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6 (목)
지난 17일, 민족음악원 주최로 ‘풍물명인전’이라는 공연이 있었다. 이광수 명인의 고희연(古稀宴)의 형태로 이광수 명인이 65년 외길인생에 대한 독백과 제자들의 헌정형식으로 이루어져 매우 풍성하고 세련되게 진행되었다.
프로그램은 문굿과 길놀이, 비나리, 삼도설장고, 삼도사물놀이, 사물판굿과 개인놀이, 퉁소와 사자춤 등 앉은반뿐만 아니라 풍물의 다양한 종목과 김묘선 (사)우봉이매방춤보존회 이사장의 승무•이선영, 공윤주, 김도연 경기민요 이수자들의 우정 출연으로 2시간이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프로그램 전환 시 이광수 명인이 직접 등장하셔서 들려주는 사물놀이 창시와 관련된 독백은 재담처럼 재미있고 구수했으며, 몰래 카메라처럼 공연 중간에 제자들이 등장해서 이광수 명인의 칠순을 축하하고 큰 절을 올리는 모습은 큰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그 정도로 마무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전 국민이 알다시피 이광수 명인은 사물놀이의 창시자이다. 이광수 명인의 기억으로는 고 심우성 선생께서 ‘사물놀이’라는 명칭을 작명해 주신 후 ‘사물놀이’라는 브랜드명으로 한 첫 공연은 1980년 9월 29일 '공간 사랑'에서 한 공연이 ‘사물놀이’의 시작이 되는 셈이다. 이광수 명인의 의견대로라면 올해는 사물놀이 탄생 42주년 되는 해이다.
80년대 사물놀이팀은 영국의 비틀즈에 비견될 때가 있었다. 전통음악의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실력 있는 4인의 청년들이 세계를 무대로 낯선 한국전통음악을 세계 곳곳에서 연주했다. 80년대 기획자로 세계로 공연을 다니다 보면 사물놀이팀을 만나는 것이 낯설지 않았고, 함께 다닌 사물놀이팀들도 자부심이 대단했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 사물놀이 지부가 생겼고,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사물놀이를 배우러 우리나라에 속속 입국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BTS급이었던 것 같다.
한류(韓流)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에 그들은 전통문화로 세계를 제패했고, 그로부터 40여 년이 흐른 오늘날 한국대중문화는 정말로 세계적인 문화가 되었고, 이는 태초에 한국인의 리듬 DNA를 전 세계에 점진적으로 이식한 사물놀이팀의 공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류의 첨병이자 80년대 사회문화 현상의 중심이었던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위정자들은 한국문화확산 정책의 방법론으로서 그들을 이용했고,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마케팅 구호를 만들어냈으며, 일부는 권력에 부역해서 엘리트 음악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물놀이는 꽹과리•징•장구•북이 한팀이 될 때만 가능한 음악이다. 그러나 팀을 떠나서 개인적 치부나 영달을 욕망하는 순간 팀은 깨지고 사물놀이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어쩌면 사물놀이팀을 구성할 때 ‘욕망’이라는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일부는 개인적 욕망을 달성한 동안, 일부는 가치를 지키려 평생 개인적 욕망을 거세한 채 고향에서 민중예술가로 살아가고 있다. 누가 사물놀이의 가치를 지킨 사람인가?
비틀즈처럼 빛나고, 비틀즈처럼 청춘을 불사른 청년들도 이제 칠순이 되었다.
이광수 명인에게는 65년 간 남사당패 후손으로 살아 온 개인적인 자부심과 축하연도, 제자들의 존경과 감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사물놀이는 기존 남사당패들이 마당에서 진을 짜고 길놀이를 중시하던 풍물놀이라는 퍼포먼스 중심의 집단놀이를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전문 연주자 중심으로 개편했으며, 비전문적인 민간 고사패에서 신라시대부터 궁중연희에 참여했던 전문연희 재인단처럼 남사당패의 음악분야를 전문 연희음악인들로 예술적 지위를 격상시켰다.
더구나 엄혹한 유신과 군사정권 시절 미신타파를 이유로 전통뿐만 아니라 압제와 통제가 일상화된 권위주의문화를 젊은 예인들이 사물을 두드리며 청년들을 깨우고 민족문화의 가치와 우수성을 세계로 다니면서 증명했다. 그들이 지킨 건 ‘정신’이고, 지금까지 잊지 않고 지켜온 이는 이광수 명인이다.
사물놀이 창시자라는 개인적인 수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문화로 세계로 진출해서 우리 시대 글로벌 문화사회적 현상을 만들어 냈고, 사장되어 가던 전통문화의 위기를 재창조를 통해 전통의 보존과 계승•재창작에 대한 불꽃을 살려 생명력을 불어넣은 원사물놀이팀과 이광수 명인에 대해 대우와 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문화사적 공로에 비해 문화예술계의 인정과 평가가 너무 박하다는 것에 실망하고 마음 아프다.
살아있는 거인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은 영광이고 감동이지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그 축복과 존경을 문화부와 문화재청에서 공적•정책적으로 구현해야 한다.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도 아쉽고 허전했다. 국민을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하고 공적 삶을 사셨던 우리 시대 거인들이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고 영광과 보람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대우와 공적을 표현해야 문화예술계도 지속발전할 수 있다.
사물놀이팀 창설 45년이 되는 정주년에는 제대로 된 학술대회라도 준비하고, 전국사물놀이축제라도 열어서 명인께 헌정하고 싶다. 혹시 아는가? 전국사물놀이축제에서 한국문화로 세계를 제패한 원사물놀이팀과 BTS 합동공연이라도 하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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