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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편 중에 10년치 간지명이
이규진(편고재 주인)
도자기를 제작하는데 있어 흙(태토)과 물과 불은 기본적인 3대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흙이 근간이라면 물은 수비를 하는데 있어서, 불은 소성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불가결의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소성을 위해 불을 지피려면 나무가 필요하다. 나무 중에서도 소나무가 필요한데 그 것은 다른 나무들보다 오래 타는데다 비교적 화력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모량이 많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주변의 소나무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른 지역에서 화목을 가져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가마터 자체를 옮기는 것이 유리했는지 1676년 승정원일기에 관요는 대략 10년을 주기로 이설하였다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하면 '승정원일기'의 기록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중부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공사 중 훼손의 염려가 있는 가마터가 급하게 발굴이 되었는데 번천리 5호와 선동리 2,3호가 바로 그 것이다. 한국도로공사의 의뢰를 받아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이 발굴을 한 이 가마터의 보고서는 1986년 10월15일 '광주조선백자요지 발굴조사보고'라는 명칭으로 발간이 되었다. 이는 광복 후 우리 손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가마터 발굴조사보고서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자못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중에서도 주목 되는 것은 선동리 2호라고 할 수 있다. 가마는 이미 파괴되어 확인할 수 없었지만 교란된 상태에서나마 많은 도편을 수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편 중에서도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굽 안에 음각으로 새겨진 10년치 간지명이다. 이로 인해 <승정원일기>의 관요 10년 주기 이설 기록이 현장에서 사실로 확인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내게도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는 도편 중에 10년치 간지명이 있다. 그 것도 다른 곳이 아닌 선동리 2호의 간지명들이다. 소개를 하면 경진(庚辰,1640) 신사(辛巳,1641) 임오(壬午,1642) 계미(癸未,1643) 갑신(甲申,1644) 을유(乙酉,1645) 병술(丙戌,1646) 정해(丁亥,1647) 무자(戊子,1648) 기축(己丑,1649)이다. 그러니까 1640년부터 1649년 까지 10년치 간지명이 되는 것이다. 간지명 중에는 원경(原庚)명도 보이는데 이는 시작된 해인 경신년이라는 뜻으로 보이며 간지명에 좌우(左右)가 들어간 것도 있지만 정확한 의미는 알 수가 없다.
문제는 '승정원일기'가 기록하고 선동리 2호에서 간지명을 통해 확인하고 있는 관요 10년 주기 이설이 17세기 가마터에만 국한된 것이냐 하는 점이다. 아니면 그 이전 시기에도 적용될 수가 있는 것이냐 하는 문제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15,16세기 가마터 분포 현황을 보면 꼭 화목만을 찾아 옮겨 다녔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시기가 늦은 관음리보다 시기가 빠른 우산리 가마터들이 접근성이 불편했을 골짜기 더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단순히 화목만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분명히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발굴보고서를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선동리 2호는 중부고속도로가 건설되기 이전에 이미 심하게 파괴가 되었던 곳이다. 따라서 발굴 이전에는 논을 만들면서 나온 도편들이 흩어져 있어 눈길을 끌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중부고속도로를 지나면서 유심히 살펴보아도 아무런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 가마터가 있던 곳에 작은 밭뙈기가 있어 시절 따라 농작물의 변화가 더러 보일 뿐 가마터가 있었다는 흔적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를 않은 것이다. 선동리 2호에서는 간지명 뿐이 아니라 조선청자와 철화도 보이고 원 안에 제(祭)자를 넣은 백자청화도 보고가 되고 있다. 17세기 백자청화라면 귀하기가 짝이 없는 것인데 내게는 제자 없이 원만 남은 선동리 도편이 있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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