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5 (일)

[Pick리뷰] ‘뛰는 꾼, 밟는 꾼, 노는 꾼’, “온통 울리고 뒤흔들다”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Pick리뷰] ‘뛰는 꾼, 밟는 꾼, 노는 꾼’, “온통 울리고 뒤흔들다”

서울남산국악당 ‘2022 젊은국악 단장’ 무대
세 춤꾼 김성현, 이정동, 정승하의 무대
양반춤 취발이춤 지전춤 문둥북춤

 

_F6A8483.jpg
[국악신문] <뛰는 꾼, 밟는 꾼, 노는 꾼>은 이정동, 김성현, 정승하 연희꾼 3명이 모여 개인의 개성을 제일 잘 보여줄 수 있는 연희의 춤을 보여주었다. 연희꾼 김성현  (사진=서울남산국악당) 

 

인터넷창에 연희를 검색하면 연예인 연희, 혹은 연희동 등이 나온다. 우리 전통 연희에 관한 내용을 찾고 싶었지만 단번에 관련 내용을 찾기는 어려웠다. 결국 전통연희라고 검색한 후에야,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공연 예술. 우리나라에는 탈놀이, 꼭두각시놀음, 판소리, 남사당놀이 따위가 있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연희를 이야기했을 때 과연 우리 전통예술의 한 갈래를 떠올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서울남산국악당은 ‘2022 젊은국악 단장무대를 1019()부터 1029() 2주간 수요일과 토요일 저녁 730, 4회에 걸쳐 연희, 무용, 음악의 장르로 선보이고 있다. 연희, 무용, 음악계의 저명한 평론가들이 선정한 ‘2022 젊은 국악 단장은 각 장르에서 조명 받고 있는 젊은 아티스트들로 구성돼 관객들에게 국악의 다양한 장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마련했다. 그 중 첫 번째 순서로 진행된 뛰는 꾼, 밟는 꾼, 노는 꾼의 연희 공연을 관람하였다.


이 공연은 음악평론가 윤중강의 추천으로 선정된 김성현, 이정동, 정승하가 함께 각각의 무대를 선보였다. 세 연희자들은 유연한 춤사위, 활발하고 강렬한 도무, 산 사람을 위한 기원무 등 개인의 개성을 제일 잘 보여줄 수 있는 연희의 춤을 추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여 춤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여 공연 전부터 기대되었다.


_AH_3189.jpg
[국악신문] <뛰는 꾼, 밟는 꾼, 노는 꾼>은 이정동, 김성현, 정승하 연희꾼 3명이 모여 개인의 개성을 제일 잘 보여줄 수 있는 연희의 춤을 보여주었다. 연희꾼 이정동 (사진=서울남산국악당) 

 

마지막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희자들의 개인 무대로 꾸며졌다. 첫 번째 무대는 대금 독주 반주로 시작된 김성현의 양반춤. ‘을 밟는 동작이 안정적이며 태가 잡힌 춤사위로 춤의 멋을 낼 줄 아는 연희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김성현은 능청거리면서도 거만한 양반의 모습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개인적으로 시나위를 좋아하기에 남도시나위 반주에 맞추어 꼭 탈춤을 추고 싶었다는 그의 양반춤은, 어딘가 철 없어보이고 웃음이 나는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묘미를 맛깔나게 살려냈다.


이정동의 취발이춤은 각진 역동성이 두드러졌다. 격하고 강렬한 서도풍류의 반주에 맞추어 잔뜩 취한 취발이를 표현한 그의 과한 몸짓과 격함은 시원시원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듯한 열망이 보이는 듯 하여 더더욱 눈을 뗄 수 없었다.


세 번째 무대로는 묘한 중성성이 존재하는 정승하의 지전춤. 무당들이 돈을 가지고 추는 지전춤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2호인 진도 씻김굿에 속하며 무당들이 지전(종이돈)을 가지고 죽은 이의 영혼이 이승에서 풀지 못한 원한을 풀고 즐겁고 편안한 세계로 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굿이다. 지독하게 슬픈 진계면의 아쟁 소리와 구음으로 시작된, 어지럽고 혼을 쏙 빼놓는 듯한 시나위가 연주되는 동안, 흰 옷을 입은 정승하의 어딘가 적적해 보이며 슬픔이 묻어나는 춤사위가 무대를 휘감았다. 처음에는 느리고 부드럽던 몸짓은 갈수록 격렬해지고 역동적으로 발전해 나갔고, 그 격정 안에는 정승하의 우아함이 우직하게 존재했다. 망자를 위로하고 기원하는 진도씻김굿의 예술적 가치가 드러나는 무대였다.


세 연희꾼의 전통 춤 무대가 끝나고, 윤중강 평론가는 이들이 앞으로 춤에 이야기를 가지고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예전부터 연희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연희의 가능성이 큼을 인지했었다며, 특히 연희 중에서도 탈춤, 그 자체로 갖고 있는 독특한 이야기와 이미지가 우리 전통이 특수하게 지닌 예술적 매체이기에 그 재료를 잘 활용하여야 한다고 전했다.


"지금의 탈춤은 이미지와 캐릭터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짙고, 지나치게 흥과 신명에만 의지하는 것 같다. 우리 전통 춤에는 이야기가 필요하고, 집단과 미담의 예술이 더 다양한 이야기로 시도되어야 한다. 이번 무대의 세 연희자들의 앞으로 행보를 기대한다.”


_AH_3319.jpg
[국악신문] <뛰는 꾼, 밟는 꾼, 노는 꾼>은 이정동, 김성현, 정승하 연희꾼 3명이 모여 개인의 개성을 제일 잘 보여줄 수 있는 연희의 춤을 보여주었다. 연희꾼 정승하 (사진=서울남산국악당) 

 

인터넷에 연희를 검색했을 때 연희동과 연예인 말고는 나오지 않았던 것과, ‘탈춤을 검색했을 때 그저 사전적 의미의 탈춤에 관한 정보만 늘어져있는 것은 확실히 아쉬운 현실이다. 연희는, 그리고 탈춤은 충분히 미래지향적이고 발전해 나갈 가능성이 있는 예술이다. 조금 더 서사와 이야기를 부여하고, 현대적인 시선에서 탈춤이 갖고 있는 멋과 본질, 해학과 풍자 등의 가치를 부여한다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펼쳐진 김성현의 문둥북춤, 관객들의 마음을 온통 울리고 뒤흔들어놓았다. 전통 문둥이과장은 대사가 없는 무언극으로 진행된다. 문둥북춤은 문둥이의 비애를 통해 양반을 풍자하는 춤으로, 문둥이가 소고를 들고 나와 춤을 추면서 신세 한탄을 한다. 문둥이는 본래 양반으로서, 조상들의 죄가 많았기 때문에 자신이 불치의 병에 걸렸다고 한탄하는 대사를 통해 양반을 풍자하고 있다. 김성현은 어딘가 두렵고 힘겨워하는 문둥이 연기를 펼치는데, 악기 반주 하나 없이 적막이 가득한 작은 무대에서 몸짓 하나만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다리를 질질 끌고,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답답해하며 눈물을 흘리고, 화를 내기도 했다. 몸짓과 춤사위만으로 그 모든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는 것이 우리 탈춤의 굉장한 힘이 아닐까. 이 무대에서의 아쟁과 태평소 연주도 훌륭했다.


저음과 고음의 상반되는 음역대를 함께 연주한 두 악기는, 각 악기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슬픔과 우는 소리를 표현해냈고, 그 음악은 더더욱 문둥이를 연기한 김성현의 몸짓에 집중하게끔 만들었다. 대사가 없지만 모든 예술적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이 무대는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구음과 장구로 시작한 정승하의 바라춤, 꽹과리 두대의 강렬한 금속 사운드와 높고 강한 음역대의 태평소 반주와 대비되는 부드러운 몸짓의 춤으로 묘하고 모순적인 감성을 자아냈다. 현란하고 화려한 그의 춤은 바라를 들고 악사들과 함께 장단을 맞추어 연주하며 출 때 더 그 묘미가 더 크게 드러났는데, 장단을 완벽하게 타고 노는 듯한 아름답고 격렬한 춤사위가 인상적이었다.


가장 현대적으로 해석한 듯한 이정동의 벽사진경의식무는 마치 비보이(B-BOY)의 춤을 보는 듯 했다. 그의 춤은 현대적이면서 전통적인 이 시대의 새로운 탈춤을 보여주었다. 이 무대는 음악 또한 귀를 사로잡았는데, 태평소 두 대와 아쟁의 강한 음색으로 편곡하여 들려준 종묘제례악은 이정동의 힘있는 춤사위와 잘 어우러졌다. 부드럽고 능청거리는 탈춤이 아닌, 각지고 힘 있는 몸짓으로 작은 무대를 풍성하게 휘감은 벽사진경의식무는 이정동의 힘 있는 특색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던 무대였다.

 

_AH_3647.jpg
[국악신문] <뛰는 꾼, 밟는 꾼, 노는 꾼>은 이정동, 김성현, 정승하 연희꾼 3명이 모여 개인의 개성을 제일 잘 보여줄 수 있는 연희의 춤을 보여주었다. (사진=서울남산국악당) .2022.10.27.

 

마지막으로 세 연희꾼들이 함께 나와 무도풀이무대를 선보였다. 아쟁의 피치카토(현악기에서 줄을 손가락으로 튕기는 주법)와 장구 연주로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각자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연기하며 친근한 무대를 보여주었다. 의상이나 탈에 구애받지 않고 단순한 사람의 몸짓 하나만으로 감정을 표현해내며 우리 연희의 미학을 잘 드러낸 그들의 열정과 패기가 가득한 무대는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었다.

젊은 연희꾼들의 ‘2022 단장-뛰는 꾼, 밟는 꾼, 노는 꾼은 우리 전통 연희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좋은 무대였다. 하지만 조금 더 창의적인 요소가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또한 든다.

 

윤중강 평론가가 탈춤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듯이, 그들의 춤에 조금 더 다양한 서사와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관객의 마음을 울리는 어떠한 주제나 이야기가 확실히 드러난다기 보다는, 각자의 개성을 살린 춤사위와 감정 표현에 더 치중한 느낌이 들어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젊은 그들의 도전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3인의 연희꾼들이, 본인의 생각과 철학, 가치관 등을 탈춤에 더 덧입히려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 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우리 탈춤과 연희가 이 시대에 가장 큰 울림과 감동을 주는 현대의 예술로 발전해나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