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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되고 싶은 꽃 이야기
이규진(편고재 주인)
'구름이 되고 싶은 꽃'은 초정 김상옥 시인의 작품이다. 빼곡히 들어찬 격자무늬 바탕에 먹선으로 백자항아리를 그리고 여기에 청화로 꽃을 그려 넣은 그림이다. 구름이 되고 싶은 꽃이라는 제목이 말해 주듯이 꽃은 구름과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두리뭉실하게 그린 것이 특징이다. 살아생전 유별나게 백자를 좋아했던 초정 시인의 그림 맛이 제대로 살아 있는 득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과 관련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초정 시인은 1974년 미도파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에는 <구름이 되고 싶은 꽃>도 출품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하루는 초정 시인이 전시장에 나와 쉬고 있는데 소설가 박완서 여사가 다가와서는 불쑥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학교 이름이 인쇄된 월급봉투였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초정 시인에게 박여사가 옆에 서 있는 앳된 숙녀를 가리키며 ‘딸입니다 얘가 선생님 그림을 갖고 싶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딸은 대학 졸업과 함께 중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는데 첫 월급을 탓다는 것이었다. 그 귀한 돈으로 내 그림을 사겠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따라서 초정 시인은 그 날의 그 감격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장장 20여년의 형설의 공을 쌓아 얻은 그 첫 수확으로 이 문외한의 그림을 사다니, 내 생애에 전무하고 또 후무할 감격이었다. 이 어찌 천만금엔들 견줄 수 있는 감격이랴. 보라! 저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현대의 화웅 피카소도 당대 귀족과 부호들의 품삯은 받았을망정 이토록 귀한 화료는 받아보지 못했을 것이 아닌가.
이 내용은 초정 시인의 '구름과 박쥐무늬 항아리'라는 수필에 자세히 나와 있다. 이제는 글을 쓴 초정 시인이나 소설가 박여사도 이 세상 분들이 아니다. 그러나 '구름이 되고 싶은 꽃'만은 박여사 따님의 방 어딘가에 걸려 있어 그 옛날의 추억을 상기시키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어찌 아름다운 인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렇다고 하면 나는 사회에 나와 첫 월급으로 무엇을 했던가. 아름다운 인연은커녕 아무런 기억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의미 있게 사용치 못했을 것이라는 자괴감으로 인해 남는 것은 서글픈 마음뿐이다.
차제에 초정 시인의 구름이 되고 싶은 꽃은 아니지만 꽃 한 점을 소개해 볼까 한다. 분청상감모란문발편이 그 것이다. 사방으로 몸체와 입술 부분 등이 달아나 가운데만 오롯이 남은 도편이다. 원을 돌린 선 밖으로는 백상감의 연판문 흔적이 보이고 중앙에는 큼직하게 흑백상감으로 변형된 모란문을 장식하고 있다. 굽은 죽절굽에 태토빚음받침이며 전체적인 유색은 담청색에 미세한 빙렬들이 보인다. 주목되는 것은 아무래도 중앙의 변형된 모란문이다. 그런데 편의상 모란문이라고 하는 것이지 기존에 알려진 문양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꽃은 중앙에 씨방이 있고 큼직한 네 장의 잎 사이로는 작은 잎들이 보여 겹꽃임을 알 수 있다. 초정 시인의 꽃이 구름을 지향했다면 이 분청상감모란문발편은 무슨 꽃을 염두에 두었던 것일까. 줄기도 잎도 없이 오직 꽃잎만 큼직하게 강렬한 인상으로 어필하고 있는 이 분청상감모란문발편을 보고 있노라면 내 첫 월급에 대한 쓸쓸한 추억처럼 마음은 석연치가 않아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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