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강물 또한 말이 없으니
이규진(편고재 주인)
분원초등학교 운동장에 서서 보면 저 멀리 가물가물 마현이 보인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두물머리에서 만나 흐르다 두미협에서 팔딩댐으로 막혀 강물이 호수처럼 질펀하게 차오른 물길 저 너머로 보이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현은 늘 아련한 그리움 비슷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마현은 다산 정약용의 생가가 있는 곳이자 그가 뼈를 묻은 유택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면 다산도 내가 바라보듯이 마현에서 분원을 바라보고는 했었을까. 바라보았다면 도자기를 굽느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다산은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그 것이 자못 궁금하지만 분원에 대한 다산의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으니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따지고 보면 분원은 다산이 의식적으로 외면하지 않는 한 모를 수가 없는 곳이다. 강 건너 저 멀리 도자기를 굽느라 시도 때도 없이 피어오르는 연기도 연기지만 다산은 천진암도 자주 찾았기 때문에 그 길목에 위치한 분원을 지나다닐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왜 그토록 다방면에 걸쳐 호기심이 많았던 다산은 분원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을까. 천민들의 삶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백성의 고통과 민생에 관심이 많아 <목민심서>라는 불후의 명저를 남긴 다산이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왜 다산은 분원에 대한 관심이 없었을까. 치밀하고 꼼꼼했던 다산이 분원에 관심을 갖고 보고 들은 그 일들에 대해 기록을 해두었더라면 분원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귀중한 자료가 될 수 있었으랴. 따라서 분원초등학교 운동장에 서서 마현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그리움과 더불어 안타까움에 마음이 저려오고는 한다.
도자기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넘치던 젊은 날 분원은 자주 찾던 곳 중의 하나다. 그러나 내게는 가마터가 있던 분원초등학교 쪽 보다는 인근의 마을 곳곳을 돌아보는 일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분원에서 도자기를 만든 것이 오랜 세월이고 보니 가마터가 아니더라도 마을 곳곳에 도편 조각들이 흩어져 있고는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밭을 갈거나 집터를 파헤친다던가 하는 등 지형의 현상 변경이 이루어지는 곳이면 더러 도편들이 보이고는 했었다. 청화백자동화완편도 그런 과정에서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분원초등학교를 왼쪽으로 끼고 우측의 작은 도랑을 따라 깊지 않은 계곡을 올라가다 보면 민가들이 끝나고 밭이 나온다. 아주 오래 전 그 우측 도랑에서 만난 것이 청화백자동화완편이다. 이 청화백자동화완편은 비록 도편에 불과하지만 그 생김새며 문양이 참으로 보기 힘든 귀한 자료다. 몸체 외면에는 청화로 모란절지문과 벌 한 마리와 도안화된 복(福)자가 들어 있다. 이 복자는 굽 안에도 또 다른 형태의 도안으로 들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굽 위로 바로 이어진 나뭇잎 모양의 장식이다. 놀랍게도 이 문양은 조선 백자에서도 귀하다고 하는 동화인 것이다. 하지만 이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릇 안쪽의 내저에도 잘려져 무슨 글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동화로 도장이 찍혀 있는 것이다. 보도 듣지도 못한 이 청화백자동화완편을 보고 있노라면 나와의 인연 자체가 너무도 고맙고 소중해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다산이 끝내 침묵했던 분원백자가마터는 2001년과 2002년 2차에 걸쳐 이대박물관에서 발굴조사를 했다. 그리고 그 조사보고서가 <광주분원리백자요지>라는 이름으로 2006년 8월 출간되기도 했다. 그러나 관요 시절과 민영화 이후 도편들의 구분과 경계를 선명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등 여러 가지 점에서 아쉬움이 많다. 아쉬움이 어찌 그 것 뿐이랴. 하지만 많은 세월이 흐르며 지워진 흔적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한계는 어쩔 수 없었으리라.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분원의 전성기 시절을 함께 살았던 다산의 침묵은 더 아쉽고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흐르는 강물은 그 침묵의 사연을 알고 있으련만 그러나 강물 또한 말이 없으니 내가 안타까워한들 이제 와 무슨 소용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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