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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8각을 이루고 있으니
이규진(편고재 주인)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엘 가면 전통찻집 '석다원(石茶園)'이 있다. 일반인들은 어떨지 몰라도 수석인들에게는 아련한 향수 같은 것을 불러일으키는 곳. 이곳에는 아파트 한 채 값과 맛 바꾸었다는 저 유명한 3단석 '선단(仙段)'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새로운 주인을 찾아 가 보금자리를 틀었지만 그 돌이 아니더라도 석다원에는 명품 수석들이 아직도 많아 안복을 누리기에는 조금도 손색이 없다. 잔잔히 흐르는 음악과 향기로운 차 향기. 그리고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수석들은 멋과 풍류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웅변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이러한 멋과 풍류가 어찌 수석인들 만의 몫이겠는가. 이곳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고은 시인의 발자취를 찾아 볼 수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내가 석다원의 박은종(朴恩鍾)님과 여주인인 그 부인을 처음 접한 것은 '무석재(撫石齋)의 수석(壽石)'이라는 석보를 통해서였다. 돌을 어루만지는 서재의 수석이라니 이 얼마나 범상치 않은 제목인가. 그런데 책장을 넘겨보니 제목 못지않게 한 점 한 점이 수준 이상의 돌들이었다. 3단석 <선단>을 처음 본 것도 이 석보에서였다. '선단' 이외의 돌들도 수석의 맛과 멋과 깊이를 알지 못하고서는 수집과 배열 방식이 불가능한 것들이어서 나로서는 감탄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박은종님을 처음 본 것은 고 송성문 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남한강의 혼'을 기증하고 나서 수석인들이 어울려 구경을 갔을 때였다. 그로부터 꽤 오랜 세월이 흐른 작년에서야 늘 궁금해 하던 석다원을 처음으로 찾아 볼 수 있었으니 뒤 늦은 행운이었다고나 할까.
석다원을 처음 찾았던 그날 나는 여주인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더 것은 3단석 선단과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던 시절 선단에 매료되어 엄청난 금액을 무리해 구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연 등은 수석을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듯 싶어서 감동으로 가슴마저 뭉클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다시 두 번째로 석다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흐른 것은 아니었건만 그동안 작은 변화가 있어 보였다. 창가에는 못 보던 도자기도 두 점이 놓여 있었다. 조선 후기 지방 가마 것으로 주구는 손상이 있는 등 크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재미가 있다는 느낌은 드는 것이었는데 동행을 했던 후배가 그동안 안목이 늘었는지 잽싸게 챙기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석다원에 대해 글이라도 한 편 써 보려면 아무래도 필요할 것 같아 후배로부터 다시 양도를 받은 것이 바로 이 백자각병편이다.
백자각병편은 앞서도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지방가마에서 만든 것으로 유색으로 보아 18세기 후반 쯤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주구는 손상되어 목 없는 물건이 되어 버렸지만 이 백자각병편의 특징은 아무래도 돌아가며 몸체에 각을 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전반인 금사리 시기에 이르면 우리 도자기에도 그 동안 못 보던 각을 친 기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병 같은 것에 보이는 것은 대개 8각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백자각병편은 무려 18각을 이루고 있으니 각병 치고는 꽤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찻집 석다원. 수석과 차와 음악이 어울려 멋과 운치와 풍류가 넘치는 곳. 그리고 주인들의 인품이 잔잔한 울림을 주는 곳. 가까운 곳에 있으면 매일이라도 찾아 흠뻑 그 향기에 취하고 싶건만 오호 통재라 강을 건너야 하니 쉽지 않은 일이어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석다원이 생각나는 날이면 할 일 없이 석보 '무석재의 수석'이나 뒤적여 보며 아쉬움을 달래 보아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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