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7 (금)
조철현(국가무형문화재 대금산조 전승교육사)
오랜 세월을 우리나라 전통음악에 신경을 쏟아온 필자가 국가무형문화재인 대금산조 전승교육사가 된 지 벌써 2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한창 피가 끓던 20대 초반, 스승이신 김동표 선생을 따라서 당시 와병 중이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강백천 선생을 찾아뵈었으니 그때가 1970년대 말이었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더니, 어느새 머리도 희끗희끗해지고 때때로 기력이 처지는 것이 느껴져, 예전과는 달리 대금산조의 후학 양성에 더욱 신경이 쓰이는 요즈음이다. 필자가 40년이 넘도록 줄곧 연주하며 내면을 추구해 온 음악은 강백천류대금산조 하나밖에 없다. 대금을 공부하기 시작한 젊은 시절에 다른 유파의 대금산조들을 엿들어 보고 자습하기도 해 보았지만 딱히 마음이 끌리지도 않았었다. 어쩌면 음악을 통하여 깊은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필자의 마음이 고독하게 살면서 고집스럽게 대금산조 하나만을 추구해 왔던 월담 강백천 선생의 정신세계와 잇닿아 있어서 그런 건 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1989년도에 문화재관리국으로부터 이수증을 받았다. 당시는 이수심사도 엄격했었고 이수평가 대상자도 몇 명 없었다. 그 당시에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는 ‘강백천류’뿐이었기 때문이다. 1982년 4월 30일 강백천 선생이 타계하실 때까지 배출되었던 이수자는 문화재관리국 서류상으로 김동표, 송복쇠, 이엽 이렇게 세 사람 밖에 없었다. 1983년도에 김동표 선생이 예능보유자 후보가 된 후부터 김동표 문하에서 이수자가 배출되기 시작했는데, 필자는 그 초창기 멤버였다.
1982년도에 전국의 5개 국립대학에 국악학과가 생겼고 88올림픽 이후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사람들도 점차 문화생활을 향유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말에 문화재관리국은 문화재청으로 격상되었으며 사람들의 국악에 대한 인식도 많이 개선되기 시작하였다.
필자는 1996년도 7월 1일 강백천류대금산조의‘전수교육조교’로 선정되었고 그해 12월에 소리더늠 대금산조의 맥을 잇고 있던 이생강 선생이 추가로 대금산조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문화재관리국 시절인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이수자를 배출하는 것이 비교적 쉽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데, 문민정부(?)시절 이후 이수자 배출 권한을 문화재 보유단체와 보유자에게 넘긴 후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보유자나 보유단체들은 재량권을 이용하여 이수증을 남발하기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여러 부작용들이 생겼으며 이수자들의 수준은 현격하게 떨어졌다.
이러한 여러 가지 폐단을 시정하기 위하여 문화재청에서는 이수자 배출권한을 다시 회수하고 전산화를 통한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엄격하게 관리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박수를 치면서 격려하고 싶은 마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사가 다 그러하듯이 어떠한 사안이나 현상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방임했다가 다시 고삐를 죄게 되면 그 반사충격은 상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이수자 배출 양산(量産)을 막기 위하여 문화재청 산하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취하고 있는 현재의 이수 평가 방법에 있어서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수자가 된다는 것은 무형문화재의 해당 분야를 최소한 3년 이상 전수를 받았음이 입증되어야 하고 그 분야의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검증되어 해당 분야의 보유단체나 보유자 및 관리 감독하는 행정부처로부터 그 능력을 인증받은 사람을 말하며 따라서 그의 문화 예술 활동은 국가무형문화재의 전승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이수자 배출에 있어서는 보유자나 감독기관에서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데 그 이수자 배출 평가 기준에 있어서는 여러 이견이 있을 수가 있다.
우선 해당 분야를 3년 이상 전수하였음을 입증하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가장 염려스러운 부분은 무형문화재를 전수 받고받고 있는 이수 대상자의 기량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이다. 말할 것도 없이 무형문화재의 기·예능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는 해당 무형문화재의 보유자 또는 전승교육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시절에 문화재 보유자나 보유단체에게 이수증 수여 권한이 주어지자 이수증을 무분별하게 남발했기 때문에 그러한 시행착오와 오류를 벗어나기 위하여 그들에게 주어진 권한을 회수하고 이수평가 심사자리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하여 오히려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보유자들의 평가 권한마저 송두리째 빼앗아 버리고 만다면 이것은 분명히 커다란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이수 대상자를 평가하는 자리에는 해당 문화재의 보유자는 참석할 수 없고 감독기관(국립무형유산원)에서 임명한 심사위원들이 흔히 있는 국악경연대회 심사하듯이 평가하다 보니 전문성이나 해당 문화재의 특성을 가려낼 수가 없다. 쥐 잡으려다 장독 깬다는 속담처럼 무척 잘못된 처사이다.
이에 필자는 보다 효율적이고 올바르게 전승시키는 방법 중의 하나로 다음과 같이 제언을 하고자 한다.
1. 이수 평가자(심사위원)를 5명으로 하되 무형문화재 해당 분야의 보유자 (또는 전승교육사) 1명을 반드시 참여시킨다.
2. (예를 들면) 보유자에게 28%의 점수 부여 권한을 주고 나머지 심사위원 4명이 각각 18%의 점수 부여 권한을 가진다.
어디까지나 가정(假定)이지만, 60% 점수 이상을 받아야 이수자로 인정된다고 할 때, 보유자가 아무리 인정하고 싶어도(28% 다 주어도) 4명의 심사위원들이 반대한다면 해당자는 이수를 할 수가 없게 된다. 만약 이렇게 하면 보유자의 독선을 막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유자를 제외한 심사위원들이 실력을 인정하게 될 때에는 그 전문성도 사회적으로 보증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 어디에나 완벽한 제도가 있을 수는 없겠지만 잘못된 부분이 발견되면 개선책을 도입하여 수정하고 거기서 또 문제가 있으면 보완해 가며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올바른 제도라고 생각한다. 부디 우리의 소중한 전통예술이 제대로 올바르게 전승되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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