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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겸재 정선이 남긴 그 밖의 모든 그림들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겸재 정선을 소개할 때 항상 들어가는 수식어가 바로 진경산수화다.
옛사람들이 "겸재 정선이 그린 장소를 찾아가 보면 모두 감탄을 금치 못한다”고 말한다. "그림에 놀라고 그 풍경에 놀란다”고 한다. 이 책을 만든 경진출판 편집부 역시 '해악전신첩'의 이미지를 노트북에 파일을 담아 강원의 풍광을 따라가 보았다. 놀라웠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있었다. 그가 남긴 300년 전후의 그림들이 이처럼 남아 숨쉬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동이었다. 세월의 풍파에 불에 타 없어지고, 바람에 나무들이 꺾이고 썩어 없어졌을 터인데, 이토록 현장감 있게 표현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겸재 정선이 남긴 발자취일 것이다.
한강 주변의 풍광은 정선의 시대와는 많은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정선이 남긴 그림들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것들을 보고 추측할 수 있다.
한 예를 들면 '동작진'이라는 그림 속에서는 돛을 하나 단 배와 두 개를 단 배가 여러 척 보인다. 이곳에 드나들며 활발한 교역이 행해졌으며, ‘동작나루’가 상당히 큰 곳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 그림으로 과천에서 한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동작나루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 동부 이촌동에서 바라본 그림으로 정면에 관악산과 좌측에 우면산이 보인다. 현재 동작대교가 있고 지하철 4호선이 달리고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겸재 정선이 살았던 조선의 17~18세기는 금강산 여행 열풍이 대단했다. 겸재 정선의 그림으로 더욱 유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강산은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수많은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다. 일만이천봉의 바위로 된 봉우리들이 연속적으로 솟아 있다. 겸재 정선은 금강산을 그리기 위해 바위산을 그리는 기법과 나무가 많은 흙산을 그리는 기법을 함께 썼다. 그 사이에 구름과 안개를 깔아 자연스럽게 두 세계를 연결시켰다. 정선이 남긴 독특한 기법이다. 정선이 그린 금강산 그림을 보고 사람들은 금강산 구경을 하기 위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금강산으로 향했던 것 같다. 화가들 역시 대가가 남긴 그림을 보고 금강산으로 향했을 것이다. 겸재 정선에게서 그림을 배운 심사정, 최북, 김홍도, 김희겸 등도 마찬가지다. 직업 화가나 문인 화가 구분 없이 그러했을 것이다. 금강산의 일만이천 봉우리를 그릴 때면 정선처럼 뾰족뾰족한 바위를 그렸고, 바위를 감싸고 있는 산기슭을 표현하기 위해 먹점을 무수히 많이 찍어 숲을 무성하게 그렸을 것이다. 예를 들면 심사정의 '만폭동'을 들 수 있다.
심사정 역시 금강산을 직접 대면하고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금강산의 험준한 자태와 삼엄한 기세는 심사정이 수십 년간 연마해 왔던 중국풍인 남종문인화법으로 금강산을 그려내기란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심사정은 스승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을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겸재 정선은 17~18세기 진경시대를 열어젖혔다.
겸재 정선은 화가로서 두 개의 큰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그가 중년기 이후 사실적인 풍경화에 심취해서 그 독보적인 겸재화법을 세웠다. 즉 진경산수(眞景山水)라는 한국적 산수화의 정착과 독자적인 전개에 크게 이바지한 선구자적인 얼굴이다. 당시 화단은 중국 송대(宋代)ㆍ원대(元代)ㆍ명대(明代)의 그림들을 비판 없이 모방하는 것을 족하게 여겼다. 돌연변이처럼 출현한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는 화단의 새로운 이해와 활로를 열었다.
또 하나의 얼굴은 겸재 정선이 그린 산수화의 작품들은 대부분 남송화풍(南宋畵風)이 의식적으로 시도되어 있는데, 이것은 북송화풍(北宋畵風) 일변도의 당시 화단에 새로운 입김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겸재 정선이 뿌린 씨앗은 훗날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열매를 맺었다. 즉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가 지니는 의의는 정형(定型)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한국 산수화의 정립에 초석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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