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나는 40여 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면서 전 공직생활에 특히 음양으로 영향을 준 생사를 넘나들며 수행했던 4년의 군 생활과 역시 무에서 유를 창조한 4년의 '사할린한국교육원장' 체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2021년 2월19일부터 ROTC4기 중앙회 카페에 향노봉의 북쪽사면인 1031골짜기에서의 4년 군 생활을 14회에 걸쳐 연재했다. 첫회에 AP(잠복초소)에 근무하면서 잠복근무 나갔을 떄의 힘들었던 이야기를 썼는데 부관병과로 사단사령부 인사처에서 근무했던 동기가 말하기를 "나의 경우 전방 전투사단에 배속되어 근무를 하긴 했어도 영외 거주라 출퇴근했고 주말이면 통근 버스로 서울 외출은 당연한 것으로 알고 근무했는데, 한 소위가 근무한 이야기를 읽으니 나는 너무 편하게 근무하다가 제대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의 댓글을 보면서 참 내가 힘들게 군 생활을 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바보같이 너무 힘들게 군 생활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그러나 얼마 전 공부하는 수필교실에서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면서 힘들었던 그런 과거가 있었기에 쉽지 않았던 사회생활이나 그 어려운 외국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여유로운 인생의 후반부를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오히려 힘들었던 4년의 군 생활과 역시 4년의 외국생활이 고맙게 생각되었다.
1943년생인 나는 태어나고 바로 해방을 맞았고 곧 이어 6.25동란이라는 대혼란을 겪었다. 이어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갑작스러운 아버님의 죽음을 맞았고 거기에다 고부갈등으로 어머니까지 가출하면서 우리 5남매의 운명은 할머니의 몫이 되었다. 우리 5남매의 삶을 위하여 정상적인 논농사에 비해 몇 배가 힘든 13마지기의 천수답 농사와 1,000여 평 밭농사 일도 할머니의 몫이었다. 무슨 말로 할머니의 고생을 설명할 수 있을까.
사회 전체가 6.25가 가져온 엄청난 비극 속에서 헤어나려 허덕이고 있는 그 당시의 시골은 발전과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암울한 상태였다. 그저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를 반복하는, 시작도 끝도 없는 매일 매일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런 혼란스럽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나는 성장했고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빼곰히 내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시골생활이 싫어 온다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가출하여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고모 집에 몸을 의탁했다.
새로운 꿈을 꾸고 가꾸고 싶어 박차고 나왔지만 모두가 살기 바쁘다 보니 누구하나 관심 가져 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쩌면 얼마동안 우왕좌왕하다 시골로 내려가기를 바랐는지도 모르는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하든 길을 찾아야했다. 어떻게 해서 나온 길인데 돌아갈 수는 없었다. 혼자 길을 찾고 찾다보니 희망의 끈이 보였고 한번 붙잡은 끈을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 쳤다. 그 끈을 쫓아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을 갔다. 망망대해의 쪽배 같은 고학 생활 속에서도 희망은 하루하루를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었다. 꿈과 희망의 끈은 대학졸업과 ROTC장교 임관이라는 결실을 안겨 주었다.
계속되는 적의 습격으로 생과 사가 교차하는 어려움 속에서 4년의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친 것도 힘들었던 농촌에서의 경험과 고학하면서 체질화된 盡人事待天命(진인사대천명)의 정신자세가 바탕이 되었던 것 같다.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하면서 잠시 모교의 조교로 근무하다 중등교사 공채고시에 합격하여 교사가 되어 학교를 전전했다. 그리고 교사 생활 20년 만에 많은 교사가 소망하는 장학사가 되었다. 교육청에 근무하면서 해외 근무의 길이 있다는 걸 알았고 사할린교육원장 공모에 지원해 합격하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날 준비룰 했다. 바쁘긴 해도 비교적 안락한 장학사의 생활을 과감히 접고 떠나는 나를 친구들과 지인들은 말리기도 했다. 당시 러시아가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변환하는 격변기여서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떄 였다.
정치 사회 문화가 180도 다른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뀌는 전환기라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 악조건의 러시아를 일부러 찾아 들어간다는 것을 친구들은 이해 못했고 무모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악조건도 과거 펜팔할 때부터 가졌던 외국에 대한 호기심을 막지 못했다. 이런 저런 난제를 극복하고 사할린에 도착하여 성공적으로 교육원을 개원하고 운영 할 수 있었던 것도 어려웠던 4년의 군대생활이 밑받침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특히 당시 러시아의 열악한 상황 때문에 교육부에서 3번씩이나 전국에 사할린한국교육원장 모집 공모를 했음에도 응모자가 없었던 상황에서, 감히 응모할 수 있었던 용기도 또한 어릴 때 시골에서의 고생, 고학, 그리고 생과 사를 넘나드는 AP(잠복초소), CP(검문초소), GP(비무장지대 경계초소)장 생활이 포함된 힘들었던 4년의 군 생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조건이 열악한 러시아 땅 사할린에서 교육원을 개원해서 본 괘도에 올려놓기까지, 나는 사할린과 한국을 오가면서 온갖 힘들고 궂은 일을 기지와 지혜로움으로 잘 해결하고 뒷받침해 주어 교육원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데 도움을 준 집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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