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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을 말한다] '역사에 별빛처럼 빛난 자들'(강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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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을 말한다] '역사에 별빛처럼 빛난 자들'(강부원)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띠며 밝게 빛난 자들
전복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존재들
부와 명예보다 ‘자유’와 ‘해방’ 선택
새로운 인간형.

  • 특집부
  • 등록 2022.10.31 20:00
  • 조회수 1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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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강부원, 역사에 별빛처럼 빛난 자들, 믹스커피, (사진=믹스커피).2022

 

누구나 빛나고 윤기 있는 삶을 살길 원한다. 남루하고 보잘것없는 인생을 원하는 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스스로 밝은 빛을 내는 발광체는 드물다. 대부분 눈에 띄지 않거나 살며시 타오르다가 이내 꺼져버린 성냥개비 같은 신세다.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보통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의 경우가 대개 그렇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은 모두 밝게 빛나 보이게 마련이다. 범인은 상상도 하지 못할 크고 높은 업적을 남기거나 초월적 능력을 발휘한 한 시대의 영웅들이 연상된다.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대표할 인물을 손꼽을 때 불세출의 지도자나 역경을 이겨내고 승리한 정치가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껏 그래왔고 그렇게 배워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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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저자 강부원 (1980년생, 문학박사, 성균관대 국문학과 강사)

 

그래서인지 역사책엔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남긴 인물들의 이야기만 주로 회자된다. 그 외 다른 분야의 인물들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성장주의와 발전 이데올로기가 지배했던 한국 사회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조금만 고개를 돌려 살펴보면, 경쟁에 매몰된 짓무른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고 황금만능주의로 혼탁했던 시절을 맑게 정화했던 빛나는 사람들이 보인다. 스스로의 삶을 가꾸고 정돈하는 건 물론 남을 위한 희생과 헌신도 마다하지 않은 존재들. 척박한 영토를 개척하며 수백 번 넘어져도 스스로 다시 일어선 자들. ‘대문자 역사에 이름을 새길 정도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건 아니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사람들 말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물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한낮의 태양처럼 강렬하고 뜨겁진 않지만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처럼 은은하게 반짝이는 사람들. 지난 한 세기 동안 자신만의 고유한 색을 띠며 밝게 빛나던 존재들을 찾다 보니 아무래도 그렇게 모아졌다. 이들이 일평생 온몸으로 써내려간 자기 서사를 역사란 이름으로 다시 정리해 옮겨 적었을 따름이다.


한편 이들 대부분은 사회, 문화, 예술, 교육 방면에서 활동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당대엔 괴짜혹은 별종으로 불렸지만, 지금 돌아봤을 때 이들이야말로 미래의 시간을 앞서 살아간 전복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들에겐 혼자만 잘살기보다 타인과 함께 두루 잘사는 방법을 고민하느라 애쓴 흔적도 깊이 새겨져 있다.


이들은 출세와 성공을 쫒는 입신양명의 가치관으론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삶의 궤적을 보여주기도 한다. 부와 명예보다 자유해방을 선택했고, 불의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공의로운 이상을 추구하는 길을 걸었다. 이들 모두는 진취적인 사상유연한 생각을 품은 새로운 인간형이었다.


20세기로 접어들며 신문과 방송 같은 미디어가 세상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면서 대중문화의 힘은 더욱 세지고 강해졌다. 곰곰 돌이켜 보건대 20세기는 과연 문화의 시대라 부를 만하다. 공교롭게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거의 모두 대중문화의 현장에서 활약하거나, 영화나 드라마 같은 재현물을 통해 널리 알려진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여기에 소개된 사람 전부를 20세기 한국사의 주역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최소한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의 생각을 크게 변화시키고 감정을 격발한 존재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힘겨운 지난 세기를 살아내며 이들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거나, 이들의 활동 덕분에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도 했다.


이들이 끼친 유무형의 영향력은 세상의 많은 걸 바꿨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어려운 이웃을 위해 먼저 발 벗고 나서거나 사회와 문화 예술 분야에서 찬란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이들을 역사에 별빛처럼 빛난 자들이라고 부르려 한다.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지금껏 누려온 성숙한 제도와 풍요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주역이며, 일상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가장 앞선 곳에서 적극적으로 노력한 존재들이다.


이들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발광체였기 때문이라기보다, 우리 사회의 어둠과 두려움을 몰아내고자 눈에 불을 켜고 세상 한복판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리라. 또한 이들은 어떤 작은 빛이라도 더 밝게 반사하며 온 세상에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전하는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이 책에 나오는 스물여섯 명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참기 힘든 일을 잘 견뎌내며, 어려운 이웃에게 손 내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들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20세기 한국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길잡이가 마련되길 바란다. 그러면 비로소 성장과 개발의 압력에 치여 살던 소시민들이 느꼈던 마음의 소외와 영혼의 갈증을 빈틈없이 위로해준 이들이 누구였는지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출간한 책 '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은 격동하는 20세기 한국사의 현장에서 세상과 맞서 싸운 자들의 일대기를 다뤘다. 이번 책 '역사에 별빛처럼 빛난 자들'은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흐름과 분위기를 만들어낸 반짝이는 자들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우뚝 세운 이야기다. 지난 번 책이 한국사에 숨겨진 인물들의 남모를 행적에 주목했다면, 이번 책은 누구나 얼핏 알고 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다시보기에 해당할 터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두 책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내용은 다르지만 동일한 구성과 일관된 형식을 취해 ‘20세기 한국사 인물 시리즈로서 연속성을 확보하려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역사에 별빛처럼 빛난 자들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의 후편이기도 한 셈이다.


하지만 이 책이 단순히 1권에 이어 나온 2권으로서의 소박한 지위로만 그치길 바라지 않는다. 이 책은 1권에서 서술한 인물들과 분별되는 명확한 기준과 새로운 시각을 반영해 선정한 매력적인 인물들을 다루고 있는 독자적인 별권이기도 하다.


두 책 모두 2020년부터 2021년까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일상에 영감을 더하는 지식 채널 아홉시에 매주 연재했던 글을 분류하고 새로 고쳐 묶은 것이다.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유행하던 팬데믹 상황에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자료를 좀 더 세심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온라인 매체에 연재하며 애독자를 얻고 그 결과 출판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사람들과 멀어지다 보니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법을 새로 배우게 된 셈이다. 즉 이 책은 코로나 유행이 가져온 역설과도 같은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나 마찬가지다.


첫 책을 냈을 때,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던 가족과 친구들의 얼굴이 생생히 기억난다. 격려해준 선생님들과 축하를 전해 준 동료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은 매한가지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날카로운 서평과 정성스러운 후기를 남겨준 이름 모를 독자들에게도 어떻게 감사를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소중한 독자들을 생각하면 좀 더 성실하게 좋은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고에 한결같이 관심과 애정을 보내준 김형욱 편집자께 특별히 고마운 마음이 크다. 성긴 원고가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질 수 있게 된 건 온전히 그의 공로 덕분이다. 김형욱 편집자는 출간을 준비하는 나에게 든든한 조력자이지만, 나 역시 그가 매체에 연재하는 글의 열렬한 독자이기도 하다. 그도 나와 같이 매주 글을 쓰고 연재를 하는 작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묘한 동지애가 생기기도 했다. 책을 준비하는 동안 명민하고 따뜻한 그의 글을 보고 깊이 배울 수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라기보다 은은하게 자신을 드러낸 밤하늘의 별빛이다. 그러니 이 책이 유명한 인물들의 위인전이라기보다 다정하고 친근한 이웃의 삶을 기록한 수기로 읽혔으면 좋겠다. 역사란 결국 나를 포함한 우리의 소소한 삶을 세밀하게 기록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20세기 한국의 사회, 문화, 예술, 교육 방면에서 활동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약자들과 함께했으며 시련을 견뎌낸 인물 26명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