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월)
청자의 아름다움과 인연의 소중함을
이규진(편고재 주인)
고미술을 파는 상술에는 재미있는 일화들이 여럿 있다. 어느 상인이 뚜껑까지 완전히 갖춘 청자 주전자 한 점을 구했다. 그러나 뚜껑은 가게에 남겨두고 몸체만을 든 채 단골 고객을 찾아갔다. 뚜껑이 없다고 싸게 나온 물건인데 차후 반드시 구해 드릴 테니 사두시면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권하자 고객은 싼값에 귀가 솔깃해 구입을 했다. 세월이 좀 흐른 뒤 상인이 다시 고객을 찾아갔다. 뚜껑이 있는 곳을 찾긴 찾았는데 소장자가 값을 만만치 않게 부르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고객은 짝을 맞출 욕심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뚜껑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온전한 청자주전자 한 점을 시중가 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구입을 하게 되었으니 결국은 고단수의 상인 농간에 넘어가 버린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갑자기 이 일화가 생각난 것은 근래 구입한 청자합편 때문이다. 아래쪽 몸체만 있는 것인데 그 것도 일부가 깨어져 달아난 불완전품. 그러나 보면 볼수록 범상치 않은 느낌을 주는 물건이었다. 규석 받침에 비색이어서 상품이라는 느낌도 느낌이지만 옆면에 2중 투각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청자 중에는 투각을 한 것이 더러 있다. 청자돈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 청자합편은 일반적인 투각을 한 것이 아니라 안쪽과 겉쪽 사이에 비어 있는 공간을 두고 겉쪽에 투각으로 당초문을 새기고 있어 주목된다. 말하자면 2중 투각으로 흔히 볼 수 없는 모양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청자합에 2중 투각을 한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후의 일이다. 보면 볼수록 2중 투각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래 생각을 좁히고 좁혀 보자 전에 이와 비슷한 것을 구입했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찾아보니 과연 그동안 구해 두었던 자료들 속에 2중 투각을 한 청자합편 뚜껑이 있었다. 맞추어 보니 아래 위가 딱 들어맞는 제짝이 아닌가. 밑짝은 근래 답십리에서 구입한 것이고 위짝은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전에 인사동에서 구입을 한 것이었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을 달리해 구입을 한 것이니 상인의 농간에 놀아난 결과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곳에서 태어나 멀리 떨어져 있다가 편고재 사랑방에서 우연히 다시 제짝을 만났으니 기적도 보통 기적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기적을 연출하며 제짝을 만나 구색을 갖춘 청자합편의 모양은 어떤 것일까. 합편의 밑짝은 옆 부분 일부가 훼손된 가운데 규석받침을 하고 있으며 안팎이 모두 비색이다. 위짝 또한 안팎이 비색인 것은 마찬가지이고 옆 부분에 2중 투각을 하고 있는 것도 밑짝과 동일하다. 그런데 위짝은 윗면이 명품답게 문양이 일품이다. 테두리 쪽으로 넓게 만(卍)자 무늬를 돌린 가운데 중앙에는 두 줄의 흰 선과 그 안에 흑상감의 연주문을 넣고 있다. 그리고 테두리 선과 중앙의 원 사이에는 큼직하게 두 점의 절지문과 두 마리의 벌을 흑백상감으로 배치하고 있다. 위짝의 반 정도가 달아난 것으로 보아 원래는 네 점의 절지문과 네 마리 정도의 벌이 있었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이런 문양의 배치는 흔히 볼 수 없는 것이어서 2중 투각과 더불어 이 합편은 그야말로 이런 종류로는 보기 드문 명품중의 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면 청자2중투각합편에 배치된 꽃과 벌의 의미는 무엇일까. 모든 식물은 꽃을 찾아다니는 벌들의 매개에 의해 수정이 되고 열매를 맺는다. 식물은 열매가 있어야 또 번식이 가능하다. 이러한 식물이 있어야 동물이 살고 동물이 있어야 인간의 생존도 가능하다. 따라서 세계적인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만약 꿀벌이 멸종한다면 몇 년 안에 인류 또한 멸종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그 만큼 꽃과 벌의 관계는 자연이 생명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불가결의 귀중한 자산인 것이다. 고려인들은 이러한 자연과 생명의 질서를 꿰뚫어보고 그 의미를 청자2중투각합편에 새겨 넣었던 것일까.
가끔 이 청자2중투각합편을 보며 기적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아니 인연의 의미를 되새겨 보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옷깃 한 번 스치는 것도 억겁의 인연이라고 한다. 겁이란 불교적 용어로 시간의 단위다. 그런데 그 시간이라는 것이 3차원적인 시간이 아니어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비유적으로 예를 들고는 하는데 이런 식이다. 하늘의 선녀가 바닷가에 백년에 한 번씩 내려와 그 하늘거리는 치맛자락에 스쳐서 자갈들이 모래가 되는 세월이라고. 그렇다고 하면 겁이란 얼마나 오랜 세월인가. 거기에 억이 더해지니 어쩌면 억겁이란 무한대의 세월이요 끝을 모르는 아득한 피안 저편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인연이란 그렇게 지난한 것이건만 청자2중투각합편에서 그런 만남의 기적이 일어났으니 이 얼마나 귀중하고도 소중한 일인가. 따라서 청자2중투각합편을 보면서는 늘 청자의 아름다움과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함께 생각해 보게 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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