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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여수MBC 다큐를 리뷰해 본다. 2001년 당시 62세였던 홍순례의 구술이다. "시집와서 들으니까 아가씨(백순례)가 모략에 의해서 죽었는데, 이쁘고 똑똑해서 (군인들이) 죽이기가 아깝다고 했다더라. 끌려가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또 한 할머니가 덧붙인다. "잡혀갈 때 노래가 나왔을 거시. 죽은 무덤가서 노래가 나왔다고." 여순사건으로 오빠를 잃었다는 구연자 홍순례씨는 이 노래를 다 부르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고 만다.
백순례의 조카 백정규의 구술은 노래보다 더 애절하다. "백부님이 끌려가서 죽게 되었는데, 고모님(백순례)이 말하기를, 그래도 집안을 이을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할 거 아니냐. 나까지는 죽어도 좋으니까 막내오빠만은 살려달라 애원을 해가지고, 사실은 우리가(백정규 등) 여기 있습니다." 진압군에 의해 끌려가 죽을 막내오빠를 살려내고 대신 잡혀가 죽은 백순례에 대한 정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조카가 보관하고 있는 (백순례의) 큰오빠 결혼 기념사진에 찍힌 가족들의 시선이 아리다. 그저 무심히 무엇인가를 응시하고 있는 시선들이 맞닿아 있는 곳은 어디일까? 가운데 어머니를 중심으로, 일본유학을 마치고 징용 나가 사망한 큰오빠, 여순사건 당시 진압군에 의해 처형당한 둘째 오빠, 6.25때 행방불명된 언니, 자기 대신 죽은 동생에 대한 트라우마와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을 시달린 막내오빠 등이다.
사진의 맨 왼쪽이 백순례인데, 노리개처럼 이쁘다 하여 아예 백부전으로 불렸다. 부전은 색 헝겊을 둥근 모양이나 병 모양으로 만들어서 두 쪽을 맞대고 수를 놓기도 하고 다른 헝겊으로 알록달록하게 대기도 하여 끈을 매 차고 다니던 여자 아이들의 노리개를 말한다. 조카며느리 박씨의 진술에 의하면 1987년 사망한 어머니 고씨가 치매를 앓을 때 증손녀를 '부전아, 부전아!'하고 부르시곤 했다더라.
치매에 들어서야 막내딸의 환영을 소환한 어머니의 무의식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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