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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이어령에 대한 말’

김삼목 대기자
기사입력 2022.03.0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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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신문] 문화부 초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가 26일 별세했다. 향년 89세(사진=청와대 제공).

     

    이어령선생 유해는 오늘 오전 830분 발인되었다. 장례는 5일간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은 다음 달 2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엄수된다.


    선생에 대해서 앉는 그 자리가 곧 강의실이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박학다식하고, 달변가였다. 20대부터 60년 동안 130여종의 책을 냈다. 교사·교수, 문예지 발행인, 신문사 논설위원 등 10여 개가 넘는 직함을 거칠 정도로 다재다능했다.


    선생은 서울대 국문학과 재학 중이던 1956년 문단 원로들의 권위 의식을 질타한 우상의 파괴를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발표하며 평단에 데뷔했다. 문학의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함으로써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모든 언론이 선거 기간임에도 대대적으로 추모 기사를 쓰고 있다. 이 추모사들에는 다양한 시각의 평가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선생의 생전을 기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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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신문]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2021년 (사진=김연갑 촬영)

     

     

    # "한국인으로는 드문 르네상스적인 인간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앞으로 그런 분이 나오기가 어렵죠미켈란젤로레오나르도 다빈치알리기에리 단테 등을 합쳐놓은 그런 분이다.”(김승희 시인)


    # "선생님은 컴퓨터 여덟 대를 서재에 두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늘 촉수를 곤두세우고 계셨다천당에서도 컴퓨터 켜놓고 지상의 모든 일을 살펴보고 계실 것 같다장례식장 방명록에 누가 뭘 썼는지 다 보시고 계실 듯하다.”(김원 건축가)


    # "문인학자교수문화행정가의 종합세트였다한국의 앙드레 말로라고 할 수 있고우리 문화가 세계화하는 데 누구보다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한류의 촉매 역할을 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옆에서 보면 그런 아이디어가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은 데서 나온 거였다.”(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 "쉴새 없이 생각과 지식을 쏟아내시던 이어령 선생님투병생활을 하시며 얼마 남지 않은 생의 소중한 시간에제게 몇 차례 만남을 청해주셔서덕분에 저도 여러 성찰을 할 수 있었던 아주 각별한 경험이었다”(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뇌공학과 교수)


    # "어른은 발명가 같았다. ‘디지로그란 새로운 용어를 쓰셨고 문명과 관련해 늘 시대보다 앞서가셨다이 어른만큼 모든 걸 통섭할 수 있는 분은 보지 못했다”(시인 이근배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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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기자회견 하는 이어령 문화부 장관

     

    # "부고와 함께 우리는 이어령의 생애를 정면으로 마주 보게 된다. 그리고 이어령의 지성과 에너지가 우리 사회의 얼마나 큰 부분을 채우고 있었던가를 깨닫고 놀라게 된다. 오늘날 한류 커뮤니티 1억명에 빛나는 한국 문화가 이 위대한 해석자에게 얼마나 많이 의지해왔는가를 실감하게 된다.”(이인화 문학평론가)


    # "선생은 우리 문화의 본질과 성격이 무엇인가를 누구보다 예리하게 파헤치고, 그것이 국제적인 언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 분이다. 선생은 문학·음악·미술 등 각계를 꿰뚫어 우리 문화가 나아갈 길을 정리하고 미지(未知)와의 연결고리를 평생 찾아오셨다. 일본이 축소지향이라면 우리의 반도 문화는 좀 더 열리고 중성적인 여러 가변성을 지녔다는 점을 파헤치고 다듬었다. 애국심이 워낙 강하신 분이었다. 글 마다 마지막에서는 한국 사람’ ‘우리 역사로 귀결됐다. 언젠가 프랑스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이에 대해 투정했더니, 그 말을 책 광고에 넣으셨더라.”(화가 이우환)


    # "세상에 대한 훌륭한 카피라이터였다. 이어령 선생은 모든 사람이 궁금해 하는 것을 한마디로 딱 찍어서 알려주고 시각을 열어줬던 분이다. 한 시대의 위대한 문화인이었다.(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 "장관 임기 마지막 날 마지막 국무회의가 열렸는데, 당시 처리 안건 순서를 살짝 바꿔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안을 위쪽에 올려 놓으셨다고 한다. 예술 영재들에게 실기 중심의 교육을 하는 문화부 산하의 전문학교를 설립하자는 내용이었다. 이어령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5분간 한예종 설립에 대해서 역설한 뒤 설치안이 통과하면서 한예종 설립이 본격화됐다. 한예종은 이듬해인 1992년 개교했다. 이어령 장관이 없었으면 오늘날 손열음·김선욱도 없었던 거나 마찬가지다.”(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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