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이규진(편고재 주인)
전라북도 부안하면 어디가 먼저 떠오를까.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채석강,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직소폭포, 불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내소사가 아닐까. 그러나 도자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천리가 생각나지 않을까. 유천리야말로 청자의 대표적 도요지로서 강진청자와 쌍벽을 이루는 부안청자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부안청자가 유천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진서리에도 대규모 요장이 있다. 하지만 질 면에서 아무래도 유천리가 뛰어나다보니 부안청자하면 이곳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부안이라고 해서 청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부안에는 우동리라는 널리 알려진 분청사기요지도 있다.
우동리분청사기요지가 널리 알려지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의 역할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58년 박물관에서는 유천리 출토 고려도자편을 대량으로 일괄 구입한 적이 있는데 당시 우동리분청사기요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분청사기편들도 함께 구입을 한 것이 있었다. 그로부터 많은 세월이 흐른 1983년 12월과 1984년 3월 박물관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우동리분청사기요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다. 그 결과 조사를 통해 얻은 도편과 전해 구입해 두었던 도편 중 서로 맞는 제짝의 것이 여러 점 발견되었다. 따라서 우동리분청사기요지 것으로 전해지던 도편들이 이 도요지에서 나온 출토품이라는 사실이 실물을 통해 확실히 입증된 것이다. 박물관에서는 이 도편들을 1984년 5월 28일에 발간된 '분청사기' 부록에 부안 우동리요 출토품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함으로서 학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우동리는 청자요지가 있는 유천리에서 차로 5분 정도면 가 닿을 수 있는 가까운 마을이다. 개울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 마을을 감불, 왼쪽 마을을 우신이라고 하는데 분청요지가 있는 곳은 감불이다. 요지는 우동저수지 못 미처 우측의 계곡 쪽 밭과 면한 산사면에 위치해 있는데 고급품을 번조했던 흔적으로 갑발편이 많이 쌓여 있다. 이곳에서는 각종 기형과 각종 문양의 도편들이 보이지만 그 중에서도 어문과 면상감이 특색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전에 이곳을 찾을 때는 차를 이용한 경우도 물론 있었지만 유천리 청자도요지를 돌아본 후 지금은 청자박물관이 있는 뒤쪽의 밭을 경유해 지름길의 작은 산 언덕길을 넘어 걸어서 찾아 가고는 했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특별히 재미난 도편을 만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런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분청상감모란문편병편이다.
분청상감모란문편병편은 좌측에 약간 남아 있는 문양대와 연판문만 흑백상감일 뿐 모란문은 전체가 백상감이다. 전면을 뒤덮다 시피 한 모란문의 꽃과 잎은 시원스럽게 면상감을 하고 있으며 유약은 투명유에 유색은 회청색을 띠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태토다. 태토는 약간 회색인데 수비가 잘 되지 않아 구멍과 같은 기포가 보이는 등 엉성해 보인다. 그와 관련이 있는 탓인지 아니면 저화도에서 소성을 한 탓인지 태토가 자기질화 되지 못한 채 이상할 정도로 무척 가볍다. 모란문이 있는 바깥쪽은 정상적인 자기질화를 보이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여간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여하튼 면상감이 시원스럽게 들어 있는 이 분청상감모란문편병편은 우동리분청사기요지의 특색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우동리는 오른쪽 마을을 감불, 왼쪽 마을은 우신이라고 한다는 것은 앞에서도 밝힌 바 있다. 우신에는 반계 유형원 유적지가 있고 감불 입구에는 4백여 년이 된 당산나무가 있는데 정월 보름이면 이곳에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당산제가 열리기도 한다. 우신 마을 뒤쪽에 위치한 우동리분청사기요지를 찾으려면 마을 앞의 이 당산나무를 지나야 하는데 그 곳에 똬리를 튼 동아줄이 감겨 있는 것이 흥미로워 보이던 일이 어제 일 같기만 하다. 우동리는 근래 전통마을 건강장수마을 쉼터마을 선진마을의 네 가지 테마로 새롭게 조성중이라고 하니 전에 내가 찾아보았던 때의 그 조용하고도 적막하던 우동리의 모습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그 뿐이 아니다. 우동리분청사기요지는 관계기관의 조사를 통해 가마터가 여러 곳이 확인된 모양이지만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아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다. 한 가지 추억 삼아 옛이야기 하나를 덧붙여 보자면 우동리분청사기요지에서 습득한 내섬명접시편을 갖고 있는 선배가 있었다. 내섬명이야 호남 쪽 도요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선배가 갖고 있던 것은 백상감이 아니라 흑상감이어서 아주 귀한 것이었다. 흑상감 내섬명접시라니 이 얼마나 탐이 나는 자료랴. 그러나 끝내 이 내섬명접시를 양도받지 못한 채 선배는 유명을 달리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아도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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