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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의 여인] (7) 신무용가 최승희의 춤 '에헤라 노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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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의 여인] (7) 신무용가 최승희의 춤 '에헤라 노아라'

  • 특집부
  • 등록 2023.04.0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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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 1933.jpg
신무용가 최승희의 춤, 에헤라 노아라.(1933년)

 

세계적 무용가 최승희는 남과 북은 물론 근대무용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독보적 인물이다. 1920년경 우리나라에 신무용이라는 개념과 무용 장르가 새로이 태동하기 시작한 시기, 최승희는 우리나라 무대 무용의 태동에 중심 인물이 되었다. 일본으로의 유학, 구미 및 미국에서의 활약 등 1920년대~30년대 조선의 무용을 이끌어가는 신여성이다.


1931년에는 문화평론가였던 안막과 결혼을 하는데, 출산 후 육아로 인해 집안에 묶이게 되면서 무용가로서의 공백 기간 슬럼프로 인한 정신적 고통으로 힘든 생활을 하다가 재기를 위해 1933년 그는 이시이 바꾸 무용연구소에 다시 입단하게 된다. 그해 그는 일본 여류무용대회에 조선의 전통춤을 근간으로 만든 '에헤라 노아라'라는 작품이 전환점이 되어 대성공을 이루게 되었다. 

 

1944년 최승희와 그의 남편 안막은 중국 북경에 최승희동방무도연구소를 개설하고, 안막이 먼저 북한으로 가자 최승희도 친일행위로 비판을 받게 되자 남편을 따라 1946년 월북을 하였다. 

 

1953년 최승희무용연구소가 국립최승희무용연구소로 개칭되고, 북한에서 호의적인 인정을 받아서 많은 상과 직책이 부여되었다. 그러나 1958년 그에 대한 비판이 생겨나자 무용연구소가 폐쇄되고 국립예술대학 무용학부로 개편이 되었다. 그해 그의 남편의 숙청으로 그의 무용 활동이 중단되었다. 

 

최승희는 중국 대사관 망명 요청으로 인하여 북한에서 감금되었다. 그 이후 최승희의 삶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