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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수 한 사발 떠놓고
이규진(편고재 주인)
어린 날 고향집에서 바라보던 하늘은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여름 저녁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에 누워 찐 옥수수를 먹으며 바라보던 하늘에는 왜 그리도 별들이 많았던 것일까. 보석처럼 별들이 반짝이던 밤하늘을 가로질러서는 별똥별이 떨어져 내리고는 했었다. 그 많고 많던 별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서울 하늘을 바라보아도 이제 별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탁해진 공기에 의해, 아니면 인간이 밝힌 불빛에 가려져 별들은 얼굴을 숨긴 채 자신의 모습을 침묵 속에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졸연히 별을 볼 수 없는 세상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래도 운 좋게 저녁마다 달과 별을 보며 살고 있다. 내가 침실로 쓰고 있는 아파트의 제일 큰 방을 먼저 주인은 아이들 방으로 썼던 모양이다. 그 증거로는 천장에 붙여놓은 달과 별들이다. 형광 물질로 만든 이 것들은 잠자리에 누워 소등을 하고 나면 어둠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잠들기 전에 나는 싫든 좋든 달과 별을 마주 보면서 살 수 밖에 없으니 행복한 일이라고나 할까.
탁해진 공기에 의해, 인간들이 밝히 불빛에 의해 서울 하늘의 별들은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실 인간의 역사에서 볼 때 밤하늘의 별이 보기 어려워 진 것은 그리 오래 된 세월은 아니다. 별은 밤하늘에서 늘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고 사람들은 경외심과 더불어 그 것을 바라보며 인간의 길융화복과 연결시켜 온 것이다. 그 중심에 있었던 별이 바로 북두칠성(北斗七星)이다. 북두칠성이야말로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는 별자리로서 우리의 삶은 여기에서 시작해 여기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일곱 개의 별로 이루어진 북두칠성은 자루 부분을 표(杓)라고 하고 머리 부분을 괴(魁)라고 한다. 괴의 첫머리부터 시작해 천추성(天樞星) 천선성(天璇星) 천기성(天機星) 천권성(天權星) 옥형성(玉衡星) 개양성(開陽星) 요광성(搖光星)으로 불리며 각각의 별들은 그 이름에 걸맞는 점성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12자리에 배속되어 사람의 생사와 운명을 주관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백자청화북두칠성문완편은 19세기 분원산이다. 넓직한 굽에 직립한 입술 등 전형적인 조선 후기 완의 모습이다. 굽은 모래받침에 두 줄의 청화선을, 입술 바로 아래에는 뇌문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태극문과 북두칠성을 그려 넣고 있다. 현재는 두 개의 태극문 사이에 한 개의 북두칠성만 보이고 있지만 원래는 돌아가며 네 개의 태극문과 네 개의 북두칠성이 있었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내저 중앙에는 도안화 된 복자도 들어 있다. 나로서는 청화로 이런 구도의 북두칠성이 들어간 도자기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하면 도대체 이 백자청화북두칠성문완편은 어디에 사용되었던 그릇일까.
북두칠성이 인간의 생사와 수명을 관장하는 별자리라고는 하지만 이 백자청화북두칠성문완편이 죽음과 관련된 유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리 보아도 부장되었던 것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면 출생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정한수 한 사발 떠놓고 하늘을 향해 자식 점지를 기원하던 그 애틋한 사연의 그릇일까. 아무래도 인간의 죽음보다는 탄생과 관련된 쪽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는 이 백자청화북두칠성문완편을 보면서 우리의 하늘에서 사라진 별들과 더불어 그 많고 많은 전설과 신화들마저도 지워져 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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