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전통춤의 문화권은 대체로 영남권, 호남권, 충청권, 강원권, 수도권, 이북권 등으로 나누어진다.
자연풍토적 배경과 지역춤의 상관성
추운 지역은 추위를 극복하기 위해 도약하는 수직춤과 강렬한 춤을 춘다. 수직춤이란 발과 다리를 많이 사용하여 무릎 굴신이 많고 온몸을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도약(跳躍)춤이다. 북방민족인 몽골의 기마민족춤, 러시아 코사크 댄스(Cossack Dance)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 북부지역의 춤은 일반적으로 남부지역춤에 비해 강렬하고 도약이 많은 특징을 보이는데 해서지방 탈춤과 무당춤, 북한민속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더운 지역에서는 뛰는 춤을 추면 금방 더위와 땀으로 범벅이 되기 때문에 온몸으로 뛰지 않고 에너지 소비를 줄여 부드럽게 손과 발만 추는 말초부위춤을 추거나 엉덩이만을 좌우로 흔드는 수평춤을 춘다. 수평춤은 몸통 사용을 억제하고 손을 주로 사용하거나 제자리에서 엉덩이를 흔들거나 걸어다니며 추는 평면적인 답지(踏地)춤이다. 동남아시아 태국과 인도 등 남방민족의 말초부위만 움직이는 눈춤과 손가락춤, 폴리네시아의 허리춤과 하와이 훌라춤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의 남부지역의 춤은 북부에 비해 부드럽고 도약이 적고 땅을 밟는 답지춤이 많은 특징을 보여주는데 산대탈춤, 남부무당춤, 강강술래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아프리카 열대지역도 더운 곳인데 마사이족이 도약춤(Jumping dance)을 왜 출까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이들은 대평원의 수렵생활로 맹수의 위협에 대한 사전방지와 사냥감의 위치를 찾기 위해서 높이 뛰어 먼 곳을 확인해야 하는 삶의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대평원의 춤은 수렵이라는 생업의 방식으로 인해 춤의 생성요인이 다른 배경에 놓여있다.
산악지대의 경우는 이동하기도 불편하고 숲과 나무 등 주변의 공간적 장애로 움직임이 제한적이어서 보이는 태양과 하늘을 향해 춤을 추는 천상지향춤, 상향춤이 주로 나타난다. 또한 좁은 공간 때문에 팔과 손도 옆으로 펼치기보다는 위를 향한 발산적인 춤을 추며 고도가 높아 추운 지역의 춤들과 유사성을 보인다.
티베트의 장삼자락춤, 멕시코 아즈텍의 태양신춤, 한국의 백두대간을 따라 존재하는 함경도 돈돌라리춤과 애원성춤 등에서 그 특징이 나타난다. 평야지대는 드넓은 지역이라 춤 종류도 다양하고 땅에서 일용한 양식이 창출되기에 대지에 고마움을 가지고 몸을 낮춰 추는 대지지향춤, 하향춤, 흥겨운 춤, 손과 팔을 옆으로 마음껏 펼치며 부드러운 예능성이 높은 춤이 발달한다. 평야지대는 대체로 따뜻한 지역이 많아 더운 지역의 춤과 유사성을 보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평야지대는 대부분의 농경지로 농업을 영위하면서 풍농을 기원하고 추수를 감사하는 농경춤이 발달하고 있다.
흔히 유럽춤은 발레처럼 발춤을 주로 추는데 한국춤이나 아시아춤은 발보다 손춤을 주로 추는가? 라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문화현상에 대한 답변은 의외로 간단하다. 농경생활이 주업인 한국과 아시아인들은 논농사와 밭농사를 짓기 위해 파종부터 김매기와 추수까지 모두 손으로 작업을 하게 된다. 춤의 중요한 기원 중 하나가 바로 먹거리를 찾아야하는 생업을 모방하는 유형이다.
예를 들면 원시시대의 수렵춤과 채취춤으로부터 유목춤과 농경춤이 이어져 왔는데, 이것은 풍요를 기원함과 동시에 생업의 몸짓을 표현으로 옮긴 모방춤들이다. 농경활동은 주로 허리를 굽히거나 몸을 낮춰 손으로 하는 농사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 발춤보다는 농경을 모방한 손춤이 더 발달할 수 있었고, 이것이 아시아 농경춤들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유목은 많은 가축을 이끌고 초원을 찾아 걷거나 뛰어다니는 이동생활이 근간이기에 유럽 유목민들의 춤은 손춤보다 월등히 발춤이 발달하고 있다. 서양 발레나 아일랜드의 탭댄스(Tap Dance)가 발춤 중심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따라서 생업적 요인으로 볼 때 농업이 주업인 아시아춤은 손춤, 유목이 주업인 유럽춤은 발춤이 발달하게 된 이유이다.
앞서 밝힌 자연풍토적 배경들인 온난의 기후적 요인, 산간과 평야 등 지리적 요인, 농업과 유목 등 생업적 요인이 지역춤 형성의 초석으로 뿌리를 내리게 하였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음으로는 사회환경적 배경인 세시풍속적 요인, 역사적 요인, 사회적 요인이 지역춤의 줄기를 형성하게 된다. 세시풍속(歲時風俗)이란 일상생활에서 계절에 맞추어 관습적으로 되풀이하는 민속을 말한다. 지역에서 행해지는 축제, 카니발, 명절, 추수감사제 등에서 연행하는 지역춤 형성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에서는 정월 대보름 농악춤과 무동춤, 단오절의 탈춤, 백중절의 허튼춤, 추석절의 강강술래 등 다양한 민속춤들이 지역마다 전승된다.
역사적 요인으로 고대춤, 중세춤, 근대춤 등 시대변천에 따라 다양한 춤들이 생성되고 소멸되고 전승되었다. 동시대라 할지라도 한국의 역사에서 보면 상고시대 부여의 영고(迎鼓), 동예의 무천(舞天), 고구려 동맹(東盟) 등이 있었고, 삼국시대에도 고구려의 호선무(胡旋舞), 백제의 기악(伎樂), 신라의 사자춤, 처용무 등 각기 다른 지역춤들이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적 요인이 되는 신분, 행정구역, 교류관계로 인해 지역춤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봉건시대의 신분과 관련한 춤으로는 궁정(궁중)춤과 민속춤, 귀족(양반)춤과 서민(농민)춤, 기방춤과 재인춤 등이 있다. 여기서 궁중춤은 지배자(왕, 황제)가 통치할 때 쓰이는 춤으로 단일하기 때문에 지역 유파(流派)가 없음을 유념해야 한다. 행정구역은 지역춤의 권역을 나누는 기준이 되고 지역춤의 유파가 확실하게 나타나게 되는 특성이 있다. 예로부터 ‘조선팔도’라는 말은 한국을 8도로 구분한 것인데 이것은 곧 8도의 지역춤이 제각기 형성되어 있다는 뜻과도 같다.
교류관계란 전파문화인지 창조문화인지를 파악하는 관계를 뜻한다. 우수한 문화는 주변지역으로 전파되는 특성이 있다. 반대로 특정지역에서 창조된 문화는 다른 지역과 차별성이 있다는 특성도 있다. 이러한 이중적 성향의 비중에 따라 전파지역인지 독창지역인지가 나타나는 원리를 가진다. 즉 전파한 유사성보다 창조한 독창성이 많을 때 타 지역과 차별이 나타나고 지역성이 형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농악춤은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악기연주자는 연주만하고 연희자는 춤만 추는 것이 기본원리인데, 한국의 농악춤은 타악연주자 모두가 연주하면서 집단춤을 추고 게다가 상모돌리기까지 하는 연행형태를 띠는데,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일한 것이다.
지역춤을 형성하는 민족문화적 배경은 종교의식과 반주음악, 춤의상 등의 요인을 들 수 있다. 종교는 오랜 시간 동안 여러 지역에서 민족의 사상 감정과 윤리 도덕의 기반을 형성하기 때문에 자연히 춤문화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특히 종교의식은 춤의 요소가 많은 무교(巫敎),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수니파) 등도 있지만, 춤의식을 거부하는 기독교일지라도 지역춤의 성격이나 장르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무속의식은 소리와 춤과 공수내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불교의식도 영산재, 수륙제 등에서 범패와 작법춤으로 진행하며, 힌두교도 가락과 춤으로 푸자(puja)의식을 거행하며, 이슬람교 수니파의 의식춤으로는 터키 세마(Sema)춤과 이집트 탄누라(Tanoura) 등 선회(旋回)춤이 유명하다. 춤은 무반주로도 추지만 대부분 음악반주에 맞춰 춘다. 따라서 악기, 선율, 리듬, 노래 등의 음악적 상관관계가 클 수밖에 없다.
나라마다 다양한 민족악기와 민요와 장단 등에 맞추어 민족정서가 담긴 춤이 형성되고 전승되므로 음악반주의 영향력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지역춤은 지역민들의 의식주와 관련성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지역민들의 종족의상을 입고 추는 경우가 많다. 특히 무복의 맵시와 소품들에 의해 춤의 성향과 춤사위가 형성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밖에도 통과의례의 요인으로 출산의례춤, 성년의례춤, 혼례춤, 장례춤이 있으나 문명화됨에 따라 의례만 남고 춤은 생략되는 경향이 있다. 결론적으로 지역춤을 형성하는 배경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역춤은 자연풍토적 배경으로 ‘뿌리’를 내리면 사회환경적 배경으로 ‘줄기’를 이루고 민족문화적 배경으로 ‘열매’를 맺게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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