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6 (목)

[국악신문] 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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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84)

이윤선의 남도인문학>인당수와 임수도

  • 특집부
  • 등록 2023.03.06 07:30
  • 조회수 9,191

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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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이 빠져 죽은 인당수

 

"한 곳을 당도하니 이는 곧 인당수라. 대천바다 한 가운데 바람 불어 물결 쳐, 안개 뒤섞여 젖어진 날, 갈 길은 천리만리나 남고, 사면이 검어 어둑 정그러져 천지적막한데, 까치뉘 떠들어와 뱃전머리 탕탕, 물결은 와그르르 출렁 출렁 도사공 영좌(領坐)이하 황황급급(遑遑急急)하여 고사지제를 차릴제, 섬 쌀로 밥 짓고 온 소 잡고 동우술 오색탕수 삼색실과를 방위차려 갈라 궤고 산돗 잡아 큰칼 꽂아 기는 듯이 바쳐놓고 도사공 거동 봐라 의관을 정제하고 북채를 양손에 쥐고 북을 두리둥 두리둥 둥 둥~(하략)"

 

판소리 심청가 중,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이다. 엇모리장단으로 긴박하게 노래하다가 느린 자진모리로 한자성어 투의 긴 사설을 읊어낸다. 급기야 휘모리장단으로 물에 빠지는데, 북소리를 뒤로 하며 마지막 사설이 이어진다. "심청이 거동 봐라 샛별 같은 눈을 감고 치맛자락 무릅쓰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뱃전으로 우루루루 만경창파 갈매기 격으로 떴다 물에가 풍~" 심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을 포함하여 인당수 빠지는 대목이 심청가 중 가장 극적인 장면이랄 수 있다. 

 

큰 소 잡고 술항아리 가득 맑은 술 담그고 오방색으로 구비된 탕을 끓여내며 삼색의 과일들을 차려놓은 풍경을 자세하게 그려낸다. 산 돼지를 잡아 큰 칼을 꼽아놓으니 돼지가 기어가는 듯하다. 무속의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도사공(都沙工)은 우두머리 선장이다. 제사 복식을 갖추고 북채를 들었다. 큰 북을 울리며 지내는 제사였던 모양이다. 제사 풍경도 그러하려니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도대체 인당수가 어딜까 하는 것이다. 전제가 되는 것은 심청전이라는 고소설, 심청가라는 판소리다. 백령도를 비롯하여 전남 곡성, 충남 예산, 전북 부안 등 심청의 고장이라고 주장하는 곳들이 많다. 단적으로 말하면 설화를 이야기나 소설로 보지 않고 역사로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해프닝들이다. 

 

이야기의 지극한 은유를 애써 외면하는 발상이라고나 할까. 소설 심청전은 연대나 작가 미상일뿐더러 주요 줄거리는 거타지 설화와 작제건 설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관련하여 장성의 홍길동과 곡성의 심청을 주제로 한 졸고 '설화기반 축제 캐릭터의 스토리텔링과 노스탤지어 담론(남도민속연구, 2007)'이 있으니 참고 가능하다. 소설이나 판소리에서 묘사하는 인당수(印塘水)의 본래적 의미는 깊은 물이다.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 배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고 알려진 장소다. 전국 여러 지역의 제방 축조 설화에서도 유사한 구성들을 볼 수 있다. 인신공희(人身供犧)로 주로 처녀가 언급되는 것은 생식(生殖)과 관련된 고대로부터의 관념에서 비롯된다.

 

거타지(居陀知)와 작제건(作帝建)의 항해

 

삼국유사 권2 기이편의 내용이다. 진성여왕 막내아들 아찬 양패(良貝)가 당나라 사신으로 가게 되었던 모양이다. 함께 가는 무리 중 거타지라는 인물이 궁사로 뽑혀 따라가게 되었다. 도중에 곡도(鵠島)라는 섬 인근에서 풍랑을 만난다. 양패가 사람을 시켜 점을 치게 했다. "섬 안에 신령한 연못이 있다. 여기에 제사를 지내야 풍랑이 멎는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 못에 제물을 차리고 제사를 지냈더니 못물이 높이 치솟는 게 아닌가. 그날 밤 양패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났다. "활을 잘 쏘는 사람 하나만 이 섬에 놔두고 가면 순풍을 얻을 것이다"고 했다. 섬에 남겨둘 자를 고르기 위해 제비를 뽑기로 했다. 각자의 이름을 적은 50쪽의 목간(木簡, 종이가 나오기 전 글을 쓰던 나무막대기)을 물에 넣었더니 거타지라고 쓴 목간만 물에 잠겼다. 

 

모두 당나라로 떠나고 거타지만 섬에 홀로 남았다. 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홀연히 나와 말했다. "나는 서해의 신(西海若)이다. 매일 해 뜰 때마다 하늘에서 한 중이 내려와 진언(眞言)을 외며 못을 세 바퀴 돌기만 하면 가족들이 모두 물 위에 뜨게 되고 그 때마다 그 중이 자손들의 간을 하나씩 빼어먹었다. 지금은 아내와 딸만 남게 되었다. 내일 아침에 그 중이 나타나면 활로 쏴 달라." 이튿날 아침 중이 간을 빼먹으려고 내려왔다. 거타지가 활을 쏘았더니 여우가 떨어져 죽었다. 노인이 보답으로 자기 딸을 아내로 삼아 달라 했다. 딸을 꽃으로 변하게 하여 거타지 품속에 넣어주었다. 또한 두 마리 용에게 명하여 앞서간 사신 일행들에게 데려다주었다. 신라의 배를 두 마리 용이 받들고 있는 것을 보고 당나라에서 성대히 대접을 하였다. 고국 신라에 돌아와 행복하게 잘 살았다.

 

고려 태조 왕건의 할아버지라는 작제건 설화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항해 도중 풍랑이 사나워져 점을 쳤다. 고려 사람이 배에서 내려야 한다는 점괘가 나온다. 작제건이 섬에 내렸다. 홀연히 서해용왕이 나타나 부처의 모습을 한 자를 퇴치해달라고 요청한다. 작제건이 활로 쏘았는데 부처는 늙은 여우였다. 이후 용왕의 딸과 결혼하여 잘 살았다. 꽃으로 변하여 거타지 가슴 속에 들어가는 처녀나 작제건의 아내가 되는 용녀 모두 심청이 인신공희물이 되었다가 연꽃 속에서 환생하여 황후가 되는 스토리와 닮아있다. 괴물 퇴치의 맥락도 있지만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것은 서해의 물길이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과 오고갔을 물길 중 가장 파도가 험한 장소 혹은 풍랑과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심청전으로 확대된 이 이야기의 모티프를 어느 한 곳을 특정하여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장강(양쯔강) 이북 서해(황해)의 어딘가 물길을 사례 삼고 있음은 틀림없어 보인다. 유사한 이야기들이 설화로만 남겨져 있는 것은 아니다. 화랑세기나 고려도경을 통해서도 맥락을 추적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