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내 책을 말한다] 포스트 휴먼과 SF (최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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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을 말한다] 포스트 휴먼과 SF (최병구)

포스트 휴먼은 어떤 존재인가?
‘포스트 휴먼’ 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자본과 기술, 그리고 인간에 대한 재성찰

  • 특집부
  • 등록 2022.11.02 03:36
  • 조회수 28,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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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최병구, 포스트 휴먼과 SF, 나남출판, 2021. (사진=나남출판)

 

20201,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가 지구를 덮쳤다. 그리고 이 책의 머리말을 쓰고 있는 202012, 전 세계적인 3차 대유행이 한참 진행 중이지만, 백신 승인 소식이 들려오면서 코로나 종식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힘든 일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터널의 출구가 보인다는 희망이 교차하는 시기이다.


지난 1년 동안 우리의 일상은 큰 변화를 겪어야만 했다. 우리의 과거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글도 여럿 제출되었다. 그 요지는 대략 자본주의가 파괴한 환경과 시장경제가 뒤바꾼 인간의 몸과 마음에 대한 인식과 비판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 근대 문명사회가 자연환경을 지배의 대상으로 여기며 발전한 것과 성장 중심의 시장경제가 인간을 자본에 종속시킨 것에 대한 경고는 최근까지도 수없이 이루어졌다. 불과 6년 전에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우리는 자본주의 국가 체제에서 시민의식을 상실한 자기를 반성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 생활을 이유로 무관심해졌고, 세월호 사건은 곧 잊혔다. 그러니까 그간 수없이 이루어진 경고가 코로나 19를 겪으며 나의 신체에 직접적인 제약이 가해지자 새삼 다시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코로나 이후, 우리는 진짜 변할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지만, 과거를 돌이켜볼 때 긍정적인 답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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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저자:최병구(문학 박사), 경상대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대표 논문 "1970년대 호모이코노미쿠스의 탄생과 과학기술의 문제”(2019), "근대 미디어와 사회주의 문화정치”(2017)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어쩌면 문제는 반성과 성찰이 아니라 쉽게 바뀌지 못하는 우리의 몸과 마음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에서 왜 우리는 쉽게 바뀌지 않을까?’로 말이다. 우리는 지금-현재 사회의 문화가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에 공감한다. 다만 그 잘못되었다는 인식과 행동 사이에 괴리가 생기고 더 나아가서는 잘못되었다는 인식조차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습성이 문제이다.


이 글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올바름과 행동 사이의 괴리, 혹은 올바름을 잊어버리는 이유를 찾고자 한 결과이다. 2011년 경향신문 특집기사에서 처음 생겨난 신조어가 삼포세대이다. 취업과 내 집 마련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의 탄생을 포착한 것이다. 그리고 2021년을 눈앞에 둔 현재, 대한민국의 가장 뜨거운 화두가 바로 이다. 폭등하는 아파트 가격을 목격하며 누군가는 투자자 주체로 재빠르게 탈바꿈했고, 또 누군가는 하염없이 올라가는 아파트 가격을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문화가 20-30대에 자리 잡은 지는 오래되었다.


무엇인가 이상하지 않은가? 지난 10년 동안 출산율을 높이고 아파트 가격을 잡기 위해 정부가 쏟아 부은 돈과 노력이 엄청난데, 왜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된 것일까? 두 가지 가정이 가능하다. 하나는 정부의 무능이다. 지난 10년 진보 정권과 보수 정권이 번갈아 나라를 통치했으니, 무능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공통된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엘리트만 모인 정부의 관료가 무능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두 번째는 정부의 정책이 대중들에게 반영되지 않을 정도로 우리들의 ()의식이 고정되었을 가능성이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우리는 자본을 쫓는 삶이 부끄럽거나 부도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올바른 선택이다.


이 두 가지는 상당 부분 겹쳐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벌어진 의사 파업 사태가 보여준 것처럼 우리 사회의 엘리트는 철저하게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에 의해 키워진 존재다. 2019년 초 방영되어 큰 인기를 모은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의대 입시가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처럼 명문대의대가 합쳐지면 타인이 범접하기 어려운 거대한 성을 이룬다. 그리고 그 성 안에 들어가지 못한 보통의 사람들은 그 너머를 욕망하면서 일상을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진실을 만들어낸다. 자본 증식을 위해 인간을 도구화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기준이 진부한 것이 되었다는 말이다. ‘승자독식의 논리를 깊게 체득한 사람들의 세상에서 승리한 엘리트들의 인식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이런 습성은 지난 20년간 정치, 경제, 교육, 사회문화 등 다양한 영역이 복잡하게 얽혀져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이로부터의 예외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까?


우리가 10년 전부터 문제를 인지했음에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이유는 개인의 내면과 사회제도가 상호작용을 한 결과이다. 그간 우리는 문제를 개인 혹은 사회, 어느 한쪽으로 수렴시켰다. 개인의 문제로 수렴되면 더 많은 노력을 하라는 명제로 귀결되고, 사회의 문제로 수렴되면 불평등한 사회제도의 개선을 촉구한다. 하지만 이러한 이분법적 현실 인식으로는 지금까지의 역사가 증명하듯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내면과 사회제도가 접촉하는 방식이다. 시스템은 오래기간 다양한 주체 사이의 힘의 논리가 작용하여 구축된다. 가령 현재 대학이라는 제도는 해방 이후 역사적 변곡점마다 이루어진 정부 정책과 학벌에 대한 대중의 욕망이 중첩된 결과이다. 1990년대까지 가능했던 흙수저의 서울대 입학이 2020년 현재 불가능한 이유는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들의 교육 격차를 만들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의 교육은 경제와 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중첩되어 있다. 실물경제와 자산가치의 불균형이 날로 심화되는 코로나 국면에서 세계 경제가 확인시켜주듯, 오늘날의 빈부격차는 그간의 시스템이 낳은 결과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상황이 이러니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또 개인의 욕망을 먹고 자란 시스템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제도의 변화란 요원한 일이다.


이 지점에서 지난 30여 년의 시간동안 우리 사회의 과학기술이 급격히 발전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07년 아이폰이 처음 등장하고 불과 10여년 만에 스마트 폰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그 변화의 핵심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삶의 다양한 요소들의 경계가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경계가 점차 사라져가는 모습을 주위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부모의 재력이 자식의 미래를 결정하고 노동소득으로 아파트 한 채 사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치적 입장도 사회문화도 이러한 경제에 근거한 삶으로부터 결정된다. 최근 10년 간 이루어진 이러한 변화가 온전히 과학기술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과학기술이 큰 원인이라고는 말할 수 있겠다. 스마트 폰의 등장이 서학개미’ ‘동학개미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자본에 대한 욕망을 부채질하는 최근의 상황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이렇게 볼 때 개인의 내면과 제도는 테크놀로지를 매개로 만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테크놀로지, 젠더, 노동을 열쇠말로 삼고, SF소설을 통과하며 이러한 상황을 진단하고 가능한 미래를 가늠하고자 했다. 이매뉴얼 윌러스턴이 역사적 자본주의라고 명명한 근대 자본주의 체제를 구성한 항목이 과학과 인종/젠더 차별주의이다. 근대과학이 진보라는 이름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인종과 젠더에 따른 서열화가 구축되었다. 오로지 자본 증식을 위한 것이었지만, 그러한 방향은 과학의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맹목적으로 따르는 이념이기도 하다. 포스트 휴먼에 대한 논의가 학계에서 유행한지는 제법 되었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변화해야할까라는 질문은 절박하다. 코로나 정국에서 근대의 시스템 전반의 위기가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포스트 휴먼, 다시 말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인간은 어떤 공동체를 꿈꿔야할까? 나의 삶이 아니라 우리의 자식 세대를 위해 반드시 묻고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이 물음에 미약하게나마 답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