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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밭 한가운데 농막이 있고 밭두둑에는 오이가 열렸네
껍질 벗기고 절여서 조상님께 바치네
자손들이 오래오래 살았으니 하늘의 보살핌을 받았음이라"
오이를 거론할 때마다 인용하는 시경(詩經)의 소아(小雅) 구절이다. 시경이 기원전 600년경에 쓰여 졌으니 이미 3천여 년 전에도 오이를 재배했다는 얘기 아닌가? 더군다나 껍질 벗긴 오이를 절여서 제사 음식으로 사용했으니 그 기원을 아무리 올려 잡아도 과하지 않을 듯하다.
음식연구가들은 여기서의 오이절임을 김치류의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삼아왔다. 제나라 위왕의 고사로부터 파생된 '오이 밭에서는 신발끈을 매지 말며 오얏밭에서는 갓끈을 매지 말라'는 속담을 통해서도 오이의 광범위한 재배 혹은 역사를 알 수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의 옛 기록에도 호과(胡瓜)에 대한 정보들이 많다.
김치 전문가인 박채린의 연구에는, 서민음식으로 '오잇국'이, 궁중음식으로 '과제탕'이 등장한다. 과제탕은 각 재료를 길게 썰어 기름에 지지다가 장국을 붓고 양념을 첨가해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1600년대까지는 절인 오이김치를 이용하다가 1700년대 이후에는 생오이를 활용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오늘날도 시큼한 식초를 넣은 오이냉국이 여름철 음식으로 대세인 것을 보면 오이야말로 고대로부터 이어온 원형질의 채소 아닐까싶다. 더군다나 설화 등 광범위한 장르에서 남근의 은유 혹은 잉태와 다산의 상징으로 기능해왔으니 그 맥락을 허투루 살필 수 있겠나.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는 탓인지 소금에 절인 오이에 식초 듬뿍 넣고, 파, 설탕, 고춧가루 가미한 오이냉국을 마시고 싶은 마음, 어쩌면 가난한 내 뜨락을 오이정자(瓜亭) 삼아 상고하는 오래된 기다림의 정조일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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