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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을 말한다] 양승희,김죽파류 가야금산조 악보집을 출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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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을 말한다] 양승희,김죽파류 가야금산조 악보집을 출간하며

국가무형문화유산 제23호 '가야금 연주가' 양승희 인간문화재

  • 편집부
  • 등록 2022.07.11 23:11
  • 조회수 1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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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도 그리운 나의 스승, 김죽파 선생님을 회고하다.

 

19702월 서울대학 음대 국악과 2학년이 되던 해 나는 죽파 선생님을 찾아뵙게 되었다. 종로구 사직동 아담한 한옥집에 계신 죽파 선생님은 작은 체구에도 위풍이 당당하셨고 위엄이 있으신 대장부같이 잘생긴 분이셨다.


죽파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시자 눈을 크게 뜨시고 가까이 오라고 하시며 여러 가지 질문을 하시고 가야금을 타보라 하시고는 함께한 교수께 "우리 가문을 지켜나갈 수 있는 소중한 아이인 것 같다고 말씀하시며 죽파 선생님은 친할아버지 김창조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와 어린 시절 공부하시던 때를 이야기해 주셨다.


가야금 산조를 만드신 김창조(1856-1919, 전남 영암), 그 분이 내 친할아버지이시며 나는 할아버지의 가야금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할아버지로부터 가야금을 배웠다"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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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인간문화재대전 공연(김죽파선생님과 양승희 공연모습

 

죽파 선생님께서는 어린 시절 9세까지 친할아버지 김창조 선생에게 풍류, 산조, 병창을 배우시고 할아버지 타계후 김창조 선생의 수제자 모정마을 한성기 선생에게 산조, 풍류, 병창을 사사하고, 한갑득 선생에게 거문고 사사, 한일섭 선생에게 아쟁을 사사, 심상건 선생에게 심상건 산조를 사사, 그 외에 많은 명인들로부터 춤, 판소리, 병창 등을 익히셨다.


위대한 스승 죽파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나의 예술의 길은 일생일대 전환점이 되었으며 20년간 죽파 선생님 댁에서 동거동락하며 풍류, 산조, 병창, 아쟁을 전수받게 되었다. 죽파 선생님께서는 우리의 만남은 하늘이 정해준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하시고 득음의 경지에 도달해야하는 사명감에 내가 힘겨워할 때마다 죽파 선생님은 "혼이 줄에 떨어져야 내 마음도 움직이고 남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다고 하셨고, 세상 사람들과의 일로 마음 아파할 때는 "멀리 높이 나는 새는 명중 당하지 않는다라며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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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양승희, 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보유자,

 

몸이 약했던 나를 위해 아침, 저녁을 손수 지어주셨고, 결혼후 아이를 출산한 뒤에는 선생님 댁으로 퇴원케 하시고 잦을 넣어 양즙을 짜서 산후 조리를 직접 해주셨다. 죽파 선생님께서는 20년간 온갖 정성으로 산조 가락가락 가르쳐 주시고 나의 예술과 삶 전체를 이끌어 주셨다.


1980년 죽파 선생님께서는 양승희 가야금 독주회를 위해 기존 죽파 산조 가락에 진양조(변청, 본청 20가락), 중모리(우조 22가락), 중중모리(4가락), 자진모리(4가락)휘모리(변청, 본청 36가락), 무장단 뒷가락, 짧은 다스름 등 새 가락을 짜 넣어 55분의 현재 전해지는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를 완성하시고 "너에게 주는 내 선물이다라고 흡족해하셨다. 이중 휘모리 가락들(변청, 본청)은 친할아버지 김창조 선생에게서 8세 때 배운 가락들로서 죽파 내면에 존재해있다가 61년 만에 표출된 가락들이다.


1984년 죽파 선생님께서는 나를 데리고 국악계 원로 선생님 댁을 찾아가 양승희가 가문을 이어나가게 해주실 것을 부탁드렸고 1988년 나는 준인간문화재로 발령받게 되었다. 그 때 다른 파트에 선정된 분들은 감격으로 흥분하여 기뻐할 때 죽파 선생님께서는 "양선생은 어려서 아무것도, 좋은지도 모른다. 심성이 여려서 가문을 지켜나갈 수 있을 찌 걱정된다.” 고 하시며 웃으셨다.


1988년 내가 KBS 명인전에 뽑혀 국악원 우면당에서 죽파류 가야금산조 전바탕을 타게 되었을 때 나의 공연이 끝나자 국창 김소희 선생님께서 "이제 양선생이 되었네. 형님 마음 놓고 돌아가셔도 되시겠어요라고 하셨고, 죽파 선생님께서는 나를 안고 감격으로 눈시울을 적시며 "내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됐다. 됐어라고 하시었고 그 이듬해 타계하셨다.


그러나 정작 나는 그때 "되었다라는 뜻을 알지 못했음으로 스승님 타계하신 후 모든 대학강의를 접고 15년간을 수험생처럼 시간을 짜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윤윤석 선생에게 아쟁, 철금, 김소희 선생님, 김수연 선생님에게 판소리, 정예진 선생에게 병창, 서한우 선생에게 설장구와 춤 등을 공부하였다. 어느날 운보 김기창 화백 그림(물 속의 금붕어)을 보면서 가야금을 타던 중 금붕어가 느린박자, 빠른 박자에 맞추어 꼬리를 흔드는 찰나적인 환상을 경험, 활연 관통하듯 스승님이 원하시던 소리가 내 손을 통해 가야금 가락에 묻어나는 순간을 체득하게 되었다이러한 내용을 TV와 인터뷰하였는데, 한 예술가의 득음의 경지라는 타이틀로 "나의 예술의 길이 그해 대학 연합고사의 영어 듣기 평가 시험으로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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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과 19893월 죽파 선생님과 함께 일본 공연을 갔을 때 일본 문부성 장관은 직접 저녁 식사 초대로 환대하셨고, 장관께서는 나에게 "어린 나이에 벌써 인간문화재가 되었냐고 반가이 맞아주셨고, 죽파 선생님의 공연을 들은 어느 교포 청중은 "선생님의 손이 내 조국입니다. 지금까지 살아 조국의 소리를 듣게 된 것에 대해 살아있음이 감사하며 큰 영광입니다라고 하였다.

일본 CNN TV는 연일 한국 인간문화재 죽파 선생님의 일본 현지의 근황과 공연을 TV를 통해 방영하였다.


1985년 일본 공연후 죽파 선생님께서는,"유일무이한 나에 제자 승희야, 나에 계승자가 되려면 일심으로 가시밧길, 을 넘고 물을 건너 좌절함이 없이 지극한 긍지와 인내로 음악에 광명이 올 때까지 분투 노력에 굴함이 없기를 일심으로 빌 뿐이다. 사랑하는 나에 승희 허수이 생각지 않겠지. 죽파는 성공을 빌면서日本 공연을 함께 맞치고, 19859. 29. 竹坡” 라고 부채에 적어 주시면서 나를 유일무이한 후계자로 인정하시고, "김창조 내 친할아버지가 산조를 만드셨으니 밝혀주고 가문을 지켜달라고 유언을 남기시고, 1989910일 타계하셨다.


나는 다시 이 세상에서 만날 수 없는, 천추의 그리움을 남기신 스승님의 喪主가 되어 국악장으로 눈물 속에 스승님을 하늘에 보내드렸다.


나는 죽파 선생님께서 생전에 늘 말씀하시던 산조 음악 가문의 뿌리인 김창조 산조는 어떻게 짜여졌으며 그 산조의 원형이 후세의 산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를 늘 생각하던 중 스승님 타계 1년 후 19907월 중국 연변예술대학 초청 양승희 독주회를 갖게 되었고 연변예술대학 교장 김진(1927-2007) 교수가 특별 출연해 주심으로 귀한 만남이 되었다.


김진교수는 1955년 평양음악대학 민족음악부에 5년간 유학하여 김창조 선생의 직계 제자인 안기옥(1894-1974, 평양음악대학 교수, 인민배우) 선생으로부터 김창조 가야금산조와 안기옥 가야금산조를 배웠고, 그때 김진 자신이 채보한 악보와 테이프 및 50년간 북한에서 저술된 "조선예술”, "조선음악”, "문화유산350여 권의 책자, 문헌과 북한의 전통예술분야 1,000여편의 논문 등 김창조에 관한 모든 자료를 나에게 전해주었고, 나는 한국에 돌아와 김창조 가야금산조를 복원, 초연하고 악보와 CD를 출반하여 김창조 선생이 산조 음악의 창시자 임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

 

2000년 나는 죽파 선생님의 고향에 내려가 영암이 산조의 본향임을 TV와 언론에 천명하였고, 2014년 국가와 영암군의 190억원 후원으로 가야금산조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2011년 이후 ()한국산조학회(이사장 양승희, 회장 김해숙)()김창조산조보존회를 설립하였고, 영암군 후원으로 김창조 가야금전국대회와 가야금기념관 개관 축하공연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2016년 영암군(전동평 군수)과 전남 교육청(장만채 교육감)의 지원으로 영암 초..고생들에게 가야금 교육을 시작하여 영암 어린이들은 교육부 장관상, 전남 교육감상 등을 수상하였다. 또한 영암 어린이 가야금연주단을 결성하여 매년 가야금산조 기념관 개관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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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산조 음악 가문은 가야금산조 창시자 김창조-인간문화재 김죽파-인간문화재 양승희로 이어지고 있으며, 김창조산조, 김죽파산조, 김죽파제 풍류, 가야금병창(명기명창), 안기옥산조(북한에 전승)를 보유하고 있다.


앞으로 내가 사는 동안 이루어야 할 꿈은 유네스코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가야금산조가 등재되는 것이며, 세계가 경탄하는 한국의 대표적 문화유산 가야금산조가 자손만대에 전해져 제자들이 靑出於藍청출어람되어 문화재가 탄생되고 가야금산조의 본향이 더욱 빛을 발하기를 소원하는 것이다.


2020년 영암 교육지원청 후원으로 영암 어린이 가야금 교재로서 가야금 초급반 교재와 김죽파류 가야금산조 악보를 출간하게 되었다가야금산조는 많은 미분음으로 작곡되어 있어 서양 오선보 악보로 표기할 수 없는 부분이 많으나. 가야금산조를 구전심수로 배워가는 과정에서 이 악보의 서양 표기법 악보는 가야금 가락을 쉽게 암보할 수 있는 든든한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죽파 선생님으로부터 20년간 전수받은 대로 산조의 調조에 따라 다양하게 다른 농현법에 중점을 두고 바이브레이션으로서의 농현법과 장식음으로서의 농현법 등을 구분하여 김죽파류 가야금산조를 채보하였다.


두 권의 악보집을 발간하도록 후원해 주신 영암군 전동평 군수님과 영암 교육지원청 김성애 교육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2012월 인간문화재 양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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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산조의 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