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연재소설] 흙의 소리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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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흙의 소리 63

  • 특집부
  • 등록 2021.11.1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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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의 소리

 

이 동 희

 

아악 <4>

박연은 해주의 거서(기장) 모양에 의하여 밀을 녹이고 다음으로 큰 낟알을 만들고 푼을 쌓아 관을 만들었다. 그 모양이 우리나라 붉은 기장丹黍의 작은 것과 꼭 같았다. 곧 한 낱1푼으로 삼고 열 낱을 1으로 하는 법을 삼았는데, 9촌을 황종黃鍾의 길이로 하였으니 90푼이다. 1촌을 더하면 황종척이 된다. 원경圓經346의 법을 취하였다. 이에 해죽海竹의 단단하고 두껍고 몸이 큰 것을 골라 뚫으니 바로 원경의 푼수分數에 맞으며 관의 길이를 비교해서 계산하니 바로 촌법寸法에 맞았다.

밀을 가지고 기장 낟알 12백 개를 만들어서 관 속에 넣으니 남고 모자람이 없었고 이를 불어보니 중국 종 경 황종의 소리와 당악의 필률 합자 소리와 서로 합하였다. 그러므로 이 관을 삼분손익三分損益하여 12율관을 만들어 부니 소리가 곧 화하고 합하였다.

이 악기가 한 번 이룩되자 제악祭樂 팔음八音의 악기가 성음聲音에 근거가 있어 한 달이 지나서 신경新磬 2가 이룩되고 이를 바치었다.

그러자 지신사知申事 정흠지鄭欽之와 몇 사람들이 박연에게 물었다.

"이 모양의 제도와 성음의 법칙을 어디서 취한 것인가?”

지신사는 도승지都承旨를 말한다. 도승지는 승정원承政院의 장으로 왕의 측근에서 시종하며 예문관 직제학直提學 경연慶筵의 참찬관參贊官을 의례적으로 겸하였다.

"모양과 제도는 중국에서 내려 준 편경에 의하였고 성음은 신이 스스로 12율관을 만들매 합하여 이룬 것입니다.”

박연이 그렇게 대답하였다. 은 박연을 말하는 것이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그는 12율관을 처음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창제한 것이다.

그러자 여러 대언代言(승지)들이 박연에게 다시 물었다.

"중국의 음을 버리고 스스로 율관을 만드는 것이 옳겠는가?”

따지는 것이었다. 중국의 음을 버린다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고 또 거짓말이 아니냐는 것이다. 박연의 실력에 의문을 표하는 것이었다.

박연은 다른 말 않고 글을 갖추어 아뢰었다.

"지금 만든 편경은 모양 제도는 한결같이 중국 것에 의하였으나, 성음은 중국의 경은 대려大呂의 각표刻標한 것이 그 소리가 도리어 태주太蔟보다 낮고, 유빈蕤賓의 각표한 것이 그 소리가 도리어 임종林鍾보다 높으며, 이칙夷則은 남려南呂와 같고, 응종應鍾은 무역無射보다 낮아서, 마땅히 높을 것이 도리어 낮고 마땅히 낮을 것이 도리어 높으니, 한 시대에 제작한 악기가 아니라 생각됩니다.”

음의 세밀한 높낮이를 하나 하나 연주한다고 할까 소리를 들려주며 말하였다. 박연의 대답에는 거침이 없고 막힘이 없었다. 여유가 있었다.

"만약에 이것에 의하여 제작하면 결코 화하여 합할 이치가 없기 때문에 삼가 중국 황종의 소리에 의하여 황종의 관을 만들고 인하여 손익하여 12율관을 이룩하여 불어서 음률에 맞추고, 이에 근거하여 만들었습니다.”

박연의 설명은 눈물겨웠다. 지신사와 대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불신을 접으며 생각을 다시 하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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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신문] 이무성 화백의 작화 : [연재소설] 흙의 소리 63

 

세종 임금은 중국의 경 1가와 새로 만든 경 2가 그리고 소 관 방향 등의 악기를 들여 모두 새로 만든 율관에 맞추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말하였다.

"중국의 경은 과연 화하고 합하지 아니하며 지금 만든 경이 옳게 된 것 같다. 경석을 얻은 것이 이미 하나의 다행인데 지금 소리를 들으니 매우 맑고 아름다우며 율을 만들어 음을 비교한 것은 뜻하지 아니한 데서 나왔으니 내가 매우 기뻐하노라.”

임금은 희색이 만면하여 여러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박연은 몸둘 바를 모르고 머리를 조아렸다. 무슨 말을 하지도 못하고 연방 흐르는 이마의 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그동안 불철주야 화성을 찾아 각고하며 들인 노력들이 꿈결처럼 느껴졌다. 계속 뜨거운 땀이 흘러내렸다.

그런데 그것은 또 순간이고 세종 임금은 그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다만 이칙 1매가 그 소리가 약간 높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정말 그랬다. 이칙 1매가 조금 높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약간이었다. 정말 약간 높은 소리였다. 이상하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박연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침착하게 살펴보았다. 그러다 그 연유를 발견하고 천연덕스럽게 아뢰었다.

"가늠한 먹이 아직 남아 있으니 다 갈지 아니한 것입니다.”

그리고 물러서서 이를 갈아 먹이 다 없어지자 소리가 곧 바르게 되었다.

참으로 대단하였다. 박연의 판단과 기민한 대처도 그랬지만 세종 임금의 음감이 그렇게 정확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