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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의 여로(23)
분청덤벙상준편

특집부
기사입력 2021.12.2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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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기하기만 했던 기억 

                         이규진(편고재 주인)


    초식동물의 왕인 코끼리는 우리나라에서 사는 동물이 아니다. 따라서 동물원이 없던 시절 조선에서 코끼리를 본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없다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본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 것도 서민뿐 아니라 왕까지 본 적이 있다고 하면 이 얼마나 엉뚱한 생각이랴.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이다.


    코끼리에 대한 기록이 보이는 것은 '태종실록'이다. 대마도주가 조선의 환심을 사기 위해 코끼리를 보내 온 것이다. 그런데 이 코끼리가 말썽이었다. 우선 엄청난 곡식을 먹어 치워 고민인데다 구경을 나왔던 전 관리가 밟혀 죽는 사건까지 발생한 것이다. 이에 섬으로 귀양을 보냈다가 육지로 다시 나오는 등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던 이야기들이 전한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보아 조선 시대에도 코끼리를 본 사람이 분명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코끼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아프리카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다. 기원 전 3세기경 코끼리를 이끌고 험준한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진격한다. 막강한 로마를 상대로 16년간이나 전쟁을 하며 괴롭히다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으나 그 용기와 과감성과 결단력 등은 오늘날에도 무인의 대명사로 회자되고는 한다.

     

    코끼리는 불교와도 관련이 깊다. 부처님의 자비를 상징하는 보현보살도 코끼리를 타고 있다. 덕망 있고 존귀한 사람이 타는 가마를 불교에서는 상가(象駕)라고 하는데 코끼리가 경전을 싣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왔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불교와 마찬가지로 유교의 전통 속에서도 코끼리는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제기의 일종인 상준이다. 희준과 더불어 제사를 지낼 때 물이나 술을 담아 놓던 그릇의 일종이다.


    '세종실록'의 제기도설(祭器圖說)에는 35종의 제기를 정리해 놓고 있다. 소와 관련 있는 희준이나 코끼리와 연관이 있는 상준도 이에 포함이 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사기로 된 희준과 상준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사발 같이 생긴 그릇의 몸체에 소나 코끼리를 그려 넣은 것과 아예 소나 코끼리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것이 그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속을 비게 만들고 등에 구멍을 뚫어 물이나 술을 담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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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신문] 분청덤벙상준편(편고재 소장) 길이x지름x높이 14x12x7Cm

     

    내게는 전부터 구입해 둔 도자기 상준편이 몇 점 있다. 백자편도 있고 분청편도 있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이 분청덤벙상준편이다. 머리 부분만 남아 있는 것인데 귀도 한쪽은 떨어져 나가고 없지만 긴 코는 완전한 편이다. 그런데 분청상준의 경우 대개는 귀얄이고 여기에 더러 음각을 한 것이 보인다. 말하자면 덤벙분청은 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이 귀한 분청덤벙상준편은 어디서 만든 것일까.


    덤벙분청을 만든 곳으로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보성이 널리 알려져 왔다. 그후 고흥 운대리가 등장하면서 덤벙분청하면 두 곳이 쌍벽을 이루게 되었다. 하지만 덤벙분청이 이 두 곳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서천 신검리에서도 덤벙분청이 발견된 자료가 있고 보면 아직 알려지지가 않아서 그렇지 더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여하튼 분청덤벙상준편의 경우 백토 분장이 두터우면서도 거칠어 보이는 것이 고흥 운대리 보다는 보성의 도촌리 쪽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보게 되고는 한다.


    내가 코끼리 실물을 처음 본 것은 언제일까. 서울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20대 초에 창경원으로 벚꽃놀이 구경을 갔다가 동물원에서 본 것이 처음일 것이다. 팔뚝만큼이나 큰 코가 달린 코끼리를 보면서 신기하게 여겼던 기억이 어제 일 같은데 이제는 동물원도 없어지고 창경원이 창경궁으로 제 이름을 다시 찾은 지도 오래 되었다. 큰 코에 큰 귀. 실물은 아니지만 사실적으로 만들어진 분청덤벙상준편을 보고 있노라면 처음 보는 너무도 생경한 코끼리의 이질적인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 졌었을 조선 사람들의 표정이 손에 잡힐 것만 같은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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