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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76>

특집부
기사입력 2022.02.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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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의 소리

     

    이 동 희

     

    말을 멈추고 <6>

    임금이 정월 초하루와 동짓날에 군신, 여러 신하들의 조하를 받는데 기일期日의 전날 예조에서는 내외간에 맡은 직무를 충실히 할 것을 선포하여 각각 그 직분을 다하게 한다.

    그날 밝기 전에 임금이 군신을 거느리고 망궐례望闕禮를 행하고 나면 내전으로 환궁還宮하며 군신들도 물러난다.

    유사有司가 임금의 자리를 근정전 북벽 남향에 설치하고 향로 두 개를 앞 기둥 밖의 좌우에 놓아둔다. 전악은 남쪽에 가까운 북향으로 현헌軒懸을 정전에 베푼다. 협률랑의 지휘 자리를 전상殿上 서쪽 동향하는 자리에 마련하며 사복이 어연과 말을 뜰에 벌여 놓는다. 전의는 1품 이하의 문관 자리를 전정殿庭 길 동쪽에 종실宗室1품 이하의 무관의 자리를 길 서쪽에 관등官等마다 자리를 달리하여 겹줄로 북향하여 서로 마주 보게 설치한다. 감찰監察 두 사람은 문무반 뒤 북향으로 자리하고 판통례 전의 독전관讀箋官 치사관의 자리를 현헌 동쪽에 마련한다. 통찬 한 사람은 남쪽에서 약간 뒤로하여 모두 서향하고 통찬 또 한 사람은 현헌의 서북에서 동향하게 한다. 봉례랑奉禮郎은 문 밖의 자리를 홍례문弘禮門 안에 설치하고 문관은 길 동쪽에 종실 및 무관은 길 서쪽에 마련 품계品階에 따라 자리를 달리 하여 겹줄로 서서 북쪽 위(北上)를 위가 되게 한다. 

    군신 조하의절은 그렇게 시작된다. 왕세자 의절과 같은 것도 있지만 의식 절차가 서로 다르다. 몇 번 말한 대로 여러 신하들의 의식 하나하나의 세세한 절차 동작 위치 방향 등을 기록한 행사 대본이다. 물론 같은 부서의 협력이 있고 도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을 해보지만 박연이 숱한 전적을 뒤지며 쓰고 고치고 다시 쓰고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퇴청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등잔불 심지를 돋우며 날밤을 새우기가 일쑤이고 집에 가서도 저녁 숟갈을 놓자마자 책상으로 물러 앉아 닭이 울도록 날이 새도록 먹을 갈아 쓰고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사맆문을 나서곤 한 것이다. 집의 얘기 다른 말은 한 마디도 않을 때가 많았다. 글을 읽고 쓰고 청서淸書를 하고 할 때도 그랬고 악기를 뜯고 두드리고 소리를 비교할 때도 그랬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고 체면이 볼만했다. 한두 해가 아니고 이십 년 삼십 년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왕에게 안장을 얹은 말을 하사받았다고 하였는데 상을 받고 칭찬을 듣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였다. 힘들고 고통스러움이 익숙해졌고 오히려 그게 편하였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서 이름을 남긴 것도 아니고 자기를 내세운 것도 아니었다. 제도를 바로잡고 의식과 절차를 바로 세우기 위한 작업을 끊임없이 쉼 없이 하였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누가 해도 해야 될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한 것이었다. 천명이었고 천직이었다. 좌우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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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헌은 궁중의 제례 때 악기 배설排設, 원래는 제후諸侯의 악기 배설을 말한다. 감찰은 조선 사헌부의 정 6품 벼슬로 사제祠祭 조정회의朝廷會議 과거 등에서 백료百僚를 규찰糾察하여 기강을 바로잡고 풍속을 바로잡는 일을 맡아보았다.

    그리하여 엄고가 처음 울리면 병조에서 모든 시위의 줄과 의장을 정돈하여 평상시의 의식과 같이 문과 전정殿庭에 베푼다. 그리고 유사는 전문箋文을 올려놓을 탁자와 방물方物을 올려놓을 탁자를 계단 위에 설치한다. 모두 의식은 평상시와 같이 한다. 예조정랑禮曹正郎은 조복을 입고 용정龍亭에 여러 도에서 올린 전문을 받들며 고악鼓樂이 앞에서 인도하여 서문으로 들어가서 근정전에 이르면 악이 그친다. 영사令史는 푸른 공복을 입고 전문이 든 함을 마주 든다. 정랑은 서계西階로부터 올라가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여러 도에서 올라온 사신使臣 들은 각기 방물을 가지고 동서 문으로부터 들어가서 탁자 위에 놓는다.

    다시 엄고가 울리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전문은 나라의 대사가 있을 때 신하가 임금께 써 올리던 사륙체四六體의 글, 방물은 감사나 수령守令이 임금에게 바치는 그 고장의 산물이다. 예조정랑은 조선조 육조六曹에 딸린 정6품 벼슬이다. 이조吏曹 호조戶曹 공조工曹3명씩 형조刑曹 병조兵曹4명씩을 두었다. 용정은 나라의 옥책玉冊 금보金寶 등을 실어 나르던 교여轎輿, 수레이다.

    이윽고 엄고가 두 번 세 번 울리면 행하여지는 의식 절차들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치사관이 서계로부터 올라와서 임금의 앞에 나가 북향하고 꿇어앉으면 통찬은 여러 신하들을 꿇어앉게 한다. 여러 관원들이 모두 꿇어앉으면 치사관이 하례를 하고 임금은 선교를 한다.

    "전하의 지극히 어진 덕으로 천지 원기를 체험하시어 큰 복을 받으소서.”

     

     

    "새로움을 맞이하는 경사를 경들과 더불어 함께 하리라.”

     

     

     

    경연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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