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이윤선(문화재청 전문위원)
트로트에 대한 비하격의 호명, 뽕짝에 대한 비난의 강도를 높였던 시절이 있었다. 뽕짝은 일제 40년 동안 친숙해지도록 강요된 거짓노래였다는 것. 노동은의 주장을 빌려본다. "일본민족은 대체적으로 '요나누키'음계와 '미야코부시'음계에다 4분의 2박자로 된 '밥그릇'을 역사적으로 만들어내고, 여기에다 여러 곡조의 밥을 담았다. 그 밥이 다름 아닌 일본식 유행가나 가곡, 기악곡 등이다. 여기에다 일본 민족의 한과 정서를 의미화 시켰던 것. 그런데 이러한 일본민족의 밥그릇을 우리에게 종용시킨 것이 을사오조약부터였다는 사실에서 우리의 분노는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 없다." 노동은은 나아가 우리가 어렸을 때 불렀던 동요들 예컨대 '학교종이 땡땡땡'이나 '퐁당퐁당', '여우야 여우야' 등도 일본식 음계와 장단을 따른 노래들이라고 비판했다.
재고의 여지는 없을까? 일본노래를 번안한 사례를 들어 한국 트로트 전체의 뿌리를 엔카에 비유하는 것이 온당한 것일까? 하지만 한국트로트를 일제강점기의 엔카와 판소리 특히 남도민요와의 융합으로 설명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위키백과사전’에서도 트로트 혹은 뽕짝을 엔카의 요나누키/미야코부시 음계와 남도민요의 영향을 받아 떠는 창법이 특징인 장르로 설명하고 있다. 왜색의 수입가요, 가장 천한 노래 등으로 폄하했던 그간의 시선들과는 사뭇 다른 평가들이다.
장유정 교수는 지금까지 '왜색'과 '천박'의 그늘에 가려서 제대로 가치를 받지 못했던 대중가요의 한 양식이라고 성찰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한국 트로트의 정체성에 대한 일고찰, 구비문학연구, 2003). 임의 부재에서 비롯한 '동경과 그리움의 정서'가 우리 전통의 계승이라는 것과, 임에 대한 과거 지향성이나 임에 대한 시적 자아의 수동성이 민요에 이어 트로트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孝行)는 그의 글 ‘일본 엔카와 한국 트로트 비교를 위한 기초적 관점’(아시아문화연구, 2018)을 통해 그간의 엔카와 트로트 논쟁을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다. 1945년 이후 한국에서는 일제잔재 청산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해방 전의 대중가요는 왜색가요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1956년에는 '왜색 가요 잔재에 의한 독소를 제거하고 국민 음악을 신흥하자'는 구호 아래 문교부와 국민개창운동 추진회의 공동주최로 '왜색풍 가곡 배격, 계몽강연회'가 개최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만들어져 큰 인기를 얻은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 정거장',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훗날 6.25 3대 트로트로 불리게 된 곡이었지만 금지되지 않았다.
이와는 반대로 1965년 대히트했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왜색가요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엔카와 트로트를 제대로 비교분석 해보지 않고 한일간 민족감정 혹은 국제환경 등의 논리가 앞서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주장이다. 지면상 보다 소상한 설명은 따로 준비하겠지만 떠오르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다. 사회적 현상의 하나로 부상한 송가인 증후군, 트로트 신드롬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송가인에 열광하는 베이비부머세대들 모두가 설마 왜색을 추종하거나 찬양하는 것일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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