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국립안동대학교 대학원 민속학과는 2020년 9월부터 ‘지역 공동체 현실문제에 대한 민속학적 대응과 전문인력 양성’을 주제로 4단계 BK21사업을 수행 중이다. 민속학 연구에서 지역 공동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지역 공동체는 다양한 형태의 민속이나 전통문화가 생성․전승된 공간이며, 민속학 연구의 뿌리를 두고 있는 터전과도 다름없다. 따라서 민속학의 성립부터 발전단계는 지역 공동체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대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민속학에서 지역 공동체는 늘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동안의 민속학은 주로 과거에 초점을 맞추어 민속이나 전통문화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경향이 강했다. 그렇기 때문에 고령화나 인구감소를 비롯한 지역 공동체가 직면한 현실문제에 대해서는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한계 역시 학계 내에서 지적되어 왔다.
결과적으로 주민들이 겪는 매일매일의 일상이나 그것이 실천되는 시공간으로서의 지역 공동체에 관한 민속학적 연구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태로 남게 되었다. 따라서, 지역 공동체 현실문제에 대한 천착은 그동안 민속학 연구의 틈새를 보완하며, 주민의 삶과 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라 기대된다.
한편, 농어촌 활성화에 관한 최근의 논의나 지방소멸에 대한 인문학적 대응 담론에서 문화에 기반한 문제 해결방식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민속’이나 ‘전통’, ‘토착적 지식’등과 같이 지역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문화양식은, 서구적 가치와 문화가 세계적인 표준으로 강요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양식은 주민의 정서에 친숙하고 사회적 수용성 역시 높게 나타나기 때문에, 지역 활성화나 공동체 복원․재생을 위한 프로젝트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강조된다. 실제로, 현대 한국 지역사회를 배경으로 활발하게 기획․시도되는 축제, 전시, 가요, 영화, 스토리텔링 등의 문화산업 영역에서 민속을 비롯한 지역 공동체문화의 가치와 잠재력은 매우 높게 평가․주목되고 있다.
우리 교육연구팀의 구성원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해, 지난 2년 반 동안 지역 공동체와 관련한 연구를 수행해 왔으며, 이 책은 그 결과물의 일부를 엮은 것이다.
제1부는 지역 공동체의 재인식과 문제설정을 다룬다.
「인류세와 지방소멸 시대, 공동체문화의 가능성」은 인류세와 지방소멸이 결국은 동일한 문제 영역에서 발생한 문제라고 보며, 그것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현대 자본주의가 낳은 병폐와 관련짓고 있다. 나아가 인류세와 자본세로부터 그 피난처로서 새로운 가치실천 양식의 가능성을 공동체 문화를 통해 탐색한다.
「귀농인의 지역사회 적응과 사회적 자본」은 농촌 지역 ‘귀농인’의 지역사회 적응 문제를 살피고 있다. 지역의 귀농인 담론에서 그들은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의 대안적 존재로 기대되지만, 한편으로는 토착 주민과 차별화된 존재로 위치 지어진다. 이 글은 귀농인의 지역사회 적응이 결코 귀농인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으며, ‘귀농인-마을(지역)사회-지자체(정부)’등의 상호적응과 관련된 문제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형성은 그들의 상호작용 과정과 결과임을 환기하고 있다.
「동해안 지역의 기후변화와 어촌의 현실」은 기후변화가 바다 생태계 그리고 어민들의 어로 활동을 비롯한 생활세계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고,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놓인 어촌의 현실을 살피고 있다. 기후변화의 국면 속에서 영덕 지역에는 수온 양극화, 해저 생태계의 변화, 폭풍해일의 심화 등의 현상이 뚜렷하게 감지된다. 이 연구에서는 생태계 변화에 따른 주민의 인식과 대응을 심층적으로 살피는 한편, 이러한 혼란을 야기한 인류세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제2부는 지역 공동체의 문화적 전통과 변환을 다룬다.
「한말 지역 공동체 구성원의 역할 형평성 전통」은 한말韓末 지역 공동체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한 모금의 사례를 통해, 그 구성원들 사이의 형평성 적용 방식과 유형을 밝히고 있다. 이 글에서 제시한 형평성의 개념은 지역 공동체 운영의 핵심원리로, 현대사회에서도 그 적용 가능성이 높은 개념으로 주목된다.
「해안 지역 민간신앙의 용신龍神과 자연 이해」는 일반적으로 수신水神으로 알려진 해안 지역 용신의 위상을 재조명한다. 용신은 풍어를 가져다주는 유일한 신이 아니며, 오히려 그것이 담당하는 특수한 기능은 수사자水死者의 관장이다. 인간은 용신을 일방적인 숭배와 기원의 대상보다는 자유롭게 소통하고 요구할 수 있는 인간과 가까운 존재로 여긴다. 이 연구는 해안 지역의 신 개념은 물론 삶과 문화를 이해함에 있어서 자연에 대한 인지모델 같은 자연 이해의 새로운 관점이 필요함을 제기한다.
「한국 무속 ‘표시 체험’대한 연구」는 한국 무속의 종교 체험 중 ‘표시 체험’에 주목한다. ‘표시 체험’은 내림굿 이후 무당의 무업 실천과 직결된 것으로, 무당들은 이를 소명으로 받아들인다. 이 글에서는 ‘표시 체험’의 사례들을 분류하고 해석의 측면에 접근한다. ‘표시 체험’은 무당의 운명적인 사제로서의 체험이자 한국 무속의 소통 방식의 하나이다. 또한, 무당과 손님 사이에서 중요한 소통 촉매로서의 의미와 역할을 해명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옹기공방에서 여성의 역할 변화」는 그동안 옹기 생산문화 연구에서 소외되었던 여성의 존재와 역할에 주목한다. 과거 옹기생산문화에서는 남성의 역할만이 조명·강조되었지만, 이 연구에서 주목한 것은 옹기장인 가족 특히 여성의 참여와 역할이다. 이를 통해 전통공예 분야는 생산이나 기술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장인의 생활문화를 아울러 이해해야 하며, 그와 관련된 생산문화의 다양한 측면을 고찰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하고 있다.
제3부는 지역 문화의 활용 가능성과 전망을 다룬다.
「밀양농악의 전승과 의의」는 1970년대 초에 만들어진 현대의 농악으로서, 고을농악이 갖는 탈공동체성과 뛰어난 치배에 의존한 전승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밀양농악이 현대의 민속 가운데 하나인 고을농악의 창출과 전승양상을 살필 수 있는 적절한 사례 가운데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80년대’저항 문화와 민속의 지역사회 귀환」은 영양댐 건설 계획에 따라 수몰될 위기에 처한 지역과 마을 공동체를 지킨다는 의미로 기획․실행된 장파천 문화제의 민속학적 의미를 다룬다. 이 글에서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복잡다단한 민속의 재구성 과정을 밝힘과 동시에, 지역사회나 농촌에서 민속이 지닌 대안문화로서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고향영화Heimatfilm에 대한 독일 Tübingen대학 민속학연구소의 연구 배경과 방법」은 고향에 대한 독일민속학자들의 인식적 특징, 대중매체 대한 연구 경향, 고향영화 장르의 유형 분류와 연구 방법을 제시, 분석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 고향은 실재의 공간이기보다는 고향을 떠난 혹은 도시에 사는 사람의 상상의 공간이며, 고향영화란 이들의 상상을 확인시켜주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나아가 ‘민속’의 상품화’중 레트로 현상의 발생 배경 그리고 민속학의 연구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20세기 후반 문경도자기의 기종과 정체성 변화」는 식기류를 주로 생산했던 문경지역의 사기장들이 20세기 후반부터 점차 새로운 기종을 만들게 된 사회문화적 배경과 과정을 해명하고 있다. 특히 사기장의 경험담을 중심으로 전통기술의 보존과 ‘만들어진’전통 상품이라는 두 요소가 어떻게 공존하면서 다면적인 정체성을 형성했는지 분석한다. 이 글은 다양한 환경 변화가 전통기술 보유자들에게 미친 영향과 그로 인한 정체성 변화를 당사자들 시각에서의 이해 가능성을 열어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발간을 위해 옥고를 제공해준 필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한, 4단계 BK21사업을 통해 이 책의 출판비와 더불어 안동대 민속학과 대학원생들이 경제적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해 준 한국연구재단에도 특별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성가신 출판 작업을 수행해 준 홍종화 사장님을 비롯한 민속원 관계자분들, 원고의 수합과 정리에 힘써준 이중구 박사와 서별 박사과정생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이 책을 통해 지역 공동체의 위기 진단과 대안 마련에 민속학이 조금이나마 기여하길 바라본다.
글쓴이 소개(집필순)
이영배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민속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공동체문화 실천의 역사적 원천과 그 재생의 특이성」("한국학연구", 2019), 「공동체문화 연구의 민속적 패러다임 정립을 위한 기획」("인문학연구", 2019), 「공동체문화 실천의 동인과 대안의 전망」("인문학연구", 2020) 등이 있다.
이진교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대학원 민속학과 4단계 BK21 교육연구팀장이다. 지역 공동체 현실문제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마을사회의 위기와 의례적 대응」, 「지역사회의 연대와 저항」 등의 연구논문과, "문화권력과 버내큘러"(공저), "현대화와 민속문화"(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이중구
안동대학교 대학원 민속학과 BK21교육연구팀에서 학술연구대우교수로 재직중이며, 주로 마을사회와 어촌문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인접 마을 간의 관계성 변화」, 「어촌사회의 공공개발 수용과 환경 변화」, 「분단의 현실과 접경지역의 어민사회:고성군 현내면 대진리의 사례」 등이 있다.
배영동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농경문화, 음식문화, 지역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궁중 내농작과 농가 내농작의 의미와 기능」, 「산업화에 따른 마을공동체 민속의 변화와 탈맥락화」, 「고조리서 "음식졀조飮食節造" 저술의 배경 문화 탐색」 등이 있고, 저서로는 "농경생활의 문화읽기", "민속지식의 인문학"(공동) 등이 있다.
이용범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민속종교와 관련 의례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표 논저로 Korean Popular Beliefs(공저), "도시마을의 민속문화"(공저), 「한국 전통 죽음의례의 변화:유교 상장례와 무속의 죽음의례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정은정
안동대학교 대학원 민속학과 박사과정을 수료 후, 현재 무속 공동체와, 지역의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대표 논문에는 「한국 무속 종교 체험에 대한 연구-‘표시 체험’을 중심으로-」가 있다.
이한승
안동대학교 대학원 민속학과 BK21교육연구팀에서 학술연구대우교수로 재직중이며, 공동체 문화와 무형유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표 논저에는 "옹기를 만드는 사람들", 「1970년대 광명단 옹기에 대한 논란과 그 문화적 파장」 등이 있다.
한양명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민속예술과 축제, 놀이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대표 논저로는 "물과 불의 축제:선유․낙화놀이의 전통과 하회 선유줄불놀이", "용과 여성, 달의 축제:영덕의 동제와 대동놀이", 「민속예술을 통해 본 신명풀이의 존재양상과 성격」, 「솟대놀음의 변화와 놀음의 미학」 등이 있다.
이상현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주요 논저에는 「독일 민속학개론서의 일상문화와 민속학연구소의 일상문화」, 「민속학의 공동체적 마을 인식의 특징과 문제점」, "世界遺産時代の民俗學" 등이 있다.
서 별
안동대학교 대학원 민속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장인들이 조직한 공동체의 문화와 무형유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표 논저에는 「20세기 후반 문경도자기의 기종과 정체성 변화」, 「문화정책과 장인조직으로 본 문경지역 도자기의 정체성 변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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