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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소설 '아름아리'] 제8화 시노부 준뻬이 ‘아라란アララ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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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소설 '아름아리'] 제8화 시노부 준뻬이 ‘아라란アララン’

  • 특집부
  • 등록 2023.01.3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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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목


1984년 들어 삼목은 한국잡지협회 협회보 기자로 요란스럽게 살 때다. 언론 분야와 국학분야 학술세미나 참가, 전국 헌 책방 순례와 아리랑 기행, 매달 20일 전후에는 협회보 편집, 출간을 위해 을지로 인쇄골목에서 날밤을 새우기 일수였다. 헌 책방 순례 목적은 잡지 창간호와 발행인과 편집인 관련 자료, 그리고 아리랑 자료 수집을 위해서다. 이때 일간지에 발굴 자료를 공개하고 협회보에 한국잡지인 열전을 연재하기도 했다.


[국악신문] 시노부 준뻬이信夫淳平(1871~1962)가 동경당서점에서 1901년 발행한 ‘한반도.

 

2월 초, 동경한국연구원東京韓國硏究院에서 전화를 받았다. 최서면 원장의 배려로 일본 진보초 고서점에 삼목이 찾는 책이 입수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온 것이다. 지난 연말 최서면 원장과의 통화에서 코리아 레포지토리에 헐버트가 쓴 아리랑에 관한 논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한 후 3개월만에 연락을 받은 것이다. 일본 중년 여성의 정중한 톤의 서툰 우리말이 수화기로 넘어왔다.


"최원장님께서 전하랍니다. 진보초 키타자와 서점에서 연락이 왔는데, 연갑선생이 최원장님께 구입을 부탁한 코리아 레포지토리 1896년과 972년분이 입수되었다고 합니다. 직접 구입를 하신다면 연락처를 드리겠고, 아니면 저에게 연락을 주시면 대행해 드리겠습니다. 가격은 2년치 합본임으로 고가입니다.”


너무나 기뻤다. 당장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하지는 않고 바로 연락을 하겠다고만 했다. 수화기를 놓자마자 지난 해 말 최원장과의 통화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1896년 헐버트씨가 코리아 레포지토리에 아리랑에 관한 글을 발표했는데, 구입 기회를 놓쳐서 연구원이 갖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자세히는 기억이 없네만. 분명한 것은 아리랑 악보하고 가사 둬 페이지가 있었네. 구입하겠다면 내가 아는 서점에 주문을 해놓겠네. 18962월호 아니면 3월호일 걸세


그동안 최 원장이 방송과 신문에 발표한 발굴 자료를 보면 주로 독도 영유권 문제, 안중근 의사 기록과 유묵 존제, 독립운동 관련 사료이지만, 국내에서는 구할 수 없는 특수 자료를 일본은 물론 미국 등에서 구입 한 장서가 2만여 권으로 알려졌다. 이런 분이 허튼 소식을 전할 리가 없으니 이것은 분명 획기적인 아리랑 문헌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부터 이 번 전화를 받기 까지 삼목은 틈만 나며 이런 생각으로 혼자 미소를 띠기 일 수였다.


"악보가 있다? 분명 아리랑 악보가 포함된 최고最古의 문헌기록이다. 악보를 재현한다면 획기적이다. 구입하면 어디에 발표할까? 조선일보? KBS?”


이런 기분에서 삼목은 코리아 레포지토리에 대해 기독교 자료에 밝은 청계천 경안서점 김시한 장로와 나까마 김연창 선생과 단국대 공연자료연구소 김종욱선생 등에게 방을 냈다. 나오면 무조건 고가로 사겠다. 그리고 한 턱 내겠다고. 이런 들뜬 기분에 책값이 얼마인지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특별해도 잡지 한 권 값 정도야 못 감당하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번 전화에서 한 권이 아니라 2년치 24개월 합본이며, 가격이 1년 원급이었다.


전화를 받고 3일간을 고민했다. 결국 구입을 포기해야 했다. 너무 큰 가격 때문이었다. 국내 서점이라면 해당 호수만 사자고 조르거나 외상을 하거나, 계약금을 내고 기다려 달라고 사정을 하겠지만, 일본의 서점이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동경 최 원장 비서실에 솔직하게 전달했다.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커 구입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삼목은 아쉬움 속에서 코리아 레포지토리를 놓지 않았다. 그래서 국립도서관은 물론 대학도서관 장서목록과 장서가로 널리 알려진 중대 김근수 교수와 공주대 하동호 교수의 목록 까지 확인하였다. 그러던 여름 장마통에 인사동 고서점 통문관을 들렸다. 몇 번 인터뷰로 뵌 바 있는 이겸로 선생께 최원장과 통화한 이야기를 전하며 그렇게 비싼 것인 줄 몰랐다는 푸념을 했다. 그러자 선생은 자신이 10여년전 취급한 바가 있는데 어디로 납품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고 한 뒤 빨간 색 하드커버의 책 한 권을 빼 주었다. 참고할 만 하다며 건네주었다. ‘외국어 표기 간행물 목록이란 책이다.


19850826.jpg
[국악신문] 스포츠신문, 1985.08.26.

 


퇴근 후 펼쳐 본 이 책에는 ‘KOREA REPOSITORY’의 존재는 물론 총 목차 18962월호에 ‘KOREAN VOCAL MUSIC’이란 아티클이 있음을 확인했다. 최 원장이 2월호 아니면 3월호라고 했으니, 이 글에 아리랑이 언급되었을 것이란 확신이 든 것이다. 그리고 큰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 그것은 1800년대 외국인이 쓴 한국관련 기사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과 아리랑 같은 노래를 언급한 것은 오히려 우리의 기록 보다는 외국인의 기록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후 삼목은 헐버트는 물론 알렌, 비숖, 같은 선교사들의 자료와 1800년대 말 한국에 왔던 일본 지식인들의 자료까지 검토하기 시작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첫 수확도 거두었다. 단국대 김원모교 수실에서 확인한 시노부 준뻬이信夫淳平(1871~1962)가 동경당서점에서 1901년 발행한 한반도韓半島를 보게 되었다. 국제법 전공자로 1876년 한국에 와 인천이사청仁川理事廳 이사관으로 근무한 시절을 회고한 책으로, 여기에서 "한성사범학교 교사 헐버트씨의 손으로 직접 이루어진 아리랑 악보~”라고 언급한 사실을 찾아냈다.


일부 원문을 인용하고 번역을 하면 이렇다. 아리랑의 음조音調망국적亡國的이라고 하여 비관적으로 이해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곧 한국관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夜半月んで南山, 倭將臺逍遙するあらんか, 無邪氣なる少年意味なくアララン哀歌, 東西相聞ゆる擊杵相和, 歷史興廢人事悲哀とをるものに無量感慨せしむ, 詞藻せさるまでれをひて一句湧くをむるはさるなり.


繫絃已歇仙風生.
殘雲搖曳木覔城.
天暗夜深人將睡.
何處沈沈砧杵聲.
韓家婦女何黽勉.
獨伴孤燈坐三更.
君不聞悠悠掠耳阿蘭曲.
悲調自具無限情.

 

이겸로(李謙魯, 1909~2006).jpg
[국악신문] 시노부 준뻬이信夫淳平(1871~1962)

 

혹시라도 한밤중에 달빛을 밟으며 남산 기슭 왜장대 주변을 산책하는 일이 있다면 그 곳에서 순진무구한 소년들이 따라 부르는 아리랑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다듬이 소리와 잘 어우러져, 역사의 흥폐(興廢)와 세상살이의 비애를 이야기하는 듯하여 무망함을 느끼게 된다. 문학적인 시문(사조詞藻)으로 표현하는 것은 잘 못하지만, 이것을 듣고 있노라면 가슴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는 시 한 수 쓰는 것을 자제하기는 어렵다.


거문고 타는 소리 이미 그쳤고 시원한 바람 부네
하늘에 떠있는 조각구름 목멱성 남산 위를 오가네
날 저물고 밤 깊어져 사람들 잠자리에 들 시각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
한국의 부녀자들은 그 얼마나 부지런한가?
홀로 외로운 등불 앞에 삼경이 되네
그대는 들어보지 못했는가 멀리서 들려오는 아리랑을
구슬픈 곡조 속에 저절로 무한한 정 담겨있네


아리랑관도 일본적이라는 문제가 있지만 이를 확인한 것은 큰 소득이다. 곁들어 아라란(アララン)’ 또는 아란곡阿蘭曲이란 표기 확인도 큰 소득이었다. 일본인의 기록 키워드를 확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1984년 여름으로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삼목은 외국인의 아리랑 기록을 찾는 일로 뜨겁게 살았다. 그 사이 결혼도 했고, 한국잡지협회를 나와 한국출판정보센타라는 기획사를 꾸려 본격적인 사료 수집과 컨텐츠화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 덕에 1901년 시노부 준뻬이의 한반도기록에 이어 1908N. 알렌의 'Things Koreans' 소재 아리랑 기록 등을 찾아냈다. 이는 삼목의 아리랑 인식을 전환시키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다음 세 가지를 인식한 것이다.


하나, 아리 또는 아라리와 다르게 아리랑은 민요가 아니고 민중의 노래이다.

, 그 기점은 1800년대 중반이다.

, 그래서 아리랑은 민요와 다르게 문헌으로 전승하고 확산되었다.


이런 인식을 확신으로 갖게 된 것은 삼목이 문헌 소재 아리랑을 집요하게 매달린 이유이다. 그 첫 결과는 구본희 부국장(2014년 작고)의 권유로 826일자 스포츠조선에 "아리랑 樂譜 最古가 바뀐다란 제하의 기사를 내게 되었다.


"1901년 발간 한반도에 수록 발견

정설로 알려진 총독부자료보다 10년 앞서 아리랑으로 표기, 4분의 4박자로


*추록-시노부 준뻬이信夫淳平한반도韓半島1990년 경인문화사에서 영인본이 나왔다. 삼목이 원본을 구입한 것은 19972월 일본 신보초 한 고서점에서 구입했다. 시노부 준뻬이는 경제학을 전공한 자로 한말韓末 우리나라에서 일본 총영사總領事3년 간 근무했다. 서양인들의 저술보다 구체적이다. 발문(跋文)을 쓴 유명인사가 6명이나 된다. 이 책이 국내에서도 읽혔음은 190910월호 대한흥학회보6지역상소역地歷上小譯’(MH)에서 인용된 사실에서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