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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갑의 애국가 연구] (3) 김구의 애국가 사연, “작사자는 윤치호다”
김연갑(전 국가상진연구회 애국가 분과위원장)
"1945년 임시정부 주석 김구와 그 측근들은 애국가 작사자를 알고 있었다. 작사자는 바로 윤치호이다. 다만 윤치호를 작사자로 내세우지는 않았고, ‘50년 전 한 한국 애국지사’로 지금은 ‘숨은 이름’이라고 하여 적대시하지도 않았다.”
지난 제2회 ‘김구는 애국가 작사자를 알고 있었다’의 결론 부분을 인용하였다. 이번 회에서도 이를 전제로 임시정부 요인들의 작사자 인식을 확인하기로 한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애국가 작사자를 누구로 알고 있었는가를 살필 수 있는 에피소드가 두 가지 있다. 내용은 대동소이한데, 하나는 기독교 감리교계에 전해지는 김구의 발언이고 또 하나는 상행 임정에서 독립신문 등의 업무를 맡았던 이광수가 전(轉)한 것이다. 전자를 먼저 살피면 대략 이렇다.
"김구선생이 상해 임정시절 愛國歌 작사자가 누구인가를 묻는 동지에게 말했다지요. ‘우리가 3, 1운동을 태극기와 愛國歌로 싸웠는데, 누가 지었는지가 왜 문제인가? 혁명이 완수될 때까지는 문제가 될 수 없소’라고 했다지요”
감리교 신학대학 역사박물관 전 관장 윤춘병(尹春炳/1918~2010) 목사의 전언이다. 유사한 내용이 2013년 ‘애국가법 제정 왜 필요한가?’(한국입법학회 연구보고서) 등에 수록된 내용이기도 하다. 김구의 단호함이 밴 발언으로 상해 인시정부 초기의 상황이다. 이런 입장은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지사들의 입장으로 "적군의 무기와 식량을 빼앗아 싸우는 상황에서 이런 논란은 분열이다”라는 인식이 있었던 결과이다.
그렇다면 작사자를 묻는 의도와 이렇게 답변을 했어야 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앞에서 인용한 결론의 맥락에서 해석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임시의정원회의 등에서 열정적으로 애국가를 부르는 안창호를 작사자로 알았는데, 정작은 윤치호라는 소문이 있어 이를 김구에게 물은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을 받은 김구는 ‘이다’, ‘아니다’라는 답변 대신 조국을 떠나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처지에 누가 작사했는가를 따질 필요가 있는가라고 답한 것이다. 적으로부터 노획한 무기로 적과 싸우는 상황에서 이 무기가 누구의 것이냐를 따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굳이 이 상황의 진의를 따진다면 이렇다. 묻는 이가 바라는 안창호가 아니라 유감이지만 윤치호라는 것이 된다. 이는 지난 회에서 도출한 임시정부 요인들의 인식 기조임을 재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이런 정황의 연장선상에서 김구와 애국가의 관계가 의외로 곡진(曲盡)한 면도 있음을 알게 된다. 제시하는 사연은 김구 생애의 가장 감격적인 순간이라 할 수 있는 1945년 해방을 맞아 고국으로 환국하는 상황의 애국가 사연이다. 이 감격을 장준하(1918~1975)가 1971년 발행한 ‘돌베개’에 수록하였다.
"누군가가 조선 해안이 보인다고 소리쳤다. 일동은 ‘우아’ 하고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보인다! 저기 동북 편 손아래 조그맣게 그리고 희미하게 고국의 땅이 나타나고 있다. 저것은 바로 우리 땅인 것이다.
누구의 지휘도 없이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애국가가 울려 나와 합창으로 엄숙하게 흘러나왔다. 비행기 속 공기를 흔드는 노랫소리는 어느덧 울음 섞인 노래가 되었다.(중략)
애국가는 우리들의 심장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조국을 주먹 안에 움켜잡은 듯이 떨게 했다. 드디어 애국가는 끝까지 부르지 못하고 울음으로 끝을 흐렸다. 울음 섞인 합창, 그것이 그때의 나의 가슴속에 새로 지어진 애국가다. 기체 안의 노 투사는 마치 어린이처럼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을 달래지도 못했다. 그 어느 누가 이 애국가를 울지 않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
노래를 부르는 입모양인지, 웃음을 억누르는 모습인지, 분간할 수 없는 표정으로 발음을 못하고 입술을 깨무는 노 혁명가의 감격. 감상을 내어버린 지 오래고 울음을 잊어버린 지 이미 옛날인 강인한 백범선생, 그의 두꺼운 안경 알도 뽀오얀 김이 서리고 그 밑으로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르 번져 흘렀다. ‘조국을 찾고 눈물도 찾으셨구나’ 나는 마치 한 소년처럼 여울지는 가슴을 느끼며 어깨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환국의 감격, 눈물로 부르는 애국가 합창. 임시정부의 애환을 상징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김구의 애국가에 대한 경의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윤치호를 임시정부 내내 ‘한 대한 애국지사’로 예우를 견지한 배경이다.
제3회 ‘ 김구의 애국가 사연, "작사자는 윤치호다”의 결론은 이렇다.
"작사자가 윤치호라는 사실에 반감을 갖고 묻는 이들에게 한 김구의 답변을 이렇다.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는 애국가의 작사자는 50년 전의 ‘한 대한 애국지사’이다. 이것을 왜 문제 삼는가라는 반문이다. 묻는 이들에게는 우회적으로 알리며 설득한 것이고, 작사자에 대해서는 나름의 배려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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