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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창녕과 송현동, 5~6세기 창녕 ‘출(出)’자형 세움장식 금동관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63호분 출토 유물
“경금, 천으로 만든 고깔 모양 모자 추정”
비화가야 지배층의 무덤인 사적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금동관이 창녕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문화재보존과학센터와 함께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63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공개하고, 관련 논문을 문화재보존과학회지에 게재했다.
63호분에서 지난 2020년 10월에 출토된 금동관은 높이 약 22㎝, 둘레 길이가 약 47㎝ 이상으로, 순수 구리 표면에 금·은 합금을 수은아말감 기법으로 도금하여 제작한 유물이다. ‘출(出)’자형 세움장식의 도금은 앞과 뒤 모두에서 확인되지만 몸체(관테)는 바깥 면에서만 확인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도금 부위를 최소화하고 시각적인 효과는 최대화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금동관의 관테에 연결되어 있는 세움장식은 머리가 둥근 못으로 고정되어 있다. 관테 아래에는 길게 늘어뜨린 장식이 있는데 이것에 부착된 반구형 장식과 원통형 장식은 직물로 추정되는 것을 꼬아서 연결하였음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금동관 안쪽 면의 견직물은 고대에 사용했던 경금(經錦)으로, 색실을 사용한 이중조직의 두께감과 광택으로 금관의 장식성을 강조하였다. 이는 금동관 안에 받쳐 쓰는 천으로 만든 고깔모양[‘변(弁)’자형]모자로 추정된다.
특히 해당 금동관은 사슴뿔 모양 장식이 없는 세 줄기의 ‘출(出)’자형 세움장식을 채택하고 있어 5~6세기에 경주 이외의 지역에서 출토된 금동관의 특성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도금층의 두께가 얇고, 표면 색상이 균일하지 않은 점을 통해 창녕 내 수공업 집단이 금동관을 자체 제작했을 가능성의 근거를 확보하였다.
이번 분석 결과는 당시 신라와 창녕지역 비화가야 사이의 복잡하고 다양한 정치적 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향후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금동관의 보존처리를 마친 후에 3차원(3D) 디지털 복원과 같은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여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성과를 다양한 방식으로 국민과 공유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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