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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81)

흥보가의 도승(道僧)에서 무속의례 제석(帝釋)까지

편집부
기사입력 2023.02.2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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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삼불제석 무신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중의 뒤를 따라 간다. 이 모롱 지내고 저 고개를 넘어서서 고봉정상 두루봉에 저 중이 가다가 접붓 서며 이 명당을 알으시오. 천하지제일강산 악양루 같은 명당이니 이 명당에다 님좌병향오문으로 대강 성주를 하였으면 명년 팔월 십오일에는 억십만금 장자가 되고 삼대 진사 오대 급제 병감사가 날 명당이니 그리 알고 명심하오." 

    박봉술 바디 흥보가 중 집터잡이 대목이다. 신재효가 정리한 사설로 재구성된 예들은 더 풍부하다. 

     

    "감계룡 간좌곤향 탐낭득 거문파 반월형 일자안에 문필봉 창고산이 좌우에 높았으니~" 


    풍수적으로 재물과 벼슬을 잉태하는 명당터를 한자어 투성이로 장황하게 읊어나간다. 심청가의 화주승이 심봉사를 물에서 살려내고 종국에는 눈을 뜨는 대목의 복선으로 기능하는 캐릭터임에 반해 흥보가의 중은 도승으로 출현하여 명당을 점지해주는 캐릭터로 기능한다. 훨씬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이라고 할까. 하지만 무속의례에 나타나는 중은 명당터를 비롯하여 대궐 같은 집을 지어주고 벼슬도 하게 해주며 온갖 이승의 복락을 만들어주는 존재로 등장한다. 이 중이 제석천(帝釋天)이고 이 신격이 등장하는 거리가 제석굿이다.


    이들을 종합해보면 제석신앙이 불교적인 신으로 출발하여 민속신앙으로 수용되고 가신신앙과 접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흥보가의 도승이나 심청가의 화주승을 제석에 비유하는 이유는 이런 확장된 제석의 서사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석이 도도하고 고고한 위치에 좌정한 것만은 아니다. 저자거리에 나오게 되면 구겨지고 비틀어져 희화화된다. 불교가 배척되었던 시대 탓도 있겠지만 판소리와 무속의례, 가신신앙까지 두루 포획하고 있는 불교적 제석이 내동댕이쳐진다. 당금애기를 매개 삼는 민요 중타령을 통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금애기가 동쪽으로 오신 까닭

     

    아들 아홉에 딸이 없던 한 가정에서 딸 낳기를 기도하던 중 얻은 딸 이름을 '당금애기'라 짓는다. 당금애기가 자라 소녀가 되었을 때 마침 부모와 오라비 등이 출타하게 되어 집에 혼자 남게 된다. 그때 서역에서 불도를 닦은 스님이 당금애기를 찾아와 시주를 청하였는데, 이러저러한 에피소드를 거쳐 소녀가 잉태를 하게 된다. 서역에서 오신 스님이라니. 혹시 달마가 동쪽으로 오신 까닭과 관계된 것일까? 영화로도 만들어져 유명해진 조주스님의 문답 중 하나가 연상된다.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동쪽 당나라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뜰 앞의 잣나무'라고 대답한다. 선문선답이니 이해하기 힘들다. 어쨌든 집에 돌아온 가족들은 당금애기가 스님의 씨를 잉태한 사실을 알고 지함(地陷, 큰 구덩이) 속에 가두거나 쫓아낸다. 열달 후 당금애기는 세 쌍둥이를 출산하게 된다. 이후 아비 없는 자식으로 놀림 받던 삼형제는 일곱 살이 되자 당금애기와 함께 서천국으로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서천국은 표면상으로는 인도라는 나라를 말하지만 서쪽하늘이라는 불교적 혹은 토착신앙적 세계관으로 풀이해야 한다. 어떤 절에 다다르니 한 스님이 친자 확인 시험을 한다. 종이옷 입고 청수에서 헤엄치기, 모래성 쌓고 넘나들기, 짚북과 짚닭 울리기 등이 그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손가락을 베어 피를 내고 스님과 세 아들의 피가 합쳐지는 것을 통해 친자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후 아들들에게 신(神)의 직분을 부여하여 제석신이 되었고 스님과 당금애기는 승천하였다. 오늘날 전국에 분포하는 무속의례 제석굿의 전거가 여기에 있다. 다시 주목할 것은 당금애기의 서사를 신화코드로 읽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맏딸애기가 중의 씨를 받아 잉태했다는 가십(gossip)거리가 아니라, 당금애기가 낳은 삼중제석이 성주오가리, 성주단지 등 조상신의 자격으로 좌정하게 된 행간까지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환인(桓因)으로 인식하기도 했던 제석천보다 그 컨텍스트를 장식하는 당금애기 서사에 귀를 기울일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욕망의 배후에는 드라마로 영화로 그리고 각종 SNS에 범람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당금애기 이야기 또한 수많은 의례와 문학과 예술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있다. 이야기는 늘 당대의 욕망 혹은 소망을 숨겨둔다. 우리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은밀한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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