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2 (일)
이윤선(문화재 전문위원)
증산 강일순은 왜 천지굿이라 이름하고 손수 장구를 메고 춤을 췄던 것일까? 그 이유를 내가 정확히 알 수야 없지만, 증산교가 표방했던 선천과 후천의 개벽사상 혹은 주문 태을주(太乙呪)와 관련해서 해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태을주는 모든 질병을 내쫒고 선계(仙界)의 개벽을 '태을천상원군'에게 기원하는 주문이다.
이 글씨를 써놓으면 부적이 된다 했다. 충청도 비인에 살았던 도인 김경흔이 50여 년간 공부한 후에 이 주문을 얻어 증산에게 주었고 이를 다시 차경석이 보천교(普天敎)로 가져간 셈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현재 호명하는 우도농악 즉 마을농악에서 연예농악으로 변화된 형태의 농악이 발흥한 곳이 보천교를 중심으로 하는 정읍이라는 점이다.
단체로는 전라도걸궁패, 정읍농악단, 협률사 등이 있다. 양옥경의 글 '근현대시기 호남 우도지역 연예농악의 역사적 전개 양상과 의미'(한국음악사학보 61집)를 인용한다. 보천교는 농악을 의례음악 곧 예악(禮樂)으로 삼고 전국의 농악인들을 총 결집하여 큰 농악판을 벌였다. 1930년대 보천교 교당 뜰에 전국의 쇠잽이, 장고잽이들이 자주 모여들었다. 모두 모집, 선발된 자들이었다.
우도농악의 명인 김오채의 구술에 의하면, 정읍 입암면 대흥리 보천교 교당을 짓고 낙성식할 때도 그랬고, 일명 차천자(차경석을 天子로 불렀음) 집에서 농악판을 많이 벌였던 것 같다. 이때 차천자가 앉아서 구경하곤 했다는 것. 전북대 김익두교수가 차용남의 어린 시절 목격담을 구술 받아 증언한 바에 의하면, 차경석 교주가 십일전 좌상에 좌정한 가운데, 화려한 복색으로 차려 입은 여러 무리의 농악대가 현란한 진법과 율동 및 연주를 선보이면서 서로 경합을 벌였다는 것 아닌가. 지금으로 말하면 농악의 진법(陣法), 악기 겨루기 등이다. 천운을 돌리기 위해 했다는 열두 발 상모놀음, 도둑잽이굿 등도 같은 맥락이다. 보천교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상쇠들은 지금 우도농악의 초창기 명인들로 손꼽힌다. 우도농악이 그만큼 보천교의 천지굿에 영향 받은바 크다는 뜻이겠다.
하지만 농악의 본래 기능은 마당밟이 곧 정초의 지신(地神)을 밟고 지기(地氣)를 울리는 일이다. 축귀(逐鬼)하니 증산의 입장에서는 태을주를 연주하는 일과 같았을까? 아니면 오방색, 삼색 띠, 열두 발 상모, 십이 채 등의 용어에서 보듯이 증산도에서 보천교에 이르는 '정역'의 이치를 연출했던 것일까? 이들 교리나 철학이 어떻게 농악의 진법이나 장단 구성에 활용되었는지 추적하는 일이 난망하지만 누군가는 추적해야 할 일이다. 증산 강일순이 천지굿을 열며 스스로 장구를 메고 노래를 부른 것이나 그 맥을 이어받았다는 차경석의 보천교가 농악을 의례음악으로 삼은 맥락이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신앙촌의 박태선이 구원파의 유병언, 영세교의 최태민으로 분파되고, 호생기도원의 김종규를 거쳐 장막성전의 유재열이 신천지의 이만희로 연결되는 맥락은 물론, 이들이 행하는 의례음악 편성의 정통 혹은 이단을 분석하는 데도 유용하리라 본다. 이래 저래 그동안 전통이라 여겨오던 것들에 대한 비판적 논쟁이 시작되려나. 인적 뜸한 거리, 어쩌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낯선 풍경들을 대면하는 대한민국의 처지가 옹색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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