센터 페스티벌,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등 해외 유수의 공연장과 축제에서도 완창 무대를 선보이며 전 세계에 판소리의 아름다움을 알려왔고, 국악 발전과 전승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가 됐다. 이번 공연은 김 명창이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국립극장에서 선보이는 두 번째 완창 무대로, 정광수제 ‘수궁가’를 들려준다. 판소리 ‘수궁가’는 병든 용왕을 위해 토끼 간을 구하러 세상에 나온 자라가 토끼를 용궁으로 유인했으나, 토끼가 꾀를 부려 세상으로 살아나온다는 내용이다. 토끼가 재치를 발휘해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재담과 소리로 들으며 삶의 지혜를 깨닫기에 제격인 작품이다. 등장인물의 언변 대결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노래하는 부분 등 아기자기한 대목이 많아 듣는 즐거움이 있다. 그중에서도 정광수제 ‘수궁가’는 동편제의 시조인 송흥록으로부터 송광록-송우룡-유성준-정광수로 전승된 소리다. 음악성과 문학적인 소양을 모두 겸비한 정광수 명창이 유성준 명창으로부터 전해 받은 ‘수궁가’ 사설을 다듬었다. 격식 있고 유려한 사설 표현이 돋보이며, 힘 있는 통성과 우조 성음을 바탕으로 하는 동편제의 특징이 잘 나타는 동시에 서편제의 다양한 기교까지 더해져 있다. 완창판소리 10월 공연은 1987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전수교육조교가 된 김영자 명창의 소리로 정광수제 ‘수궁가’의 진수를 감상할 귀한 기회다. 김 명창은 특유의 힘찬 목청과 실한 성음, 명료한 발음으로 다양한 동물 캐릭터 이야기와 약(藥)에 대한 용어 등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는 ‘수궁가’를 누구보다 재미있게 들려줄 예정이다. 김영자 명창은 "완창 무대를 100여 회 넘게 섰지만 완창 무대는 아직도 긴장된다”라며 "일흔이 넘은 나이라 걱정도 앞서지만, 오랜만에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는 만큼 좋은 소리를 들려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고법 이수자 이태백과 국립민속국악원 단원 강길원이 함께 고수로 나서며, 해설과 사회는 송지원 음악인문연구소장이 맡아 작품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돕는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는 1984년 시작된 이래 당대 최고의 명창들이 올랐던 꿈의 무대이자, 판소리 한바탕 전체를 감상하며 그 가치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최장수 완창 무대다. 39년 동안 공연되며 소리꾼에게는 최고 권위의 판소리 무대를, 관객에게는 명창의 소리를 가깝게 접할 기회를 제공해왔다. 2023년에도 전통의 정체성을 지키며 소리 내공을 쌓고 있는 소리꾼이 매달 이 무대를 통해 소리의 멋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관객과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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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일 대구시립국악단 예술감독 취임 연주회 '건·곤·감·리' 개최대구시립국악단 제210회 정기연주회 ‘건·곤·감·리’가 오는 7일 오후 7시30분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열린다. 이날 공연은 지난 7월 부임한 신임 한상일 대구시립국악단 제8대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의 취임 연주회다. 한편, 이번 공연의 사회는 우리나라 1세대 국악 평론가인 윤중강이 맡는다. 공연의 첫 문은 춤과 관현악 '축연무'가 연다. 박범훈 작곡의 국악관현악곡 '축연무'에 대구시립국악단 한국무용팀의 창작무가 곁들여진다. 이 곡은 축하의 의미를 담고 있고, 경쾌한 리듬에 고양된 악상이 이채로운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춤으로 축하의 의미도 더한다. 그 다음으로 '뱃노래'는 한·중·일 삼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민족악단 '오케스트라 아시아'의 창단 음악회 때 초연된 곡이다. 우리나라 민요 '뱃노래' 가락을 주선율로, 나발·북·징 등이 존재의 힘에 대해 묘사하며,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그렸다. 국악가요 무대가 준비된다. MBN '조선 판스타'에서 최종 우승한 '김산옥'과 국립창극단 부수석 '민은경'이 무대에 오른다. 민은경은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아리요' 등을 준비하며, 김산옥은 '상사몽', '아름다운 나라', '열두달이 다 좋아'를 들려줄 예정이다. 송가인의 친오빠 조성재가 이끄는 '우리소리 바라지'가 타악협주곡 '무취타'를 대구 초연으로 선보인다. 이어 평소 접하기 힘든 개량민속악기 장새납 협주곡도 선보인다. 북한의 개량 민속 악기인 '장새납'은 태평소(새납)를 개량하여 길이를 늘이고, 키(Key)를 단 것이 특징으로, 오보에·색소폰·태평소의 음색을 조합한 것 같은 독특한 음색을 낸다. 한국개량악기협회장 이영훈 한국 개량악기 협회장이 '열풍'과 '용강기나리'를 통해 관현악의 민족적 색채를 살려냄과 동시에 민족목관악기 장새납의 익숙한 듯 낯선 매력을 전한다. 공연의 마지막은 타악 협주곡 '무취타'가 장식한다. '무취타'는 인간의 희노애락을 무속장단을 활용하여 표현한 타악곡으로, 중견 국악그룹 '우리소리 바라지'가 무대에 선다. 한상일 대구시립국악단 상임지휘자는 "연주자로, 지도자로 오랜 시간 익히고 쌓은 경험을 토대로 대구시립국악단의 발전과 또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우리 대구시의 전통예술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며"다른 곳은 국악관현악단인데, 대구시립국악단에는 무용단이 있어 '가무악일체' 공연이 가능하다. 성악(판소리)도 인턴 단원이 있었는데, 지금은 계약이 만료되면서 함께 못하고 있다. 추후 여건이 된다면, 가무악일체의 단체로서 공연을 선보이고 싶다." 이어서 "이번 '건·곤·감·리' 무대에서 '가무악(歌舞樂)일체' 공연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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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호평받은 '심청가' 4년 만에 재공연국립극장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유은선)은 창극 '심청가'를 26일(화)부터 10월 1일(일)까지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2018년 초연과 2019년 재연 당시 격조 높은 판소리의 멋과 정제된 무대 미학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는 평을 받은 작품으로, 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손진책이 극본과 연출을 대명창 안숙선이 작창을 맡았다. 창극 '심청가'는 ‘소리’가 주인공인 무대다. 평생 전통연희를 무대에 접목하며 ‘심청가’를 연구해온 손진책 연출가는 판소리 자체가 창극이 되는 무대를 만들고자 했고, 수많은 창극의 작창을 맡아온 안숙선 명창도 뜻을 모았다. 국립창극단은 두 거장과 함께 판소리 사설의 기본 틀은 그대로 유지하되, 5시간이 넘는 전체 내용 중 핵심을 추려 2시간여의 창극으로 만들었다. 주요 대목들을 빠짐없이 배치하면서 일부 대목을 합창으로 변형시키는 등 새롭게 소리를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기 직전에 부르는 ‘범피중류’ 장면이 백미다. 판소리에서 소리꾼 혼자 부르는 대목을 수십 명 소리꾼의 웅장한 합창으로 선보이는 데 더해, 부채를 활용한 군무로 망망대해의 일렁이는 물결을 표현해 깊고 드넓은 바다의 장중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세계적인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함께해 우리 소리의 힘이 부각되도록 소리꾼의 몸짓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제작진은 창극의 바탕이자 핵심인 판소리 본연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리 외의 모든 요소를 최소화했다. 음악감독을 맡은 아쟁 명인 이태백은 전통 국악기로만 음악을 구성, 우리 소리의 진면모를 드러낸다. 무대디자이너 이태섭이 완성한 군더더기 없이 정갈한 무대 역시 판소리의 본질에 다가가는 데 일조했다. 목재 평상과 의자, 담장 몇 개로만 이루어진 무대는 장면마다 다르게 배치되며 상여와 징검다리, 심청이 뛰어내리는 뱃머리 등으로 변화한다. 소품도 부채가 거의 전부다. 부채는 심봉사의 지팡이부터 빨래 방망이, 뱃사공의 노, 바다의 파도까지 무한하게 활용되며 관객의 연극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청자색‧백자색 등 한국적인 색채가 어우러진 차이킴 김영진의 의상은 소리꾼 한명 한명을 돋보이게 만들어 오롯이 소리에 집중하게 한다. 재공연을 위해 다시 모인 최정상의 제작진은 세밀한 수정·보완 작업을 통해 더욱 밀도 높은 무대를 선보일 계획이다. 비워낸 무대를 채우는 건 오직 소리꾼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에 집중한 작품인 만큼 국립창극단원들의 소리 내공이 더욱 빛을 발한다. 독보적인 카리스마와 존재감으로 인정받는 국립창극단의 대표 중견 배우 김금미가 새로운 도창으로 나서 극을 이끌고, 민은경(어린심청)·이소연(황후심청)·유태평양(심봉사)·조유아(뺑덕)·김미진(곽씨부인) 등 최고의 소리꾼들이 다시 무대에 올라 공력을 다한 소리로 감동을 전한다. 심청과 심봉사의 애절한 독창부터 35명 출연진이 완성하는 풍성한 소리와 연주까지, 더욱 힘 있고 깊어진 우리 소리의 정수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추석 기간에 공연되는 창극 '심청가'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과 혜택도 마련된다. 추석 연휴 기간인 9월 28일부터 30일까지는 ‘추임새 클래스’가 열린다. 공연 관람 전 국립창극단원에게 판소리 ‘심청가’의 한 대목과 판소리 사이사이 흥을 돋우기 위해 고수나 관객이 곁들이는 감탄사인 추임새를 배워볼 수 있다. 창극의 바탕이자 핵심인 ‘소리’에 집중한 무대 애절한 독창부터 웅장한 합창까지, 다채로운 소리 담아내 국립창극단 '심청가'가약 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국립창극단 ‘판소리 다섯 바탕 현대화’ 작업의 일환으로 탄생한 작품이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두 거장 손진책과 안숙선,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다양한 무대를 선보여 온 국립창극단이 의기투합해 제작 초기부터 화제를 모았다. 작품의 극본과 연출을 맡은 손진책은 춤·노래·연극이 한데 어우러진 한국식 연극인 가무악극 개척과 대중화에 일생을 바쳐온 인물로, '심청가'를 통해 판소리 자체가 창극이 되는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 수많은 창극의 작창을 맡아온 안숙선 명창 역시 판소리를 제대로 살린 음악극을 만들자는 방향에 힘을 실었다. 여기에 국립창극단이 뜻을 모아 "창극의 뿌리인 판소리 본질에 충실한 창극”을 완성했다. 판소리에 조예가 깊은 손진책의 연출, 안숙선명창의 구성진 작창과국립창극단 단원들의 기량이 어우러진 무대에는 관객과 평단이 이어졌다. "비워내니 오히려 꽉 들어찼다”(매일경제), "본질을 파고들자 뜻밖에 더 힘 있고 새로워졌다”(조선일보), "소리꾼의 영혼에 바쳐진 진짜 창극”(중앙선데이) "조이고 풀고, 희로애락의 변화가 백미”(국민일보)등 초연 당시 쏟아진 언론의 호평에서 창극 '심청가'의 작품성을 엿볼 수 있다. 창극 '심청가'는 음악적 구성과 이야기 전개가 탄탄해 유수의 명창들로부터 잘 짜인 소리라고 평가 받는 강산제 ‘심청가’를 바탕으로 한다. 원작의 가치를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 판소리의 기본 틀을 그대로 유지하되, 5시간이 넘는 전체 사설 중 핵심만 선택해 2시간여 분량으로 매끄럽게 다듬었다. ‘심봉사 내력’을 시작으로 ‘심청 인당수 빠지는 대목’ ‘심청 환생’ ‘심봉사 눈 뜨는 대목’ 등의 중심 대목을 빠짐없이 배치하면서도 일부 대목을 합창으로 변형시키는 등 소리를 재구성한 점이 특징이다.4년 만에 돌아오는 이번 무대에서는 더욱 힘 있고 깊어진 전통 소리의 매력을 보여줄 예정이다. 판소리 ‘심청가’는 많은 이들이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다섯 바탕 중에서도 비장한 내용이 많고 예술성이 뛰어나 깊은 소리 공력을 갖추지 않으면 전 바탕을 제대로 이끌어가기 힘든 작품이다. 인생의 무게가 실린 소리, 새로운 도창에 김금미 캐스팅 35명의 출연진이 선사하는 웅장한 소리와 연주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소리’에 집중한 작품인 만큼 어느 때보다도 소리꾼 캐스팅에 공을 들였다. 창극에서 ‘도창’(導唱)은 해설자 격으로, 이야기 안팎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극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핵심 역할로 손꼽힌다. 안숙선 명창과 유수정 국립창극단 전 예술감독에 이어, 독보적인 카리스마로 인정받는 국립창극단의 김금미가 새로운 도창으로 발탁되어 극의 무게를 잡는다. 김금미는 국립창극단 주요 작품에서 굵직한 역할을 도맡아온 대표 중견 배우다. 웹툰 원작의 화제작 창극 '정년이'에서 전설이 된 소리 천재 ‘채공선’ 역을 맡아 인상 깊은 소리와 연기를 선보였다. 지난 8월에는 영국 ‘에든버러 인터내셔널 페스티벌(EIF)’에 공식 초청된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의 트로이 왕비 ‘헤큐바’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세계 공연예술 관계자들의 극찬을 받았다. 소리의 깊이는 소리꾼 인생의 깊이와 무관할 수 없는 법.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늦은 나이에 소리를 시작한 만큼 더욱 치열하게 공력을 쌓아온 김금미가 심금을 울리는 소리를 들려준다. 심청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민은경과 이소연이 나눠 연기한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할 목적으로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어린심청’ 역은 민은경, 다시 태어나 아버지뿐 아니라 만인의 눈을 뜨게 하는 ‘황후심청’ 역은 이소연이 맡는다. 이외에도 ‘심봉사’ 역의 유태평양과 ‘곽씨부인’ 역의 김미진, ‘뺑덕’ 역의 조유아를 비롯해 이 시대 최고의 소리꾼으로 구성된 국립창극단원들이 발군의 연기와 소리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 35명의 출연진이 다채로운 우리 소리와 연주의 향연을 펼쳐내 깊고 유려한 전통 판소리 본연의 매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지난 4월 부임한 유은선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겸 단장은 "소리를 잘 모르는 분도 창극 '심청가'를 통해 우리 문화유산인 판소리의 멋과 맛을 느껴본다면 올 가을을 한층 풍성하게 채우실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를 시작으로 매년 추석 즈음 우리 전통 소재를 바탕으로 한국적 정체성이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일 계획이니 기대해주시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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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연정국악원, 7일 판소리 다섯 마당 왕윤정 '흥보가' 공연대전시립연정국악원)은 TJB 대전방송과 공동주최로 2023 전통시리즈‘국립창극단 판스타 초청, 판소리 다섯 마당’ 네 번째 무대를 개최한다.이번 무대는 국악스타이자 대한민국 차세대 소리꾼 왕윤정의 <흥보가> 공연으로 7일(목) 19시 30분에 국악원 작은마당에서 진행한다.<흥보가>는 <박타령>이라고도 한다.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동생 흥보는 제비 다리를 고쳐주어 복을 받고, 마음씨 고약한 형 놀보는 부자인데도 더 부자가 되려고 동생 흥보를 흉내 내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 벌을 받는다. 흥보가는"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라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교훈을 담고 있으며,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한다.<흥보가>는 민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서민적인 사설과 재담 소리가 많다. 조선 후기 신흥부자와 몰락양반을 상징하고 있는 놀보와 흥보의‘돈’에 대한 자세를 다루면서 변화하는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조선 후기 경제상황의 변화와 노동과 부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보여주는 판소리라 할 수 있다.소리꾼 왕윤정은 1998년 9살에 판소리에 입문하여 아버지인 왕기철 명창에게 처음 박록주제<흥보가>를 배웠으며 안숙선 명창에게<수궁가>, 염경애 명창에게<심청가, 춘향가>를 사사하였다. 2004년 국립창극단"차세대 명창”선정과 제23회"동아국악콩쿠르”학생부에서 판소리 부문 금상을 받으면서 대한민국 국악계를 이끌 차세대 소리꾼으로서 두각을 드러냈다. 또한 JTBC 국악스타 발굴 프로젝트"소리의 신”에서 우승하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현재 전승되는 <흥보가>는 박록주제, 김연수제, 김소희제, 박봉술제 등이 있으며, 이 중 박록주제 <흥보가>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바 있다. 박록주제 ‘흥보가’는 섬진강 동쪽 지역에서 발달한 동편제의 명맥을 잇는 소리다. 힘 있게 내지르는 소리와 "대마디 대장단”으로 거뜬거뜬하며 분명하고 강한 말끝 등이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박록주제는 송만갑-김정문-박록주-한농선으로 이어진 동편제 바디*로 현대에 가장 전승력이 강한 유파라 할 수 있다.이날 공연은‘박록주제 흥보가 중 <돈타령>, <밥타령>, <둘째 박타는 대목-비단타령>까지 약 80분간 수리성*과 공력을 통해 더욱 단단하고도 절묘한 소리로‘흥보가’를 선보인다. 국립창극단 단원이자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일반부 장원을 수상한 박성우 고수가 함께한다.그리고 최혜진 목원대학교 교수 겸 판소리학회 회장의 사회로 판소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대전시립연정국악원 관계자는"올해는 판소리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 20주년 되는 뜻깊은 해인 만큼, 우리 국악원이 준비한 국립창극단 소속 간판 소리꾼들이 펼치는 감동의 무대를 만끽하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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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K-콘텐츠 전략 육성, 1조125억, 작년比 20% 증액문화체육관광부가 2024년 콘텐츠 분야 정부 예산안이 총 1조125억원으로 편성됐다고 밝혔다.이는 2023년 대비 약 20%(1683억원) 증가한 규모로, 문체부의 내년도 예산안의 14.5%를 차지한다. 문체부는 K-콘텐츠 기반을 조성하고 수출을 확대해 오는 2027년까지 콘텐츠 4대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다.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4일 "K-콘텐츠는 이제 압도적 영향력을 가진 국가전략산업"이라며 "내년도 콘텐츠산업 진흥 예산은 1조원을 돌파하고, 정책금융은 1조7700억원을 공급해 콘텐츠산업을 우리 경제를 이끌어갈 미래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하고자 한다"고 밝혔다.우선 역대 최대인 1조7700억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공급해 영세한 콘텐츠 업계의 자금 조달 어려움을 해소할 계획이다.이를 위해 3955억원(영상전문투자조합 출자 포함)의 예산이 편성됐다. 이 중 중소 제작사의 IP(지식재산) 확보와 수출 활성화 등 성장 기반 마련을 위한 'K-콘텐츠 펀드 출자'가 2900억원으로 약 1000억원이 증가했다. 'K-콘텐츠 전략 펀드 출자'도 450억원으로 새롭게 편성해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 콘텐츠 프로젝트 제작비 대출에 대한 보증을 지원하는 '완성보증 출연'을 50억원 증가한 250억원, 기업 자금대출에 대한 이자 일부를 지원하는 '콘텐츠 이차보전 지원'을 20억원 증가한 60억원으로 확대했다. 또 K-콘텐츠 수출 지원에도 총력을 다한다. 해외거점 운영은 267억원으로 165억원을 증액했다. 현지에서 콘텐츠 수출을 지원하는 해외비즈니스센터를 올해 15곳에서 25곳으로 늘리고, 현지 법인설립과 입주공간 등을 지원하는 해외 콘텐츠 기업지원센터 2곳을 새롭게 설치한다.관계부처 합동 K-박람회 개최 및 해외홍보관 운영 확대 등 연관산업의 동반 성장 지원도 109억원을 증가한 274억원을 편성했다. 해외 현지 출원 및 등록지원 대상도 올해 125개에서 200개 기업으로 확대해 국내 콘텐츠의 지식재산권 보호 기반을 강화한다.K-콘텐츠 성장을 위해 콘텐츠 스타트업과 전문인력도 육성한다. 예비 창업-창업 초기(~3년)-도약(3~7년)의 성장단계별 맞춤형 프로그램에 19억원을 증가한 120억원을 편성했다. 스타트업과 대기업·중견기업이 협업해 해외 동반 진출하는 프로그램(10억원)도 신설한다. 실감형 콘텐츠 기술(VR·AR·XR 등)과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콘텐츠 융·복합 아카데미도 34억원을 증액한 91억원을 편성해 체계화된 교육으로 첨단기술 기반 콘텐츠 핵심 인재를 기른다. 창작 분야 전문가를 통한 도제식 멘토링 지원(103억원)으로 젊은 창의인재(콘텐츠 창작자 350명)도 육성한다.K-팝을 비롯해 게임, 영화 등 대표 장르도 집중 육성한다. 중소 게임기업의 해외 진출을 뒷받침하는 게임유통 지원을 50억원 증액한 133억원으로 확대한다. 게임기획 지원(50억원), 게임 상용화 제작 지원(242억원)도 지속 추진하며 게임인재 양성을 위한 게임인재원 운영 예산도 54억원을 배치했다.코로나19 이후 고갈 위기에 처한 영화발전기금의 재원 확충을 위해 체육기금 전입금 300억원과 복권기금 전입금 54억원을 최초로 반영했다. 한국 영화 투자·제작을 활성화하고 개봉 촉진을 지원하는 펀드 구성을 위해 영상전문투자조합 출자예산을 일반회계로 전환해 170억원 증액한 250억원으로 대폭 확대했다.애니메이션 분야도 15세 이상 연령층을 위한 청장년층 애니메이션 제작지원(32억원)을 새롭게 추진한다. 해외 진출 기업의 자국 복귀를 지원하고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해 순천 애니메이션 클러스터도 193억원을 배치해 조성한다. 웹툰 분야는 전문인력 교육(20억원), 만화·웹툰 비즈니스 현지화 지원(40억원), 만화·웹툰콘텐츠 창작 지원(6억원) 등 지원사업을 새롭게 편성한다.해외 쇼케이스 등 국내 가수들의 해외 진출에도 54억원을 지원한다. 온라인 전문 공연장 운영(70억2000만원)과 온·오프라인 음악콘텐츠 개발(76억5000만원)도 이어나간다. 패션 분야도 해외 진출 지원에 59억원을 편성했다.문화기술(CT) 분야 스타트업의 기술개발(R&D)을 지원해 K-컬처 유니콘 기업을 육성(20억원)한다. 안전한 공연·관람을 위한 인프라 구축 기술 개발에 23억원, 글로벌 문화-기술 융합형 인재 육성에 36억원, AI 콘텐츠 제작 예산에 92억원을 새롭게 편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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