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0 (금)
흙의 소리
이 동 희
연戀은 사랑하고 그리워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것이며 어떤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하고 즐기는 것이다. ᄉᆞ랑ᄒᆞ하다는 생각하다의 옛말이다.
박연은 예악을 즐기고 음악을 소중히 여기며 주야로 추구하였다. 왕을 어릴 때 세자 때는 귀중히 여기고 왕이 되어서는 받들어 모시며 어려워하였다. 다래는 아끼고 애틋하게 생각하였다. 무엇이나 맡은 일을 소중하고 귀중하게 여기고 즐기며 끔직히 생각하였다. 한 시도 반 시도 해찰을 하지 않았다. 사랑이었다. 소중한 생각으로 맺어진 생生이었다.
어느 악장을 누가 지었느냐, 박연이 지었느냐 하는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그 일환이다. 박희민의 소설 『박연과 용비어천가』(2016, 도서출판 그루)의 ‘용비어천가의 작사 작곡’을 보면 세종실록 세종 15년 9월 12일 기사를 인용하면서, 문무 두 춤곡의 제작과 환환곡 미미곡 유황곡 유천곡 등 속악의 이름은 박연이 지었다. 이에 대한 최종 결정은 세종이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용비어천가의 치화평 취풍형 여민락을 세종이 지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렇게 쓰고 있다.
세종실록 기사는, 성악聲樂의 이치는 시대 정치에 관계가 있는 것이다. 지금 관습도감慣習都監의 향악鄕樂 50여 노래는 모두 신라 백제 고구려 때의 이어俚語로써 당시의 정치적 잘못을 상상해 볼 수 있어서 권장할 것과 경계할 것이 되는데 본조本朝가 개국한 이래로 예악이 크게 시행되어 조정과 종묘에 아악과 송頌의 음악이 이미 갖추어 졌으나 민족 노래의 가사를 채집 기록하는 법이 없으니 고대의 노래 채집하는 법(采詩之法)에 의거하여 각도의 고을에 명하여 노래로 된 악장이나 속어임을 막론하고 오륜五倫의 정치에 합당하여 권면할 것과 간혹 짝없는 사내나 한 많은 여자의 노래로서 정치에 벗어난 것까지라도 모두 샅샅이 찾아 내어서 매년 세말에 채택하여 올려보내자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그대로 따랐다고 예조에서 아뢴 내용이었다.
그리고 박연이 아악과 향악 50수를 정리하였다는 기록을 「용재총화慵齋叢話」(성현成俔)에서 찾아 관습도감 제조提調가 되어 음악을 관장한 사실로 입증해 보이었다.
소설은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세종은 세종27년(1447) 9월 용비어천가에서 사용할 음악의 대략적인 방향을 제시한 적은 있다. 그러나 이때 세종은, 내가 병이 있어 깊어 궁중에 있으므로 음악을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는데 세종이 제작하였다는 것은 신화 같은 이야기다.
세종 29년 6월 향약과 당악唐樂을 관현악에 올려 용비어천가를 연주하였다.
소설은 그리고, 앞에 소개한 단종실록 기사를 이어서 붙이고 있다. 볼만한 것은 다 박연의 힘이었다고 한 말을 인용하고 싶었던 것이다.
거기에 더 설명을 붙이지 않으려 한다. 공감이 갔다고 할까. 그러나 다음 대목에서는 한 동안 눈을 의심하고 전후 관계를 다시 보았다. 박희민의 ‘훈민정음 창제는 진정 누구인가’라는 글이다. 그 글의 마지막 대목이다.
『박연과 훈민정음』을 출간한 뒤에 『역주 난계유고』를 지은 다산연구소 김세종 박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김세종 박사도 ‘박연이 「율려신서」의 음악이론을 기초하여 훈민정음을 개발하였다’는 논문을 몇 년 전에 발표하였다는 것이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글은 더욱 놀라운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난계유고」의 소疏 1번은 차하결次下缺이란 표시로 상소문 일부를 박연이 의도적으로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남은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 훈민정음 창제의 단서가 남아 있다.
이젠 ‘개발’이 아니고 ‘창제’였다.
소설은 그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서가 훈민오음정성訓民五音正聲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장하였다.
박연은 오음정성을 백성들에게 가르쳐 바른 삶을 살게 하자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훈민정음의 처음 이름은 훈민오음정성이었다. 오음은 훈민정음 자음 17자요 정성은 훈민정음 모음 11자다.
필자는 앞에서 훈민오음정성에 대하여 이야기하였고 그것과 훈민정음에 대하여는뒤에 다시 이야기하겠다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도 그에 대한 고구考究는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그리고 훈민오음정성이 담긴 제일 첫번째 소에 대하여 말한 것인데, 박연은 의도적으로 1번 소를 버렸다고 하니 그 사실도 더 알아보아야 하겠다.
박희민은 『박연과 훈민정음』(2012, Human & Book)도 냈다. 거기의 주장을 여기(『박연과 용비어천가』)에서 다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결론을 쓰고 있다.
니체의 학설은 박연에게도 적용된다. ‘죽어서도 자기의 작품이 칭송을 받고 이름이 기억되기를 바라는 건 예술가들의 꿈이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평가가 세상의 몫이듯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세상의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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