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특별기고] 한여름 밤의 잡상 - 모기, 복숭아 그리고 국악협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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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한여름 밤의 잡상 - 모기, 복숭아 그리고 국악협회 -

갑작스레 규모를 줄여 이사하다 보니 모든 공간을 책으로 채우게 되었다. 에어컨 설치도 선풍기 놓을 자리조차 없는 실정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빌라 맨 위층 끝이라 모든 문을 열고 살아도 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모기에 시달리게 되었다. 오늘 밤도 겨우 잠들려는 즈음에 웨~~잉 하는 모깃소리에 잠자리를 털고 말았다. 불을 켜고 소리 낸 놈을 추적하려다 보니 아예 잠은 멀리 보내야 했다. 내친 김에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어 불면의 한여름 밤의 잡상(雜想)’을 끄적이게 되었다.


60년대 전깃불이 없던 시골 벽촌에서 산 이들이라면 ‘7월의 공포’(?)란 말에 공감을 표할 것이다. 중복(中伏)을 전후한 7월 한여름 밤의 모기에 대한 두려움을 말한다. 흔히 우리는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게 되면 ()을 뗐다라고 하는데, 이는 무서운 질병 말라리아를 학질(瘧疾)’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병의 감염원이 모기라는 사실에서 그 위험성을 알게 한다. 대개 외양간 같은 가축우리와 화장실 문을 개방하고, 논이나 개울 같은 물을 가까이하는 주택 구조 때문에 모기의 극성을 함께 하게 된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유일한 대처법은 기껏 등잔불을 끄고 모깃불을 피우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린 나이로서는 모기에 대해 증오와 공포를 느낄 만도 한 것이다.


모기에 대해서는 조상들도 극히 증오를 표하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이 시 모기를 증오함(憎蚊)’에서 "몸통도 그리 작고 종자도 천한 놈이/어째서 사람을 보면 침을 그리 흘리느냐라고 투정하고 "부리 박아 피를 빨면 족함을 알아야지/어찌하여 뼈에까지 독기를 주고 가냐라며 공포를 드러낸 데서 알 수가 있다. 이는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생태에 대한 연구가 매우 깊다는 데서 알 수가 있는데, 그 결과를 인용하면 이렇다.


모기는 17천만 년 전에 출현하여 35백여 종으로 진화했고, 암컷은 한 번에 100~200개씩, 한 달에 3~7번 알을 낳는데 매일 수십억 마리를 탄생시킨다. 암컷은 수컷과 단 한 번 짝짓기 하여 일생에 필요한 모든 정자를 받아 몸속에 저장했다가 조금씩 꺼내 수정해 알을 낳는다. 흡혈하는 종은 200여 종으로 이들은 보통 초속 0.5m로 나르며 소리를 낸다. 부리는 톱날침과 바늘침 1쌍씩과 흡혈관 1개로 자기 몸무게의 2~3배나 되는 6~9을 흡혈하며 이때 내뿜는 액()으로 발병을 시킨다. 이 액의 독성(毒性)으로 학질을 일으켜 매년 72만 명을 사망하게 한다. 이는 광견병으로 죽는 사람은 25천 명, 뱀에게 물려 죽는 사람은 5만 명, 전쟁이나 테러 등에 의해 죽는 사람은 47만 명이니 지구상 가장 치명적인 동물일 수 있다. 극히 작은 액의 독성이 치명적이라니 그저 귀찮은 존재를 넘어 공포의 대상이 될 만도 한 대상이다.


잠 못 들게 한 모기를 미워하다 보니 자정을 막 넘기는 순간이다. 이때 나와 같이 잠 못 드는 이가 또 있었다. 경쾌한 이메일 도착 벨이 울려 열어 보니 조치원에 사는 지인 Y가 먹고 남는 복숭아를 보내려 하니 새 주소를 알려 달라는 내용이다. Y10여 년 전 복숭아 축제를 기획했던 지역문화 운영에 탁견을 가진 분이다. 매년 맛있는 복숭아를 보내주는 분인데, 큰 모자를 쓰고 땀을 흘리며 복숭아를 따는 환한 모습을 떠올리니 미소가 머금어진다. 그리고 나를 40여 년 전의 한 기억으로 내달리게 한다. 기억 속의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


19751224, 훈련소 입소를 위해 친구와 함께 논산에서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이때 여인숙 근처의 작은 식품점에서 복숭아 한 무더기를 보고 호기심에서 모두 샀다. 안주를 겸해 샀는데 매우 특별한 맛을 보았다. 말랑하면서 향이 매우 강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이 복숭아는 10월 숙기(熟期)를 거쳐 11월 첫눈을 맞고서 수확하는 ()라는 백도 종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때에 따라서는 한겨울까지도 보관이 된다는 데, 당도와 향이 일반 복숭아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이때의 경험 이후 나는 복숭아에 대한 암묵지(暗默知)를 갖게 되었고, 여름 과일로 참외나 수박보다는 복숭아를 꼽게 되었다. 오래 전의 경험이지만 회상하면 크리스마스 이브의 쓸쓸함과 삭발의 허전함을 채워준 그 친구가 그립고, 향과 맛으로 가장 좋아하는 과일로 만든 그 겨울의 복숭아가 떠올라 입맛을 다시게 된다.


복숭아는 원래 이름이 '복셔ᇰ()'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복사꽃을 뜻하는 복셔ᇰᇰ+를 열매까지 뜻하게 되어 복셔ᇰᇰ화-> 복숭아로 변화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 복숭아는 전 세계에 약 3천여 품종이 있는데, 원산지는 중국이고 실크로드를 통하여 서양으로 전해졌고 17세기에는 아메리카 대륙까지 퍼지게 하였다. 중국 명대(明代)의 소설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9천 년이 걸려 익는 과일을 먹고 달아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 과일이 복숭아인 판타오(蟠桃)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야생의 돌복숭아가 있는데, 천식, 기침, 기관지염 등의 약재로 쓰인다. 이 야생 돌봉숭아의 약성(藥性)과 강한 향으로 하여 민속적 대상으로 활용되어 오기도 한다. 그러다 오늘과 같은 품종을 갖게 된 것은 1906년 황실(皇室) 시설인 원예모범장(園藝模範場)’에서 백도·천홍·대구보·백봉 같은 개량 품종 20여 종을 재배, 보급한 것으로부터라 한다.


복숭아의 주성분은 수분과 당분이며 유기산이 1%가량이다. 비타민A가 풍부한데 과육은 씨 주변이 분홍색이냐 흰색이냐로 나뉘는데 모두 아스파라진산이 많다. 발그스레한 색깔과 탐스러운 모양을 꽃으로 착각한 벌레나 벌이 많이 꼬이는 편이라 일반적으로 제맛을 볼 수 있는 기간이 초여름에서 초가을로 짧은 편이어서 제철이 아니면 맛보기가 힘든 과일이다. 식감은 익은 정도나 종류나 품종에 따라 묘하게도 다른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 복숭아에도 미워해야 할 약점이 있다. 모기의 액 못지않은 독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과육과 털에 의한 알레르기이다. 이 증세는 유전적인 경우가 많은데, 항원-항체 반응의 결과로 연속되는 재채기에서부터 심한 생리적 기능까지 마비시킨다고 한다. 이런 독성을 범죄에 이용하기도 하는데, 몇 년 전 개봉한 영화 기생충에서 털 알레르기를 이용한 위계(僞計) 장면 같은 것이 그 예가 된다. 세상 이치가 참 묘하다. 그토록 향과 맛이 매혹적인 복숭아가 이런 독성을 지니고 있다니. 아마 맛과 향의 지나침에 대한 절제라는 자연의 섭리가 아닌가 싶다.


모기에서 복숭아로 이어진 잡상을 갖다 보니 잠은 점점 멀리 가버린다. 동틀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미 와있는 메일 하나를 열었다. 그런데 이 메일 내용이 나를 오늘의 현실로 돌아오게 하였다. 그것은 국악계의 현안인 국악협회 사태에 대한 것이다. 현 제27대 임웅수 이사장이 선거와 관련하여 문제가 있어 차점 후보가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 때문에 이사장이 결위(缺位) 되는 사태를 맞았다. 국악계의 큰 잔치인 창립 60주년 사업도 추진하지 못하고, 코로나로 어려움에 부닥친 국악계에 전승 의욕을 추동시키지도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사실 이 협회는 명실상부한 민속악계의 최고 협의체로 국립국악원과 함께 우리 국악을 이끌고 온 주체이다. 이런 단체가 법원 결정에 따라서는 수장(首長) 없이 관선이사(변호사)로 대행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관선 이사가 현 사태를 알고 관리할 수 있는 국악인이 아니고 법률가일 뿐인 일개 변호사가 선임된다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이러니 비판은 당연할 듯하다.


메일을 꼼꼼히 읽어 보니 국악협회에 대한 이 비판의 속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근래 20여 년간 시행된 이사장 선출 선거 방식에 독소조항(毒素條項)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투표권을 갖는 회원 자격을 매우 허술하게 규정한 조항이다. 이 때문에 후보가 회원 자격이 없는, 또는 상실된 회원들을 확보하여 회비를 일시에 대납시키는 등의 편법으로 이들의 표를 매수하여 당선되는 부당행위를 해 온 것이다. 이의 부작용으로 많은 이사장들이 당선 후 후유증을 앓거나 이번처럼 발목이 잡혀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결국 협회 정관상의 회원 자격 부여와 회원 자격 회복에 관한 규정이 완비되지 못하였고, 규정을 무시할 만큼 무질서한 상태에서 선거가 치러졌다는 것이 된다. 당연히 관례(慣例)라는 이름으로 묵과(黙過)해 온 적폐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행 정관 제3장 임원선출 조항에서 "후보 등록 6개월 이전 가입한 회원만이 선거권을 갖는다.”는 등으로 자격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선거인단은 반드시 후보자의 기본적인 도덕성 검증 절차를 도입하여 시행할 것을 규정해야 한다. 이와 함께 회원들의 자세도 일신되어야 한다. 국악인으로서 예술 분야에 종사한다는 자존심을 갖고 공동체 정신으로 운영에 참여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동안 독소조항을 관례라고 안고 왔던 적폐를 단연코 단절해야 할 것이다.


뜬금없는 잡상으로 한여름 밤을 뒤척였다. 그러고 보니 독성은 증오하는 모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맛과 향으로 매료시키는 복숭아에도 있고, 전문 예능인들의 모임에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모든 것에는 나름의 독성이 있다는 것이고, 그 독성은 화()나 병()을 유발하는 것이니 피하거나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먼저 독성의 여부와 정도를 가려내는 눈을 가져야 함은 당연할 것이다.


, 혹시 나는 누군가에게 독성을 지닌 사람은 아닌가? 잠이 확 깬다.(三目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