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2 (일)
이규진 (편고재 주인)
어려서 어른들이 오줌장군을 지게에 지고 다니는 것을 많이 보며 자랐다. 오줌장군은 질로 만들다보니 자체로도 무게가 있어 불편함에도 불구 이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시만 해도 분뇨를 운반할만한 마땅한 용기가 없었기 때문으로 보여 진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 고미술에 관심을 갖다보니 장군은 오줌장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옹기는 물론이거니와 삼국시대의 토기를 비롯해 조선시대의 분청과 백자 등 도자기에도 많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재료를 바꾸어 가며 장군이 사랑을 받아온 이유가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장군의 몸체는 길쭉한 원통을 뉘여 놓은 것과 같은데 윗면 중앙에 주구가 있는 것이 기본형태다. 밑 부분에 굽을 만들거나 좌우 어느 한쪽을 자른 듯 평평하게 만들어 세울 수 있도록 한 것도 있는데 이는 사용상의 편리성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여 진다. 그렇다고 하면 장군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세종실록>에는 장군이 술병임을 밝히고 있어 음료를 담는데 사용되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몇 해 전 일이다. 지인의 지인이 교외에 경양식집을 개업했다고 해서 몇몇이 놀러 갔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집 창틀에 웬 조선 초기 백자장군이 한 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몸체의 1/3정도가 깨어져 달아난 불완전품이었지만 그 형태며 색감이 그야말로 내게는 환상적인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단숨에 완전히 매료가 되었던 것이다. 알아보니 마침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 사정이 있어 잠시 갖다놓은 것이었다. 나는 지인을 조르고 졸라 결국 장군을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성공하고야 말았다.
우리의 문화, 특히 도자기를 이야기 할 때 흔히 자연친화적인 면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일부 일그러지거나 일정치 못한 백자의 색감들 또한 이에 준해서 해석을 하고는 한다. 물론 그런 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고 요변과 경색의 미 등 충분한 설득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초기 관요 백자에서 보이는 엄정함과 눈부신 색감을 어찌 자연친화적이라는 말로 한데 뭉뚱그려 논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신진 사대부들에 의해 주도된 조선 초기의 세태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관요 백자 중에는 서릿발 같이 빈틈없이 반듯한 자세와 옥양목을 빨아 널은 듯 눈부시게 흰 빛깔의 색감이 그야말로 자연친화적이 아니라 오히려 인문학적인 깊이를 느끼게 하고도 남는 것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백자장군병편은 일부가 손실되어 아쉽기는 하지만 바로 이러한 조선 초기 백자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명품 중의 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백자장군병편도 장군의 기본적인 틀에서 벗어나 있지는 않다. 몸체는 원통을 가로로 뉘인 듯 약간 길쭉한데 상단 중앙에는 입술이 말린 나팔형의 주구가 맵시 있게 달려있다. 우측은 몸체의 1/3정도가 깨어져 달아난 가운데 좌측은 원통이 약간 줄어들게 한 후 절단을 하듯 잘라서 세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부분은 유약을 훑어내 태토를 노출시키고 있으며 몸체 하단에는 큼직한 다리 굽도 만들어 붙이고 있다. 깔끔하게 정리된 기형이며 일색으로 눈부시게 빛나는 설백의 유약이 손상된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아쉽지 않게 고아하면서도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 백자장군병편의 속을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유약을 입힐 때 주구로 유약이 흘러 들어가 한쪽으로 뭉친 듯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이 푸른빛을 띠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백자의 유약도 두껍게 뭉치면 이처럼 푸른빛을 띨 수 있다는 사실이 자못 흥미로워 보인다. 나는 이 백자장군병편에 매료되어 술을 담을 수 없는 대신 꽃을 꽂아놓고 더러 조선조 선비의 타협을 모르던 그 추상 같이 올곧은 마음을 헤아려 보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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