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8 (수)

[명인 한 컷] 판소리 송만갑의 소리제를 이어간 금파 강도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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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한 컷] 판소리 송만갑의 소리제를 이어간 금파 강도근

강도근(姜道根, 1918~1996)

  • 특집부
  • 등록 2023.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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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동편제 명창 강도근(1918~96). 조선의 대표적 명창 송만갑의 소리제를 이었다. [중앙포토].jpg
판소리 동편제 명창 강도근(1918~1996).

 

흥보가를 가장 멋들어지게 불렀던 이는 고(故) 강도근 명창이다. 


판소리 명창 강도근(姜道根)은 전북 남원시 향교동에서 태어나 20세기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이다. 본명은 강맹근(姜孟根)이다. 그의 집안에는 음악가들이 많은 세습예인 집안 출신으로, 줄타기 명인 강원종의 아들이자, 대금산조 명인 강백천의 사촌동생, 판소리 명창 안숙선의 외삼촌이다. 


판소리와 창극으로 이름을 날렸던 강산홍과 가야금의 명인 강정열은 당질이며, 가야금산조로 남원과 진주에서 활동했던 강순영 또한 그와 사촌간이다.


10세 때부터 남원의 김정문에게 흥보가를 사사했다.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그가 부른 흥보가는 송흥록(宋興祿)-송광록(宋光祿)-송우룡(宋雨龍)-송만갑(宋萬甲, 1865-1939)-김정문(金正文, 1887-1935)으로 이어지는 바디이다. '수궁가'에도 능했는데, 그가 부른 수궁가는 송흥록-송광록-송우룡-유성준으로 이어지는 바디이다.

 

동편제의 마지막 명창 강도근은 우직한 농사꾼이기도 하다. 농사꾼 아버지인 강원중과 어머니 이판녀 사이에서 9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는 돈이나 명예에 초연한 고집스러운 소리꾼으로, 타계하기 직전까지 농사꾼임을 자처하며 고향 남원에서 농사를 지어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리에서는 검은 흙냄새가 난다. 판소리에서는 이런 소리를 ‘철성(鐵聲)’이라고 한다. 자그마한 키에 다부진 모습으로 약간 쉰 듯하면서도 청청한 수리성과 가늘고 단단한 상청을 이루는 성음이 특징이다. 

 

생전 고향 남원을 떠난 적이 없어 음반은 적은 편이다. 1990년 흥보가와 수궁가완창 LP레코드 음반을 통해 그의 소리 세계를 접할 수 있다.


강도근 후계자 양성소를 설립, 동편제 소리의 맥을 이어온 판소리 동편제의 마지막 대가이다. 안숙선(국립창극단장)은 초기에 그가 길러낸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17세 되던 해에 동편제 판소리 명창 김정문 문하에서 소리를 배운 강도근은 흥보가 중'제비 후리는 대목'이 특기이다. 20세 때 상경하여 조선성악연구회에서 당대 최고 명창의 한사람인 송만갑 선생에게 판소리 다섯마당을 두루 배웠고, 25세 때에 구례로 가서 박봉술의 형 박봉채(朴奉彩)에게 판소리를 지도받았다. 지리산 쌍계사 일대에서 7년여 동안 혼자 공부한 후 하동으로 유성준을 찾아가 판소리 수궁가를 배웠다. 

해방을 전후해서 동일창극단, 조선창극단, 호남창극단 등을 전전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목포, 이리, 여수, 순천 등지의 국악원에서 창악 강사를 지냈다. 1973년 이후 남원국악원을 창립하여 강사를 지냈고, 틈만 나면 선유폭포 등 지리산 등지를 다니며 연습을 한 노력파였다. 조선시대 명창으로 추앙되던 송만갑의 판소리 전통을 이어받아 동편제 소리를 고수해 오던 그는 환갑을 넘겨 60대 중반에서야 판소리계에 이름을 내기 시작한 은둔의 예술인이기도 했다.

금파 감도근 약력

남원 출생 (1918-1996)

1928년(10세) 김정문에게 흥보가 사사

1953년 부산 전국판소리경연대회 최우수상 

1981년 한국국악협회 국악공로상 

1985년 남원시민의 장 문화장 

1986년 KBS국악대상

1992년 동리대상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예능보유자 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