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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들은 청자기와로 지붕을 덮어
이규진(편고재 주인)
1963년 5월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당시 미술과장)과 당시 직원이었던 정양모(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관장은 청자가마 조사를 위해 강진 사당리를 찾는다. 그리고는 소쿠리 등에 청자 도편을 담아 갖고 나온 동네 아주머니들을 만난다. 당시만 해도 청자기와편은 세상에 알려져 있던 것이 서너 조각에 불과할 때였다. 따라서 <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 의종(毅宗) 11년(1157) 기사에 "왕이 이궁(離宮)을 지었는데 태평정(太平亭)이라 하였다. --- 또 북쪽에 양이정(養怡亭)을 지었는데 그 지붕은 청자로 덮었다”는 기록이 과연 신빙성이 있느냐 하는 의구심이 있을 때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 아주머니의 소쿠리 속에 청자막새기와편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놀란 정양모 관장 일행이 어디서 난 것이냐고 묻자 자기 집으로 안내를 했다. 그 곳이 가마터였고 64~65년에 걸쳐 발굴조사를 한 결과 명품 청자들은 물론이거니와 모란꽃을 장식한 수막새와 당초무늬가 있는 암막새 등 다양한 종류의 청자기와들이 쏟아져 나왔다. 양이정 지붕을 청자로 덮었다는 <고려사>의 기록이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청자기와는 양이정 지붕에만 덮었었을까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사당리 당전부락에서 출토된 청자기와는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당리에서 출토된 청자수막새의 모란문만 하더라도 여러 가지가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양이정 외에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청자기와는 사당리에서만 출토된 것도 아니다. 초기 청자 가마인 원흥리에서도 보이고 강진과 쌍벽을 이루는 부안 유천리에서도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자료는 전북 고창군에 위치한 선운사 동불암에서 출토된 수키와라고 할 수 있다. 이로 보아 청자기와는 왕실에서 뿐만 아니라 절에서도 사용되었음이 입증된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도 고려시대에 청자기와는 더 널리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1990년대 초 한중수교가 이루어진 후 북한의 고미술품들이 중국을 경유해 남한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 당시만 해도 좋은 물건들이 흔했고 모조품에 대한 우려도 별로 없을 때였다. 이 무렵 인사동에서 구입을 한 것이 청자귀면수막새편이다. 사당리 당전에서도, 원흥리에서도, 부안 유천리에서도 이런 종류의 청자귀면수막새가 일찍이 출토된 적은 없었다. 청자수막새라고 하면 으레 모란문밖에 알려진 것이 없었던 시절에 듣도 보도 못하던 청자귀면수막새편이 보였으니 당시로서는 여간 흥분되는 일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입수를 했고 지금까지 오래도록 잘 보관해 오고 있는 중이다.
청자귀면수막새편은 귀면쪽 문양은 전체가 살아 있지만 뒤로 길게 이어지는 부분은 손상을 입어 잘려 나가고 없다. 잘린 부분을 보면 정선된 태토가 회색빛을 들어내고 있으며 안쪽은 유약이 없는데 토진과 어울려 더러 누르스름한 황토색을 보이고 있다. 전체적인 외면에는 푸른 비색의 유약이 빙렬 없이 곱게 입혀져 있으며 귀면은 도범으로 찍어낸 모습이다. 귀면이라고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삼국시대 와당 같은 것에서 보이는 것과는 달라 도깨비라고 해야 옳을 것 같은 느낌이다. 도깨비는 두 줄의 양각 선 안에 배치를 하고 있는데 눈 코 입과 귀가 있으며 세 개의 뿔이 달려 있다. 청자에 이런 귀면을 새겨 기와로 사용한 것은 아마도 벽사의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태토며 유약 그리고 조형감각 등 청자귀면수막새편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전성기 고려 시대 청자를 대표할 만한 것이다. 그런데 기존에 알려진 것 중 이런 형태의 청자기와가 없다보니 의구심을 갖는 사람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지인 가게에 내가 일찍부터 소장해온 것과 똑 같은 청자귀면수막새편이 한 점 있었는데 사람들로부터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이다. 같은 도범으로 찍어낸 것이 분명한 것이어서 생각다 못해 이 것도 내가 인수를 해 지금은 같은 모양의 청자귀면수막새편을 쌍으로 소장하고 있다. 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나로서는 잘한 것이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사실 청자기와는 도자기 선진국인 중국에도 없고 우리보다 후진국인 일본에는 당연히 없는 기종이다. 말하자면 전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우리만의 자랑스러운 도자기 유물인 것이다. 생각해 보라. 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비취빛 기와로 지붕을 장식한 집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해 보였을까. 상상만으로도 눈부시지 않은가. 그런데 상상을 좀 더 구체화 시켜 볼 수 있는 곳이 한 곳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정문을 들어서서 우측으로 보면 거울못이라는 연못이 있고 이곳에 정자가 한 동 서 있는데 청자정(靑瓷亭)이라는 이름 그대로 지붕이 청자기와다. 물론 옛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려시대 청자기와 지붕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다 보니 아쉬운 대로 감상은 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을 기회가 있다면 잠시라도 시간을 내 연못가를 거닐며 정자 지붕에 나타난 고려인들의 마음과 그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나름의 멋과 운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더러 해보게 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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