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김연갑의 애국가 연구] (18) 제2의 ‘안창호 애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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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갑의 애국가 연구] (18) 제2의 ‘안창호 애국가’

김연갑(전 국가상징연구회 애국가분과위원장)

  • 특집부
  • 등록 2023.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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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민보 로고

 

나라 사랑을 권면(勸勉)하는 노래 즉, 애국가를 짓고 부르기를 권장하고 지속화 할 것을 독려하는 것을 ‘애국가 운동’이라고 한다. 독립신문이 1896년 9월 22일자 기사를 통해 외국의 예를 제시하고 조선에서도 그렇게 하자고 제안 것이 그것이고, 지속적으로 애국가 가사를 투고 받아 게재한 것이다.

 

"~조선정부 학교에서들 국기를 학교 마당 앞에 하나씩 세워 매일 학도들이 그 국기 앞에 모여 경례하고 애국가 하나를 지어 각 학교에서 이 노래를 아침마다 다른 공부하기 전에 여럿이 부르게 하고~”

 

국기에 대해 경례하고 애국가를 부르게 함으로서 나라 사랑하는 자세를 갖게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주목하는 것은 ‘국기(國旗)’에 조응하는 것을 ‘국가(國歌)’라 하지 않고 ‘애국가’로 했다는 점이다. 이는 두 가지에서 의미가 있다. 하나는 독립신문이 창간으로부터 5개월 후쯤이라는 시점에서 국기 ‘태극기’는 있지만 국가는 없음으로 그 대안으로 ‘애국가’를 지어 부를 수 있다는 의미이다. 둘은 이미 국가 대신으로 부르는 ‘애국가’가 있으니, 이 전통을 따라 ‘애국가’라는 이름의 노래를 지어 부를 수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창호가 귀국하여 활동하는 1907년 3월 20일자 대한매일신보 기사 ‘國旗禮拜’에서는 이와 유사한 해석을 하게 한다. "國旗에 禮拜하고 愛國歌를 唱”한다고 했기 때문인데, 인용하면 이렇다.

 

"~美國 留學生 안창호씨가 生徒에게 對하여 勸勉한 內開에 美國 各種 學校에서는 愛國思想으로 每日 上學 前에 國旗에 禮拜하고 愛國歌를 唱함을 見한 즉~”

 

서울 서대문 근처 의무균명학교에서 행한 강연회에 대한 보도의 문면(文面)대로라면 안창호도 미국의 국기에 조응하는 국가를 ‘국가’가 아니라 ‘애국가’라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애국가’는 국가가 아님으로 각자 지어 부를 수 있다고 인식한 것이다. 그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 지난 회에 살핀 ‘찬애국가’이고, 이번 회에서 살피려는 또 하나의 안창호 작사 애국가의 존재이다. 안창호는 입국하여 이미 국가로 부르는 ‘애국가’가 있음으로, 같은 명칭이지만 각자의 또 다른 애국가를 지어 부르자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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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민보 1910년 10월 12일자 안창호 작 ‘애국가’

 

‘제2의 안창호 애국가’는 신한민보 1910년 10월 12일자 ‘대한혼’에 포함된 ‘애국가’이다. 먼저 ‘대한혼’ 대목을 전재하고 ‘애국가를 살피기로 한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大韓魂 지금 아목따에 있난 어뜬 동지의 긔함을 본즉 년 전에 평양 어뜬 지사가 애국가 일편을 지어 각 학교에셔 학도에게 가라치더니 학도들이 날마다 이 노래로 나라사랑하난 마음과 나라회복할 생각이 바다에 됴수 밀듯하난 고로 원슈들이 교과서 까지 압슈 하얏슬 뿐 아니라 즉금은 입으로 외오지도 못하게 하난 고로 이와 같이 보배스러운 노래(곧 대한혼)가 세상에 널리 전치 못할까 근심하야 글로써 보내니 속히 기재하야 우리 우리동포에게 널리 젼하라 하얏더라. 이 노래난 의기를 자아내고 마암을 모와서 원동력을 생기게 하난 재로 우리동포들은 이 노래 하야 후일을 예비할지어라.”

 

"평양 어뜬 지사”는 안창호이고, 그가 "애국가 일편”을 지어 부르게 하였다고 했다. 이 기사 자체가 웅변투로 쓰여진 것으로 보아 안창호의 구술을 기사화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어서 ‘대한혼’을 담은 세 가지 노래 중 ‘애국가’ 일편을 수록했다. 전 10절의 긴 노래이다.

 

<애국가>

1 슬프도다 우리민족아/ 사천여 역사국으로

  자자손손 복락하더니/ 오늘날 이지경 웬일인가

 

열사주사로 결박한 줄을/ 우리의 손으로 끊어버리고/

독립만세 우리 소리에/ 바다가 끓고 산이 동켔네(후렴) 

 

2 일간두옥도 내 것 아니요/ 수묘전토도 내 것 못되네

  무리한 수욕을 대답 못하고/ 공연한 구타도 거져 밧노라

 

3 남산초목도 눈이 있으면/ 비창한 눈물이 가득하겠고

  동해에 별도 마음이 있으면/ 우리와 같이 슬퍼하리라

 

4 한치 벌레도 만일 밟으면/ 죽기전 한번 움직거리고

  조그만 벌도 남이 다치면/ 저를 반드시 쏘고 죽는다

 

5 눈을 들어 살펴보니/ 삼천리 강산에 사무친 것은

  우리 부모의 한숨 소리요/ 우리 동포의 눈물이로세

 

6 금수강산이 빛을 잃고/ 광명한 일월이 아득하도다

  이것이 뉘 죄냐 생각하여라/ 네 죄와 내 죄 까닭이로다

 

7 사랑하는 우리 청년아/ 자든지 깨든지 우리 마음에

  나태한 악습과 의뢰 사상을/ 모두다 한 칼로 끊어버리고

 

8 사랑하는 우리 동포야/ 죽든지 살든지 우리 마음에

  와신상담을 잊지 말아서/ 우리의 국가를 회복합세다

 

9 애국정신과 단체 힘으로/ 육단혈류를 무릅쓰면서

  원수가 비록 산과 같하되/ 우리 앞을 막지 못하리

 

10 독립기 달고 자유종 칠 때에/ 부모의 한숨은 웃음이 되고

  동포의 눈물은 기쁨 되리니/ 중흥영웅이 우리 아닌가

 

위에서 확인하였듯이 안창호는 애국가 운동에 앞장 선 인물이다. 그 실증이 강연에서 애국가의 필요성과 학교에서 실천하도록 독려한 것이고, 실제 지은 애국가를 통해 알 수가 있다. 결국 안창호는 이 <애국가> 작사 때문에 1907년 윤치호 작사 ‘애국적 찬미가 제14장’ 즉, 현 애국가의 작사자로 오인 받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