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3 (월)
흙의 소리
이 동 희
복귀 <5>
"방향方響의 한 악기는 양梁나라 때부터 일어나 상하에서 통용하여 쇠북〔鍾〕과 경쇠〔磬〕의 소리를 대신한 것입니다. 팔음八音 중에서 다만 경쇠 소리만이 사시로 변하지 않는데 방향도 그러합니다.”
방향은 당악에서 쓰는 타악기의 하나로 상하 두 단으로 된 틀에 직사각형으로 된 여덟 개의 강철판을 벌려 놓고 두 개의 뿔 방망이로 쳐서 소리를 낸다.
"그 나머지 속이 비고 구멍이 뚫린 약기는 몸체가 얇고 안이 비어서 음향의 기운을 쉽사리 느끼는 까닭으로 한여름이 되면 건조해서 소리가 높고 한겨울이 되면 응삽凝澁해서 소리가 낮게 되므로 반드시 경쇠 소리에 의하여 조절해야만 소리가 조화되니 「시경」 나의 경쇠 소리에 의거한다는 것(依我磬聲者)도 이 때문입니다. 경쇠 소리 외에는 다만 방향이 의거할 만하므로 진실로 절실하고 긴요함이 되겠지만 그러나 우리 나라의 방향은 다만 3부部만 있는데 그 소리가 절반 이상이 그 정성正聲을 얻지 못해 한스러운 일입니다.”
관습도감사 박연은 계속해서 상언하였다. 악기의 구조 음의 높낮이 그리고 그에 대한 심도 있는 소견과 느낌을 말하였다. 맞는 말인지 모르지만 너무도 빠삭하게 열거하였다.
"또 문밖의 행악의 기구를 살펴본다면, 천자의 제도는 방향 8가架를 사용하니 제후의 나라에서는 마땅히 그 제도를 반으로 해서 만들어야 될 것인데, 도감에서 여러 악공이 배우는 것은 다만 창고 안에 간수하고 두고 있어, 사사로이 익히는 사람은 오로지 의거할 바가 없으니 작은 결점이 아닙니다. 원하건대 더 만들어 바로 잡아 다스려서 한편으론 행악行樂의 수효를 갖추고 한편으론 사사로이 익히는 악기를 넓히게 하소서.”
그같이 상언하자 이를 바로 상정소에 내려 함께 의논하여 아뢰도록 명하였다. 세종 13년 12월의 일이었다. 11월에도 박연은 여러 의식 때의 음악 사용에 대하여 상언하였다.
"옛날 제도에, 모든 제사에 있어 인귀人鬼를 제향하는 음악과 신을 영송할 적에는 모두 황종궁을 사용했으니 대개 황종궁은 북방 자위子位의 음률이 되므로 하늘에 있어서는 허성虛星 위성危星의 얽힘이 되어 허성이 하늘의 종묘가 되는 것입니다. 일설一說에는 ‘자방子方은 제사 지내는 사람의 머리를 두는 방위이므로 이 궁宮을 사용하여 인귀를 제향하는 것이라’고 하여 제사에 황종궁을 쓰는 것은 그 뜻이 스스로 구별되니 존비尊卑를 분변分辨한 것은 아닙니다.”
허성과 위성은 이십팔 수宿의 열 한 번째 별자리와 열 두 번째 별자리이다. 자방은 이십사 방위의 하나이고 정북正北을 중심으로 15도 각도 안의 방향이다.
전정殿庭에서 조회할 때에 임금이 거의 황종궁을 사용하는 것은 대개 황종이 12음률의 처음이 되어 여러 음률이 모두 황종에서 나오게 되니 높은 것에 통속統屬되어 대항할 수 없으며 또 음악을 사용할 적에 황종은 다음 음률로서 사용되지 않으니 만약 황종을 사용하여 궁을 삼는다면 그 사용하는 칠성七聲이 모두 본 음률의 음이므로 청성淸聲이 섞이지 않고 순수하고 홍아弘雅하며 또 오성五聲에 황종은 군君에 속하고 또 그 위치도 높은 데 있어 남쪽을 향하여 임금의 기상이 있는 까닭으로 역대의 제도에 황제의 출입에는 황종궁을 사용하고 신하들의 예배에는 고선궁姑洗宮을 사용하였는데 이를 살펴본다면 임금이 대개 황종을 쓴 것은 오로지 임금을 높이기 때문에 이를 구별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박연은 목이 잠긴 채 계속해서 아뢰었다.
"신의 망령된 생각으로는 오늘날 전정에서 아악의 사용이 매월 초하루 조하朝賀에는 전하께서 홀로 지존至尊하신 까닭으로 출입할 때 황종궁을 사용함은 마땅합니다. 만약 정조正朝와 동지 조하에는 반드시 두 가지 중례重禮가 있사오니 음악을 사용할 적에 혼동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첫째로 망궐望闕의 의식은 전하께서 진실로 신하의 예로 자처하면서 출입의 예배에 그 전대로 황종궁을 사용하시니 옳지 아니한 듯합니다. 고선궁으로 고쳐 사용하여 제후의 법도를 빛나게 하시고 예가 끝날 때에 이르러 궐패闕牌를 철거한 뒤 본조本朝의 예를 행한다면 전하의 출입에 황종궁을 사용하고 세자와 군신群臣의 예배에 고선궁을 사용하게 하여 한결같이 삭일朔日의 의식과 같게 하여 군신君臣의 분의分義를 밝히소서.”
법도와 절차 관례를 하나 하나 열거하며 박연은 과감하게 아뢰었다. 줄기찼다.
이 자리에는 맹사성 황희 정승을 비롯하여 정초 신상 허조 등 대신들이 묵묵히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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