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6 (월)

[김기자의 객석에서] 7월에 보고 듣는 ‘고흐와 브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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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객석에서] 7월에 보고 듣는 ‘고흐와 브람스’

  • 김한나
  • 등록 2021.07.19 15:57
  • 조회수 929

푹푹 찌는 7월을 월간지 길벗이 전하는 초록빛 소식으로 시작한다. 옅은 미소를 안겨 줄 싱그러운 그늘 같은 이야기들이다. 먼저 무릉도원으로 이끄는 봉래산의 절경에 감탄하며 한참을 머물렀다. 별을 아는 자가 세계를 다스린다는 별 이야기에서는 솔깃하고, 식도락의 짜장면은 침샘을 자극하며 저녁 메뉴로 낙찰된다. 평화누리길의 논과 하늘은 청명하고 평화로운데, 담겨있는 소식은 안타깝기만 하다. 딱 봐도 사랑하는 사이인 배도라치의 순진무구한 눈과 사랑스러운 포즈에서는 안타깝던 마음과 함께 세상 근심이 녹아내린다. 아리랑으로 읽는 세상은 글을 읽기도 전에 배경색과 무늬가 아리랑이라고 말해주는데, 아리랑은 사물이 아니라 형상을 표현할 수 없지만, 아리랑 페이지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는 묘한 매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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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미술가 빈센트 반고흐 (Van Gogh 1853-1890)의 '성경이 있는 정물화'

 

작년 여름 명화의 감동을 미디어아트로 본 적이 있다. 사방의 모든 벽면과 바닥에서 그림이 펼쳐지고, 영상에 의해 그림은 살아 움직이며 실제 크기보다 몇 배나 커진 대형 명화를 볼 수 있었다. 빛과 음악이 어우러져 또 다른 감상으로 접했던 거장 고흐의 명화였다. 그림과 함께 흘러나온 음악 중에 브람스의 곡이 있었는데, 이번에 길벗에서 고흐와 브람스가 만났다. 길벗에서 고흐는 두 번 만났지만, 추억을 선물받았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고흐와 브람스를 소개한다.

 

사람을 그리는 고흐, 사진보다 더 닮은 인물화, 듣는 자가 말하는 자보다 크다.


명화 속 사람들의 초상화 주인공들이 우리 동네에 있다는 주제로 고흐의 초상화와 정물화 속에 숨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고흐는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풍경화와 정물화를 습작의 과정으로 삼기도 했다. ‘성경이 있는 정물은 탁자 위에 성경책과 촛대, 소설책이 있는 그림이다. 목사였던 아버지가 죽은 뒤에 그린 것으로 이사야 53장이 펼쳐진 성경책은 갈등 관계였던 아버지를 상징한다. 노란빛의 에밀졸라의 삶의 기쁨은 독서광이기도 했던 고흐 자신이다. 신성한 빛을 발하며 살겠다는 촛대와 이사야의 고난과 에밀졸라의 기쁨은 애정과 화해 그리고 진실을 말하는 정물화다. 고흐는 사람의 현실과 현실 그 이상을 보여주기 위해 정물에 사람을 그렸다.

 

습작과 무명의 시간이 지나고 특별한 사람들을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화방을 운영하던 탕기 영감이다. 당시 고흐는 동생 테오와 일본판화에 심취해 있어서 영감의 가게에서 제법 사 갔고, 돈도 자주 빌렸다. 고흐는 인물화가 사진보다 더 닮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의 그림에는 강조되는 부분이 있었다. ‘탕기 영감의 초상화에서는 영감의 수고를 나타내는 중수골이 튀어나온 흙색의 손이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저녁 먹기 전 일과를 알 수 있는 나무뿌리 같은 손이 강조되었고, 영감의 손과도 닮아있다. 사진과 거울보다 그림이 그 사람을 더 닮았다니. 고흐의 눈은 보이지 않는 삶의 진실을 보는 눈을 가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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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고흐 (Van Gogh )의 '감자를 먹는 사람들'

 

카페 탕부랭에 앉아 있는 아고스티나 세가토리의 그림은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자세다. 맥주잔의 손잡이 위치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맞은편에 앉아 있다. 그 사람이 고흐이고 맥주잔이 고흐를 상징하는 정물이라고 한다. 맥주가 가득한 것은 다독가였고 그림에 관해 세세히 기록했던 고흐의 이야기보따리를 표현한 것이다. 성경 앞에 소설책과 세가토리 앞에 놓인 맥주잔으로 고흐는 자신을 작은 정물로 투여했고, 아버지와 세가토리는 주인공이 되어 큰 사람으로 그렸다. 오늘날 고흐가 살아있다면 초상화의 주인공은 옹이와 나무뿌리 같은 손을 가진 자와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일 것이라 한다. 

주어진 삶의 하루하루를 충실히 쌓고, 말하기보다 들을 준비가 되었다면 우리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브람스의 목소리와 헝가리 무곡 1, 베토벤과 나란히 3B, 브람스 풍의 교향곡


고흐는 갔지만 고흐의 그림은 남아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림이 우리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듯이 음악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연주되는 수많은 곡을 그 당시 작곡자의 연주로 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주 먼 옛날에도 녹음 기술이 있었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 녹음 기술이 생기기 전에 살았던 작곡자들의 실황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오늘날 악보나 여러 자료로 그들이 남긴 곡은 연주되고 즐길 수 있다. 1877년에 녹음기를 발명했으니 19세기 활약한 요하네스 브람스는 녹음을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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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

 

‘Music’ 편에서는 브람스가 직접 연주한 헝가리 무곡을 주제로 브람스의 음악을 소개하고 있다. ‘헝가리 무곡의 탄생 배경, 베토벤 교향곡보다 발전된 음악적 성과를 거둔 교향곡, 자유와 고독으로 녹여낸 베토벤과 비교 불가 교향곡, 세 곡의 이야기다. ‘Music’QR 바코드가 있어 읽으면서 청음도 가능하다.

 

브람스는 녹음 제안으로 헝가리 무곡 1번을 연주했다. 음질은 열악하지만 브람스가 직접 연주한다. 이 곡을 선택한 건 각별히 아꼈음을 말해 준다. 어린 시절 브람스는 가난했다. 19세 때는 바이올리니스트와 피아노 반주를 맡아서 여행하며 앙코르곡으로 집시음악을 연주하곤 했다. 후에 연주한 선율들을 악보 화하여 피아노 편곡의 헝가리 무곡으로 출판된다.

 

낭만주의 시대를 살았던 그는 과거의 음악적 유산들을 탐구하며 고전주의 형식을 지향했다. 브람스는 앞 시대를 살다간 베토벤을 무척 존경했는데, 베토벤이라는 거인의 발자국을 의식하며 20년의 산고 끝에 첫 교향곡을 완성하게 된다. ‘교향곡 1C단조 4악장 피날레는 베토벤 9번의 피날레를 연상시켰다. 한스 폰 뷜로는 "드디어 베토벤 교향곡 10번을 얻었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또한 바흐, 베토벤, 브람스를 3B라고 최초로 지칭하여 오늘날 독일의 위대한 음악가 3B’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는 베토벤과 자주 비교 대상이 되었지만 19세기 음악계는 브람스의 교향곡이 베토벤의 교향곡을 한 걸음 발전시킨 음악적 성과라고 평가했다.

 

브람스의 교향곡 중에 베토벤과 비교되지 않은 단 하나의 곡이 있다. 4E단조다. 바로크풍의 파사칼리아와 변주곡 형식으로 베토벤의 전형인 장조의 환희에서 벗어나 단조의 어두움을 띄고 있다. 자유롭고 고독하게 살다간 브람스는 이 곡으로 브람스만의 교향곡을 완성했다. 대 지휘자 푸르트벵글러는 "독일 음악의 세계적 유효성을 한 번 더 분명하게 만인 앞에 보여준 마지막 음악가라고 예찬했다.

 

혹 클래식이 따분하다면 헝가리 무곡 5번을 들어보라. 브람스와 제목은 몰라도 이 곡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더위와 코로나는 여전하다. 불편하고 어려움은 있지만, 오늘은 고흐의 그림을 보며 브람스의 음악으로 잠시나마 위로받는 건 어떨까.