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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 (15)

보천교의 예악 천지굿

특집부
기사입력 2021.11.0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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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선(문화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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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읍 보천교 십일전을 옮긴 조계사 대웅전

     

    "하루는 걸군(지금의 농악)이 들어와서 굿을 친 뒤에 천사께서 부인으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시고, 친히 장고를 들어 메고 노래를 부르시며 가라사대, '이것이 곧 천지굿이라. 나는 천하 일등 재인이요 너는 천하 일등 무당이라. 이 당 저 당 다 버리고 무당의 집에 가서 빌어야 살리라' 하시고 인하여 부인에게 모당도수를 정하시니라. 하루는 천사께서 반듯하게 누우신 뒤에 부인으로 하여금 배 위에 걸터앉아 칼로 배를 겨누며, '나를 일등으로 정하여 모든 일을 맡겨 주시렵니까?' 라고 다짐을 받게 하시고, 천사께서 허락하여 가라사대, '대인의 말에는 천지가 쩡쩡 울려 나가나니 오늘의 이 다짐은 털끝만치도 어김이 없으리라' 하시고 이도삼, 임정준, 차경석 세 사람으로 증인을 세우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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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9년 완공된 정읍 입암면 대흥리 보천교 십일전 전경

     

    '대순전경'(증산교본부, 1947)에 나오는 대목이다. 19081월 정읍 입암면 대흥리에서 벌어진 일명 천지공사(天地公事) 풍경이다. 강일순(姜一淳)과 고판례(高判禮)가 행한 굿판, 이를 '천지굿'이라 한다. 이때 강일순의 나이 30대 후반이었다. 풍경은 살벌하게 이어진다. 마당에 유교, 불교, 기독교 등의 책들을 찢어놓고 고판례가 그 위를 밟으며 칼춤을 추었다. 억눌려 살아온 여성들을 해방하는 굿이었다고나 할까. 이때 고판례가 받은 수부(首婦)라는 호는 여성의 우두머리란 뜻이다.

     

    고판례의 칼춤 아래 찢긴 제반 종교 서적들은 여성, 나아가 천한 계급들을 억압하는 상징이었던 셈이다. 마치 역병과 가뭄에 벌이는 여성 전유의 도깨비굿이라고나 할까.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을 중심 세우는 사회로의 선언이니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이 뒤집히는 개벽굿이었던 셈이다. 동학혁명의 발생지 전북 고부에서 태어난 증산 강일순(甑山 姜一淳, 1871~1909)이 제창한 증산교의 시작은 190120세기 벽두였다. 증산교를 초기에는 훔치교(吽哆敎)라 했다. ()은 태을주(太乙呪) 주문을 시작하는 말이다. () 울음소리()를 상징하는데, 창조의 근원 소리라고 주장한다. 무속, 선교, 불교, 유교, 도교, 기독교적 요소들을 포함한 신앙관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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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천교 중앙본소 입구(1985년 촬영)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천지굿, 증산교(甑山敎)에서 보천교(普天敎)까지. 신흥종교들이 매양 그렇듯이 창시자를 메시아로 받드는 경향이 있다. 강일순을 옥황상제와 미륵불로 치부하는 것도 그렇다. 옥황상제는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하느님이다. 미륵보살은 내세에 성불하여 사바세계에 나타나서 중생을 제도한다는 보살이다. 일종의 메시아 신앙이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폭정을 시발 삼아 일어났던 1894년 동학혁명 때, 강일순은 불과 24세였다. 불같던 나이에 겪은 동학혁명의 참상이 주었을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강일순은 유, , , 음양참위 관련 서적들을 탐독하였으며 충청도 비인에서 김경흔에게 태을주(太乙呪) 주문을 받고 연산에서 '정역(正易)'의 저자 일부 김항을 만나 시대를 논의한다. 31세 때인 1901년 전주 모악산 대원사에 들어가 수도를 시작한 지 며칠 만에 천지대도를 깨달았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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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천교 중앙본소(1985년 촬영)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이후 신통묘술 예언을 하고 병을 치료하는 등 기적을 행하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 , 선을 융합했으며 기독교적 요소들까지 포괄한데다 신통력까지 발휘하니 어지럽던 세상에 주목을 끌 수 있었겠다. 24절기에 따라 24종도가 있었다거나 경전 28장에 따라 28종도가 있었다고 하나 자세한 내용은 추적해보지 못했다. 차경석과 그의 이종 누나 고판례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고 이른바 수부공사를 하게 될 때까지 수련과 수양의 시절이었겠다. 불안한 시대 탓인지 교세는 급속하게 성장하였고 많은 이들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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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천교주 차경석(1929. 7. 24일자 동아일보)

     

    하지만 190939세의 짧은 나이로 죽게 되자 교세가 기울게 된다. 침잠기를 거쳐 1914, 증산 강일순을 교조(敎祖) 삼고 고판례를 교주(敎主) 삼는 선도교(仙道敎)가 재출발한다. 교세가 번창하게 되자 이종 동생이었던 차경석이 다시 보천교(普天敎)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분리한다. 고판례는 1919년 다시 태을교(太乙敎)라는 이름으로 교파를 분리한다. 이후 안내성이 여수에서 선도교(仙道敎, 1913), 이치복이 원평에서 제화교(濟化敎, 1916), 김형렬이 전주 모악산에서 미륵불교(1919)를 세운다. 이외에도 박공우, 문공신, 김광찬 등이 각각 교파들을 세우며 분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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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산교 본부 통천궁내 상제(강일순)와 고수부(고판례) 초상 (사진=증산법륜도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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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도대향원사당의 강일순 초상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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