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2 (수)
대만과 한국 전통 음악 연주자들이 모여 뜻깊고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였다. 지난 11월 10일과 11일 양일간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국립국악원과 국립대만국악단의 교류 공연 ‘화이부동(和而不同)’이 펼쳐졌다. 공연의 첫날인 10일은 국립국악원 창작악단과 국립대만국악단의 합동 공연으로, 11일은 국립대만국악단의 단독 연주 무대로 꾸며졌다. 국립국악원과 국립대만국악단은 양국의 전통예술 발전을 위해 2018년 상호 교류 공연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18년 대만과 2019년 한국에서 각각 초청공연을 진행한 바 있다.
지난 두 차례의 공연에서는 국립국악원이 대만의 음악을, 국립대만국악단이 한국의 음악을 연주하는 무대를 선보였다면, 올해는 두 단체가 하나의 관현악단이 되어 함께 무대에 올라 풍성한 음악을 선보였다. 추운 날씨였지만 예악당에는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로 북적였다. 대만 전통 음악은 익숙지 않았기에 과연 어떤 악기가, 어떤 소리를 낼지 큰 기대를 품고 관람하였다.
첫 곡은 최성환 작곡의 ‘아리랑 환상곡’이었다. ‘아리랑 환상곡’은 널리 연주되고 있는 대중적이고 유명한 곡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을 다양한 리듬과 박자로 변화 주어 환상곡 풍으로 작곡된 작품이다. ‘아리랑 환상곡’은 아주 여린 소리로 시작되어 부드럽고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데, 이번 무대에서는 기존에 익숙하게 들어온 국악관현악 버전의 ‘아리랑 환상곡’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연한 사운드로 음악이 시작됐다. 작고 조심스러워 긴장되면서도 아름다운 관현악단의 연주가 평온하게 흘렀다. 대만 전통악기는 국악기보다 더 강한 베이스 음역과 울림이 특징적이었다. 그래서인지 각국의 악기가 함께 연주되니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느낌이었다.
한국적이라거나 대중적이라기보다는, 신선하고 이국적으로 느껴지는 동양적 색채가 강했다. 또 음악 진행이 상당히 다이내믹했는데, 이는 지휘를 맡았던 국립대만국악단의 음악감독이자 지휘자인 치앙 칭포의 지휘를 통해 느껴볼 수 있었다. p(피아노)와 f(포르테) 등 악상의 구분이 명확하고 모든 악기군이 조화롭게 연주되며 자연스러움을 자아냈다. 상생과 화합을 가득 느껴볼 수 있는 아리랑이었다.
두 번째 곡은 공연 전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던 ‘강원도’. 관즈와 피리를 위한 이중 협주곡으로, 린신핀의 작품이었다. ‘관즈’는 대만 전통 관악기로, 피리에 기반을 두었지만 전승되는 과정에서 이름과 재질이 달라진 악기다. 피리 같기도, 태평소 같기도 한 이 악기에선 어떤 소리가 날지 궁금했는데, 피리는 나무와 같은 재질로 자연 친화적이고 따뜻한 소리라면, 관즈는 금관악기 소리에 조금 더 가까웠다. 약간 텁텁하고 우직하면서도 부드럽게 감싸주는 매력적인 음색이었다. 관즈를 연주한 추이저우순은 "피리는 노래하는 듯 편안한 느낌을 주는 반면 관즈는 강한 연주를 선보이는 데 적합하다.여기에 각국의 문화적 배경이 더해지니 두 악기가 다른 소리를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전했는데, 이처럼 관즈와 피리 음색은 상당히 다르면서도 조화로웠다.
‘강원도’는 강원도 민요 ‘한오백년’과 경기민요 ‘도라지’에서 유래된 창작곡이다. 1악장에서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이 무대를 감쌌다.
가야금을 비롯한 현악기들이 왈츠 느낌의 3박을 깔아주고, 관현악이 차분히 음악을 받쳐줄 때 피리와 관즈는 번갈아 가며 강원도 아리랑 선율을 연주했다. 그 선율과 관현악의 조화는 마치 꿈속에 있는 듯했다. 2악장 ‘도라지’는 관즈의 강한 솔로로 시작했는데, 색소폰의 재즈 솔로처럼 화려하고 멋스러웠다. 간드러지면서도 힘 있는 두 관악기의 서정적이면서도 정겨운 연주가 편안함을 선사해 주었다.
다음으로 연주된 곡은 계성원 작곡의 관악 중주곡 ‘바람의 향연’이었다. 대나무 관에 생기를 불어넣듯 바람을 불어넣어 오묘한 떨림을 만들어 내는 피리잽이들의 악기를 모아 그들만의 멋과 신명, 흥의 어우러짐을 만들었다는 이 곡은 한국의 피리, 생황, 태평소를 비롯하여 대만의 관악기와 함께 연주되었다. 악기들의 음색은 생각보다 더 잘 어우러졌고, 악기 군별로 그룹을 나누어 각 악기의 기량을 뽐내거나 강렬한 합주로 매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장구와 대만 타악기의 리듬 꼴에 맞추어 관악기로 함께 리듬을 쪼개고, 늘리며 각 악기의 주법을 잘 표현하였다. 눈과 귀를 뗄 수 없던 이 무대에서는 마치 바람이 다양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불어오는 듯했다.
네 번째 무대는 최지혜 작곡의 해금과 얼후를 위한 협주곡 ‘이현’이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두 개의 현으로 이루어져 있는 한국 전통 악기 해금과 대만 전통악기 얼후의 조화를 그린 곡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한다는 설정의 이 작품은 동양 음악에서 일반적으로 두루 쓰이는 5음 음계를 활용하여 마치 무릉도원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해금과 얼후는 음역대가 겹침에도 공명과 울림이 달라 사운드가 조화롭게 잘 어우러졌다.
얼후는 해금과 달리 손끝으로 연주하는 운지법을 사용하기에 끌어 올리거나 흘러내리는 표현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도드라져 해금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특징을 감상하는 재미가 더해졌다. 또 해금과 얼후는 공통으로 ‘활’을 이용하는 찰현악기인 만큼 활을 다양하게 활용한 연주를 선보였다. 두 악기가 하나의 악기처럼 활을 사용하다가 변화를 주고, 또다시 합쳐지는 부분은 각 악기의 음색을 맘껏 감상할 수 있어 특히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무대는 홍치엔후이 작곡의 ‘Vive les Percussions!’가 장식했다. 대만국립국악단이 한국공연을 위해 위촉한 곡으로 한국의 사물놀이와 대만의 전통 타악기가 어우러지며 다양한 박자와 리드미컬한 연주를 선보였다. 도입부부터 타악기의 강렬한 사운드로 압도당한 이 곡에서 특히 신선했던 것은 사물놀이 악기로 대만의 전통 음악 리듬을 연주하는 걸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보통 사물놀이 네 대의 악기로 연주할 땐 전통 장단을 연주하기 마련인데, 관현악 연주인 데다 타국의 악기와 함께하니 더 특별한 무대가 만들어졌다. 사물놀이와 대만 타악기는 ‘리듬’으로 얽히며 함께 어우러져 나갔는데, 끊임없이 변화하는 리듬과 다이내믹한 연주가 특히 인상적이었고 대만의 다양한 타악기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 이 곡의 첫 번째 부분은 4/4박자로 대만의 전통 사자 북 음악인 ‘징과 북’ 리듬 스타일이 주로 사용되었다. 익숙지 않은 리듬이었지만, 특수한 그 나라만의 문화가 잔뜩 녹여져 있던 리듬 꼴과 선율 진행을 통해 대만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고, 두 번째 부분에서 사용된 5/8박자는 2+3, 3+2가 번갈아 가며 사용되어 리듬의 다양한 변화구에 홀리는 듯했다.
관현악기는 타악이 주가 되는 만큼 함께 리듬을 다양하게 활용했는데, 헤미올라(2박으로 나뉘어 있던 박자를 3개로 쪼개서 쓰는 음악 기법)가 자주 사용되었고 리듬의 변화와 더불어 동양적이고 독특한 선율이 연주되었다. 3도 화음을 쌓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신비로움을 나타내기도 하고, 변화하는 구간마다 느낌을 다르게 주어 지루할 틈이 없던 아름다운 선율과 풍부한 리듬은, 한국과 대만 전통 악기의 매력을 물씬 나타내며 관객들의 우렁찬 함성과 박수를 끌어냈다.
이 무대를 보는 내내, 그리고 본 후에도 계속해서 생각난 단어는 ‘화합’이었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는, 대만 전통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없었을뿐더러 과연 우리 전통 음악과 잘 어우러질지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하지만 각국의 연주자들은 최고의 전통 음악 조합을 선사해 냈고, 그 음악은 이전부터 있었던 것 같은 익숙한 하나의 장르처럼 느껴졌다. 김영운 국립국악원장은, 한국도, 그리고 대만도, 더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전통 음악에는 공통적인 과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전통적 요소의 특성을 살려 이 시대와 미래, 세계인이 공감할 좋은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오랜 시간 전해져 온 전통 음악이야말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살아있는 역사이다. 국립대만국악단과 함께 무대를 만듦으로 인해, 각 연주자는 각자가 경험해 온 음악을 공유하고 상대의 음악을 이해하며 각 나라의 음악에서 더 나아가 동북아권의 음악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모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국가 간 문화 예술 교류가 앞으로도 더 다양하게, 자주 이루어져 전통의 역사가 오래도록 깊게 남아 더욱 발전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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