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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산소(山所) 및 납골장과 수목장

편집부
기사입력 2022.02.05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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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중성(정읍 향토사가)

     

    산소(山所)?

     

    산소라 하면 조상의 묘지를 이르는 말로서 묘지의 본 뜻을 말 한다면, 묘지의 봉분은 흙무덤인데 이는 풍수상 땅속에 흐르는 생기(生氣)는 흙을 몸으로 삼기 때문에 흙무덤을 높여 쌓아야 생기를 많이 받는다는(乘氣生)데에 본 뜻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가 가장 강하게 뭉쳐있다는 곳은 산이라 하여 묘를 산에 모셨다는 뜻에서 산소라 하였다는 해석이다. 산소라 하면 조상 대대로 이어오면서 가계 혈통을 이어온 구심점이었으며 효()의 상징이었고 전통문화의 근원이었다 할 것이다.


    농토를 기업으로 하여 선영의 산소를 지켜온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생활모습이었다. 농사가 생업의 전부였던 그 시절에는 자손들은 부모슬하에서 농사에 전념 하는 것이 평생의 업이었다. 장성하여 가정을 갖게 되면 부모가 나누어 주는 분깃에 따라 분가하여 자립하였다. 이같이 부모는 언제나 없이 자손들을 품안에 두고 보살핌으로 가정의 화목과 평안을 이끌어 온 그 선친과 선영을 모셔온 저 산소가 있는 곳이 우리의 터전이었고 우리의 고향 이었던 것이다. 그러했던 고향은 일찍부터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가고 외부에서는 공단시설이 들어와 대내외적으로 섞이고 바뀌다보니 어느덧 옛 고향이라는 정서는 사라지게 되었다.


    한편 부모를 떠나 고향을 등지다보니 섬겨오던 선영의 산소는 은연중 멀어지게 되고 효행마저 소홀해져가는 세월은 흘러 드디어는 그때 그 세월에 비하여 오늘에 와서는 아직 살아있는 부모도 남에게(시설)맡기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다 보니 돌아가신 뒤의 저 산소는 무슨 의미가 있을가?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받기 위해서 베푼다던가? 그래서 우리는 부모로부터 받은 혜택을 부모에게 못 갚고, 자식에게 갚는다 했다.


    납골장


    그동안 장례문화의 개선책으로 종래의 봉토 분묘에서 납골장으로 변화 되면서 가족묘지의 형태들이 많이도 달라져 왔다. 이에서 납골장()과 납골당()은 다른 개념이다. 납골장은 화장한 유골을 석탑이나 석실에 봉안함을 말하고 ,납골당은 화장한 유골을 일정장소에 보관 유치하는 곳을 말한다. 그래서 화장장의 총칭의 개념은 납골(納骨葬)이라 하겠다. 원래 납골장의 시원은 불가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것인데 이는 불타(佛陀)의 유체(遺體)를 다비(茶毘:화장)를 치르고 나서 그 유골을 석탑을 지어 봉안하였다는 데에서 기원한 장법이었다. 그에 따라 불교의식을 통하여 일반에서도 일부 화장풍습이 있어 왔으나 양속을 해친다하여 매장법이 존속되어 왔던 것이다.


    90년대에 들어 납골장이 권장되면서 이제는 일반화 된 것 같다. 어떤 묘지에는 수십 기의 비석만 세워 있는 데가 있고, 석탑을 지어 주위를 공원으로 조성한 데가 있는가하면 땅을 파고 반 지하 형으로 하여 지붕을 흙으로 덮은 유골탑등 다양한데, 기존의 분묘도 석재물로 사각을 둘러 있는 데가 많아졌다. 그런데 한번 설치된 석재는 몇 천년이가도 영구히 남을 것인데 저와 같이 산지마다 석재 구조물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온 산천이 석재는 천지가 될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없자않다.


    이같이 일반 종문이나 가족 묘지들은 각기 다른 양상으로 늘어나는데 이는 개인 소유지에 따르면 전국적이고 산발적이다. 그리고 납골당은 아직 납골 묘 또는 수목장으로 가기 전의 대기실 같은 곳이겠는데, 이는 각자의 유골함을 벽면의 칸막이 선반에 번호순대로 층층이 진열되어져 있는데 이는 마치 아파트 층을 상상케도 한다. 그래서 항간에서는 흙집에서 살 때는 무덤도 흙집이더니 아파트 문화에서는 무덤도 아파트를 닮았다는 풍자도 있다. 그러나 종전의 묘지하면 유현(幽玄)하고 음습한 분위기였는데, 그와는 달리 납골묘지는 기념탑 같은 분위기에서 선영을 기리며 추억을 기념하면서 가족들과 함께 참배할 수 있는 성소의 엄습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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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주 수목장

     

    수목장


    종전의 묘지라는 개념 하에 서는 인생종말의 구역으로 인식이 되어 왔으나 보다는 생전에 선호하는 선경이요 낙원으로 모신다는 의미에서 아름답게 정원을 꾸미거나 그만한 자연 경관으로 모신다는 뜻에서 출발한 것이 수목장이겠다.


    납골당과 수목장은 다 같은 화장장 이지만 납골장은 집()을 지어 그 안에 유골을 봉안하는 반면 수목장은 나무밑에 유골을 뿌리거나 도자기 유골함을 묻는다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수목장은 그 나무에 영혼을 의탁하는 관계이기도 하므로 한편 그 나무의 건강여부에 따라서는 그 영혼에 대한 안부의 표징이라는 의미에서도 자손들로 하여금 자주 돌아보게 되는 성묘의 의미는 납골장보다 우리의 정서에 가깝다고 하겠다.


    수목장의 기원은 성경에서도(35:8)야곱의 모친의 유모 드보라의 죽음을 상수리 나무밑에 장사지내고는 그 나무 이름을 탄식의 나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사회에 수목장이 인식되기는 90년대 초에 전 고려대 교수가 생전에 자기 죽음의 기념수를 남겼다는 계기와 아울러 필자의 졸저(꽃과 나무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에도 수목장을 제안한바 있었다.


    이 같이 기념수를 정하여 수목장으로 모신다면 후손들에 대대로 이어지는 성수로서의 대 물림이 될 것이며, 그런 의미에 서는 수목장은 굳이 선산이 아니어도 내집 정원이면 어떠랴. 선영을 성수(聖樹) 밑에 모셔두고 그 옆에 유훈이나 좌우명 하나쯤 세운다면 후대에 실전(失傳)할 염려도 없을 것 이며, 항상 살아있는 저 나무의 생동감은 후손이 전해 받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세상사는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순환법칙이라 했거늘, 영혼이야 넋이야 얼인 그것은 항상 내 안에 있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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