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2 (일)
클래식의 명가 바흐(Bahc) 혹은 시선(詩仙) 이백에 견주어 "노래한 사람은 나이 칠십여세다. 그의 노래에 우아함과 속됨이 깃들어 있고 맑음과 탁함이 교류하며, 느림과 빠름이 교통한다. 슬픔과 기쁨이 또한 능숙하게 노래들 사이를 유영한다. 춤에도 능하여 그 몸짓에 정중동이 있고 가야금과 퉁소를 연주하는 데도 절도가 깊다. 놀라운 것은 그가 노래하기를 그만 둔지 20여년이 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나를 위해 향연을 베풀어주었으니 어찌 시를 바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에 긴 시를 지어 감상을 남긴다."
무정 정만조가 박덕인에게 바친 시 "노래하는 사람, 박덕인에게 바침(贈歌者 朴德寅)"을 내가 맥락에 맞게 해석해봤다. ‘은파유필’에 남긴 원문은 "歌者七十余歌曲雅俗淸濁緩促哀愉無不極善廢止二十余年爲余如發云又能舞尤工於伽倻琴及吹簫笛"다.
박덕인은 누구인가? 박병천의 작은 할아버지 박종기의 부친이다. 여기서 말하는 노래와 춤과 악기 연주 등은 무속음악의 또 다른 호명이다. 김명호가 박병천에게 바친 헌시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집안 대대로 정중동(靜中動) 혹은 동중정(動中靜)의 음악을 구사해 온 명가(名家)였다는 뜻이다.
박병천의 가계에 대해서는 이미 연구자들에 의해서 소상하게 밝혀졌다. 박주언이 집필한 「진도의 무속」(예향진도)이나 박미경이 집필한 「진도 세습무 박씨 계보와 인물 연구」(한국음악연구 41집)등이 그것이다. 연구에서도 밝혔듯 가계를 온전하게 추적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정만조가 ‘은파유필’에서 언급한 박덕인으로부터 젓대의 명인 박종기를 거쳐 박병천으로 이어지는 가계도가 중심을 이룬다. 박미경은 8대를 거쳐(박병천은 9대조부터 무업을 했다고 말한바 있다) 지속된 음악가 혈통, 독일의 바흐(Bahc)가문에 버금가는 명가라고 정리하고 있다.
박병천의 아버지 박범준이 당시 신청(神廳, 전라도와 경상도에 있던 무당과 악공의 연합단체)의 대장이었다. 어머니 김소심은 진도에서 굿을 제일 잘한다고 소문나 있었다. 진도의 김, 이, 박, 한, 강, 함, 전, 채, 노, 안 씨 등의 당골 중에 가장 으뜸이었다고도 전한다. 어디 그뿐일까. 광주MBC 얼씨구당 진행을 맡고 있는 백금열은 박병천을 시선(詩仙) 이백에 견주기도 한다. 주지하듯이 이백은 시성(詩聖)이라 불리는 두보와 더불어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다.
박병천의 구음 시나위 혹은 북춤을 바흐나 이백에 비유하는 이유는, "한(限)도 연(緣)도 혜량할 수 없는데, 사자의 귀성인가 절절함 끝이 없는" 그의 예술에 대한 찬탄이기도 하지만,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음악을 융숭한 격조로 끌어올린 그의 가문에 대한 내 헌사(獻辭)이기도 하다. 가장 천한 이름 당골의 신분으로 어쩌면 가장 격조 높은 음악을 연행했던 이들에게, 나아가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 간 민중들이 연행하고 향유했던 음악에 대한 나의 마땅한 태도와 믿음이다.
‘은파유필’은 무정 정만조의 유배시에 난긴 기록으로 박병훈(전 지도문화원장) 발굴본(이미 번역됨)이 있고, 최근 김연갑에 의해 발굴된 이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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