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2 (일)

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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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문화 기행(13)

붉은악마의 추억(下)

  • 특집부
  • 등록 2021.10.18 07:30
  • 조회수 19,604

   이윤선(문화재 전문위원)

 

붉은악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붉은악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2020년 아카데미 4관왕을 휩쓸며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영화 '기생충'에서 아버지 기택(송강호)이 아들에게 불쑥 던지던 말을 생각한다. 농담처럼 던지는 이 언설이 가지는 아우라가 깊다. 코믹으로 가장한 이 중층적인 우문(愚問)의 형식은 이미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정착한 것 같다. 천년이 가기 전 계획을 세워두고, 새로 올 천년의 시작으로 월드컵 2002년을 맞이했다고나 할까. 공식적인 국가대표팀 응원단이 아니었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2006년 운영진 해체를 결정하지만 이들이 남긴 여운이 생각 이상으로 방대하다. 의도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1997년부터 2017년까지라는 엠블렘의 표기가 주는 파장들이 있다. 20세기를 넘기고 21세기를 맞이하는 뉴밀레니엄의 분기점을 시사해준다고나 할까. 붉은악마라는 별명은 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이 먼저 사용하고 있던 호명이다. 문자 그대로 직역해보니 붉은 세 자매 복수의 여신이다. 머리카락은 뱀이고 날개를 달았다. 그리스와 로마신화를 통해 알려진 이 신화는 호머의 일리아드 등에 나타난다. 죽은 자의 분노에 대한 초자연적인 의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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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브라질 월드컵 H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알제리의 경기가 열리는 6월 23일 새벽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붉은악마가 태극기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그런데 이 분노의 세 여신을 왜 붉은악마로 번역했을까? 성격을 같이 하는 우리의 여신 특히 분노하는 여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PC통신을 통해 제안되었다던 명칭들에서 대강의 고충이 보인다. '레드월리어', '버닝파이터즈', '레드헌터', '레드맥스', '레드컨쿼리', '쿨리건', '레드타이거', '레드에코', '레드유니온', '레드일레븐' 외에 '꽹과리부대', '도깨비' 등 주르르 쏟아진다. 이들이 어떤 이미지들을 연상했는지 대강의 윤곽이 보인다. 태극기를 앞세운 에너지라든가 기운생동을 포괄하는 이미지가 대표적으로 채택되었다. 그 핵심이 치우천왕 깃발이다. 그들이 제안했던 꽹과리부대나 도깨비의 이미지에 가장 어울리는 캐릭터였을 것이다. 붓글씨 도안이나 숫자 12, 국악장단 등의 기획이 모두 이 아이디어와 연결되어 있다.

 

다시 천년, 개인들의 새로운 공동체로

 

뉴밀레니엄의 변화들이야 각계각층 각 장르 각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나현신,김현주의 뉴밀레니엄시대 패션에 나타난 '페이크 펀(fake fun)' 디자인을 참고한다. 2000년 이후 기성복 컬렉션을 보면 오브제의 쓰임새를 엉뚱한 위치로 이동시키거나 착용 위치를 뒤바꾼 스타일 등의 위치 왜곡, 의복의 일반적 형태를 왜곡하고 정상적인 착장 형식을 파괴하는 형태 왜곡, 눈속임 기법 등 현실 세계에서 불가능한 조합과 부조화를 통한 일탈 등이 일상화된다. 보는 이에게 유쾌한 감정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페이크 펀'이 뉴밀레니엄 시대의 주요한 트렌드로 자리매김했을까


기왕의 패러다임을 전복시키거나 희화화 시키는, 그래서 새 시대를 보다 즐겁고 재미있게 맞이하는 태도들이 두드러졌음을 보여준다. 마치 장난을 좋아하는 도깨비들의 심성이라고나 할까. 이제는 누구 눈치 보지 않고 권세에 주눅 들지 않으며, 기성의 양식과 제도를 비틀어 조롱하거나 비판하고, 그것을 당당하게 패션이나 각 장르들의 전면에 내세우는 시대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월드컵 축구 응원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일사 분란한 동원 체제를 강조하는 듯 보여도 사실은 페이크 펀에서 보여주는 놀이의 수단이기도 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월드컵 응원에 놓인 이 중층적이고 양가적인 태도는 이후 벌어질 촛불집회로 승계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그러나 이것이면서 저것이기도 한 복합적인 존재의 의미를 거리낌 없이 쏟아낼 수 있는 준비를 하였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기왕의 좌파, 우파의 구분법을 뛰어넘어, 붉은 치장을 두르고 붉은악마가 되었다가 광장의 촛불이 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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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00년 뉴밀레니엄을 맞이하고 두 번의 십년을 보내고 있다. 이전의 천년과 새로 온 천년은 시간의 분절이라는 관습적 기점의 어떤 비전들을 설정하였나? 만약 설정하였다면 그 비전은 어떻게 이행되고 있나? 한국의 크고 작은 광장을 가득 메우면서 뉴밀레니엄을 열었던 붉은악마와 함께 분노의 여신, 페이크 펀, 내셔널리스트 치우의 등장을 다시 주목해보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붉은 흐름이 어찌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해 톺아보는 것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다시천년'의 기점에 이들이 등장하게 되었으며 그 의미는 또 무엇일지 추적해보는 시간을 마련해보려 한다. 거듭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야말로 통과의례였다는 것, 이 의례를 통과하지 않으면 뉴밀레니엄을 도저히 열 수 없었던 불가피한 놀이였다는 점이다. 고작 일 년이 그렇고, 한 세기도 그럴진대 아무려면 한 천년이 그냥 올수야 있겠는가. 나는 지금 유쾌한 반란, 다시천년 벽두의 붉은악마를 애틋하게 추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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