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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희
전통음악가로 해금산조와 피리 시나위의 명인이다. 본명은 지천만(池千萬), 본관은 충주(忠州)이다.
1909년 9월, 경기도 평택군 포스연 만호리 소재의 경기 세습무 지용득 명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모친 김기덕이 평택군 포승면 일대에서 알아주는 세습무 집안을 이어가는 무속인이다.
어린 시절부터 독학으로 피리, 호적 해금, 장고 등 여러 악기를 섭렵했고, 전통음악과 관련된 여러 분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조항련에게 호적을, 정태신에게 양금을, 지용구에게 해금을, 양경원에게 피리를, 김계선에게 대금풍류를, 방용현에게 대금산조와 풍류를, 최군선에게 농악을, 오덕환에게 무용 장고를, 박춘재에게 경기소리와 서도소리를, 신쾌동에게 거문고산조를, 김상기에게 거문고풍류를 배웠다. 이처럼 여러 무악 명인들에게 장단 등을 배웠으며 가야금과 아쟁은 자득했고 해금산조, 피리산조 연주자로 유명하다.
1937년 조선음악연구소에 입소하여 악사가 된 이후, 1938년에는 한성준무용단(韓成俊舞踊團)의 반주악사로 활약하였으며, 1946년에는 서울중앙방송국 전속국악사가 되었다.1960년에는 국악예술학교 교사로서 유망한 신인들을 많이 길러냈다.
1962년 한국대표로 참석하여 프랑스 파리 세계민속예술대제전에서 우리 음악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것은 매스컴을 통해 널리 소개되었다. 1963년 한국국악예술학교 부설 학생국악관현악단을 조직하였으며, 1965년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 지휘자 취임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1967년에는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으며, 1973년에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2호 시나위 기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76년 미국 하와이에 한국민속예술원을 창설하고 활동하였으나 1980년 작고하여 우리 국악계에 평생을 헌신한 고귀한 삶을 마감하였다.
부인은 국가무형문화재 23호인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은 성금연(成錦鳶) 명인이다. 자녀로는 지수남, 지수복, 지성자, 지미자, 지순자, 지윤자, 지명자, 지재현이있다. 손자 강봉천이 국악 작곡으로 활약을 하고 김귀자, 최희연 등이 대를 잇고 있다. 이철희, 이상윤이도 미국에서 대를 잇고 있다.
1909년 경기도 평택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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